그가 택한 세상(제5회 우수작)

그가 택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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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혈귀는 갓 잡은 괴물 한 마리를 포박해놓았다. 놈은 시뻘건 눈을 뒤집으며 반쯤 부서져 날카로워진 이를 드러냈다. 괴물이 되더니 송곳니라도 생긴 것 같았다. 흉측한 코모도같이 끈적한 침방울이 독액처럼 뚝뚝 떨어졌다. 분노에 미쳐버린 괴물은 코브라처럼 침을 칵칵 뱉으며 흡혈귀를 위협했다. 흡혈귀는 요리조리 피하며 괴물을 진정시키려 했다. 아무리 흡혈귀지만 혹시 있을지도 모를 상처에 그 침이 묻기라도 한다면 자신도 변종 흡혈귀가 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봐, 진정해. 네 피를 빨겠다는 건 아냐. 난 너처럼 되고 싶지 않거든. 아무리 목이 말라도 독극물을 마실 수는 없으니까.”

오로지 인육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힌 괴물의 썩어문드러진 귀에 그의 말이 들릴 리 만무했다.

“이거 정말 미치고 폴짝 뛸 노릇이군. 위치를 대란 말이야! 내 말 안 들려?”

흡혈귀가 잡아온 괴물은 인간이었을 때 혈액원 말단 직원이었다. 아파트도 없는 주제 결혼을 꿈꾸던 당찬 노총각이었다. 씀씀이 큰 어린 애인을 감당하다가 덩달아 씀씀이가 커진 그는 사채업자였던 흡혈귀에게 구차한 인생을 저당 잡히고 몇 푼 꾸어갔다. 하지만 그마저도 백화점 명품관에서 날리기 일쑤. 흡혈귀는 그의 카드 돌려막기를 도와주는 대가로 혈액원의 싱싱한 피를 요구했다.

흡혈귀는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괴물을 고문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질은 고통도 모르고 말귀도 못 알아먹는 괴물이었다. 말이 고문이지 간청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봐, 네 빚은 다 탕감해 주겠다니까. 물론 그런 것 따윈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겠지. 자네는 어떤 면에선 자유로워졌으니까. 하지만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말 좀 해주지 않겠나? 혈액원, 그러니까 네가 아침마다 출근하던 그 빌어먹을 직장의 위치를 대란 말이야.”

인터넷이 마비된 세상에서 흡혈귀는 혈액원 위치라는 지극히 간단한 정보조차 구할 수 없었다. 그는 속이 타들어갔지만 돌아오는 대답이라곤 칵칵 침을 뱉으며 물어뜯을 듯이 드러내는 날카로운 이밖에 없었다. 광기에 휩싸인 괴물은 자학하듯이 제 손을 물고는 아작아작 씹기 시작했다. 그것은 양손을 다 씹어 삼킨 후에는 팔목과 팔꿈치까지 씹어대고 있었다. 아무리 피 빨고 사는 흡혈귀라지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으리만치 잔혹한 광경이었다.

“자네는 제 살을 뜯듯이 살더니 이제는 아예 스스로를 먹어버리는군그래.”

건물 밖에서 괴물들이 고함을 지르며 떼 지어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보나마나 몇 안 남은 생존자 중 하나가 놈들에게 들킨 모양이다. 살아있는 인간이 아직 남았나 보군! 흡혈귀는 몸을 들썩였다. 버글거리는 괴물들을 물리치고 인간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더니!”

울먹이던 그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정말 인간의 피를 마시고 않고서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심정 같아선 수십만의 괴물이라도 박살내버릴 것 같았다. 이 더러운 괴물 자식들! 내가 다 찢어놓을 테다!

흡혈귀는 겁에 질려 고층빌딩 옥상에 숨었다. 소심하게 눈만 빠끔히 내밀고 거리를 탐색했다. 동서남북. 간선도로와 이면도로. 건물의 안과 밖. 눈꺼풀을 한 번 끔뻑거리는 것도 사치였다. 잠시도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정말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았던 것이다. 정성이 통했던지 곧 그의 소망은 이루어졌다.

인간이 나타났다! 그것도 살아 펄떡거리는 인간이다! 달콤한 먹잇감이 빵처럼 부풀어 오른 볼살을 이리저리 흔들며 뒤뚱뒤뚱 달려가고 있다.

