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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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옥의 손을 잡는다. 차다. 손목에 솟아오른 복사뼈를 따라 올라가 보면 미옥의 가느다란 새끼손가락에 이른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손톱이 어여쁘다. 하지만 미옥은 말이 없다. 내가 미옥의 손과 입술을 함부로 매만지고 냄새 맡는 동안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미옥의 눈길을 따라 내 시선도 움직인다.

우리는 함께 나란히 누워, 무늬 없는 천장과 좁은 방의 유일한 광원을 하냥 바라본다. 나는 간혹 눈을 껌뻑이지만 미옥은 흐트러짐 없이 공기 중의 먼지 혹은 백열등의 필라멘트를 쏘아보고 있다. 나는 미옥의 눈이 피로할까 염려 돼 두 손으로 눈을 쓸어내린다. 쌍꺼풀 없는 길고 깊은 미옥의 눈이 감기고 그걸 바라보는 나의 눈도 감긴다. 우리는 베개를 나누어 베고 잠에 빠져든다. 미옥의 살내음이 고소하다.

잠에서 깨었을 때 나는 제일 먼저 미옥의 눈가를 살핀다. 눈물이 맺혔다 증발된 자리에 물음표 모양의 허연 소금기가 애처롭게 눈에 박힌다. 나는 엄지손가락에 침을 묻혀 미옥의 여린 눈가를 몇 번이고 문질러 본다. 미동도 하지 않는 미옥, 나의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가 핏기 없이 하얗게 질려 있다. 나는 목이 마르지만 물을 마시고 싶지는 않다. 미옥이 지난 사흘째 물 한 모금, 미음 한 숟가락 넘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나만 홀로 목을 축이고 빈 위장을 채울 수 있단 말인가.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솨아.

언젠가 미옥은 배를 타보고 싶다 말했다. 그때 나는 세 시간째 운전 중이었다.

“나도 차를 버리고 배를 타고 싶어. 젠장, 오줌마려.”

미옥이 내 입에 귤을, 잘 익지 않아 시고 떫기까지 한 귤을 한쪽 밀어 넣었다.

“맛 없으면 버려.”

나는 주유소에서 받은 휴지에 등이 터져 주홍색 물이 터져 나온 귤을 뱉었다. 미옥은 조금 쓸쓸하게 미소 짓는다.

“이혼 하니까 좋아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는 세 시간 전 이혼에 합의했고 이제는 남이 되었지만 나는 그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좋을 건 또 뭐야?”

미옥에게는 빚이 많았다. 내가 벌어들이는 돈을 20년 동안 한푼도 쓰지 않고 모은다 하더라도 갚을 수 없는, 거대하고 단단한 빚, 빚의 더미. 미옥은 채무자들의 고소로 곧 실형을 살게 됐다. 나는 변두리의 아파트를 지키기 위해 미옥과 갈라섰다.

“당신, 내가 살인자라 해도 사랑할 수 있다던 약속 기억해요?”

물론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우리집 도어락 비밀번호도 기억하지 못해 벨을 누르는 위인이다. 그런 내가 10여 년 전 연애시절에 했던 약속이 기억날 리 없다. 내가 대답하지 못하자 미옥이 시디신 귤을 입 안에 넣고 사탕처럼 휘돌리는 듯 볼 여기저기가 볼록볼록하다.

“사람을 죽였어요. 오늘 아침에.”

그때 나는 재채기를 했다. 앞 유리창에 내가 날려 보낸 침이 깨알처럼 박혔다. 미옥이 손수건으로 그것을 닦아준다. 나는 믿지 않았다. 미옥처럼 순하고 여린 여자가 사람을 죽였다고 담담히 말하는데 그걸 믿어줄 사람은 세상에 없다. 팽, 소리내어 코를 풀고 경적을 울린다. 앞차가 한눈을 파느라 속력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군요.”

“나도 사람 죽이고 싶었던 적 많아. 군대에서 대민봉사 나갔을 땐데 어느집 대들보를 다시 세워주게 됐지. 그때 톱으로 나무를 켜다 내 앞에서 그걸 빤히 바라보던 늙은이를 보고 톱밥이 잔뜩 붙은 톱으로 그 늙은이의 골통을 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잔인하군요.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싶다니.”

