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 사피엔스 – 1부 (제1회 ZA 문학 공모전 우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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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세면대 거울에서 마주치는 내 얼굴보다 부검대에 누운 변사체가 더 친숙해져버렸다. 심지어 내가 저들을 해부하는 것인지 저들이 날 해부하는 것인지 물아일체의 경지마저 느끼곤 한다. 여기 실려 오는 사체들은 똑같은 화두를 던져주고 떠난다. 인생은 한낱 미망이라는 깨달음을 모든 사체들이 유언으로 남긴다.

일순간에 무너질 줄도 모른 채 만세동락을 꿈꾸는 미욱한 존재가 인간임을 증명해준다. 진수성찬을 즐기다 급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혼 여행길에 유명을 달리하거나 적금 만기일을 며칠 앞두고 횡사하기도 한다. 심지어 법의관을 아비로 둔 어린아이가 변사체로 실려 온 경우도 있었다.

인간의 삶이 한순간에 반전된다는 개념은 철학자의 허세가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삶이란 건 참으로 하찮게 꺾이는구나, 오늘도 쓴웃음을 삼키며 메스를 든다.

“과장님, 준비됐습니다.”

허공 어딘가에 시선을 묻고 있던 나를 검시관이 재촉하는 말투로 불렀다. 법의관 수가 태부족인데다 워낙 일거리가 밀려있다 보니 잠시 상념에 빠지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서울 본소에 비해 범죄적으로 한결 평화로워 보이는 강원지역이지만 변사체들이 침묵으로 내지르는 통곡은 여전히 무겁게 윙윙거린다.

부검실 안으로 들어섰다. 사체에 함께 딸려온 보고서를 먼저 훑었다. 치양산 숲속 계곡에서 발견됐다고 적혀있다. 이미 유류품과 신분증을 통해 실종 신고 됐던 인물로 밝혀졌다. 사라진 애완견을 찾으러 간다고 떠난 게 마지막이었다고 한다. 치양산 산장에서 일했던 42세 남자인데, 문제는 타살 여부였다.

사체 속에서 몇 가지 이상한 점들이 눈에 띄었다. 피부 거죽에 비해 내부 장기가 급속도로 부패된 상태였다. 시반과 강직 상태로 보아, 사망 시각은 십여 시간 전으로 추정되지만 부패 속도는 훨씬 늦춰졌을 것이다. 발견 장소가 산속 굴의 암석 바닥인 데다가 장대비라는 궂은 날씨까지 더해지면서 부패를 지연시킬 만한 변수가 많았다.

문제는 이런 변수가 내부 장기에는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질병이 있을 경우 내장의 부패 속도가 빨라진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겉과 속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숨이 끊어지기도 전에 장기가 먼저 부패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경계를 허물고 서로 혼합돼 버린 장기들 틈에서 유독 시선을 끄는 부위가 보였다. 흉골 아랫부분이었다. 좌측 폐와 우측 폐 사이가 이지러진 채 피떡으로 심하게 엉겨 붙어 있었다. 보조하던 병리사가 흠칫 물러서며 ‘결핵’이란 말을 웅얼거렸다.

결핵균은 공기를 통해 전염되기 때문에 폐결핵 환자를 부검할 때는 몇 배로 긴장하게 된다. 하지만 그동안 봐온 결핵 사체들 상태와는 달랐다. 더구나 고인은 산장에서 일하던 정력 넘치는 사내였는데 본인이 자각하지 못한 채 중증 폐병을 앓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직접사인은 패혈성 쇼크로 나왔다. 타살은 아니지만 쇼크사에 이르는 과정이 석연찮았다. 애초에 타살 여부만 가리려는 의례적인 조사라 담당 형사는 내 부연 설명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사실 가장 이상한 점은 냄새였다. 사체 썩은 내는 넘치게 맡아봤지만 이번처럼 독특한 적은 없었다.

특히 피떡이 엉킨 폐 부위에서 심했는데, 통상적인 악취 외에도 설명하기 힘든 야릇한 구린내가 묻어나왔다. 안심하며 떠나는 형사를 보면서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다이옥신 중독으로 사망한 농부를 끝으로 일정을 마쳤다. 부검 감정서만 작성하고 바로 일어섰다. 깜깜소식이던 영무한테서 연락이 왔는데도 오늘에서야 짬이 났다. 영무는 대학 시절 사진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다. 몇 년 전에 박물관 학예연구원직을 접고 고향인 춘천으로 내려가 작은 화랑을 차렸다.