그는 군침을 꼴깍 삼키며 망원렌즈 같은 눈으로 인간을 주시했다. 이어 인간의 가슴을 투시하여 싱싱하게 날뛰는 심장을 확인했다. 쫄깃한 심장에서 먹음직스러운 시뻘건 피가 콸콸 쏟아지고 있다. 얼마나 잘 처먹고 뒹굴었으면 저렇게 쫀득한 심장을 가질 수 있을까.

흡족한 그의 입술이 초승달처럼 빙그레 올라갔다. 하지만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심장 부근에 번쩍이는 배지가 달려 있었던 것이다. 배지는 금으로 만들어졌는지 달빛을 받아 탐욕스러운 빛을 발했다. 안 돼! 흡혈귀는 먹잇감에게 경고라도 해주고 싶었다. 괴물들은 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단 말이다. 하긴 그 녀석들은 전신이 성감대인지 오만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긴 한다. 쳐다만 봐도 벌떡벌떡 일어나 달려든다니까.

그는 손가락으로 후다닥 송곳니를 점검하고는 급히 검은 망토를 활짝 펼쳤다. 제2롯데월드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면 그도 망토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 괴물들이 먹잇감을 앗아가기 전에 그가 먼저 송곳니를 꽂아야 했다.

그가 마음을 졸이며 초고층빌딩의 유리를 타고 활강하기 시작했다. 먹잇감이 점점 가까워졌다. 피둥피둥한 먹잇감은 전후좌우만 두리번거릴 뿐 위를 쳐다볼 생각은 못 하고 있었다. 흡혈귀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삐죽 내밀고 먹잇감을 막 덮치려는 순간, 그는 망토를 펼쳐 다시 떠올라야 했다.

살집 좋은 인간은 그의 먹이가 될 수 없었다. 흡혈귀는 죽음을 기다리는 대머리독수리처럼 허공을 맴돌며 입맛을 다셨다.

금배지 단 인간은 금배지 때문에 명을 재촉했다. 그는 겁에 질려 도움을 청했지만 이제 그를 위해 일해 줄 사람도, 지켜줄 경호원도 없다. 모두 그 앞에서 굽실거렸었지만 이제는 허리를 쭉 펴고 고개를 빳빳하게 든 채 그에게 달려들었다. 괴물이 수천은 돼 보였다.

그의 손가락을 차지한 괴물은 한때 그가 성추행해 놓고는 되레 무고죄로 고소한 여대생이었다. 이제 괴물이 된 여대생은 자신의 젖꼭지를 꼬집고 비틀던 그 손가락을 닭발처럼 아작아작 씹으며 육즙을 빨아댔다. 왼쪽 다리를 뜯어내 족발처럼 씹는 괴물은 그에게 전 재산과 아내까지 빼앗긴 사업가였다. 사업가는 울분에 차 마포대교에 갔다가 괴물이 되어 돌아왔다.

먹잇감은 순식간에 해체됐다. 괴물들은 눈을 파먹고, 귀를 뜯어먹고, 코를 베어냈다. 머리통을 뜯어낸 괴물들은 아이스크림처럼 그것을 핥고 빨고 씹다가 도로 퉤 뱉었다. 창자는 도로 위에 뿌려졌다가 다리 없는 괴물들의 식도로 꾸불꾸불 흘러갔다.

먹잇감이 머리카락만 남기고 사라지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외눈박이 괴물의 부패한 입술에 그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남아 있었다. 그토록 탐욕스러웠던 그였지만 그가 세상에 남긴 거라곤 괴물 입에 욱여넣어진 머리카락 몇 가닥이 전부였다.

씹히는 자와 씹는 것들이 만들어낸 피비린내가 종말의 카니발을 연출하고 있었다. 흡혈귀는 공중을 빙글빙글 돌며 주린 배를 움켜잡았다.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이대로 계속 피를 빨지 못하면 영영 기력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괴물들을 처치하고 먹이를 차지하고 싶었지만, 며칠을 굶은 그에겐 그럴 힘이 없었다.

“이 자식아! 너희들 때문에 내 팔자가 이게 뭐야!”

