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맞서다

  • 장르: 호러, 추리/스릴러 | 태그: #두려움에맞서다 #무서운개 #두려움의실체
  • 평점×24 | 분량: 55매
  • 소개: 집에 가는 길목에 개 한마리가 묶여 있다. 내가 가까이 가자 으르렁거렸다. 너무 무섭다. 개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야 한다. 나는 두려움에 맞서기로 마음먹었다. 더보기

두려움에 맞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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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이 끝났다. 친구들에게 내일 보자고 손을 흔든 후 아빠가 사준 새 스마트폰을 만지며 집으로 향했다. 늘 다니는 익숙한 길목에 들어서자 길 한쪽에 백구 한 마리가 드러누운 게 보였다. 아직 새끼라 그런지 고양이보다 조금 컸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보지 못한 개였다. 목에 찬 새 목줄이 바로 앞 이층집 대문 안으로 이어졌다. 오늘 어딘가에서 분양받아온 듯했다.

 

조금 망설이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가갔다. 집으로 가는 길은 이 길뿐이었다. 크기도 작고 순해 보여 마음을 놓았다. 눈을 끔뻑이던 개는 가까이 가자 벌떡 일어나 으르렁거렸다.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섰다. 어찌할지 몰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다. 찡그린 주둥이에서 날카로운 송곳니가 삐져나왔다. 저 이빨에 물리면 피가 많이 날 것이다. 그럼 많이 아플 거고, 어쩌면 물린 곳을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 6학년 형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개에 물리면 광견병에 걸리고, 광견병에 걸리면 손발을 잘라야 한다고 말이다. TV에서 봤다고 했었다. 어떻게 하지? 엄마가 기다릴 텐데… 잘못 생각했다. 이런 상황이 오랜만이라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난 이미 집에서 키우는 개로부터 도망친 적이 있었다. 처음 그 일이 있고 난 후 다시는 그 개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오늘도 그때처럼 아무것도 못하고 도망가기는 싫었다. 두려움은 나쁜 것이다. 만화에서도 그렇고 어른들도 나쁜 거라고 말했다. 어쨌든 집을 가려면 이 길을 지나가야 한다.

 

근처에서 버려진 쇠꼬챙이를 주웠다. 이걸 사용하면 될까? 막상 무기를 들고 접근하니 개는 털을 곤두세우고 잡아먹을 듯 짖었다. 아까보다 더 난폭한 모습이었다. 나에게 달려들려고 안달이 났는지 펄쩍펄쩍 뛰었다. 그 바람에 목줄이 팽팽히 당겨졌다. 왜 이렇게 겁이 나는 걸까? 그냥 간단한 일인데 말이다. 이를 악물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가까이 갈수록 개는 온몸으로 날뛰며 두 개의 송곳니를 활짝 드러냈다. 거품 섞인 더러운 침이 주둥이에서 흘러나와 바닥으로 튀었다.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그냥 포기할까? 아니다. 그럴 수는 없었다. 내 마음이 이겨내야 한다고 속삭였다. 이대로 질 수 없다. 일단은 가까이 가는 게 먼저였다. 그 생각에 정신이 팔려 나도 모르게 성큼 다가섰다. 너무 가깝다! 미처 뒤로 몸을 빼기도 전에 개가 소리 없이 달려들어 발목을 물었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다. 피가 나는 발목을 가만히 내려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억울하고 슬펐다. 부끄럽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화도 났다. 개는 꼬리를 꼿꼿이 세운 채 나를 노려봤다. 그 눈초리를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바보같이 엉엉 울며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내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저 저 개가 무서워서 도망가고만 싶었다.

 

 

 

다음 날, 학원이 끝나고 다시 집으로 가는 길목에 섰다. 엄마에게 친구들과 놀 거라고 말하고 야구 방망이도 가져왔다. 어제 집으로 돌아가는 데 2시간이나 걸렸다. 개는 이번에도 대문 앞에 나와 있다가 나를 보고 짖어댔다. 가만히 서서 개를 바라봤다. 오늘도 어제처럼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온몸이 떨렸다.