명절 귀경길처럼 차들이 굼뜨게 움직였다. 기름유출 사건 때문에 방제팀이 몰려들었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다. 인근 공장의 보일러 탱크가 파열되면서 기름이 그대로 개천으로 흘러들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방송사는 지방의 한 동네가 겪은 재난에는 관심이 없었다.

서울 전역에, 심지어 상수원에까지 퍼지고 있는 녹조 현상에 대한 뉴스만 흘러나왔다. 상수원에 문제가 일어난 곳은 한국만이 아니었다.

다른 나라들도 상수도에서 약물이 과다 검출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오랜 세월 생활쓰레기로 버려진 각종 알약들이 축적되다가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국내건 외국이건 식수 오염 소식으로 미디어가 들끓었다. 전 세계인들이 애용하다 버린 각종 의약품들이 산천초목을 오염시키더니 이제는 버린 자들에게 되돌아올 모양이다.

별의별 약물이 뒤섞여서 생기는 이른바 칵테일 효과가 가져올 재앙에 대해 지구촌 언론은 끊임없이 떠들어댔다.

하천과 맞닿은 도로로 들어섰다. 많은 운전자들이 자가용을 버려둔 채 냇가 쪽 갈대숲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진을 찍거나 심란한 표정으로 수군대는 사람들로 갓길이 북적였다. 차를 멈춰 세우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빼곡히 늘어선 행렬 너머로 검은 덩어리가 뭉텅뭉텅 고여 있는 광경이 얼비쳤다.

악취를 품은 기름띠가 하천을 잠식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 곳은 오염된 물길이 아니었다. 철을 앞질러 날아 온 백로 한 쌍이 기름얼룩을 짐처럼 짊어진 채 수풀 속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기름때가 깃털에 스며들면 비행 능력까지 망가지고 만다.

저 녀석들은 더는 날지 못할 것이다. 자기들이 왜 갑자기 날아다니는 자유를 빼앗긴 것인지 까닭 모를 절망 속에서 죽어갈 뿐이다.

춘천 시내 번화가 골목길로 접어들자 영무네 화랑 간판이 보였다. 3층 난간에 매달린 홍보용 깃발이 시선을 끌었다. ‘김민해의 설치미술전.’ 김민해는 영무를 통해 알게 된 설치미술가인데 본업인 화가보다 환경운동가로 더 유명하다. 반골 기질에다 행동력까지 요란한 터라 공적기관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문제아로 찍혔다.

좁다란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장의자에 앉아 있던 김민해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어, 임 박사님.”

“오랜만이에요.”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작품을 둘러보았다. 그중 유독 괴상한 작품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갖가지 동물들이 죽은 채 널브러져 있는 섬뜩한 광경이었다. 놀이동산같이 산뜻하고 동화적인 배경 위에 눈깔이 뒤집혀 나자빠져 있는 동물 인형들이라. 작품 앞에 세워진 팻말에는 ‘도도 사피엔스(dodo sapiens)’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도도 사피엔스? 무슨 뜻이죠?”

“도도(dodo)는 인류에 의해 최초로 멸종된 조류예요. 사실 그 이전에도 수두룩했겠지만 어쨌거나 인간이 멸종시켰음을 자인한 첫 번째 생명체죠. 인간의 생태계 파괴에 관한 한 상징적인 존재랄까요. 저기 벽 쪽에 자빠져 있는 새가 도도예요.”

그러고 보니 작품 속 동물들은 죄다 멸종된 종이었다. 황금두꺼비, 회색곰(?), 늑대(?), 처음 보는 짐승들……. 화려한 전성기의 모습으로 박제돼 있는 오브제들은 미학적인 조형미를 빌려 인간의 만행을 조소하고 있었다.

“도도는 새고 사피엔스는 인간이고. 그럼 ‘도도 사피엔스’는 뭐예요?”

“멸종 인간이죠. 도도새처럼 멸종되는지도 모른 채 어느 날 갑자기 씨가 마르는 겁니다.”

말투가 이기죽거리다 못해 재밌어 하는 듯이 들렸다.

“다른 멸종 생물과 차이가 있다면 자기들 스스로 멸망한다는 거죠.”

“못난 인간들이 김 화백 충고를 새겨들어야 할 텐데.”

“충고가 아니라 저주예요.”

그녀의 나직한 음성이 공포 영화의 효과음처럼 소름끼쳤다.

“인간은 절대 달라지지 않을 걸요. 설사 깨닫는다고 해도 기껏해야 지연시킬 수 있을 뿐이죠. 인간 멸종은 운명이에요.”

민망할 정도로 의기양양한 어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골 예술가의 허풍이라며 웃어넘길 테지만, 삶의 허망함에 쪄들어 사는 나한테는 피할 수 없는 신탁처럼 들렸다.

