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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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날씨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이어서, 불과 반나절 전까지 올려다보면 시원’할 것 같은’ 새파란 하늘 위로 지옥불처럼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다가도 삽시간에 부옇게 일어나는 모래폭풍이 온 시야를 누르께한 황갈색으로 뒤덮어 버리곤 했다. 그러다가도 또 한순간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아지는 것이다. 사막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다.

 

이 날의 날씨도 그러했다. 북에서 남에서 맹렬하게 몰아치며 뒤엉킨 바람은 잠시 동안이지만 대낮이 한밤중처럼 어두워질 만큼 모래를 온 허공에 뿜어대며 광기로 가득한 춤을 추고 나서야 겨우 진정했다. 그 덕분에 그 사막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탑 안에 앉아 졸고 있던 나이 열아홉의 혈기 없는 청년은 뜻밖에도 온 몸에 모래를 뒤집어쓴 채로 깨어나게 되었다.

〈오늘은 잠잠하나 했더니만. 정말 싫다.〉

평생을 사막에서 지낸 것치고 지나치게 흰 살결과 어두운 쥐색의 머리칼을 밝은 쪽빛 외투와 두건으로 휘감고 있던 이 사내는, 날려 들어온 모래 때문에 누르스름하게 물들어 버린 머리를 짜증스럽게 털어내며 고개를 들었다. 지상으로 솟아 있는 부분이 상당히 높기는 하지만 그가 지내고 있는 이 탑은 절반 이상이 모래 속에 파묻혀 있으며, 그가 졸고 있던 이 공간도 지상과 통해 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지면보다는 훨씬 아래에 있었다. 아직도 완전히 잦아들지 않은 바람 때문에 간간이 황금빛 안개처럼 모래가 쏟아져 들어오는 저 위쪽의 테라스까지는 엄청나게 긴 나선계단을 올라야 했다. 동서남북 네 방향을 향해 난 네 곳의 테라스와 그곳까지 이어지는 네 줄기의 긴 계단, 그리고 사내가 앉아있는 것을 포함한 의자 세 개와 탁자 하나를 제외하면 이 넓은 원통형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방금 전 쓸려 들어온 모래에 반쯤 파묻힌 채 바닥에 박혀 있는 철제 뚜껑문 하나. 다른 모든 것들은 그 문 아래 지하 깊숙한 곳에 있었다.

〈지금쯤이면 어떻게 되었으려나‥‥‥. 하여튼 저 빌어먹을 계단은. 오르내릴 사람은 눈곱만큼도 생각을 안 하고 설계를 하나 몰라.〉

그는 일어서서 옷 주름 사이마다 가득 고인 모래를 털어내다가 발이 미끄러져 휘청였다. 정말 싫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 모래밭에서 평생을 살아왔지만, 그런 그에게도 온 몸에 모래를 뒤집어쓰는 경험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마음은 할 수만 있다면 하던 일을 전부 제쳐놓고 내려가서 씻고 싶었다. 몇 번이나 털었는데도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속에서 버적대는 모래알의 감촉에는 진저리가 났다.

선조의 선조의 선조들을 욕하면서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계단을 타고 올랐다. 수직의 벽을 따라 까마득히 올라가면서도 난간 하나 없는 돌계단은 두 사람이 겨우 나란히 설 정도로 폭이 좁아서, 고개만 살짝 내밀면 아득히 멀어지는 바닥을 실시간으로 내려다볼 수 있었다. 계단 중턱쯤에서 떨어진다면 운 좋게 목숨은 건지더라도 사지 하나는 포기해야 하리라. 그런 생각을 하자 잠시 아찔했으나, 이 곳에 오르기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햇살을 만끽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에 드나들면서 이런 사소한 공포로 움츠러들 일이 아니다. 그렇잖아도 오늘은 무척이나 중요한 손님을 맞게 되리라는 신탁을 받은 바 있었다. 그는 테라스보다 몇 계단 아래인 지점에 멈춰서 잠시 벽을 짚고 숨을 고르며 밖을 내다보았다. 테라스 난간에 미리 묶어 둔 줄사다리는 하늘이 도운 덕인지 그 모래폭풍을 무사히 버틴 모양이었다. 바람은 그 사이 그의 앞마당에 낯선 풍경을 여럿 만들어두었다. 살아있는 짐짝 넷과 살아있지 않은 다른 많은 짐짝들을 포함해서.

