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으로서,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의뢰인 1위는 미켈란젤로도 아닌데 온갖 정성을 들여 수임료를 깎으려는 인간이다. 싸고 좋은 건 없다. 만약 있다면 그건 인권을 갈아 넣은 거다. 내가 고졸에 20대에 여자 탐정이라는 이유로 수임료를 후려치려고 하는 의뢰인들이 있는데, 나는 받은 만큼 일한다. 한 장에 단서 하나.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돈은 탐정을 일하게 한다. 자꾸 수임료를 아까워하면 나도 셜록 말고 샤일록이 될 수 밖에 없다.
2위는 탐정을 기만하거나 탐정에게 사기 치려는 의뢰인이다. 거짓말을 하거나 불리한 건 생선 가시 발라내듯 싹 빼고 말해서 날 개고생 시킬수록 수임료는 올라 간다.
3위는 탐정이 조문객도 아닌데 붙잡고 우는 의뢰인이다. 죽은 사람은 못 살려내지만 실종된 사람은 찾으면 되는데, 울 시간이 있으면 골든타임 날리지 말고 견적 내고 계약서 쓰고 사건을 해결 해야지. 이성과 체력으로 일해야 하는 탐정이 감정노동까지 해야 겠냐고. 계약에 포함되지 않은 서비스 요구는 갑질이다.
그리고 이번 의뢰인은 1위부터 3위까지를 한번에 혼자 다 하고 있다. 이런 분들을 뭐라고 하더라. MVP? VIP? JYP?
“가윤이가, 없어졌는데, 어흑, 탐정님은 걱정도 안 되요? 애 키워 본 적이 없어서, 모르죠?”
“아까부터 말씀드리잖아요. 납치, 유괴, 실종 아니고 단순가출 같다니까요?”
“여덟 살 짜리가 무슨 가출을 해요!”
“여덟 살이면 가출했다가 혼자 집 찾아올 수 있는 나이 아니에요?”
“오늘 생일인데, 왜 가출을 하냐고요!”
“오늘 생일인데, 경시대회는 왜 내보내셨어요? 생일 이벤트였어요? 저라도 가출하고 싶겠네요.”
“지금 말장난할 때예요?”
“그러니까 빨리 계약서에 서명하시고 정식으로 의뢰를 하시라고요.”
“내가, 이럴 시간에, 경찰에 신고를 해야…”
“그러시든지요. 애 키워 본 적 있는 경찰 만나셨음 좋겠네요. 그런데 이건 가윤이가 쓴 건가요?”
자연스럽게 왼쪽 소매 속에 감춰 뒀던 쪽지를 바닥에 흘리고 주워 들었다.
“엄마한테 편지를 남겼다는데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에?”
“가윤이가 맨날 책 읽는 의자가 있어요.”
거기서 편지가 나올 리 없다.
“단서를 찾아야 가윤이 방에서 나갈 수 있는 방탈출 게임 같은데요?”
가윤이의 책상 아래로 들어가서 오른쪽 소매에 숨겨 왔던 편지를 떨어 뜨리고, 방금 찾아낸 척 했다.
“탐정이 이렇게 금방 찾아내는 걸 엄마가 못 찾으면 어떻게 해요? 편지 좀 볼까요? ‘엄마, 저 가출할게요. 학원 안 가고 새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죄송합니다. 다녀와서 말 잘 듣는 착한 딸이 될게요.’ 와, 맞춤법 하나도 안 틀렸네요. 이거 가윤이 글씨 맞죠? 글씨도 또박또박 잘 썼네요.”
“가윤이가 독서를 많이 해서, 글을 잘 써요. 어흐흑. 이렇게 똑똑한 애가 가출할 이유가 대체 뭐가 있어요!”
“가출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이진영 씨도 갭투자 망해서 세입자한테 줄 돈 없으니까 무작정 가출했잖아요. 그 때 세입자들이 가윤이 학교로 찾아가고 그랬는데.”
“그게 언제적 일인데 또 얘기해요!”
“1년도 안 지났는데요. 그게 아니면…혹시 아동학대 라든가…”
“가윤이한테 ‘등짝 스매싱’도 한 번 안 했어요!”
“어머님께서 가출하셨을 때 가윤이 아버님이 며칠 동안 학교도 안 보내고 밥도 제대로 안 챙겨주고 방임한 것도 학대인데요.”