“어이, 임 박사 왔어?”

영무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다가왔다. 소주 냄새가 몰칵 밀려왔다.

“또 낮술이야?”

영무는 내 말은 무시한 채 김민해의 작품 앞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김 화백, 저 작품은 미완성이야. 우리의 주인공 도도 사피엔스는 안 보이잖아. 음, 내가 들어가 나자빠져 있으면 딱일 텐데.”

영무는 어깨를 들썩이며 꺽꺽거렸다. 두 사람은 인간멸종이란 식겁한 개념을 심심풀이 땅콩 씹듯 한동안 주고받았다. 영무가 건네준 녹차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삶과 죽음의 화두라면 직장에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얼굴 봤으니 그만 갈게.”

“뭔 소리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술이라도 걸쳐야지.”

“벌써 코가 삐뚤어졌구만, 아직도 모자란 거야?”

“모자라지 그럼. 같은 술도 술친구가 누구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인걸. 내가 딴 건 몰라도 인맥 하나는 차고 넘치잖냐. 술상 물릴 겨를이 없어요, 하하.”

“그러니 툭 하면 속병이지. 그러다 큰일 나.”

“왜? 술 퍼마시다 횡사해서 네 부검대 앞에 자빠져 있을까봐 겁나냐? 흐흐.”

웃음을 쏟아내려던 영무는 번득 실언했음을 깨닫고는 미안쩍은 낯빛으로 주둥이를 감쳐물었다.

“건강 잘 챙겨. 술 좀 작작 마시고.”

나는 화장실 급한 사람처럼 후다닥 화랑 밖을 나섰다.

하늘빛이 끄무레한 것이 또 한바탕 비가 쏟아질 모양이었다. 구름 꼴이 칙칙한 물감만 모아 뭉개놓은 것처럼 흉물스러웠다. 문득 치양산 사체의 회청색으로 이지러진 피하지방이 떠올랐다. 터지기 직전의 종기처럼 부글거리는 먹구름에 욕지기가 일었다.

휴일이라 집에 있던 나는 긴급호출을 받고 국과수로 출근했다. 곧장 지하부검실로 내려갔다. 대기실에 방 형사가 와 있었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두 건이에요. 둘 다 변사첸데 발견 장소도 같고 어째 예감이 안 좋아요.”

“연쇄 살인이라는 거야?”

“아무래도……”

방 형사는 경위서 한 장을 내밀었다. 사체 발견 장소는 치양산 숲속이었다.

“또 치양산이네.”

“그러게요. 지난번 그 사람이야 타살은 아니었지만…… 요새 치양산에 뭔 마가 꼈나. 왜 자꾸 이런 일이.”

두 사체가 발견된 현장 간의 거리는 100여 미터에 불과했다. 차이가 있다면 한 구는 부패가 이미 시작된 상태였고 다른 하나는 사망 직후라 양호하다는 점이다. 사망자가 쓰러지기 전에 119신고를 했지만 산악구조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절명한 뒤였다.

신고 당시에도 말을 잇지 못한 채 모질음만 토해냈을 뿐 단서가 될 만한 발언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신을 옮긴 뒤 주변 탐색을 하던 중에 이미 썩고 있는 사체 한 구가 추가로 발견됐다는 것이다.

초조한 마음으로 부검실에 들어갔다. 먼저 성한 사체부터 살폈다. 예검시 때 이미 조사관들이 확인했지만 감식반 보고대로 거죽에는 별다른 외상이 없었다. 곤충류에 물린 자국이 유독 많다는 것 정도가 다였다.

메스가 사체의 몸통을 열어젖히는 순간 코끝이 칼로 도려지는 듯한 아찔한 냄새가 풍겼다. 검시관들이 괴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나를 진짜 놀래킨 건 이미 이 악취를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지난주에 부검했던 치양산 사체, 이상한 냄새의 주인공말이다.

그 정체불명의 냄새가 이번에는 확실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 짬뽕 악취에서, 뭐랄까, 병원 약제실에서 날 법한 냄새가 묻어나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폐의 상태였다. 피와 진물로 문드러진 폐가 드러나자 베테랑 검시관들조차 표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피고름이 실핏줄처럼 온 장기로 치밀하게 퍼져 있었다. 각종 임파절에 번진 흉측한 고름 가지들이 갈퀴 모양으로 내장 곳곳을 할퀸 상태였다.

