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나이트셰이드(‘밤 그늘’이라는 뜻)의 작은 동굴. 저녁 어스름이 깔린 가운데에도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다. 크리스마스 전야이다. 요정 에메랄드는 초조하게 동굴 안을 서성이다가, 동굴 안에 있는 것들을 훑어보다가, 아리송하다는 듯 생각에 잠기다가 손에 쥐고 있는 편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지만 다시 읽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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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요정 여왕님께서 보내신 편지!
난 대체 이게 무슨 뜻인지를 모르겠어.
내가 아는 이 소녀들을 도와주고 싶어.
내 마음은 선하고
소녀들은 도움을 받아 마땅하니까.
나무꾼의 딸들 말야.
그래서 그 아이들을 도와주는 게
적절하다고,
참 괜찮겠다고 생각했어.
각자에게 결혼할 왕자님을 한 사람씩 보내주는 거야.
사실 그런 소원은 늘 이루어졌지.
그 아이들도 아주 기뻐할 거고
나 역시도 기쁘겠지.
하지만 이제 요정 여왕님 티타니아께서 편지에 쓰시길
왕자님을 둘 이상은 구할 수가 없다네.
이번 크리스마스엔
오로지 둘뿐이래.
현대의 사회적 진화가 어쩌고
유럽의 혁명이 어쩌고
이러쿵저러쿵
헛갈리는 말투성이야.
그건 내 이해력이 형편없어서야.
내 마음이야 놀랄 만큼 착하지만
좌우지간 내 계획은 쓸모없게 됐어.
그건 이해할 수 있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왜 여왕님께서 날 이 무시무시한 동굴로 보냈는가야.
사방에 두꺼비며 쥐 떼며 거미들이며 그런 것들뿐인데!
그리고 왜 내가 늙은 마녀 나이트셰이드를 만나야만 하는지?
마녀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사악한 마녀를.
차라리 안 만나고 싶어.
그래도 내가 여기에서 도망가 명을 거역하면
난 알아,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하게 되리란 걸!
어쩌면 좋지?
–
(마녀 나이트셰이드가 들어온다. 그녀는 동굴 한편에서 그림자를 발견하곤 에메랄드에게 나오라고 한다. 깜짝 놀랐다는 듯 귀에 거슬리는 웃음을 터트리더니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그녀를 안으며 인사하려 한다. 하지만 에메랄드는 움찔 뒤로 물러선다. 그 둘은 서로 마주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