미옥이 미간을 조금 찌푸리고 나를 바라본다.

“모든 일에 이유가 있는 건 아냐.”

한 시간 반 후, 나는 미옥을 그녀의 지하방이 있는 연립 앞에 내려주고 차를 돌린다. 검정색 모직스커트에 반코트를 입은 미옥이 힘없이 내게 손을 흔든다. 저 스커트와 코트 안에 숨겨져 있을 미옥의 마르고 희디흰 몸이 생각나 잠시 머뭇거리다 액셀러레이터를 밟는다. 카스테레오에서 익숙하지만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트로트가 나오고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멜로디를 따라가고 있다. 미옥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점이 되고 공기가 되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나는 돈을 센다. 하루 종일 돈을 센다. 돈을 세는 기계가 있지만 언제나 검산은 행원의 몫이다. 나는 스피드라 이름 지어진 약품에 손가락을 문지르고 하염없이 돈을 센다. 어물전 할머니의 돈에서는 비린내가 났고, 분식집 아줌마의 돈에는 붉은 양념이 묻어 있다. 미옥을 만진 내가 그 돈을 세면 돈에서도 미옥의 냄새가 난다. 이제는 감은 눈으로 천장조차 바라볼 수 없는 미옥이 생각나 가슴이 미어진다.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나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다.

빨리 미옥에게 돌아가 차가운 몸을 끌어안고 싶다. 어두운 방에서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미옥의 가뿐 그리움을 달래주고 싶다. 길고 긴 시간을 버텨 겨우 6시 반이다. 미옥에게 돌아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처리하지 못한 전표를 뒤집어 서랍에 넣고 뛰듯이 은행을 빠져나온다. 미옥이 돌아오기 전에는 버스를 탔지만 나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택시를 잡는다. 택시 안에서도 나는 무시로 시계를 본다. 십오 분이면 미옥이 기다리고 있는 집에 도착한다.

“바쁜일 있으신가봐요?”

시계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내게 기사가 묻는다.

“네, 아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마누라는 지금 강원랜드 가서 신나게 돈 까먹고 있을 텐데.”

기사도 나도 헛웃음과 한숨을 함께 뱉는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자 가슴이 뛴다. 엘리베이터가 13층에 가 있다. 기다릴 수 없어 나는 뛴다. 7층까지 단숨에 뛰어 올라 숨을 몰아쉬고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른다. 비밀번호는 미옥의 생일이다. 이제는 잊지 않는다.
오늘 아침 나, 이미옥은 사람을 죽였다. 에프킬라로. 그는 내게 수금을 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었다. 키가 작고 까만 남자. 일주일에 5일, 나는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마치 자신의 집인냥 그가 나의 지하방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온다.

“어떻게 가구 하나 없어?”

나의 집에는 가구는커녕 그 흔한 텔레비전조차 없다.

“이런 집구석에서 물 한잔 대접 받을 수 있나? 그래서 이렇게 준비했지.”

남자가 주머니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낸다. 그는 벽에 기대 앉아 소주를 들이켰다. 나는 말 없이 그가 앉은 대각선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미안해서가 아니다. 그를 보고 싶지 않아서다. 나는 그가 일하는 해피파이낸셜이라는 회사에서 3000만 원을 빌렸다 갚지 못했다. 선금을 떼고 받은 돈은 매달 이자가 붙었고 이제는 1억 가까운 액수로 불어 있었다. 때로 다른 수금사원과 그가 마주치기도 한다. 그들은 멋쩍은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다 어깨를 스치며 나가고 들어왔다. 나는 일을 해야 했지만 그들이 일터로 찾아오는 일이 잦아지며 이제 어디에서 무엇을 할 수도 없었다.

“신체 포기 각서 같은 건 없나요?”

그가 급하게 넘긴 소주 때문인지 나의 질문 때문인지 켁켁 헛기침을 하다가 웃음을 터트린다.

“이미옥 씨, 지금 그거 쓰겠단 말이우?”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신장과 간, 각막을 팔아 돈을 갚아버리고 싶다. 나의 몸은 얼마쯤 할까?