외계 생명체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기괴한 모습이었다. 또다시 지난번 사체가 떠올랐다. 이미 부패된 뒤라 드러나지 않았을 뿐 분명 그 사체 역시 사망 직후에는 이랬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섬뜩한 건 폐가 아니었다. 겉보기에는 폐가 가장 흉측하지만 비장에 일어난 변화가 병리학적으로는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정상 크기보다 서너 배 정도 늘어난 채 주변 장기 주위로 뻗쳐 있었다.

한계치까지 부풀어 올랐다가 터져버린 풍선 같은 모양새인데, 급격히 팽창된 비장은 불길한 징후다. 탄저병으로 사망한 사체에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난번 산장 사내의 사망 원인은 패혈성 쇼크였다. 이는 폐탄저의 병증이기도 하다.

우선 부검을 중지시켰다. 기밀실에 잠들어 있던 ‘탄저 포자 탐지 키트’를 긴급히 대령시켜 사체를 훑었다. 진단 결과가 나오는 잠깐 동안에도 부검팀은 타들어가는 불안감에 압도당했다. 다행히 탄저균 포자는 검출되지 않았다.

다시 부검이 재개됐다. 부검팀은 옆 테이블에 누워 있던 묵은 사체로 다가갔다. 상체를 열어보니 내장 상태는 지난번 사체와 같았다. 고름 가지치기 무늬는 이미 썩어 없어진 뒤였고 냄새 역시 미세한 구린내로 바뀌어 있었다.

검시관들에게 뒷정리를 맡기고 대기실로 나왔다. 참관했던 방 형사가 핼쑥한 얼굴로 다가왔다.

“박사님, 도대체 그게 뭐죠?”

대답을 미룬 채 의자에 주저앉았다. 마음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회오리쳤다.

“어쨌거나 타살 같아 보이진 않던데. 무슨 중병에 걸린 모양이죠?”

나름대로 논리적인 연결고리를 추리해보았다. 괴이한 병리 현상을 보이는 사체들. 전혀 새로운 형태의 병증이 한 장소에서 연달아 발생할 수 있을까. 타살이 아니라면 그럴 가능성은 한가지뿐이다. 전염성 강한 병원체…… 탄저 증세와 비슷하지만 포자가 없으니 탄저병은 아니다.

그런 증상이 탄저균 말고 뭐가 있을까. 탄저병증과 유사하면서…… 아뿔싸! 물린 자국이 있었어. 곤충한테 옮아온 거야. 그래서 포자가 없었던 거야.

방 형사를 밀어제치고 다시 부검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검시관들은 사체를 봉합 중이었다.

“사체에서 떨어져, 빨리!”

느닷없는 불호령에 한 명이 봉합 바늘을 떨어뜨렸다.

나는 인터폰으로 비상조를 호출했다. 두 사체를 격리실로 옮긴 후 부검실과 사체 이동 경로를 소독하도록 지시했다. 부검팀과 참관인들 역시 소독 가스를 쐬었다. 일련의 갑작스런 조치가 마무리된 후 방 형사가 사무실로 쳐들어왔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

“더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아무래도 탄저병 같아.”

“예에? 탄저병이요?”

“폐 상태로 봐서는 급성호흡장애를 일으키는 폐탄저 변종일 수도 있어. 포자가 없어서 탄저균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깜빡했던 거지. 포자를 남기지 않는 경우도 있거든.”

“그럼 사망자들이 탄저균에 오염된 고기를 먹은 거예요? 소나 돼지?”

“아니. 이 경우는 흡혈곤충에 의해 옮겨진 것 같아. 드물지만 가능한 얘기야. 우선은 혈청 검사와 농포 표본 조사를 통해서 병원체를 확진해 봐야 해.”

“탄저균은 사람 대 사람 감염은 안 되는 걸로 아는데, 맞죠?”

“그렇긴 하지만, 곤충이 옮겨온 게 맞다면 문제가 심각해. 아무래도 단순한 탄저균이 아닌 것 같아. 변종일 가능성이 커.”

감염균 분석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사체 몸에 있던 물린 부위의 농포에서 탄저균 양성 반응이 나왔다. 탄저균에 감염된 사례는 몇 번 있었지만 탄저병에 걸린 가축이나 산짐승을 먹어 감염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번에는 드물게도 흡혈곤충을 통해 감염된 경우였다.

병균은 생물종을 여러 차례 이동하면서 치명적인 변종으로 진화하곤 한다. 이번 병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온 것인지 그 연결고리부터 찾아내야 한다.

비밀리에 대대적인 역학 조사가 진행되었다. 테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에 경찰 측에서도 특별 전담반을 구성했다. 나도 은밀하게 결성된 질병본부에 소속됐다. 피해자의 신원은 각각 53세 여자, 34세 남자로 치양산에 등산 갔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다.