 

다행히 발목의 상처는 크지 않았다. 피도 많이 안 났다. 집에 오는 길에 넘어졌다고 몇 번이나 둘러댔지만, 안달이 난 엄마는 기어코 병원에 데리고 가 발목을 소독하고 파상풍 주사까지 맞혔다. 병원에서 엄마 손을 잡고 나올 때 정말 개에게 물리면 손발을 잘라야 하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형들이 거짓말 한 거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정말일까? 엄마는 어른이니까 거짓말은 하지 않을 거다. 무엇보다 이대로 겁쟁이처럼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용기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라고 다들 말했다. 야구 방망이를 손에 꽉 쥐었지만, 막상 개 앞에 서자 발목을 물렸던 게 생각났다. 야구 방망이를 위협적으로 휘둘러봐도 소용이 없었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 가득 차 있던 용기가 사라지고 대신 추운 것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번에도 물릴 거라는 생각과 또 부끄럽게 도망치고 말 거라는 예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러다 저 개에게 물려 죽는 것 아닐까? 뜬금없이 난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나도 모르게 괴성을 지르며 개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겁먹은 걸 눈치챈 개는 오히려 어제보다 더 기세등등하게 날뛰었다. 그걸 보고는 또 겁이 나 다시 그자리에 멈춰섰다. 지금 달려들면 엄청나게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렇다고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대로 도망치면 내 마음속 두려움이 너무 커져 다시는 그 어떤 개 앞에도 설 수 없을지 몰랐다. 두려움은 이겨내야 하는 거라고 배웠다. 누구나 다 그렇게 말했다. 두려움은 나쁘다.

 

고민 끝에 근처의 놀이터로 향했다. 나보다 몇 학년 위로 보이는 초등학생들이 놀이기구 주위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성큼성큼 걸어가 우리집에 놀러 갈 사람 없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이 노는 걸 멈추고 벙찐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누구냐고 묻는 얼굴이었다. 그중 시소에 앉아 있던 남자아이 하나가 건들거리며 일어나 왜 반말하고 지랄이냐고 대꾸했다. 유치하게 폼을 잡는 걸로 보아 이 애들의 대장인 듯했다.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 이럴 때는 비위를 맞춰주는 게 좋다.

 

“갑자기 끼어들어서 미안해. 어른들이 그러는데 친구들끼린 사이좋게 지내야 한대. 나도 너희들이랑 같은 학년이니까 우리 친구 맞지? 그러니까 우리 집에 가서 놀자. 집에 가면 내가 아끼는 게임기 줄게.”

 

같은 학년이라는 건 거짓말이지만, 어쨌든 상관없었다. 대장은 금방 기분이 좋아진 듯 활짝 웃으며 아이들에게 어서 따라오라고 부추겼다. 아이들도 칼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대장 주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신이 나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앞세운 후 생각했다. 내 힘으로 안 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도 되지 않을까? 이겨낸다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그 생각뿐이었다.

 

얼마 안 있어 개가 묶여있는 골목에 도착했다. 할 말이 있다고 말하며 아이들을 불러 세웠다.

 

“여기 바로 건너편이거든? 근데 문제가 있어. 저 개가 가까이만 가면 막 물려고 난리치잖아. 너희들이 저 개 좀 잡고 있어주라.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지?”

 