“참 용기 좋네. 그런데 말이야. 아줌마가 진 빚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각을 내어 판다고 해도 못 갚아. 죽을 때까지 하루 열 번 냄비를 팔아도 못 갚는다고요. 빚이 우리 해피에만 있나? 그럼 또 모르지.”

그는 내가 빚을 갚지 못할 걸 알며 우리집으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TV를 보며, 중국음식을 시켜먹으며, 변기 커버를 올리고 소변을 본 후 그냥 나오며. 오늘은 남편이 집 앞으로 찾아온다. 나의 빚이 우리가 살던 작은 아파트까지 갉아먹기 전에 잘라버리려는 것이다.

“아줌마 어디가?”

나는 그에게 음료수라도 사오겠다며 일어선다. 그리고 어두운 계단을 올라 슈퍼로 뛰어간다. 가슴이 뛰고 손에는 식은땀이 흥건하다. 나는 콜라 한 병과 종이컵, 무향 에프킬라 한 통을 산다. 300원이 모자랐지만, 주인이 나중에 가져오라고 한다. 다행이다. 나는 계단을 내려와 현관문 앞에서 콜라 뚜껑을 돌려 딴다. 입을 대고 콜라를 몇 모금 마시자 가슴께가 뻐근하다. 그리고 병 주둥이에 에프킬라 입구를 들이댄다. “치익” 남자에게 소리가 들릴까 걱정이 되었지만 별 수 없다. 콜라가 허연 거품을 뿜으며 주둥이로 솟아올랐지만 잠시였다. 에프킬라를 절반쯤 쏟아 붓고 나는 뚜껑을 닫아 주위를 살피며 현관문을 연다.

남자가 바닥에 누워 벽에 두 다리를 올려놓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나는 수돗물을 틀어 손을 닦고 종이컵에 콜라를 따른다. 에프킬라는 무향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살충제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그가 마시지 않으면 내가 마셔버리리라 생각하며 치마에 손을 닦고 남자에게 콜라를 내민다. 남자가 낄낄낄, 크게 웃으며 콜라를 넘겨받아 단숨에 삼켜 버린다. 잠깐 콧등을 찡그리는 것 같더니 이내 다시 낄낄낄, 웃는다. 나는 조바심이 나 안절부절 못한다. 그가 전화를 끊고 배를 문지르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이윽고 소변을 보는지 구토를 하는지 무언가 좌르륵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곤 아무 기척이 없다.

마치 내가 살충제가 섞인 콜라를 마신 사람처럼 속이 뒤틀리고 아랫배가 저려온다. 삼십 분이 지나도록 남자는 제자리에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슬며시 화장실 문을 열어본다. 남자가 입가에 허연 토사물을 묻히고 쓰러져 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온다. 나는 그를 건너 뛰어 세면대에서 세수를 푸푸 한다. 말개진 얼굴이 조금 상기되어 있다. 다시 그를 건너 뛰어 방에 돌아와 화장을 한다. 오랜만에 남편을 만나는데 맨얼굴은 쑥스럽다. 분을 바르고 눈썹을 그리고 연분홍색 립스틱도 바른다. 10시가 되자, 나는 검정색 모직 스커트를 입고 인감도장을 챙겨 계단을 오른다. 남편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미옥에게서 풋내가 난다. 집은 발이 시릴 만큼 춥지만 미옥은 얇은 블라우스를 입고 찬바닥에 누워 있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미옥이 안쓰럽지만 보일러의 온도를 올리자니 그녀가 녹아내릴까 두렵다. 버터처럼 흰 피부의 미옥이 스르륵 녹아 우리의 작은 아파트에 얇게 퍼져 찰랑댈까 겁난다. 나는 양복을 벗고 그녀 옆에 눕는다.