결국 산행 도중 탄저균에 감염된 것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첫 번째 사체인 산장 직원은 치양산에서 줄곧 거주해온 사람이라는 점이 다르다. 아무래도 그자가 발견된 현장 주변에서 탄저균과 관련된 단서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내가 소속된 조사반이 현장으로 급파됐다. 토양 채취 작업을 마치고 주변을 계속 탐색했다. 우리들을 따라붙던 모기 십여 마리가 어딘가로 무리지어 가기도 하고 다시 그쪽에서 무리지어 오기도 했다. 그중 몇 놈을 잡아 살폈다. 작은빨간집모기였다. 방독장갑을 향해 침을 꽂으려는 기세가 살벌했다.

원래 이리 표독스런 종자였던가 싶을 만큼 채집망에 갇혀서까지 용맹스런 발광을 멈추지 않았다. 경찰서에서 나온 강력팀장이 몇 마리를 손으로 잡아 뭉갰다.

“거, 쪼끄만 녀석들이 꽤나 지랄 맞네.”

“쪼끄맣지가 않은데요.”

“예?”

“겉모양으로 봐서는 작은빨간집모기가 맞는데…… 이름처럼 소형모기 종이라 5mm도 안 되거든요. 그런데 이놈들은 일반 모기만 하네요.”

“그래요? 왜 커진 걸까요? 산 좋고 물 좋아서 무럭무럭 자란 건 아닐 테고.”

나도 그게 궁금하다. 왜 이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것인지. 성체 크기는 물론 습성까지 더 포악해졌다.

모기 행렬이 이어지는 방향을 따라 녀석들을 쫓아가보았다. 에움길을 몇 굽이 지나갔다. 모기 행렬이 점점 거세지는가 싶더니 드디어 놈들의 소굴이 나타났다. 벌목으로 반쯤 잘린 활엽수림 아래로 너저분한 웅덩이 밭이 대규모 공업 단지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 아래쪽으로는 건축 폐자재들이 각종 고물과 뒤엉킨 채 안 그래도 흉물스런 광경에 강조점 하나를 더 달아주었다.

“여긴 왜 이렇게 엉망인 거예요?”

경찰팀장이 담당 공무원에게 퉁명스레 물었다.

“……글쎄요 ……골프장 공사 때문인가? 공사가 중단됐다더니만 아무래도……”

“아니, 담당 공무원이 여태 이 지경인 것도 몰랐어요?”

“일손이 딸리다 보니까……”

공무원은 시선을 피한 채 말끝을 흐리고는 들고 있던 수첩만 뒤적거렸다.

나는 웅덩이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살폈다. 골프장 공사로 패여 있던 구멍들이 폭우가 지나가면서 크고 작은 웅덩이로 변한 듯했다. 웅덩이 물이 시커멓게 고여 있어 한 아름도 안 되는 넓이인데도 발을 담그면 끝없이 빨려들어 갈 것처럼 아득해 보였다.

여기저기 터전을 잡은 웅덩이들은 모기들을 위한 리조트 군집과도 같았다. 천적의 방해도 받지 않고 태평히 알을 까고 유유자적 번식했을 것이다. 모기들은 갑작스런 인간의 방문에 놀란 듯 우리를 향해 무리지어 달려들었다. 놈들은 방독복으로 무장한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다가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뒤에서 누군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왔다. 방 형사였다.

“박사님, 이리로 와보세요. 빨리요.”

감식반 일행과 같이 뒤따랐다. 후미진 숲길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익숙한 악취가 밀려왔다. 또 다른 변사체를 예상하며 문제의 장소에 도착했지만 이번에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다. 모기 웅덩이 옆에 썩어 문드러져 있는 형체는 발이 네 개라는 것 말고는 어떤 동물종인지 알 수 없었다.

구더기와 진흙 범벅을 거둬내자 종 구분이 될 정도의 형체가 드러났다. 개로 추정됐다. 부패 정도로 보아 앞서 발견한 변사자들보다 더 먼저 폐사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녀석이 최초의 희생자일지도 모른다.

개 사체 목 부위에 목걸이가 남아 있었는데, 목걸이를 단서로 개의 소재를 추적하면서 병균이 거쳐 온 궤적이 드러났다. 개는 사망한 산장 사내가 키우던 애완견이었다. 활동적이던 녀석은 산속을 헤집고 다니는 게 취미였다고 한다. 흙 범벅을 해서 돌아온 적이 많았다는데, 그때 흙속에 은둔하고 있던 탄저균에 옮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산장까지 옮아오기 전에 죽었다. 산장 가검물 조사는 물론 산장 식구들의 혈청 검사에서도 탄저균 양성 반응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탄저균은 독성이 빨리 번지면 순식간에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현장에서 급사했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는 부검 결과다. 인간 사체들과 달리 개 사체에서는 탄저균 포자가 검출됐다. 흙 탄저균에 감염된 개가 죽은 뒤, 모기들을 통해 다시 인간으로 옮겨졌다는 게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이다.