사냥에 실패하고 돌아온 흡혈귀는 인질로 잡힌 괴물에게 괜히 분풀이를 했다. 꼬챙이로 찌르고, 손가락으로 눈알을 꾹 눌러도 보고, 손가락도 뒤로 꺾어 보았다. 내친 김에 영화에서 보던 대로 전기고문도 해보고 싶었지만 한전 직원도 다 괴물이 된 마당에 전기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괴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이 느끼는 유일한 고통은 인육에 대한 갈망뿐이었다. 제 팔을 다 뜯어먹은 괴물은 이제 다리를 씹으려고 고개를 자꾸 아래로 숙였다. 하지만 체조선수도 아니고 그게 될 리가 있나.

흡혈귀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놈이 하는 짓만 멍하게 바라봤다. 그때 모기 한 마리가 왱왱거리며 그의 앞을 날아다녔다. 그는 손바닥으로 탁 쳐서 잡은 모기를 입으로 가져가며 구시렁거렸다.

“네놈이 나보다 능력이 좋구나. 대체 어디서 피를 이만큼 처먹어댄 거냐?”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기를 아작아작 씹어 한 방울의 피를 음미하며 흡혈귀는 눈을 감았다. 꽃 한 송이를 따 꿀을 짜 마신다 해도 이보다는 많을 것 같았다.

“정말이지 이놈의 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날 미치게 하는군!”

그의 머릿속에 지난 반세기의 한국생활이 음울하게 스쳐갔다. 그는 1950년에 대한민국을 배정 받았다.

그는 흡혈클럽의 백아흔다섯 번째 회원이었으므로 총 이백 명의 흡혈귀 중 꼴찌 축에 해당했다. 서열이 낮은 그에게 선택권 따위는 없었다. 그보다 서열이 낮은 다섯 뱀파이어는 솔직히 어디 가서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라크 행 비행기를 탔다가 자살폭탄테러에 당했거나, 흡혈귀보다 더 피에 굶주린 IS(이슬람 국가) 녀석들에게 붙들려 인질이 됐을 수도 있다.

누가 그 불쌍한 동료를 위해 몸값을 지불해 줄 것인가. 그는 목이 잘린 후에 잠깐 죽은 척했다가 사막에 굴러다니는 목을 도로 붙이는 수모를 겪어야 할 것이다.

1950년, 미군 수송기에 숨어 타고 대한민국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나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는 정말이지 송곳니로 혀를 깨물어 죽고 싶었다. 우선 비행장에 착륙하자마자 야포의 포격을 받아야 했고, 밀고 내려오는 소련제 탱크를 피하느라 발바닥에 땀나도록 달려야 했다. 흡혈도 쉽지 않았다.

죄다 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녀석들에게 무슨 수로 송곳니를 꽂는단 말인가. 의도치 않게 전시의 혹독한 고난과 굶주림을 한국인들과 함께 했던 것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의 고난은 끝나지 않았다. 폐허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은 피가 부족해 보였다. 몇 모금 빨아봐야 빈혈환자들이라서 영양도 높지 않았다. 그런 피를 빨다가 자신도 빈혈에 고생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영양실조에 지친 그는 전남 여수시 어느 부서진 방파제에 주저앉아 망연히 태평양을 바라봤다. 저 대양 너머로는 서열 높은 흡혈귀들이 마음껏 양질의 피를 쪽쪽 빨아대겠지. 고기 먹는 백인들은 헌혈이라는 것도 자주 한다더라. 굳이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혈액형 별로 뷔페를 즐길 수 있는 풍요로운 나라가 그곳이다…….

젠장! 그는 흡혈귀 사회의 양극화에 분노했다. 그리고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이 나라가 변할 때까지 잠들기. 그는 지리산 어느 암자에 머물던 스님이 김장독 묻으려고 파놓은 구덩이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흙을 그러모아 자신을 덮었다.

김장용 구덩이에서 수십 년 만에 기어 나왔을 때 그는 너무나 기뻐 똥파리처럼 붕붕 날아다녔다. 부지런한 한국인들은 연일 야근을 해대며, 휴일에도 출근을 해가며 그 보잘것없고 헐벗은 나라를 부자 나라로 바꿔놓았다. 그는 이제 한국인들이 과로사까지 해가며 만들어놓은 신나는 청룡열차에 무임승차만 하면 됐다.

어디 보자, 이 나라에서는 무슨 직업을 가지는 게 어울릴까. 그는 서울행 심야우등버스에 몸을 싣고는 고민에 빠졌다. 흡혈귀는 대대로 귀족적인 이미지를 고수해야 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귀족이 되었다. 밤새도록 일할 수 있는 장점을 살려 심야전문 대부업체를 차려 화려한 자본가가 된 것이다.

