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이야기 : 바코드소녀

변신 이야기 : 바코드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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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삐삑-

‘사천 오백원입니다. 카드 받았습니다.’

소영은 담배 바코드를 찍고 가격을 말했다. 기계적인 친절이 묻어 있었다. 물론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곧 건너편의 중년 남성은 만원 한 장을 계산대에 던졌다. 떨어진 지폐를 아주 짧게나마 바라봤다. 흔한 일이다. 그래 흔한 일이잖아. 소영은 속으로 되뇌었다. 비릿한 잔상을 지우며 지폐를 계산기에 넣었다.

‘저기 따뜻한 캔커피도 하나 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영은 고개를 들었다. 중년 남성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계산대 앞에 꼿꼿이 서 있었다. 곧 계산대를 봤지만 역시나 캔커피는 자리에 없었다.

‘손님. 온음료는 우측에 보시면 있습니다. 원하시는 걸 가지고 오시면 되요.’

소영이 설명에도 불구하고 남성은 미동도 없었다. 다만 소영에게 고정된 남성의 시선이 말을 걸었다. 그니까 니가 가져 달라고.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이미 눈이 마주친 후였다. 긴 한숨을 억지로 참으며 소영은 계산대 자판을 위로 젖혔다. 더 할 말이 있는 듯한 시선을 애써 피하며 우측 진열장으로 향했다. 소영은 4~5 종류의 캔커피를 쳐다봤다. 커피를 즐기지 않는 탓도 있지만, 어떤 커피가 입에 맞을지 알도리가 없었다. 저런 흉물스러운 사람의 입맛은 더 알도리가 없어 보였다. 단순히 진상을 피우려는건가? 의심을 애써 억누르며 정성껏 커피를 훑어봤다. 1+1, 2+1이라 적힌 이벤트 상품들과 어차피 같은 공산품임에도 가격으로 고급스러움을 내뿜는, 그래서 할인은 하지 않는 제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제품은 행사 제품보다 500원 더 비쌌다. 500원 만큼 고급스러운건 얼마나 고급스러운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소영은 500원이 더 비싼 제품을 꺼내 계산대로 갔다. 자주 만지지 않았지만, 500원 만큼의 온기가 더 전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계산대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불편한 시선은 계속되었다. 애써 침착하게 바코드를 찍었다.

‘6000원… ’

능글맞은 시선을 느끼며 소영은 말끝을 흐렸다. 반말처럼 들렸으면 싶었다. 한편으로 정말 반말로 들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뒤따랐다. 잔돈을 건냈다. 계산대 위에 던지고 싶은 심정을 참았다. 냉큼 지폐를 받아 든 남성은 골몰히 계산대 위의 캔커피를 보고 있었다. 담배갑은 얼른 주머니에 넣은 것과는 달랐다. 작은 긴장이 감돌았다. 소영은 생각했다. 일부로 비싼 걸 고른걸 알면 어쩌지? 행사 상품이 아닌 걸 알면 어쩌지? 아니 실상은 어떤 제품이든 상관없이 컴플레인을 걸겠지? 찰나의 시간 동안 많은 생각들이 계산대 안과 밖으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혼란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젊은 아가씨가 커피 맛을 좀 아네!? 캔커피는 역시 남양이지.’

남성은 빙긋 웃으며 캔커피를 집어 들었다. 웃음이 비렸다. 남성은 소영의 조마조마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쾌한 흥얼거림을 남기며 편의점을 나섰다. 불쾌한 잔여물을 휘저으며 소영은 잠시 숨을 골랐다. 일부러 500원이나 비싼 음료를 골랐는데. 오히려 입맛에 맞았다는 생각을 하니 패배감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싸가지는 없어도 취향이 확실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차례 거사를 치르고 나자, 자신이 편의점 알바를 시작할 때 그만 두던 선배(?) 알바생이 비장하게 남긴 말이 문뜩 떠올랐다.

‘세상은 넓고 편의점은 수없이 많으며 진상은 각양각색이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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