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실종시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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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실종시키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요오^^;;;

– 잘못 연락하셨습니다. 저는 청부업자가 아니라 탐정입니다만.

– 누구든 무엇이든 해 준다면서여ㅠㅠㅠㅠ

– 누구든 무엇이든 ‘찾아드리는’ 탐정이지 ‘실종시켜주는’ 탐정이 아니라고요.

– 실종탐정이라면서용.;;;;

– 실종자를 찾아주는 게 실종탐정이죠. 불륜탐정은 불륜 알선해 주고 고양이 탐정은 고양이로 변신시켜 주나요?

– 제가 말을 잘못한 거 같아서 죄송해염…근데 진짜로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ㅠㅠ

– 저도 장난 아닙니다.

‘진심’을 보여주려고 한 건지 카톡으로 손목 사진이 날아왔다. 뭐야 이거. 누구 손목이야? 나도 똑같이 만들어주겠다는 의미인가? 캡처해서 협박으로 신고해야 하나? 이거 혹시 심각한 상황인가? 응급처치 해야 하는 거 아냐?

– 만나보고 수임할 지 말 지 정할게요. 기본적인 인적 사항 알려 주세요. 본명, 나이, 직업, 거주지요.

– 탐정은 그런 거 다 추리로 알아내는 거 아니었어요? *__*

스마트폰 만지작거릴 수 있는 거 보니 많이 다치진 않았나 보다.

– 제가 그런 거 알아내느라 들이는 시간만큼 의뢰인님이 수임료를 더 내셔야 되는데요.

– 의뢰 취소할게욤.ㅠㅠ 제가 너무 힘들어서요…그냥 막막해서, 누구한테 얘기라도 하려고 했던 거라서요옹…ㅠ진짜 죄송해여…ㅠㅠㅠㅠㅠ

– 제가 이름하고 주소 알아내서 찾아 뵐까요? 아님 신고를 할까요?

– 제발 신고만 하지 말아 주세요 ㅠㅠㅠㅠ 제가요 ㅠ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라서요ㅠ

‘의뢰인’은 나랑 같은 나이의 여자였다. 역시 한국인의 인생은 청년은 공시생, 중년은 치킨집 사장, 노년은 요양병원 입소다.

– 불륜할배님 유투브 보다가ㅠㅠㅠ제가 팬이라서요 ㅠㅠㅠㅠ

노년은 요양병원…은 아닐 수도 있겠다.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 지 모른다. 할아버지도 불륜탐정하다가 은퇴하고, 손주육아 하고, 손주들 다 크고 나서 유럽으로 ‘탐정투어’ 갔다가 현지에서 브이로그할 때까지만 해도 착실하게 구독자 늘려가고 있는 유튜버가 될지는 예상 못했을 거다. 시작은 가족들에게 근황도 알리고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도 불어넣고 친구들한테 자랑도 하려고 #여행스타그램과 여행브이로그를 했던 거였는데…댓글과 채팅창과 영상통화로 할아버지의 며느리,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수시로 난입하면서 할아버지의 여행라이브방송은 며느리와의 만담 개그, 입담 배틀이 되어 버렸고 여행지의 풍경은 뒷배경이 되었으며 유럽여행을 준비하다가 할아버지의 채널을 본 대학생들이 ‘재미있는 할배’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서부터 어떤 고민에도 진지하게 ‘기승전 불륜 장려’로 답변해 주는 바람에 청춘들에게는 ‘꽃할배’가 대신 ‘불륜할배’가 되어 버렸다.

“나는 집 팔아서 여행 왔지만 젊은 애들은 갭이어랑 기본소득 받아서 여행 다니면서 넓은 세상 보고 와서 이거저거 해 보다가 결혼 해서 성실하게 살다보면 젊을 때 뜨겁게 살았던 추억 떠오르면서 불 같은 불륜도 하고, 그래야 불륜탐정한테 의뢰도 하고 그러지! 인생 백세 시대야! 도전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어! 결혼을 왜 한번만 해! 결혼 한 번 실수해도, 다시 도전해서 재혼도 하고, 그래야 또 불륜을 하고, 불륜하면 불륜탐정한테 의뢰해서 증거를 잡아야 이혼할 때 유리하다고! 우리 아들이랑 며느리가 아주 유능한 불륜탐정이야. 내 채널 보고 연락했다고 하면 할인해줄 거야.”