한밤중에 급전이 필요한 자들은 그를 찾았다. 그는 주로 고객의 신장을 담보로 돈을 꾸어 줬지만 이자를 감당 못한 고객은 사장실로 끌려가 피를 빨려야 했다. 급하게 사채업자를 찾아야 하는 인생 한둘이 실종된다 해서 관심 가져주는 이는 어차피 없다. 그는 금융권의 일원이 된 게 너무나 행복했다.

그는 돈이 돈을 벌어다주고, 돈이 피를 공급해 주는 자본주의의 마술을 사랑했다. 혈액원은 그에게 몰래 피를 공급해주었다. 좀비처럼 아무 생각 없는 공무원들은 대체 그가 왜 피를 필요로 하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났는지는 더더욱 궁금해 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이 맛깔스러운 거래를 계속할 것인지만 궁금해 하며 애를 태웠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갈 수 없는 법인가. 그날 밤, 아, 그날 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가뜩이나 교통체증이 짜증스러운 강남대로인데 도로 위에서 축제라도 벌이는 듯했다. 사람들은 도로를 점거하고 서로를 쓰러뜨리고 껴안고 키스를 해대는 것 같았다. 옆에서 그를 애무하던 모델은 덩달아 신났던지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마이바흐에서 내리는 미녀! 그녀는 모두가 자신을 주목해 줄 거라 기대했다. 물론 관심을 받긴 했다. 괴물들은 순식간에 그녀를 에워쌌고, 그녀는 찢어진 팬티만 남기고 완전히 사라졌다. 악! 그녀가 내뱉은 단발마의 비명이 빌딩숲에 메아리치며 새 세상이 열렸음을 알렸다.

무슨 일이 터졌나 보다! 본능적으로 차문을 급히 잠근 그는 기사에게 얼른 출발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기사가 갑자기 운전대를 머리로 쾅쾅 찍더니 제 얼굴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변신을 위해 허물을 벗는 뱀 같았다. 뚝뚝 흐르는 피가 시트를 적셨고, 기사는 그걸 핥아 먹어댔다. 흡혈귀도 순간 본능적으로 그 피를 핥을 뻔하다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이, 이, 이봐! 자네 뭐하나?”

기사는 대답 대신 흡혈귀 쪽으로 돌아봤다. 이를 드러낸 기사의 눈이 불길처럼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날 흡혈귀 역시 잡아먹힐 뻔했다. 아무리 흡혈귀라지만 공포심을 잊은 괴물 수십만을 혼자 상대할 수는 없었다. 괴물의 인파는 물결을 이루었다가 성난 파도가 되었고, 파도는 마치 대양처럼 거대한 군집을 형성하여 그를 쫓았다. 거리에는 피의 강이 흘렀고, 비명소리와 울부짖음이 내장을 얼어붙게 했다.

여기저기 쓰러진 사람들은 스테이크가 되었다. 살을 다 뜯은 괴물은 피해자의 뼈를 사골처럼 핥기 시작했다.

천 년을 산 흡혈귀였다.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을 만큼 세상일에 달관했다고 믿었던 그였다. 하지만 이건 십자군 전쟁, 흑사병, 마녀사냥, 세계대전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참혹하고 절망적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았으니까.

눈물을 찔끔 흘리며 도망치는 그는 난생처음 신을 애타게 찾았다.

“부디 도와주소서.”

신은 차마 그의 기도를 뿌리칠 수 없었다. 뚜껑 열린 하수구가 시커먼 입을 벌리고 그를 꿀꺽 삼켜주었다.

오물을 헤엄치며 흡혈귀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놈들은 벙커에 숨어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그 녀석들이 기어 나오면 멋들어지게 피를 뽑아 수하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여기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다른 나라로 보내달라고 흡혈클럽에 사정이라도 해볼까. 아냐, 아냐. 그는 이내 고개를 떨어뜨리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만 이 지경일 리가 없었다. 이미 다른 나라도 저 괴물 바이러스가 퍼졌을 게 뻔했다. 그러니 그가 한국을 뜬다 해도 딱히 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말이야, 그들도 굶고 있을 걸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지는걸.”

