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 장르: 판타지, 호러
  • 평점×5 | 분량: 51매
  • 소개: 고작 네가 믿지 못한다는 하찮은 이유로. 아…… 믿음이 적은 자여. 더보기

큐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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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아시다시피 나는 로렌스 새들러입니다. 다들 로리라고 부르죠. 당신은요?”

로리 새들러의 음성은 오랜 시간 다듬어진 테너 바리톤의 음색을 듣는 듯했다. 울림이 좋은 목소리였다. 자정으로 향하는 밤, 친밀한 이와의 농익은 대화나 낮게 틀어 놓은 달콤한 음악을 닮았다. 물결처럼 은은하게 의식을 차지해 나가는 그런 목소리.

당연히 젠은 고객인 그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굳이 그의 음성으로 재확인할 필요는 없었으나 마다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목소리의 매력에 사로잡힌 탓은 아니다. 로리가 젠을 암체어에 꼼짝없이 붙들어 놓았기에 듣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끈이나 테이프 따위 없이도 로리는 젠을 그렇게 고정해 둘 수 있었다.

“의미 없는 질문이네.”

젠은 턱을 들며 쏘아붙였다. 식은땀에 젖은 머리카락은 볼과 목덜미에 질서 없이 엉겨 붙었으며, 오한으로 몸이 떨리고 이가 맞부딪쳤다.

그런 젠을 로리는 3미터 떨어진 암체어에 마주 앉아 보고 있었다. 젠이 앉은 것과 한 쌍일 고풍스러운 오크나무 의자였다. 19세기 빈티지 제품일지도 모른다. 다리의 접합부는 수차례 보수를 거친 흔적이 있었음에도 바로 어제 광택제를 새로 칠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윤기가 흘렀고, 팔걸이에 새겨진 음각 장식엔 먼지 한 톨 없었다. 멋모르는 방문객이 보아도 이 암체어 세트는 주인이 아끼는 물건이었다. 총애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거기에 앉은 젠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을 게 분명했다.

런던의 동남쪽, 라임 하우스 변두리에 위치한 이 아파트는 무례하고 외설적인 그라피티를 자랑하는 외벽으로 유명했다. 거주자들은 몸이나 마음이 병든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아름다움과 질서, 규범 같은 것에 관심이 적었다. 문패나 호수가 없는 채 방치된 가구도 많아서, 젠은 소포를 배달할 때마다 오배송이 없도록 특별히 신중해야 했다.

즉 군더더기라고 할 만한 게 없는 정돈된 이 집 안의 분위기 그 자체로 이상 징후였다. 현재 정신이 혼미한 젠에게도 그 불쾌한 결벽은 잘 보였다.

“이름 따위 벌써 캐냈을 거잖아.”

젠은 확신했다. 불가해한 힘으로 타인의 몸을 통제하는 기분 나쁜 존재에게 그런 건 일도 아닐 것 같았다.

“아뇨.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입니다. 정말이에요.”

로리는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다리를 꼬았다. 회색 후드티에 한쪽 무릎이 찢어진 청바지 차림인데도 고전적인 의자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말쑥한 청년의 얼굴을 한 이 괴물의 나이는 어느 정도일까. 겉으로는 젠과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긴 세월에 걸쳐 연마되었을 음성과 시선의 힘이 다소 어리숙한 인상의 외양쯤은 간단히 압도해 버렸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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