“그런 게 학대면, 우리 세대는 다 아동 학대 피해자예요! 우리 때는 리코더로도 맞고 플라스틱 자로도 맞고 그때그때 엄마아빠 손에 잡히는 걸로 맞았어요! 엉덩이도 맞고 종아리도 맞고. 추운 날 팬티만 입고 문 밖에 서 있고. 그래도 ‘엄마가 나 사랑하니까, 마음 아파도 나 잘 되라고 때리는 거야’하면서 고맙게 맞고 잘 자랐어요. 부모님 맞벌이 하느라 맨날 나 혼자 빈집에 있던 것도 다 학대였어요? 엄마아빠 보고 싶어서 밤늦게까지 안 자고 기다렸는데, 엄마아빠가 오자마자 청소 제대로 안 되어 있다고 때려도, 난 다 이해했어요. 밖에서 힘든 일이 있었는데 나 밖에 화풀이 할 데가 없으니까 내가 받아주자고. 내가 더 잘 해야겠다고. 난 가윤이한테 안 그랬어요. 절대 안 때렸어요. 말로만 훈육했어요. 그런데 얘는 뭐가 맘에 안 들어서 가출을 해요?”
“가윤이는 열 살도 안 된 ‘어린이’ 잖아요. 어린이는 당연히 때리면 안 되죠. 진영 씨 부모님은 왜 어린애한테 화풀이를 했대요? 그건 성숙한 어른이 아니죠. 어린이가 부모님 기다리면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고 안아 주진 못할 망정. 진영 씨는 진영 씨 부모님보다는 더 좋은 양육자예요. 진영 씨가 학대의 대물림 안 하려고 노력 많이 하신 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참 잘 했어요. 그런데, 굶기거나 때리거나 방치하는 거 말고 정서적 학대는, 진짜로 안 했어요?”
내가 상담자도 아닌데 이진영 씨 마음 속 어린 진영이 까지 위로해 줘야 하나.
“나는, 어흐흐흑, 진짜로 좋은 엄마 되려고…내 부모한테 못 받은 거 다 해 주려고…진짜 열심히 살았는데…되는 거 하나도 없고…어떻게 얘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내가 원하는 거 말고 애가 원하는 걸 해 줘야죠. 진짜로 가윤이한테 뭐 잘못하신 거 없어요?”
“미안한 건 있어도 잘못한 건 없어요!”
세 번을 물어봤는데 세 번을 부인했다. 베드로 전법 말고 스무고개 전법으로 갈 걸 그랬나.
“찾고는 싶으신 거죠? 그럼 여기 계약서 읽고 서명하세요. 누구든 무엇이든 찾아드리는 실종 탐정 전일도가 찾아 드립니다. 월요일에 등교할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의무교육은 중요하니까요.”
“오늘이 토요일인데, 주말 사이에 애가 잘못되면 어쩌려고요!”
“더 빨리 찾고 싶으시다면 추가로 돈을 더 내시면 됩니다.”
“경찰은 공짜인데 무자격 탐정이 왜 이렇게 많이 받아요?”
“경찰은 못 찾을 텐데요. 아까 엄마도 모르는 ‘가윤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 를 제가 바로 찾아내는 거 보셨죠? 제가 애 키워본 적 없어서 어린이 심리는 모르지만, 실종자 심리는 압니다.”
“어떻게 알아냈어요?”
“영업기밀인데요.”
“가윤이, 유괴된 건 아니죠? 확신하죠?”
“뭐 찔리는 거 있으세요?”
“아니…아무것도 없어요, 그런 거.”
내가 심리학은 몰라도 심리전은 잘 한다. 가윤이가 준 펜을 꺼냈다. 뽀로로가 달린 볼펜이었다.
“이걸로 서명하시죠. 가윤이한테 그러셨다면서요. 뽀로로 졸업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노는 게 제일 좋으면 어떻게 하냐고. 초등’학생’도 학생이니까 공부를 해야 한다고요.”
가윤이는 내 친구다. 가윤이의 엄마이자 현재 내 의뢰인인 이진영 씨가 세입자 돈 떼먹으려고 가출했을 때 가윤이에게 배고프면 연락하라고 했는데, 엄마가 돌아온 후에도 시도 때도 없이 나한테 전화하고 문자를 보냈다. 아직 초등학생이라 문자와 통화만 되는 저렴한 폰인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스마트폰이었으면 세상에 있는 모든 메신저와 SNS로 연락했을 애였다. 어린이만 아니었으면 집착이고 스토킹이었다. 나도 가윤이한테 고양이 사진과 영상을 100개쯤 보내버렸다. 한 시간쯤 조용하더니 눈치가 없는 건지 계속 연락하길래 강아지짤, 펭귄짤, 햄스터짤, 판다짤에 돌고래짤까지 구해서 보냈는데도 내 폰을 가만 두질 않았다.