흡혈귀는 선진국을 독점한 상류 흡혈귀들도 굶주림에 허덕일 걸 생각하자 크크큭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자식들은 굳이 사냥을 안 다녀도 됐지. 헌혈 봉투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빨대로 쪽쪽 빨아 마신 자식들이잖아.”

흡혈귀는 상류 흡혈귀들의 몰락이 너무나 고소하여 배고픔까지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때 굶주림으로 멍하던 그의 머리에 행복한 추억이 낭자한 선혈처럼 콸콸 흘러넘쳤다.

“나도 그랬지. 한국인들이 헌혈해 놓은 걸 공무원들에게 뒷돈 찔러주고 빼돌렸었지. 내게 혈액원은 인간들에게 은행 같은 거였어. 내가 자본가가 되어 사채놀이를 한 대가로 피를 공급받은 건 일종의 법칙 같은 거라니까.”

그때 그의 머리로 어떤 생각이 날카롭게 스쳤다. 이걸 왜 이제야 생각해낸 거야! 그는 자기 머리를 몇 대 쾅쾅 때리고는 벌떡 일어났다. 그는 괴물을 이용한다면 혈액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괴물로 변했다지만 아침마다 천형처럼 감당했던 그 출근길을 저것이 어떻게 잊었을까.

괴물을 풀어놓는다면 저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 혈액원 쪽으로 걸어갈지도 몰랐다. 게다가 인육을 탐하는 괴물들은 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많은 혈액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걸 생각하니 흡혈귀는 너무나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당장 괴물의 포박을 풀고는 놓아주었다.

“연어도 자기 고향은 기억한다는데, 자넨 그래도 한때 사람이었잖아. 그곳으로 날 안내하게. 매일 탈출을 꿈꾸었지만 결코 떠날 수 없던 그곳으로.”

흡혈귀는 고층빌딩 옥상을 넘나들며 괴물의 동선을 추적했다. 저 아래로 혈액원 출신 괴물이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우글거리는 괴물들 틈에 섞여 있지만 흡혈귀가 머리통을 반쯤 박살내서 표시해 뒀기에 헷갈리지는 않았다.

괴물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따금 횡단보도처럼 보이는 곳 앞에서 몇 분 서 있다가 다시 출발했을 뿐 그것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없었다. 괴물은 걸음만 느렸다 뿐이지 정말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보였다. 아무것에도 관심 없던 존재, 왜 살아가는지조차 알지 못하지만 아침에 눈을 떴으므로 출근을 하던 존재, 살아있긴 하지만 생을 느낄 겨를조차 없던 존재.

그가 그때 모습 그대로 어디론가 걷고 있었다.

괴물들로 가득한 거리는 마치 출근길 지옥철처럼 혼잡하고 빽빽했다. 괴물들은 조그마한 소음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우르르 몰려갔다. 하지만 인간의 현실이 그랬듯 괴물의 현실에도 기쁨이라곤 찾기 힘들다. 소리의 근원에서는 기껏해야 비둘기가 푸드덕거리다 잡혀 해체되거나 쥐새끼가 정신없이 도망치는 소란 따위가 고작이었다.

괴물은 새빨간 핏방울 그림이 그려진 간판 아래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흡혈귀는 순식간에 혈액원 옥상으로 착지했다.

“좋아! 역시 자넨 해낼 줄 알았어! 이걸로 우리 거래는 끝이 났네.”

흡혈귀는 짝짝짝 박수를 쳤다. 그는 괴물의 지장이 찍힌 차용서를 꺼내 북북 찢어 결혼식장 색종이처럼 기쁜 마음으로 흩뿌려주었다.

옥상문 손잡이를 돌렸다. 다행히 잠겨 있지 않았다. 일자리가 있는 자들은 좀처럼 자살하지 않는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혈액원 옥상문을 왜 잠가 놔야 한단 말인가.

흡혈귀는 여유롭게 아래로 내려가며 신나는 똥파리처럼 손바닥을 비볐다.

거대한 냉장고가 기다리고 있겠지? 나만을 위해 마련된 잔칫상에 앉아 오랜만에 포식을 즐기겠지? 싱싱한 피가 수백 리터는 있겠지? 그는 계단을 내려가며 달콤한 상상에 잠겼다. 상상 속에서 그는 걸귀처럼 정신없이 이 피 저 피 꿀꺽꿀꺽 마셨다.