오늘 아침부터 미옥에게서 풍기는 풋내가 코끝을 맵게 한다. 어린시절 고추를 말리던 사랑방에 숨어들면 이런 냄새가 났다. 그것은 옆집 홀아비가 이웃 노총각과 10원짜리 민화투를 칠 때 나는 냄새와 닮아 있었다. 남자, 담배, 군용담요, 메주의 냄새가 뒤섞인 친근하고도 쓸쓸한 냄새였다. 나는 미옥의 냄새가 더욱 좋아졌다. 갑자기 그녀의 고른 치열이 그리워 입술을 들춰보았다. 잇바디가 검푸르다. 살며시 입술을 맞춰보지만 소름 끼치도록 찬 기운만 남을 뿐이다. 나는 미옥에게 죄를 지었다. 그날 피곤에 지쳐, 사람을 죽였다는 그녀의 고백을 믿지 않은 것이다.

내가 차를 타고 삼십 분쯤 달렸을 때, 우리가 함께 10여 년을 살던 아파트가 보일 즈음이었다. 나는 그제야 미옥이 사람을 죽였다는 말이 귀에 박혀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를 돌렸다. 방금 보았던 풍경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지하방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미옥이 정말 사람을 죽였다고 믿어서가 아니다. 그녀가 죽였다는 사람이 바로 미옥, 자신이 아닐까 겁이 나서였다.

나는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옥에게 가는 길은 돌아올 때와 마찬가지로 삼십 분이 걸렸다. 쿵쾅쿵쾅 소리 나게 계단을 내려갔다. 현관문 앞에 검은 무언가가 쏟아져 있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초인종을 누른다. 그리고 잠시 후, 미옥이 그 문을 열고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자 화가 치솟는다.

“왜 사람 놀라게 그런 말을 해?”

미옥이 영문도 모른채 얼굴에서 미소를 거둬들인다. 현관에 낯선 신발 한 켤레가 보인다.

“손님 있어?”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뭐 마실 거 있으면 한 잔 내와.”

나는 허락도 없이 나의 집처럼 미옥의 거실로 들어선다. 아무것도 없다. 이불 한 채가 방 귀퉁이에 곱게 개어 있을 뿐, 이렇다할 취사도구도 살림살이도 없는 텅 빈 창고와 같다.

“마실 게 없어요.”

미옥이 부엌에 서서 미안하다는 듯이 대답한다.

“그럼 좀 사와. 콜라로.”

나는 미옥의 주머니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그녀가 부엌 싱크대를 뒤적이는 동안 나는 집 안을 떠도는 시큼한 냄새를 맡는다.

“지하방이라 그런지 곰팡내가 나는 거 같네. 첫 공판이 언제야?”

미옥은 어쩔 줄 몰라하며 동전을 매만진다. 나는 그제야 그녀의 가난을 다시 실감한다.

“그럼 물이라도 주든지.”

미옥이 수돗물을 틀어 종이컵에 받는다.

“아무리 옛날 서방이라지만 대접이 너무하네.”

내가 일어서 미옥을 밀치고 찬장을 뒤진다. 가스레인지도 없는 가스레인지대 아래에 콜라병이 놓여 있다. 나는 미옥을 흘겨본다. 그녀가 두 손을 내저으며 내 손에서 콜라병을 빼앗으려 든다. 막무가내다.

“그거 콜라 아니에요.”

나를 속이려 드는 미옥이 야속해 나는 양손에 힘을 주고 콜라 뚜껑을 연다. 내게 힘으로는 안 되겠다 싶은지 미옥이 종이컵을 밟아 구겨 버린다. 나는 콜라 주둥이에 입을 대고 꿀껄 꿀꺽 마셔버린다.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이며 식도를 타고 알싸한 그것이 넘어간다. 미옥이 자리에 주저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 눈가가 시려오고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더니 뱃속에서 무언가가 꿈틀댄다.