‘언니 뭐 해?’, ’나 지금 책 읽어’, ‘아까 저녁 먹었어’, ‘내일 학교에서 짝꿍 바꿀 거야’, ‘내일 준비물이 색종이야’, ‘오늘 발표 세 번 했어’, ’나는 빨강이 좋은데 언니는 파랑 좋아해?’, ’나는 수박을 제일 좋아하는데 언니는 사과 좋아해?’, ’언니는 무슨 동물 제일 좋아해? 나는 강아지 키우고 싶은데’,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 나 세 명인데 언니는 왜 네 명이야?’, ‘언니, 내가 수수께끼 낼게. 맞춰 봐. 세상에서 제일 빠른 닭은? 후다닥! 재밌지!’, ‘일기 쓸 거 없어’, ’학원 가기 싫어. 가도 능률이 안 올라’…어린이한테 “으아아 제발 그만 좀 해! 닥쳐!” 라고 할 수는 없어서 날을 잡아 가윤이 엄마인 척 학원에 연락해주고 가윤이와 학원 대신 피자를 먹으러 갔다. 하루에 세 번 까지만 연락하라고 단단히 말해두고 사인 받아야지. 잠시 떨어져서 서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더 좋고.
“언니, 그거 알아? 파인애플 피자는 그리스 사람이 캐나다 이민 가서 처음 만들었대. 책에서 읽었어. 나는 파인애플은 좋아하고, 파인애플 피자는 맛없어. 과일은 차가워야 맛있는데.”
“나는 고구마 피자가 싫어.”
“왜? 고구마 맛있는데.”
“감자는 좋은데 고구마는 싫어.”
내가 무슨 말 하려고 하는지 눈치 챘나? 가윤이는 말없이 피자만 열심히 디핑 소스에 찍어 먹었다. 삐쳤나? 나보다 더 수다스럽던 애가 말이 없으니까 어색했다. 뭐라도 말해야 하는데 할 말이 없어서 부모님들이 ‘평소에 같이 보낸 시간이 없어서 데면데면하고 자식에 대해 아는 건 없는데 친구 같은 부모는 되고 싶고 꼰대로 보이긴 싫을 때’ 하는 질문을 했다.
“학교에 좋아하는 친구 있어?”
“친구 없어. 소영이가 친구 안 해 줘.”
예상치 못했던 답이 나와 버렸다. 좋아하는 연예인 있는지부터 물어볼 걸.
“왜?”
“나는 왼쪽으로 가는데, 소영이는 오른쪽으로 가.”
가윤이네 학교 교문 왼쪽은 아파트, 오른 쪽은 주상 복합이었다. 어느 쪽이나 집값은 월급 모아서는 현관도 못 살 정도로 똘똘하긴 했지만 아파트가 ‘인서울 대학’이라면 주상 복합은 서울대 였다. 하버드 대학 정도는 되는 강남 아파트에 비하면 둘 다 겸손한 가격이긴 했지만. 주상복합 학부모들이 아파트 애들이랑 놀지 말라고 하진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에 사는 애들끼리 같이 등하교 하다가 친해지고 학원도 같이 다니고 엄마들끼리도 조리원 동기이자 영어 유치원 학부모 때부터 친했고 그런 거다. 돈 많으면 천박하기라도 해야 씹는 맛이 있을 텐데 너무 자연스럽게 고상해서 흠 잡을 게 없었다.
“나는 소영이랑 팔짱 끼고 오른쪽으로 갔는데, 소영이는 왼쪽으로 안 간대. 다시 옛날 동네로 이사가구 싶어. 거기선 학원도 하루에 하나씩 다섯 개 다녔는데, 여기선 학원 일곱 개 다니면서 학습지도 해야 되어서 힘들어. 엄마도 맨날 화만 내. 공부 못한다구.”
“공부 못하면 어때서.”
“엄마가, 공부 못하면 거지 된대.”
“아냐. 공부 못하면 나처럼 된다? 나 거지 아니잖아.”
“탐정은 공부 못해야 할 수 있는 거야?”