양손에 각각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들고 황홀경에 빠진 아이처럼 그는 혈액봉투를 두 손에 쥐고서 쪽쪽 빨아댔다. 에이형, 비형, 에이비형, 오형. 단맛, 신맛, 짠맛, 감칠맛. 임금님 수라상도 부럽지 않았다. 꿀꺽꿀꺽 입가에 피를 질질 흘리며 포식하는 그는 이제야 흡혈귀처럼 보였다.

“저 녀석이 이런 식으로 빚을 갚을 줄은 몰랐는걸!”

흡혈귀는 중얼거리며 대형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이런 젠장맞을! 냉장고가 텅텅 비어 있었다!

“피가…… 내 피가…… 다 어디로 간 거야!”

흡혈귀는 분노와 좌절로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을 희번덕거렸다. 이 냉장고, 저 냉장고, 아래층 냉장고, 위층 냉장고 다 뒤졌지만 혈액은 없었다. 혈액원에 피가 없으면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흡혈귀는 맥이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 그간 애써 참았던 굶주림이 돌무더기처럼 그의 머리를 때렸다.

그때, 어디선가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흡혈귀는 소리를 죽이고는 몸을 낮추었다. 괴물들이 몰려왔나? 그럴 리가……. 인육을 탐하는 놈들이 피 맛을 보고 싶어 할 리는 없었다.

하지만 만약 놈들이 이곳을 눈독 들인다면 흡혈귀에게는 절망만이 남는다. 안 돼! 절대 그럴 수 없어! 수백이든 수천이든 맞서 싸우고 말 테다! 그러나 내게는 지금 그럴 힘이 없지 않은가……. 혼자 씩씩거리던 흡혈귀는 혈액저장고 뒤에 일단 몸을 감추고는 주변을 살폈다.

괴물이 주저앉아 뭔가를 우걱우걱 씹고 있었다. 그것은 한 번씩 신경질적으로 주변을 살피고는 다시 먹잇감을 입에 집어넣어 정신없이 씹었다. 마치 어린 가젤의 속을 파먹으며 사자를 경계하는 하이에나 같았다. 하지만 다음 행동에선 흡혈귀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 년을 살았지만 그런 괴기스러운 짓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게걸스레 속을 채운 녀석은 혈액봉투를 쥐고 쪽쪽 빨아 마시는 게 아닌가! 피로 해갈을 하다니, 저 자식이 내 밥그릇에 숟가락을 얹겠다고! 괴물들이 피 맛을 알게 된 건가……. 그럼 정말 큰일인데……. 그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무엇보다 저 피를 당장 한 모금이라도 마셔야 했다.

흡혈귀는 괴물의 목을 뽑아버리려고 살그머니 다가갔다. 자칫 소란이라도 벌어진다면 밖에 있는 괴물이 군단을 이루어 몰려올 것이다.

흡혈귀는 괴물의 등 뒤에서 낫처럼 길고 날카로운 손톱을 세웠다. 한 방에 목을 베어버려야 했다. 그때 피를 빨던 괴물이 동공 풀린 눈으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흡혈귀와 눈이 딱 마주쳤다. 흡혈귀와 괴물 모두 아연실색했다. 자칫 괴물이 소리라도 지르면 안 되므로 흡혈귀는 들어 올린 팔을 괴물의 목을 향해 강하게 내려쳤다. 그런데 이게 웬 일, 괴물이 말을 하는 게 아닌가.

“피, 피, 피 사장님 아, 아니십니까?”

괴물을 말을 한다……. 이놈은 보다 진화한 괴물인가. 그리고 내 성을 어떻게 알지? 흡혈귀는 괴물의 목을 향하던 팔을 거두었다. 하지만 손톱이 워낙 길고 날카로웠으므로 놈의 목에 붉은 생채기가 났다. 흡혈귀는 괴물의 핏자국을 보고는 혀로 입술을 한 번 핥았다.

“피 사장님 맞으시죠?”

괴물이 자꾸 말을 한다. 흡혈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놈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눈이 붉지 않았다. 살아 있는 인간이다! 그러고 보니 놈은 혈액원 오 계장이 아닌가.

“자네는 오 계장이 아닌가?”

“예, 맞습니다. 오갑식입니다.”

오 계장은 흡혈귀가 너무나 반가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얼싸 껴안았다. 그러고는 한참을 흐느꼈다.