현장에 있던 웅덩이와 흙에서도 탄저균이 나온 걸 보면, 엄청난 모기떼가 유충 때부터 탄저균 온실에서 배양된 셈이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항생제 비료가 있었다는 점이다. 골프장 공사 중에 나온 건축 폐자재 틈에 병원 폐기물이 버려져 있었다.

주사 바늘에 남아 있던 항생 물질이 웅덩이 밭으로 흘러들어 흙속의 탄저균과 융합돼 강력한 변종 균으로 진화된 모양이다.

항생제 저항성 실험결과에서 페니실린에조차 내성이 있었던 이유가 이제야 납득이 간다. 부검 중에 맡았던 그 독특한 냄새 역시 항생 물질의 흔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컨대 탄저는 흙과 오염된 물웅덩이, 의약품 폐기물, 그리고 모기 유충이라는 수차례의 변이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괴질로 무장했다.

그러나 결국 괴질을 키워낸 가장 핵심적인 배양액은 ‘인간들의 비양심’이었다. 인간에 의한 환경오염이 수십 배의 칼날로 되돌아온 셈이다.

변종탄저가 약물 저항성까지 갖고 있기 때문에, 박테리오파지(세균을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를 이용한 효소 요법을 사용해야 했다. 다행히 동물실험을 통해 탄저균의 병독성을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다. 탄저균 치료는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문제는 누가 언제 탄저균에 걸렸는지 신속히 처방할 수 있는지 여부다.

워낙 급성이라 죽어서 오는 경우가 태반이니 예방법이 있다 한들 손 쓸 틈도 없는 상황이다.

최근 한 달 안에 치양산에 다녀온 사람들에게만 탄저균 백신을 놓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호응 없이 사그라졌다. 백신 조달 문제도 큰데다 비감염자일 경우 백신 부작용이 클 것이고, 무엇보다 탄저병균이 돈다는 사실을 세상에 떠벌려야 한다는 것 자체가 꺼림칙한 눈치였다. 전염병은 아니니 조용히 지켜보자는 입장이 지배적이었다.

다른 사건들의 부검을 끝내고 퇴근할 무렵, 급기야 우려하던 소식을 접하고 말았다. 강원도의 여러 병원에서 급사한 환자들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쏟아졌다. 대부분 치양산에 다녀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만약 이전 피해자들과 사인이 같다면 이는 이미 병원체가 확산되고 있다는 걸 뜻한다.

변종탄저로 의심되는 사체들이 긴급 후송돼 부검실에 줄줄이 도착했다. 흰 천에 가려져 나란히 누워 있는 그들을 향해 미신만도 못한 소원을 빌었다. 제발 아니길. 간절했던 희망은 흉부를 여는 순간 절망으로 바뀌었다. 정밀조사가 있어야 하겠지만 육안으로는 이전의 치양산 사체들과 똑같았다.

이토록 증상이 뚜렷한데 정밀분석에서 다른 결과가 나올 리가 없다. 나는 망연자실한 부검팀을 내버려두고 사무실로 올라갔다.

차라리 여기까지라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과연 탄저병만으로 끝날까. 유전자 분석 서류에 적혀 있던 한 대목이 자꾸만 신경 쓰인다. 치양산 조사 때 채취한 모기에서 불특정 비리온(바이러스 입자)이 검출됐다는 내용이었는데, 사건 현장에 있던 탄저균과 연관된 것이라고 추정만 할 뿐, 어떤 과정을 거쳐서 생성된 비리온인지 태생부터가 의문이다.

세균이 변이되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세균을 숙주로 삼는 바이러스가 균에 침입해 새로운 바이러스 입자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더욱 불안한 점은 치양산 작은빨간집모기 몸에서 발견된 뇌염바이러스다. 원래 작은빨간집모기가 뇌염바이러스의 매개체이긴 하지만, 문제는 정체불명의 비리온과 뇌염바이러스가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이 두 위험물질이 모기 내부에서 혼합돼 전대미문의 치명적인 물질을 생성한다면, 그리고 그 혼합물질로 활성화된 모기가 사람을 물게 된다면…… 아!…… 한겨울 냉수마찰에서나 느낄 법한 오한이 피부 위로 짜르르 돋아 올랐다. 불현듯 ‘도도 사피엔스’라는 단어가 뇌리를 후려치고 지나갔다.