“아버님! 내가 못 살아! 아버님 팔고 가신 집이 지금 얼마나 올랐는지 아세요? 그 집 팔지 말고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그러셨어요! 왜 상의도 안 하고 덜컥 일을 저지르시냐고요!”

“상의하면 네가 못 가게 할 까 봐 그랬지…”

“제가 못 가게 할 사람이에요? 유튜브는 못 하시게 했겠죠! 집안 망신이에요, 정말! ’나만 당할 수 없다’ 이거예요? 아버님만 이혼 당했으면 됐지 왜 자꾸 청년들한테 불륜을 조장해요!”

“내가 나 좋으려고 이러냐? 다 너네랑 우리 손주 돈 벌라고 홍보해 주는 거 아냐! 우리 손주가 ‘누구든 무엇이든 찾아 드리는 실종탐정’인데, 요즘 일이 없잖냐.”

역시 구경은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 그게 엄마랑 할아버지의 싸움만 아니면. 그리고 할아버지가 손주 걱정하느라 내 업무용 카톡을 홍보해 주지만 않으면. 할아버지 때문에 내가 못살아! 이제서야 엄마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잃어버린 지우개를 찾아 달라는 초등학생은 귀엽기나 하지 ‘투명 여자친구’를 찾아달라는 남자부터 수위 높은 음란사진을 보내는 새끼에 당첨된 적도 없는 로또를 찾아달라는 장난질에 스팸광고까지…사건 의뢰는 들어오지도 않고 데이터만 소진되었다. 오죽하면 내가 프로필에 ‘합의금 개이득’이라고 써 놨겠냐고. 이러니 공시생에게 까칠한 대꾸가 나올 수 밖에 없었다.

돈은 없지만 사연은 있어 보이는 의뢰인과 약속을 잡았다. 유사과학을 믿지는 않지만 치유 효과가 있다는 투어말린 원석 팔찌를 샀다. 고 3때, 마지막 모의고사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자 교실 뒤에서 손목을 그었던 친구가 있었다. 그 때 내가 무슨 짓을 했냐면…”넌 진로 고민할 필요 없어서 편하겠다. 대학 안 가도 되고.”는 친구에게 위로는 커녕 “생각 없이 자동으로 가업 잇는 거 아냐. 부모님이 탐정이면 의뢰인도 대물림하는 줄 알아? 등록금 버리느니 1년이라도 빨리 경력 쌓는 낫겠다고 오랫동안 고민해서 결정한 거야”라고 다다다다 쏘아 붙였다. 말은 그렇게 하고 나서 지혈을 해 주고 그 친구를 데리고 침착하게 양호실에 갔고, 양호선생님은 익숙하게 처치를 해 줬고, 친구는 손목에 붕대를 감고 야간 자율학습을 마저 했다. 그 친구랑은 졸업할 때까지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친구는 날 보면 슬쩍 자기 손목을 감싸거나 다쳤던 쪽 팔을 뒤로 빼면서 피해 다녔다. 나한테 왜 그러는지 궁금하면서도 대놓고 물어보려니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걔가 무슨 말을 했다가 또 싸우면 진짜로 어색한 사이가 될 것 같아서 나도 걔를 피해 다녔다. 짝사랑은 그렇게 끝나 버렸다. 탐정인 엄마의 성화에 ‘출퇴근하고 월급 나오는’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잠시 하는 동안 수험생의 막막함을 체감하게 되었지만 이제 와서 새삼스레 연락해서 미안했다고 하기는 애매했다. 자꾸 뭔가 ‘쌔한 기분’이 드는 게 이런 기억이 떠올라서 일까.

“사귀냐?”

여친을 제외하고 남한테 절대 돈 안 쓰는 쌍둥이 오빠는 팔찌를 고르고 식당을 정하는 날 보고 한 마디 던졌다.

“의뢰인한테 돈을 받아야지 왜 네 돈을 써.”

“환심 사서 의뢰인 입 좀 빨리 열려고 그런다, 왜?”

나보다 열 살 스무 살 많은 어른 의뢰인들과 처음 만날 때는 만만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딱딱대고 힘주어 말하면서 ‘기선제압’을 했고, 어려 보이지 않으려고 챙 넓은 모자로 얼굴 가리고 화장도 진하게 하고, 유능한 전문직처럼 보이려고 세미 정장에 트렌치 코트 걸치고 장식 없는 단화를 신었는데 내 또래 의뢰인은 처음이라 만나서 뭐라고 해야 할 지 뭘 어떻게 입어야 할 지 모르겠다. 공시생이면 안경에 머리 질끈 묶고 헐렁한 옷 입고 추레한 비주얼일 테니까 나도 거기에 맞춰서 민낯에 볼캡을 눌러 쓰고 후드티와 청바지에 스니커즈 신고 나갈 건데, 만나서 뭐 먹어야 하지?