욕실로 뛰어가 문을 열어젖히자, 그 안에 쓰러져 있는 작달막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의 입가에 묻은 허연 토사물과 닮은 것이 내 입을 통해 솟구친다. 시야가 흐려지고 배는 여전히 요통 친다. 나는 내가 쓰러지고 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지만 어느새 나의 머리가 문지방에 쿵, 하고 떨어지며 미옥의 희고 자그마한 얼굴이 내 앞에서 알른댄다. 화가 나지만 화를 내기에 나는 아무 기력도 없다.
나는 정확히 오전에 한 명 오후에 한 명, 도합 두 명의 사람을 죽였다. 먼저 죽은 쪽은 죽어주길 바랐던 사람이었고 나중 죽은 쪽은 죽지 않기를 바랐지만 나는 막지 못했다. 그것도 자신의 운명이다. 스스로 선택했으니까. 나는 그들을 방에 눕혔다. 남편을 사이에 두고 나도 누웠다. 내가 그의 손을 잡자 마치 살아 있을 적처럼 몸이 꿈틀 하는 착각이 든다. 나는 상체만 조금 일으켜 그의 가슴을 몇 차례 흔들어 보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내일이면 또 다른 수금인이 찾아올 것이다. 그들을 어디론가 옮기거나 내가 떠나야 한다. 나는 두 명의 남자를 처리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엽기 살인마처럼 토막을 내려 해도 칼이 없고, 칼이 있다 하더라도 힘이 없다. 나는 그들 곁을 떠나는 방법을 택했다. 남편의 팔을 벌려 그의 겨드랑이로 파고들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맡던 그의 냄새가 낯설게 느껴진다. 오른쪽 호주머니에는 담배가 왼쪽 호주머니에는 지갑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지갑을 꺼낸다. 현금 7만 원이 들어 있다. 그 정도라면 이삼 일밖에 몸을 숨기지 못한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수금원의 바지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살핀다. 만 원짜리 삼십 장과 1000원짜리 한 장이 나온다. 수표만 빼고 다시 바지주머니에 넣어준다. 나는 텅 빈 나의 지갑에 37만 원을 얌전히 넣고 집을 빠져나온다.

거리는 어둑하고 어디선가 개가 짖는다. 나는 종착지도 확인하지 않고 버스에 올라선다. 졸고 있는 남자 옆에 다가가 앉는다. 버스 안은 따뜻했고 긴장이 풀리며 잠이 온다. 나도 모르게 남자의 어깨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잠이 든다. 내가, 아니 우리가 눈을 뜬 곳은 버스의 종착지이자 차고지다. 남자가 나의 어깨를 가볍게 흔든다.

“깜빡 존다는 게 여기까지 왔군요.”

미남은 아니지만 제법 시원한 생김이다. 서른을 훌쩍 넘겨 보이지만 입고 있는 양복을 벗으면 그보다 한참 아래로도 보일 것이다.

“여기가 어딘가요?”

잠이 묻어 있는 얼굴로 그에게 묻는다.

“삼원이라고, 서울을 조금 벗어났습니다.”

들어본 적 없는 지명이다.

“댁이 어디신지?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방향이 같으시면 동행하시죠.”

남자가 앞장선다. 나는 무작정 그를 따라나선다. 어둠 속에서 그의 하얀 와이셔츠만이 빛난다. 버스가 끊긴 걸까? 아직 이른 시간인데. 달리 갈 곳 없는 나는 그가 가는 곳까지 따라가기로 한다. 빈 택시가 다가오자 남자가 손을 흔들어 차를 세운다.

“소문동 주공아파트요.”

그가 뒷좌석 안쪽으로 들어가고 내가 그 옆에 앉는다.

“어디까지 가신 댔죠?”

남자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며 묻는다.

“저도 소문동이요.”

택시가 달리는 동안 그는 별 말이 없다. 유리창을 통해 바깥을 구경하는가 싶더니 잠깐씩 조는가도 싶다. 나는 그의 어깨를 조금 더 빌리고 싶어졌다. 잠이 오지 않았지만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다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떨어뜨린다. 그가 몸을 바로 세워 내 고개가 쳐지지 않도록 애쓴다. 나는 택시가 멈출 때까지 그의 어깨에서 머리를 떼지 않는다.

“다왔습니다. 8800원이요.”

기사의 목소리에 잠이 깨어 고개를 들자 남자가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내민다. 내가 먼저 택시에서 내리고 잔돈을 받은 그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따라 내린다.

“댁이 근처십니까?”

“네.”

대답과 함께 먼지를 휘감은 바람이 얼굴로 불어와 기침이 난다.

“감기 들겠습니다.”

나는 소매로 입을 막고 그를 바라본다. 키가 커 고개를 치켜들어야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인다.

“저녁 드셨어요?”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