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처분

  • 장르: SF
  • 평점×5 | 분량: 100매
  • 소개: 외계행성에서 세균 시료를 구해오면 사형을 면제시켜 주겠다는 거래를 받은 사형수들. 돌아오는 우주선에서 세균 보관장치가 고장나버리자, 사형수들은 번갈아 세균에 감염되며 세균을 옮기기... 더보기
작가

조완

살처분

미리보기

그날 밤, 우주선 내부 경고등이 깜빡이며 안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시료 보관장치 과열 주의. 시료 보관장치 과열 주의. 시료 보관장치 과열 주의.”

다들 갑작스런 방송에 잠에서 깨어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당으로 모였다. 아로슈만이 방송을 듣고 세균보관실로 달려갔다. 세균보관실 안에는 냉장고 처럼 생긴 기계장치가 하나 있었는데, 아로슈는 그 앞에 서서 뭔가를 확인한 후 식당으로 달려갔다.

모두가 모인 앞에서 아로슈가 말했다. “세균 시료 보관장치에서 오류 메시지가 뜨고 있어요. 뭐가 문제인지 확인하려면 관리실에 들어가야 되는데, 잠겨있는 문을 부수려면 도움이 필요해요.”

블로흐가 말했다. “괜히 관리실 문을 부쉈다가 우리한테 책임을 물면 어떡하려고?”

“세균이 멀쩡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사형입니다. 뭐가 문제인지 확인해 봐야돼요.”

다들 머뭇거리고 있을때 후루사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보다 세균이 귀하지, 어떻게 구한건데.”

굽타도 자리에서 일어나 아로슈를 따라가겠다는 뜻을 보였고, 뒤이어 다른 사람들도 다같이 아로슈를 따라 관리실로 향했다.

“보통 우주선 안에 있는 문은 비상시를 대비해서, 두세명이 힘을 주면 부수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로슈가 말했다.

체격이 있는 와심과 굽타가 타이밍에 맞춰 몇 번 몸을 부딪히니 관리실 문의 잠금장치가 부숴졌다. 아로슈는 관리실 안에 있는 제어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컴퓨터에 뭔가를 입력해서 확인한 뒤 아로슈가 말했다.

“우주선 외벽에 다른 물체가 부딪혔을 때 비상 전력이 오작동했어요. 시료 보관장치 회로에 과전력이 흘렀네요.”

아로슈가 제어컴퓨터를 능숙하게 조작하더니 계속 나오던 경고음과 안내방송이 멈췄다.

“조작이 꽤 능숙하시네요.” 굽타가 말했다.

“예전엔 대학 교수였으니까요.” 아로슈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그는 제어컴퓨터 화면을 몇 번 더 넘겼다. 화면 군데 군데 경고창이 겹겹이 떠올랐다. 빨간 글씨가 화면을 잠식했다. 잠깐의 침묵 끝에 아로슈가 고개를 들었다.

“시료 보관장치 회로가 과전력으로 타버렸습니다. 지금 상태로는 세 시간 뒤면 세균 시료가 전부 죽어버려요.”

그 말에 모두 숨을 죽였다. 누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조차 크게 들렸다. 세균 시료가 죽는다는 건 사형수들도 죽는다는 것이었다.

블로흐가 마른 침을 삼켰다. “회로를 고칠 방법은 없습니까?”

아로슈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없습니다. 우주선에 아무런 부품도 없어요.”

“우리가 그 고생을 해서 얻은 건데 시료가 죽는다고?” 와심이 한 걸음 앞으로 튀어나오며 아로슈를 밀쳤다. 와심은 제어컴퓨터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보이는 것은 온통 빨간 글씨의 경고문 뿐이었다.

“망할!” 와심이 제어컴퓨터를 내려쳤다. 한번 더 내려치려는 순간 후루사와가 재빠르게 튀어나와 와심의 손목을 잡고 비틀어 꺾었다. 관절이 꺾이는 소리가 또렷했다. 와심이 이를 악물며 몸을 비틀었지만, 후루사와의 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심한 자식.” 후루사와가 이를 갈았다.

“지금 할 게 화풀이냐.” 와심의 팔이 더 꺾였다. 와심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사형판결을 한번 더 받은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로슈는 모든 소동을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몇 번이나 본 장면처럼. 그는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계산하는 눈빛이 스쳤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입을 열었다.

“딱 한 명은… 살 방법이 있긴 합니다.”

모두가 동시에 아로슈를 쳐다봤다. 아로슈는 화면을 돌려 모두가 보게 했다. 빨간 경고창들 사이로 작은 항목 하나가 떠 있었다. 그는 그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사형수들이 구해온 세균 시료의 특성이 적혀있었다.

PXI-671. 상온의 공기에 노출시 세시간 뒤 사멸. 산소와 수분이 없는 저온환경에서 동면상태에 들어감.

“주목해야할 것은 감염됐을 때의 특징입니다. 감염될 경우 3시간 이내 보라색 반점 및 발진과 부종을 동반하고 48시간에서 72시간 뒤 사망이라고 하죠.”

“알고있어요 그런거. 세균을 찾을 때 치탕가가 그렇게 죽어갔잖아요.” 필립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감염되면 48시간 뒤에 죽는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아로슈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감염되면 세균을 48시간 더 살려둘 수 있는겁니다.”

“그건 마치 사람을…” 굽타가 말했다. “도구로 쓰는 것 같군요.”

아로슈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장난 시료 보관함에서는 세 시간. 하지만 사람 몸에서는 최대 삼일.” 후루사와가 비웃듯 코로 숨을 뿜었다.

“그래서?” 후루사와의 목소리는 짧고 거칠었다.

아로슈는 말을 고르듯 입술을 만지작대다가 입을 열었다.

“우주선이 도착할때 까지 14일 남았죠. 지금 여기있는 일곱명이, 이틀씩 연이어서 감염된다면 세균을 살아있는 채로 운반할 수 있어요.”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