어른 의뢰인들은 ‘아는 맛집’에서 주문도 척척 잘 해서 편했는데 이 의뢰인은 ‘저는 아무거나 다 좋아요^^’이러고만 있다. 진짜로 ‘아무거나’ 먹이려다가 그래도 공부하느라 정신 없고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되지 싶어서 커다란 곰인형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있는 비스트로를 찾아냈다. 적당히 비싸고 따듯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곰인형을 쓰다듬으면 분위기도 좋아지고 말도 술술 나오겠지. 식사 마치고 팔찌 끼워주면서 분위기 좋은 틈을 타서 계약서 쓰고 수임해야지. 나, 나중에 데이트 잘 하겠는데?

의뢰인인 수완 씨는 생머리에 풀메이크업을 하고 허리가 보일 듯 말듯한 크롭티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예쁜 여자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미인계를 쓰는 건가 싶을 만큼 예뻤다. 마스카라로 한 올 한 올 올린 풍성한 속눈썹이 인형 같았다. 어렸을 때 집에 있던 인형 속눈썹이 저랬는데. 인형놀이는 안 하고 인형으로 오빠 뒤통수를 후려갈기면서 싸우다가 오빠가 치사하게 일러바치는 바람에 범행도구를 할아버지한테 압수당하고 말았다. 나는 오빠가 암바 건 거 고자질 안 했는데. 그 다음엔 학습지로 때렸더니 눈치 없는 오빠가 의리를 지키느라 아무 말 안 했다. 결국 자수 했는데 학습지는 둔기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압수당하지 않았다.

“저는 늦을까 봐 일찍 왔는데, 딱 맞춰서 나오신 거예여? 기다리느라 다리 아파요오.”

애교가 뚝뚝 묻어나는데, 은근히 힐난하는 것 같은 말투다.

“늦은 건 아니잖아요. 먼저 들어가서 아무거나 주문하고 계시면 되는데. 혼자 못 들어가여?”

일부러 말투를 따라 했는데 수완 씨는 입을 삐죽이며 시선을 비스트로 쪽으로 돌렸다. 조명도 그대로고 곰인형은 불쌍하게 앉아 있고 테이블 위에 치우지 않은 그릇에 남은 음식에는 곰팡이가 피어나고 문은 잠겨 있었다. 설마 ‘사랑의 도피’는 아닐 테고, 이 동네가 ‘핫 플레이스’가 되면서 임대료가 올랐다더니 월세 못 내고 야반도주 했나? 잠긴 문에는 ‘임대 문의’와 ‘유치권 행사 중’이란 종이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예약 하신 거 아니었어욤?”

“예약전화를 안 받긴 하더라고요…”

“기대 많이 했는데에…”

“비슷한 메뉴 찾아볼까요?”

“저는 별로 안 먹으니까 드시고 싶은 거 드세용. 인스타 명소라고 해서 브이로그 찍으려고 차려 입고 나왔는데…”

어쩌란 거야.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야. 스무 고개 하나.

“죄송해요.”

‘이제 됐어요?’를 덧붙이려다가 참았다. 수완 씨는 그제야 찡긋 윙크하며 웃었다. 왜 ‘쌔한 기분’이 들었는지 이제야 알았다. 처음부터 카톡의 ㅠㅠㅠㅠ가 꼴 보기 싫었다. 문장마다 죄송하다면서 과도하게 미안해하는 게 불편했다. 내가 화내기도 전에 내 입, 아니 손가락을 막으려는 것 같아서. 필요 이상으로 미안해해서 정당하게 성질 내는 나를 ‘못된 사람’ 만들고, 내가 약간 실수하면 기어이 사과를 받아내서 자기는 ‘착한 사람’되려고 하는 거다.

“아무거나 드셔도 된다고 했으니까 아무데나 갈까요?”

인테리어라고는 하나씩 추가되는 메뉴를 덕지덕지 붙인 종이 뿐인 분식집에 들어가서 라볶이, 순대, 김밥을 시켰다. 의뢰인은 김밥 세 개만 집어먹고 먹방 시청하듯이 내가 김밥과 순대를 라볶이 국물에 찍어 먹고, 기름진 라면과 쫄깃한 떡을 한 입에 넣는 걸 구경만 했다.