윗선에서 최종명령이 떨어졌다. 정부는 사람 대 사람 전염이 아니라는 것에 그나마 안도하며 모기 서식지를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나를 포함한 관계자들은 연락받은 다음날 모두 치양산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진압반이 질러놓은 불길이 치양산 일대에 무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강박증 때문인지 하늘로 뻗치는 검은 연기가 혀를 내밀어 놀려대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라고 외치는 듯한 환영이 아른거렸다.

우리 일행은 죄다 표정이 어두웠다. 괴질 입자가 얌전히 산속에만 머물러 줄 거라고 믿을 바보는 없으니까. 하지만 어딜 가나 그런 얼간이들은 있게 마련이다.

“이제야 안심이군요.”

국회에서 파견 나온 최 의원이 낭랑한 발성으로 뇌까렸다. TV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는 유명짜한 정치인이다. 그는 역병 백신을 발명해 노벨상 시상식 무대라도 선 것처럼 감격스런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해냈구만. 이 엄청난 사연을 국민들이 모른다는 게 참 아쉽단 말이지. 먼 훗날 평가해 주겠지.”

동료 금배지가 맞장구쳤다.

“그러게. 이게 뭔 생고생인지. 목숨 걸고 나랏일 하고 있네그려. 그나저나 저놈의 모기들은 다 죽었을라나. 살아남은 놈들도 분명 있을 텐데.”

“도망간 모기라고 해봐야 얼마나 되겠어.”

“그래도 그놈들한테 물리면 바로 황천길인데?”

“뭐, 희생자가 좀 더 나오긴 하겠지만 어쩌겠어. 불가피한 희생인 걸. 그나마 강원도 산골인 게 천만다행이지. 지형 특성상 차단 효과가 있을 거 아냐. 서울 같은 대도시였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 허허.”

불길이 소각 범위를 벗어나자 곧바로 소방대가 투입됐다. 시커멓게 그을린 치양산 반쪽이 거대한 구멍이 뚫린 것처럼 푹 꺼져 보였다. 현장팀으로부터 작업이 마무리 됐다는 연락이 오자, 어귀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흩어져 전화통화를 하거나 담배를 물었다. 수행원이 자동차 시동 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려는데 날벌레 한 마리가 나타나 허공을 갈랐다. 모기였다.

담배를 피우느라 방독복을 벗어버린 사람들은 호랑이라도 만난 양 기겁하며 도망 다니느라 소란을 떨었다. 약이 오른 모기가 방향을 바꿔 날아간 곳은 최 의원 일행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국회의원들은 일그러진 산등성이를 배경 삼아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람들이 조심하라고 외치려는데 모기가 금세 자취를 감춰버렸다. 머지않아 모기의 행방이 밝혀졌다. 최 의원이 목덜미를 긁더니 가슴 언저리에서 손으로 뭔가를 낚아채는 것이 아닌가. 우리들은 그쪽으로 달려갔다. 최 의원 손바닥에 모기 시체가 뭉개져 있었다.

겨우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최 의원이 인류문명의 새 역사를 쓰기까지는. 그는 앞으로 수많은 책자와 학교 수업, 박물관의 상석을 차지하며 후손들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인간이나 인간유사종족이 계속 생존해 있다면 말이다. 인간유사종족이라는 허무맹랑한 말을 하게 될 줄이야.

황당한 미래를 그린 조잡한 만화 아이디어가 실제상황으로 바투 다가와 있다니, 내 눈으로 실체를 확인했음에도 여전히 어리둥절하다.

경이로울 정도로 진화하는 병증을 지켜보면서 병리학자로서의 학구열은 불타다 못해 아예 산화돼버렸다. 최 의원을 무력화시킨 건 탄저병균이 아니었다. 더 이상 세균의 차원이 아니다. 최 의원 몸속에서 아직 이름도 붙이지 못한 괴바이러스가 발견됐다. 특이한 건 괴질의 발현 경로였다.

탄저변종은 혈관을 타고 장기를 휘젓다가 단시간에 숙주를 절명시키는 방식이었지만, 괴바이러스는 보다 은밀하고 그래서 더 치명적인 공격전술을 갖고 있었다. 이놈은 곧장 뇌로 들어가 발병을 일으킨다.

지난번 탄저변종과 달리 인간에게만 병증을 일으키는데, 괴질이 활개 치는 부위가 뇌의 전두엽이기 때문이다. 동물실험 결과, 전두엽이 없는 동물군은 감염되더라도 기껏해야 일시적인 마비를 일으키는 선에서 끝났다. 전두엽이 있는 포유동물에서는 인간과 유사한 증세는 있었지만 발병률도 낮았으며 병증도 훨씬 미약했다.