“그렇게 된 거로군.”

흡혈귀는 오 계장으로부터 전후사정을 들었다. 멀쩡한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고부터 세상의 갑을관계는 뒤바뀌었다. 원래 갑이던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와 돈을 이용해 생존능력을 높였지만, 을이던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약자들은 언제나 그랬듯 재난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차라리 일찍 괴물로 변태한 을 쪽이 나았다. 가진 자, 높은 자, 흥청거리는 자, 온갖 유형의 갑들은 새로운 갑으로 떠오른 괴물들에게 모조리 도륙이 났다. 생존한 갑들은 이제 을에게 사냥을 당하는 처지에 놓였던 것이다. 갑을관계의 대역전! 민란은 대개 실패하게 마련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오 계장이 피 냄새를 풍기며 트림을 끄윽 했다. 그가 방금 마신 것은 혈액원에 남은 마지막 혈액봉투였다.

“그래도 자넨 용케도 여기 숨어서 피를 마시고 연명을 했군. 설마하니 자네가 여기 피를 다 마셔버린 건 아니겠지?”

흡혈귀는 이 대목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 계장이 자기 밥그릇에 숟가락을 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화를 누그러뜨렸다.

오 계장은 다시 한 번 끄윽 트림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랬습지요. 그거라도 마시고 살아야 하니까 말입니다요. 하지만 어차피 혈액봉투가 몇 개 없었습니다.”

“몇 개 없었어? 왜?”

“죄다 피 사장님 드렸잖습니까. 그걸로 뭘 하셨는지 원.”

그렇군. 일이 그렇게 된 거로군. 이 점에 대해서는 흡혈귀도 할 말이 없었다. 다른 혈액원을 털 수밖에.

흡혈귀는 사실 평소 오 계장을 혐오스럽게 생각했다. 어차피 세상일이란 게 수탈하든 수탈당하든 양자 중의 하나라지만 놈은 정도가 심했다.

계약직 청소부 아주머니에게 계약연장을 미끼로 성관계 요구, 부하직원 공 가로채기, 승진 경쟁자 모함하기, 납품업체 간부와 어깨동무하고 룸살롱 들어가기, 나올 땐 고주망태가 되어 딸 같은 여종업원과 호텔 행 택시 타기, 물론 그 모든 비용은 납품업체 법인카드가 카드리더기에 몸을 던져가며 막아주기……. 흡혈귀에게 뒷돈을 받고 혈액을 몰래 빼돌려준 주동자도 오 계장이었다.

놈은 그 돈을 국장에게 상납한 대가로 과장 승진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렇게 승진한 후에는 더 요란스레 ‘갑질’이란 걸 할 게 뻔했다. 놈의 인생은 괴물의 피부만큼이나 부패한 자들이 이 사회에서 하는 행태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오 계장은 이 사회 갑의 소박한 샘플이었던 셈이다.

약자의 피를 빠는 비열한 놈! 흡혈귀는 속으로 그를 욕했다. 자신도 사채업을 하며 돈이며 피며 뭐든 다 쪽쪽 빨았지만 제 잘못 살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지 오 계장만 나무라듯 노려봤다. 오 계장이 나쁜 놈인 데다 마지막 남은 피까지 빨아 마셨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금방이라도 목을 뽑아버리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이 나라에 혈액원은 많았고, 그 숱한 데를 다 돌아다니려면 놈을 살려둬야 했다. 수십 톤은 될 혈액을 그러모아 비축해둬야 이 난세에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자네 날 좀 도와줘야겠네.”

“뭘요?”

“지금부터 나와 모든 혈액원을 순회하는 것일세.”

“예?”

오 계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밖에 괴물들이 우글거리는데 대체 그런 미친 짓을 왜 해야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지금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는 건가?”

“예? 아,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만, 여기는 구내식당도 있고, 통조림도 많은데 왜 그 짓을 해야 합니까?”

이 자식아, 너만 처먹고 뒹굴면 된다는 거냐! 하지만 흡혈귀는 화를 가라앉혔다. 역겨운 자식이지만 혈액을 다 수거한 후에 목을 뽑아버려도 늦지 않다.

“싫습니다. 어차피 피 사장님한테 더 얻어먹을 게 남은 것도 아니고. 이제 피 사장님 돈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저는 여기 남겠습니다.”