 

 

“그럼 상황을 정리해봅시다.”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얼굴 위에 얹힌 붉은 머리칼이 인상적인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짐짓 위엄 있는 투로 말했다. 사실 그의 머리카락은 원래 화사한 색의 털장식을 잔뜩 붙인 감청색 군모에 가려 보이지 않아야 할 터이나, 지금 그 군모는 그의 왼손에 들려 있었다.

“당신들은 남쪽에서, 우리는 북쪽에서. 선출식에 참가하기 위해 이 사막을 지나던 도중 모래폭풍에 휘말렸고, 바람이 잦아들자 여기서 만나게 되었다. 맞습니까?”

“애들 앞에서 말투가 너무 딱딱하지 않아요? 무슨 무게를 그렇게 잡고 그런담.”

옆으로 뻗치는 밝은 다갈색 머리칼을 턱선 언저리까지 기른 또다른 사내가 군모를 빼앗아들며 투덜거렸다. 방금 전의 사내가 완벽한 제복 차림이라면, 뺨 언저리에 불그레하게 생기가 도는 이 사내는 두터운 털외투 차림. 양 쪽 모두 사막을 여행하기에는 전혀 어울릴 법한 차림이 아니다. 털외투 차림의 사내는 군모에 묻은 모래를 손바닥으로 탁탁 털어서 옆 사내의 머리 위에 다시 얹어주었다.

“누구더러 애들이래, 우린 열여섯이거든!”

앳된 얼굴의 소년은 옆에 있던 소녀를 끌어당기면서 볼멘소리로 외쳤다. 누르스름한 연두색 눈동자로 보나 장난기가 가득한 입매로 보나 꼭 닮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둘은 틀림없이 쌍둥이다.

“열여섯? 더 어린 줄 알았는데! 그럼 애도 아니네!”

“지금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라 앞으로 어찌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봅니다만. 다친 사람도 없고 짐도 무사하니 다행이지만, 폭풍에 휘말리는 바람에 방향을 잃었으니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급할 거 없잖아요? 선출식까지는 두 달이나 남았는데!”

“나는 당장 오늘 야영할 곳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출식에 필요한 인원을 모으려면 도착한 뒤에도 한동안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겁니다. 두 달도 빠듯합니다.”

“그 문제라면 둘 다 어느정도 해결됐다고 생각하는데요? 인원은 벌써 네 명 모였으니까─”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 둘과 선출식에 동행하자는 겁니까 지금?”

“난 질이고 여긴 우리 누나 진이야.”

“나는 닐이야. 그럼 다 됐죠. ‘멜’? 이제 한 명만 더 모으면 되겠네.”

“그런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려 하지 마십쇼.”

“아 왜요? 아무도 없는 이 사막에서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럼 이 열여섯짜리 쌍둥이를 여기다 버리고 가요?”

“그건,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네요 뭐.”

닐은 더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마무리지었다. 멜이라고 불린 군관은 할 말이 남은 듯했으나 이내 체념했는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좋습니다, 대신 왕도에 가서 다른 대안이 생기면 바꿀 겁니다.”

“대안 같은 거 없잖아요. 친구도 나밖에 없으면서.”

닐의 지적에 멜은 헛기침을 하면서 말을 돌렸다.

“그건 됐고, 야영은 어쩔 겁니까? 방금 같은 모래폭풍이 다시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데, 이 근처에는 적어도 눈에 보이는 범위 안에서는 바람을 막아줄 바위 같은 건 없습니다.”

“그냥 저 탑에 들어가서 자면 안돼?”

질은 대뜸 뒤쪽 배경에 보이는 탑을 가리켰다. 네 사람이 만난 직후부터 쭉 그 자리에 있었던 탑은, 하단부 대부분이 모래 속에 파묻힌 상태에서도 지상으로 드러난 부분이 상당히 높았다. 내부로 통하는 유일한 출입구인 상층부의 테라스조차도 올려다보려면 고개를 완전히 뒤로 꺾어야 할 판이었다.

“저기서 자자는 말입니까? 저, 저 탑에서?”

“아, 저거 그 탑이죠? 딱 좋게 됐네!”

“좋기는 뭐가 좋습니까! 저런 곳에서 누가 잔다고! 애초부터 구경만 하고 지나가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이상하다, 나는 그런 약속 한 적 없는데? 먼저 여기 들렀다 가자고 한 건 멜이었잖아요? 내가 옛날부터 보고 싶어했으니까 이번 기회에 보고 가자면서.”

닐은 태연하게 받아치고는 가벼운 걸음걸이로 탑을 향해 걸었다. 쌍둥이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닐을 따랐다. 세 사람의 발걸음을 따라 금빛 모래가 얕게 날리다가 이내 다시 가라안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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