인간만큼 전두엽이 발달돼 있지 않아서다.

뇌신경물질에 대해 인류는 아직 모르는 게 많다.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단백질 중의 하나가 바이러스와 결합된 걸 수도 있다. 오로지 인간에게만 발달된 전두엽의 신경물질이 바이러스와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급격한 뇌손상을 초래하는 것으로 추정만 하고 있다.

이 괴상한 현상이 그토록 우려했던 불특정 비리온과 뇌염바이러스의 결합에서 발생된 것인지 아니면 변종탄저로 죽은 사체에서 새로운 괴바이러스가 배양된 것인지 판가름하기가 어렵다.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일으키는 걸로 보아, 뇌염바이러스가 다른 독성물질들과 혼합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른바 칵테일 현상이다. 바이러스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여러 개가 뒤얽혀 정체불명의 괴질로 합체된 지경이라 의학팀은 무기력에 빠진 채 넋 놓고 있을 따름이다.

지금까지 인류역사에 등장한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 돌연변이가 심해 백신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 대중에게까지 알려진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집단 식중독 사건이라고 얼버무렸다. 지금 인터넷 여론을 달구고 있는 건 강원도 일대에 번진다는 미확인 질병에 관한 추측과 성토가 전부다.

평상시 같으면 그것만으로도 두려운 여론이겠으나 진상을 알고 있는 관계자들에게 그 정도 여론은 공포 축에도 끼지 못한다. 지금이야 팔자 좋게 음모론이나 읊조리고들 있지만 수다스런 입방아가 얼어붙을 날도 멀지 않았다.

케케묵은 옛 기억이 다시 조여 온다. 국과수 일도 손에 익고 사명감도 충만해지던 시절, 찌를 듯한 자신감을 단번에 꺾어버린 사건이 있었다. 오랜만에 전화 준 동창 녀석과 수다를 피우고는 경쾌한 마음으로 들어선 부검실, 그리고 창백히 누워 있는 어린아이의 사체.

처음에는 내 아들과 참 많이도 닮은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팔뚝에 있는 점이 모양과 위치까지 똑같다는 걸, 며칠 전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 자국마저 똑같다는 걸 알아채기까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충격과 절망으로 달아오른 채 아이의 식어빠진 육신을 더듬었다.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뒤늦게 사체의 신원을 알아차린 동료들 손에 끌려가면서 얼마나 지독한 통곡을 퍼부어댔는지 모른다. 어린 아들의 주검 앞에서 느꼈던 고통의 순간들이 슬라이드 필름처럼 번쩍번쩍 떠오른다. 이번 사건에서 당시 보았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때만큼이나 절망적인 기분이다.

내 가족을 피신시켜야 하나? 그래봐야 무슨 소용 있냐는 절망이 곧장 의욕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특별한 비밀을 먼저 알았다면 이기적인 가족애를 발휘할 줄도 알아야 사람이 아니냐. 서울로 보내야 하나? 아예 제주도는 어떨까. 아직까지는 강원도 이외 지역에서 보고된 바는 없다.

그러나 바이러스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선 전국적으로 번진다는 비관적인 추론을 할 수밖에 없다.

아직 완공은 안 됐지만 집에서 가까운 횡성에 외부와 차단된 의료연구단지가 하나 있다. 격리기능은 물론 방독시설까지 갖춘 데다 거주지로도 쓸 만하다. 완공 전이라 연구원들도 소수인데다가 내가 관리감독을 맡았기 때문에 식구들을 잠입시키는 건 어렵지 않다.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박사님, 저 방 형산데요……”

최 의원에 대한 질문이 바로 이어졌다. 뭔가 불길한 낌새는 맡았지만 확증이 필요한 사람의 말투였다. 괴질 사태가 탄저균에서 미지의 바이러스로 악화돼버린 상황은 방 형사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끔찍한 내막은 모르고 있다.

정부의 지침대로 함구해야 하는 것인지, 막내 동생 같은 녀석이니 최소한의 방비라도 하게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인지 망설여졌다. 방 형사도 내 갈등을 짐작했는지 솔깃한 말로 구슬렸다.

“제 동창 녀석 중 하나가 치양산에 갔었다고 하거든요. 간 시기가 피해자들이랑 겹쳐요. 근데 그 친구는 멀쩡하단 말이죠. 치양산 갔을 때 모기한테 물린 적 없냐니까 있다고 하더라고요.”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