내가 바닥에 드러누워 하품하는 개를 가리키자 아이들이 금세 조용해졌다. 뜻밖의 요청에 놀랐는지 자기들끼리 모여 수군거렸다. 저 애들도 나처럼 무서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곧 자신들의 숫자가 훨씬 많다는 걸 깨달았다. 눈치를 보는 것도 잠시 아이들은 그게 뭐 어렵겠냐고 떠들어댔다. 대장도 나를 의기양양하게 쳐다보며 이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라며 큰소리를 치고는 아이들을 이끌고 개에게 다가갔다. 나도 야구 방망이를 든 채 긴장하며 뒤를 따랐다. 아이들과 내가 가까이 다가서자 누워있던 개가 벌떡 일어나 목줄이 끊어질 듯 날뛰며 짖어댔다. 아이들이 한순간 놀라 뒤로 물러섰다. 막상 눈앞에서 짖어대는 개를 보자 어찌할지 몰라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개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한 아이가 자기는 이런 거 하나도 겁 안 난다며 성큼 다가가 개의 목줄을 잡았다. 개는 온몸을 뒤틀며 펄쩍 뛰더니 목줄을 잡은 손가락을 물었다. 개에게 물린 아이가 손가락을 감싸 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렀다. 아이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울음을 터뜨리며 집으로 달아났다. 아이들도 덩달아 물러섰다. 피가 났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내 시선을 피했다. 대장도 겁을 먹은 게 분명했지만, 애들 앞이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개를 노려봤다.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던 대장이 갑자기 땅에서 돌멩이를 주워 개에게 힘껏 던졌다. 그러고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개는 돌멩이를 맞자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짖어댔다. 당황한 대장이 계속해서 돌을 던졌다. 그건 개의 화만 돋울 뿐이었다. 개는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난폭해졌다. 이러다 목줄이 풀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아이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처음 느끼는 개에 대한 공포였다. 아이들이 슬금슬금 물러섰다. 이번에는 대장도 무섭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슬슬 도망갈 채비를 하던 아이들 중 하나가 볼멘 목소리로 대장에게 말했다.

 

“꼭 여기로 지나가야 해? 다른 길이 있는데 왜 꼭 여기로 지나가야 하는 거냐고.”

 

대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깨를 으쓱하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솔직히 저 개 불쌍하지 않냐? 목줄에 묶여있으니 얼마나 힘들고 갑갑하겠어. 우리가 이해해야지. 안 그래?”

 

아이들이 동네 아줌마들처럼 개가 불쌍하다고 혀를 찼다. 대장이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집이 어딘데? 정확한 위치를 설명해 봐. 내가 이 동네는 잘 아니까 더 빠른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아이들의 태도에 화가 났다. 자기들 일이 아니라는 거였다. 나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데. 짜증이 나 입을 다물고 물러섰다. 어차피 다른 사람에게 보여서는 안 될 일이었다. 뒤돌아 왔던 곳으로 뛰어가며 학교에서 덩치가 산만한 애한테 맞고 왔을 때 아빠가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포기하는 순간 지는 거다. 두려움에 먹혀 버리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떨쳐내지 못하면 그냥 그걸로 끝이다. 조곤조곤 해주던 아빠의 말을 다 이해할 순 없어도 이대로 물러서면 안 된다는 건 확실했다. 그럼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없으니까. 이 개가 아니면 안 된다. 포기하지 않을 거다.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이후로 몇 번이나 골목을 서성거렸지만 여전히 그 개에게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야구 방망이를 가진 것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무기라도 찾아야 하나? 개 주위를 계속 맴돌며 용기를 내려고 끙끙거리는데 개가 묶인 이층집 대문이 열리고 대머리 아저씨가 나왔다. 개 주인인 모양이었다. 아저씨는 곧장 나에게 걸어왔다. 야구 방망이를 뒤로 숨긴 채 긴장하며 힐끔힐끔 쳐다봤다. 혹시 혼이라도 내는 게 아닐까? 내 앞에 선 아저씨는 예상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꼬마야. 너 우리 만득이랑 친해지고 싶어서 기웃거리는 거니? 괜찮으니까 이리 와봐. 쓰담쓰담하면 막 손을 핥고 난리도 아냐. 전혀 사납지 않다니까? 사람을 얼마나 잘 따르는데. ”

 

휴, 다행이다. 들키지 않았다. 나는 아이답지 않게 손사래까지 치며 뒤로 물러섰다. 개하고 친구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아저씨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 이러다 영영 못 친해진다? 그래도 괜찮겠어? 급한 사정이 있어서 말야. 얘를 내일 아저씨 친구한테 보내기로 했어. 여기서 먼 곳이야. 그래서 혹시나 싶어 묶어 놓은 거고. 어때? 마지막 기회라니까? 만득이도 무척 좋아할 거야.”

 

그 말을 듣자 더는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이렇게 저 개한테 물리고, 두려움에 가까이 가지 못한 채로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아마 그 두려움이 평생 따라다닐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보면 결국 그런 사람은 술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