“공부 잘 해도 할 수 있고, 못해도 할 수 있어. 공부할 때 쓰는 머리랑 탐정할 때 쓰는 머리는 달라.”
쉬지 않고 종알대는 눈빛이 너무 간절했다. 그래서 덜컥 “나랑 친구하자. 언니라고 하지 말고 ‘일도’ 라고 해.”라고 했는데, 그 날 바로 후회했다. 전보다 더 자주 전화하고, 불러내고, 울고, 떼 쓴다. 신생아 키우는 것도 아닌데 정말 쉴 틈이 없다. ‘소영이가 오늘도 나랑 안 놀아 줘’, ’우리 선생님은 나 안 좋아 해. 다른 애들만 좋아해. 나는 선생님이 좋은데.’이런 얘기를 해 댄다. 엄마가 간식 사 먹으라고 준 돈을 아껴서 나한테 캐릭터 그려진 볼펜 같은 자잘한 선물을 사 주면서 눈치를 본다. 처음엔 ‘지도 귀여우면서 귀여운 거 엄청 좋아하네’ 했지만 나중엔 선물로라도 환심을 사려 하나 싶어서 안쓰러웠다. 내가 아무리 잘 해줘도 애정 결핍이 채워지질 않나 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니다. 애정을 아주 많이 주면 채워지긴 할 거다. 그런데 그게, 물탱크를 소주잔으로 채우는 느낌이다. 내가 예수님이나 부처님도 아니고,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애정의 총량이 있는데 내가 줄 수 있는 이상을 요구하면서도 불만족하니까 내 안의 인류애를 다 끌어 써도 모자라서 인성까지 고갈되는 느낌이다. 가윤이가 지긋지긋하다.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지 서운하다. 날 보는 눈빛이 부담스럽다. 어린애한테 이러는 내가 어른스럽지 못한 것 같아서 싫다. 그렇다고 절교하고 연락을 씹을 수도 없고.
오늘 오전에 온 전화는 달랐다. 엉엉 울면서 경시대회 중간에 나와 버렸다는 말만 반복했다. 어쩔 줄 몰라 하길래 데리러 갈 테니까 일단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하나도 못 풀겠어…다 몰라. 아는 문제가 없어.”
우는 걸 보니까 애는 애였다.
“와, 멋지다! 판단력, 결단력 다 있어! 야, 괜찮아. 나는 너보다 열한 살 많을 때 진짜 중요한 시험 때려 치웠어. 수능이라고, 대학 가는 시험인데, 공부하기 싫어서 시험 접수만 하고 시험장엔 들어가지도 않고 수험표만 받아 가지고 쇼핑하고 외식하면서 할인 엄청 받았는데…오늘 생일이지? 선물 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뭐 갖고 싶어?”
“강아지.”
“그건 너네 엄마한테 허락 받아야 돼.”
“그럼 책 한 권 사도 돼?”
울먹이면서도 실속 있게 챙길 건 잘 챙겼다. 서점에 데려 갔더니 책보다 스티커를 더 기웃거렸다.
“책 말고 스티커 사도 돼. 너 좋아하는 거 사.”
“책이 더 필요한데…”
“그럼 확 그냥 책 사 준다? 진짜 책 살 거야?”
말 없이 스티커를 만지작 거렸다.
“스티커는 엄마 말 잘 듣고 책 한 권씩 읽을 때마다 하나씩 받는 건데…”
“생일이니까 네 맘대로 사도 돼. 엄마가 스티커 안 붙여 주면 네가 셀프 칭찬하면서 막 붙여 버려.”
“책 읽으면 엄마가 좋아 하는데…”
가윤이는 혼잣말 하면서 스티커 앞을 떠나질 못했다. 제발 스티커! 스티커를 사라고 좀! 책보다 스티커가 더 싸게 먹힌단 말이다!
“나 진짜 스티커 사도 돼? 책 안 사도 화 안 낼 거지?”
가윤이가 스티커에서 눈과 손을 못 떼면서 생일 케이크를 같이 먹고 싶다고 했다. 초코 케이크를 좋아한다던 가윤이가 디저트 카페에서 고른 건 민트 초코 케이크였다.
“민트 초코는 초코가 아니야!”
“난 민트 좋아하는데, 왜 싫어 해?”
“왜 치약을 먹어! 왜 멀쩡한 초코렛에 굳이 민트를 넣냐고! 대체 이런 이상한 음식은 누가 만든 거야?”
“책에서 봤는데, 영국에서 공주님 결혼식 때 먹으려고 만들었대.”
