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귀(哀鬼)

  • 장르: 일반, 기타 | 태그: #탈북자 #애귀 #인신매매 #탈북 #여성 #인권 #종전
  • 평점×113 | 분량: 88매 | 성향:
  • 소개: “애귀”와 함께하는 사람은 얼굴이 창백하고 식욕을 잃었으며 깨끗한 것을 좋아했다. 애귀와 한 탈북여성의 이야기. 더보기

애귀(哀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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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혼(孤魂)은 더는 혼자가 아니었다. 옛날 사람들은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는 말을 삶의 신조로 삼았다. 지금은 제일 두려워하는 말이 되었을 것이다.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계속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북경 사람이거나 상해 사람일 것이다. 사람들은 도시로 대학에 가거나, 도시에서 취업하거나, 도시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했다. 상당수는 고향을 떠나는 데 성공했고,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고향이 아닌 타지에서 죽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갔다. 그들은 모두 고혼이 되었다.

나는 고혼이었지만, 객사한 고혼이 아니었다. 혼인하지 않은 자였다. 아이도 낳지 않았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거라고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 계절처럼 순환해야 하는 사람의 삶. 열매를 맺지 못했기에 순환에 실패했다고 했다. 아들이 없기에 제삿밥을 얻어먹을 수 없다고 했다. 삶의 무게를 결정짓는 것이 고작 제삿밥이라니. 사람이든, 고혼이든. 난 이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역병이 돈 것도 아니고, 요절을 한 것도 아닌데. 왜 혼인하지 않았지? 왜 아이를 낳지 않았지? 넌 우리와 달라. 나에게서 이질감만을 찾는 시선들. 이들의 시선이 나를 괴롭게 했다. 이곳에 내가 설 자리는 없었다. 나는 고혼의 무리에서 벗어나 인가를 떠돌았다. 갈 곳이 없으니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내가 너를 처음 보았던 해는 붉은 쥐의 해였다. 네가 쥐의 몰골을 하고 왔다.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두려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를 끌고 온 남자가 한 손으로 네 팔을 붙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 대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나무 문이 끽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가 너를 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돌과 흙을 쌓아 올린 높은 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안을 들여다봤다. 흙으로 만든 집. 기와 걸이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기왓장. 가난한 한족의 집이었다. 문을 연 자가 너를 훑어봤다. 나도 경험해본 적이 있는, 불쾌하고 모욕적인 그 시선. 너를 팔러온 자에게 남자가 돈을 건넸다. 붉은 백 위안 한 장, 두 장, 세 장, 네 장. 너를 팔러온 자가 소리 내어 지폐를 셌다. 총 쉰 장이었다. 너는 이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듣지 못해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들이 암퇘지를 사고파는 장꾼처럼 말했다. 이제 스물두 살이다. 잘 낳을 것이다. 나중에 다시 되팔아도 된다. 대신 값이 좀 떨어진다. 몸을 밀어 넣어 담장을 지나갔다. 고혼이 들어왔다고 조상들이 아우성쳤다. 네 주위를 맴돌았다. 네 과거를 읽고 현재를 보며 미래를 엿보았다. 네 생각과 감정이 나에게 홍수처럼 몰려왔다. 너와 나는 같으면서도 달랐다. 나는 고혼이었고 너는 이방인이었다. 그 이질감에서도 나는 동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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