“전 자기관리 하느라고요.”

“자기관리 아니고 자기학대 같은데…그러다가 서른 넘으면 훅 간대요.”

“섭취하는 칼로리보다 소모하는 칼로리가 더 많아야 하는데, 요즘 운동을 못 해서 못 먹어욤…”

그러면서 김밥과 라볶이와 순대의 칼로리를 줄줄 읊었다. 그러면 내가 입맛이 떨어질 거라고 착각했나 보다.

“떡볶이 별로 안 좋아해여. 연습생 때는 학교 끝나자마자 연습실 가느라고 친구들하고 떡볶이 사 먹을 일이 없었고, 찌는 체질이라서 식단 조절하느라 못 먹었고요…연습생 그만두고 한번 토할 때까지 먹었더니 이제는 떡볶이 보기도 싫어여.”

보란 듯이 에헤헤 웃길래 나도 보란 듯이 먹었다. 매운 거 먹었으니까 후식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날름거리며 핥아먹고, 달고 차가운 거 먹었으니 쓰고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셔 주고, 커피는 쓰니까 달짝지근한 티라미슈를 곁들여 먹었다. 밥, 빵, 면, 떡을 풀코스로 먹어 줘야 어디 가서 탄수화물 좀 먹었다고 얘기할 수 있지.

“연습생은 왜 그만뒀어요? 예뻐서 연예인 해도 될 것 같은데.”

“재작년까지 걸그룹 준비했는데 데뷔를 못 해서 회사가 망했어요오…”

“아니! 그 기획사는! 걸그룹 하나 데뷔 못 시켰다고 망할 정도면! 기획사를 하지 말았어야죠! 혹시…돈 뜯긴 건 없죠?”

“보컬이랑 안무 트레이닝 비 냈는데요오…몇 백만원 정도…학원비 같은 거예여…뜯긴 거 아니고 방송댄스도 배우고 보컬 트레이닝도 받았어여…”

“그거 악덕업체인데! 완전 사기꾼! 기획사가 연습생한테 투자를 해야지 왜 돈을 뜯어내요! 그거원래 다 기획사가 해 줘야 하는 거라고요! 폐업만 안 했으면 어디다가 확 신고해 버려야 했는데!”

“사장님이 사기꾼은 아니었어여…저희 데뷔시키려고 방송국 문 앞에서 음료수도 돌리고요…여기저기 대출도 받으시고요…근데 저희가 노래도 조금씩 모자라고, 얼굴도 좀 그렇고,안무도 제대로 못 짜서 데뷔가 안 되어서여…사장님도 피해자예여…”

“제대로 된 작곡가한테 곡 받았어요? 스타일리스트, 매니저, 안무가는 붙여 줬어요?”

“사장님 아는 분한테 곡 받고요…안무는 춤 잘 추는 멤버가 짜고요…편곡도 알아서 하고요…옷은 저희끼리 인터넷쇼핑하고요…사장님이 우리는 ‘자급자족 생계형 아이돌’ 컨셉이랬어여.”

데뷔곡이 될 뻔 했던 노래를 들었다. 막귀인 내가 듣기에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트로트였다. 이런 걸 걸그룹 데뷔곡으로 주다니, 이 정도면 뽕끼가 아니라 객기였다.

“저희가 데뷔할 실력이 안 되었어요오. 사장님이 매니저 출신이라 아이돌 제작하시는 게 꿈이어서 정말 열심히 하셨는데에.”

“제대로 된 전문가를 붙여서 연습생을 트레이닝하고, 컨셉을 잘 잡아서 데뷔시켰어야죠! 사장이 처음부터 무리하게 사업했네! 지 꿈 꾸느라 남의 꿈이랑 시간 날려먹었잖아요! 자기도 능력 없으면서 누구한테 데뷔할 실력이 되네 마네 지랄이야! 사장님은 무슨 놈의 사장님이에요? 자, 따라해 봐요! 사!장!새!끼!”

조용하던 카페에 ‘사장새끼’가 크게 울려 퍼졌다. 여자 둘이 앉아 있는데 한 명은 디저트와 음료에 손도 안 댔고 한 명은 화내면서 무슨 새끼 어쩌고 하니까 사람들이 돌아 봤다. ‘저희 삼각관계나 치정 아닙니다. 면상에 커피 안 뿌릴 거고요, 돈봉투 안 내밀 거니까 하던 일들이나 마저 하세요’라는 눈빛으로 쏘아 보니까 슬금슬금 고개를 돌렸다.