그게 궁금해서 물어본 건 아니었는데.
“이제 이거 다 먹으면 집에 가야지?”
“집에 가면 엄마한테 혼나.”
“내가 같이 가 줄게.”
“너 가고 나면 혼나.”
“아냐. 엄마 지금 걱정하고 계셔. 엄마한테 전화해 봐.”
자기가 전화하면 엄마가 화낼 거라고 자꾸 몸을 빼길래 카페 전화를 빌렸다. 혼날 생각을 하니까 무서운지 엄마가 받자마자 가윤이가 울기 시작했다. 가윤이 엄마는 스피커폰 너머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이딴 보이스피싱에 속을 줄 알아? 새끼야! 이딴 식으로 쉽게 돈 벌지 마라. 남의 돈을 날로 먹으려고 들어? 세상이 만만해? 이런 새끼는 깜빵도 아까워. 묶어 놓고 패 죽여야 돼.”
가윤이가 겁에 질려서 더 크게 울었다. 급하게 가윤이를 데리고 카페 밖으로 나왔다.
“니네 엄마가 오해를 하신 거야. 너한테 화낸 거 아냐. 사는 게 힘들어서, 욕해도 되는 나쁜 사람한테 스트레스 푼 거야.”
가윤이는 절대 집에 안 가겠다고 버텼다. 내가 먼저 통화해서 분위기 좀 좋게 만들어 놓았어야 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할까.
“가윤아, 오늘 생일이잖아. 친구들이랑 생일 파티 해야지.”
“친구 초대 안 했어. 엄마가 집에 데려오랬는데, 우리 집에 친구 오는 거 싫어. 오른쪽 사는 애들은 우리 집보다 새 집이고 하얗고 큰데 우리 집은 안 그래. 엄마가 생일 파티할 돈으로 동화책 전집 사 준댔어.”
어린이들은 빨간 벽돌집을 보고 창가엔 화분, 지붕엔 비둘기가 있다고 하지만 어른들은 ‘야 저거 매입해서 허물고 꼬마빌딩 지으면 10억은 나오겠는데’ 라고 한다는 <어린 왕자>는 틀렸다. 애들도 알 건 다 안다.
“그럼 엄마 말고 아빠한테 얘기해 볼까? 아빠랑은 친하지?”
“아빠랑 놀아주는 거 재미없어. 맨날 이거 봐라 저거 봐라 만 하고, 주말마다 박물관 미술관 갔다 와서 기억 나는 거 말해보라고 하구 뭐 배웠냐고만 해. 놀러 가서 공부만 시켜.”
“그래도 엄마아빠가 걱정하실 텐데.”
“절대 걱정 안 해.”
“그럼 너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어디로 가려고? 대책도 없이 시험 보다 말고 나온 거야? 못 풀겠으면 그냥 다 찍고 나오면 되지.”
“시험 못 보면 혼나. 나도 시험 잘 봐서 선생님한테 자랑하구 엄마한테 칭찬 받구 싶은데. 나는 상 못 받았는데 친구가 상 받으면 엄마가 친구 학원 어디 다니냐고, 어디 사냐고, 엄마아빠 뭐 하시냐고 자꾸 물어 봐서 싫어. 다른 애들은 다 옛날부터 학원 다녀서 잘 푸는데 나만 못 풀어서 싫어. 나두 ‘영재발굴단’처럼 잘 하구 싶은데.”
“그렇다고 시험 안 봐도 혼날 거 아냐.”
가윤이는 뭔가 고심하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막막하긴 하겠지. 멘탈이 에멘탈 치즈처럼 구멍이 뿅뿅 났을 거다. 그러다 한다는 소리가 “탐정은 뭐든지 할 수 있지?” 였다.
“탐정이 슈퍼 히어로는 아닌데, 의뢰 받으면 하긴 하지.”
“의뢰가 뭔데?”
“돈 내고 계약서 쓰는 거.”
“나 지금은 돈이 이거 밖에 없는데, 나중에 집에 가서 엄마한테 달라고 할게. 아빠가 그랬는데, 엄마 돈 많댔어.”
금화와 은화, 아니 올해 나온 반짝이는 새 동전을 착수금으로 받고, 절대 엄마한테 혼나지 않게 해 주겠다는 계약서를 썼다.
“일단 우리 집, 아니 우리 엄마아빠 집에 가자. 니네 엄마아빠도 네가 잠시 없어져야 딸의 소중함을 알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