오 계장은 과장 진급을 목전에 뒀는데 이게 뭐냐는 둥, 그래도 자기는 살았으니 운이 좋다는 둥,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높은 놈들은 호사스러운 벙커에서 호의호식을 하고 있을 거라는 둥 툴툴거렸다.

흡혈귀는 더는 참을 수 없어 오 계장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눈을 파내 으깨버리고 싶었지만 장님이 길잡이를 할 수는 없었다. 자기 생존밖에 관심 없는 오 계장은 흡혈귀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 바람에 옆에 위태롭게 서 있던 캐비닛 하나가 쿵 쓰러졌다.

“이 개자식아, 그러게 내 말을 순순히 들었어야지.”

흡혈귀는 살기를 띤 눈으로 오 계장을 노려봤다.

“이 마당에 잘잘못 따져서 뭐합니까. 어차피 둘 다 죽은 목숨인데.”

정말 그랬다. 오 계장이 쓰러트린 캐비닛은 혈액원 정문에서 서성이던 외로운 괴물, 그러니까 오 계장에게 허구한 날 괴롭힌 당하던 부하직원이자 애인을 위해 명품백 사다가 흡혈귀에게 인생을 저당 잡혔던 그 괴물을 불러들였다. 놈은 흡혈귀를 여기까지 안내하고서 다른 데로 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퇴근시간도 아닌데 놈이 갈 데가 어디 있겠는가. 놈은 혈액원 정문을 머리로 쿵쿵 치기 시작했고, 그 둔탁한 소리는 다른 괴물들을 불러들였다. 괴물들에게도 군중심리란 게 있었던지, 몇 놈이 모이자 다른 놈들도 덩달아 합세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수는 삽시간에 수천에 이르렀다.

놈들은 결국 혈액원 정문을 박살내고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흡혈귀와 오 계장은 혈액원 옥상문을 걸어 잠그고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따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 먼 데서 칵칵 살기등등한 소리가 들렸다. 혈액원 부근의 고층빌딩에서 생존자를 잡아먹던 괴물들이 둘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질러댔던 것이다. 그 소리는 혈액원에 몰려든 괴물들을 더 자극했고, 이제 허술한 옥상문만이 한 장 남아 있을 뿐이다.

“저 문이 꽤 버텨주겠지? 튼튼해 보이는데.”

흡혈귀가 물었다.

오 계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멀쩡한 옥상문을 현대식으로 리모델링 해야 한다느니, 보안상 만전을 기해야 한다느니 그가 난리법석을 피워 갈아 끼운 옥상문이었다. 물론 업자와 이면계약서를 작성하고 두둑한 수수료를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저 문은 부실공사로 지어진 것이었다.

오 계장이 워낙에 뒷돈을 처먹어댔기에 제대로 된 부품을 쓸 수가 없었다. 지금 그 돈 봉투가 펜치가 되어 오 계장의 숨통을 꽉꽉 조였다.

“저 문은……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오 계장이 어휴, 어휴 듣기 싫은 한숨을 연신 토해냈다.

“이런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네놈이 저 썩어문드러진 괴물보다 더 부패했단 걸 좀 알아!”

흡혈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전후사정을 훤히 알 것 같았다. 그는 오 계장에게 일갈하긴 했지만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급선무였다. 아무리 흡혈귀라지만 수천수만의 괴물을 혼자 감당할 수는 없었다. 흡혈귀는 사람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활개 치는 존재다. 하지만 식탐 외의 모든 것을 잊어버린 괴물들은 흡혈귀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쾅쾅쾅! 쿵쿵쿵!

놈들은 주먹이 아픈 줄도 모르고 문을 정신없이 두드려댔다. 그 소리가 날카로운 이빨처럼 둘의 내장을 파고들어 뒤흔들었다.

쾅쾅쾅쾅쾅!

나사 하나가 빠졌다. 겁에 질린 흡혈귀가 이를 다다다다닥 부딪히다가 송곳니로 제 혀를 깨물고 말았다.

쾅쾅쾅쾅쾅!

나사 두 개가 빠졌다. 거의 실성한 오 계장은 오줌을 질질 쌌다. 나사가 하나만 더 빠지면 똥이라도 지릴 것 같았다.

“자네를 살려준다면 다른 혈액원으로 안내해 주겠나?”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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