“혹시 다른 기획사 갈 생각은 안 해 봤어요? …절대 수완 씨 탓하는 건 아니고요.”

“스무 살 넘으면 새로운 기획사 들어가서 걸그룹 연습생하기엔 늦은 나이라서여. 아이돌 팬들은 십 대, 이십 대라서 걸그룹 멤버도 같이 공감하고 성장할 수 있는 나이여야 하거든여. 늦어도 이십 대 초에 데뷔해야 7년 계약하고 활동할 수 있어서여.”

연습생끼리 유투브 안무 영상 보면서 연습하던 실력으론 다른 기획사에 가도 바로 데뷔할 수 없었다. 또 몇 년을 연습해서 데뷔하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사장새끼는 지만 망하면 되지 왜 남의 인생까지 망쳐. 청춘은 뭐든지 도전할 수 있다지만 아이돌은 남들이 출발할 나이에 은퇴하거나 포기를 하기도 한다. 도전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건 누군가에겐 거짓말이다.

“기획사 망하고 나서 오디션 프로그램도 나가 봤는데여.”

방송엔 얼굴도 내밀지 못하고 탈락했다.

“간절함이 없대여. 1차 통과하고 다음주까지 5kg 감량해 오라고 했는데, 못했어여. 밥 안 먹고 운동만 했는데 힘들기만 하고 살은 3kg 밖에 안 빠지고, 힘없어서 고음도 안 올라가서 망했어여.”

“그렇잖아도 마른 사람이 일주일에 5kg 감량하면 죽어요. 그 심사위원들 살인미수범들인데요. 아닌가? 자살방조범인가?”

“그게 마지막 기회였는데. 그냥 나가지 말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서 울 걸 그랬어여.”

“마트 바닥에 드러눕는 아기도 아니고…”

“아직도 자기 전에 생각해여. 간절해 보이게 바리깡 들고 가서 삭발이라도 할 걸….”

“삭발로 안 되면요? 혈서라도 쓰시게요? 자해공갈단 오디션이에요?”

“그럼 어떻게 해여! 눈빛이랑 자세에서 간절함이 안 보인다는데!”

“간절할수록 잘 할 것 같으면 뭐하러 오디션에서 노래를 시켜요? ‘사연팔이’나 하면 되지. 심사위원 새끼들이 말하는 ‘간절함’은 지들이 갑질해도 아무 말 없이 삽질하는 지원자 뽑겠단 거예요. 심사위원들이 그렇게 유능한 제작자면 체중을 5kg 증량해서 와도 매력을 찾아내서 스타 만들어줄 수 있어야죠. 다른 데에 수완 씨 매력을 알아주는 유능한 기획사가 있을 거예요.”

“나이 속이고 다른 기획사 오디션도 가 봤는데여. 못하는 건 아닌데 매력이 없대여.”

실력이 없다고 하면 노오력해서 발전한다는 성장서사라도 있지, 매력이 없다면 뭘 어떻게 고치란 걸까. 아니 대체 매력이 뭐야. 심사위원씩이나 되면 정확하게 말을 해 줘야지.

“이제 사람들의 평가에 막 휘둘리고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공시생 하기로 했어여. 시험은 객관적인 성적이 나오잖아여. 간절하지 않아도 성적만 되면 붙여 주잖아여. 아이돌은 내가 아무리 잘 한다 해도 걸그룹 컨셉에 맞아야 해서 데뷔 운이 있어야 하는데 시험은 공정하잖아여. 대학은 대충 성적 맞춰 갔는데 중고딩 때 연습생 하느라 공부를 안 했더니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수업도 잘 안 들어가고 학과 행사도 참여 안 하고 단톡방도 잘 안 봤더니 그냥 다 어색해서여. 어차피 혼밥하는 거 공시하면서 혼밥하려고여.”

“그래서, 정리하는 의미로 사장새끼를 실종시켜 버리고 싶다…? 아니, 이미 망했다고 했죠?”

수완 씨는 유튜브 채널을 알려줬다. 짧은 스커트를 입은 수완 씨가 걸그룹 커버댄스를 추고, 눈을 감고 고음을 지르며 팝송을 커버하고 있었다.

“이 사람을 실종시키고 싶었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