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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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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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랜 구름보다 낮게 나는 새들이 더 많았고
잘 포장된 도로 위엔 달리는 차들보다 죽은 새가 많았다.

제주도의 서쪽 구석의 여름이 그랬다.
바람은 늘 강했고 모든 게 바쁘게 움직였다.

해만 밤이 올 때마다 핏빛으로 물들이며
천천히 떨어졌고 그렇게 늦게 도착한 밤은 더 진했다.

그런데, 그날은 좀 달랐다.
해는 종일 높았고 바람은 느렸으며
차들은 더 빨랐는데 새는 멈춰있었다.

작은 새는 눈을 감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볼록 나온 하얀 배를 하늘 향해 까놓고서
길복판에 사람처럼 곤히 누워있었다.

이따금씩 길가에 높이 자란 이름 모를 수풀이
바람에 파도처럼 넘실대면 하얀 깃털도 따라서
흔들리는 게 다였다.

목격자는 없었다.
슬퍼하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 누가 봐도
작은 새의 흔한 로드킬, 흔한 죽음이었다.

두 경로의 교차점에 속도와 시간이 겹친,
가해자도 잘잘못도 없는 우연 둘의 충돌.
그뿐이다. 우주에 매 순간 일어나는 충돌.

그런데 좀 이상한 게
그 새는 좀 달랐다.
그 새의 부리는 약간 열려 있었는데

노래하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작은 새는 다른 죽은 새들처럼
앞서 가던 무리의 뒤꽁무니만 쫓아 날다
순식간에 나타난 파란색 제주도 하늘과 똑같은 색깔의 트럭이
도저히 낯설고 믿을 수가 없는 속도로 달려와
비명 한 번 못 지르고
덮쳐오는 죽음의 속도를 한 발 늦게

탁,

같은 게 아니라, 그런 뻔한 죽음이 아니라!

노래를!

그것도 듣기 좋은 화음을

무리지어 다니면서 한 소리만 듣고 또 따라서 같은 소릴 지저귀길 반복하며 사느니보다, 차라리 새는 기꺼이 떨어져 가장 뜨거운 바닥에 시원하게 등과 날개를 지지고 지나치는 아무 무리들의 낯선 노래나

혼자서 우는 소리,

소원 비는 간절한 목소리

그런 소릴 하나하나 눈을 감고 귀 기울여 들어주고 있었다면,

반음 혹은 한두 음이 높거나 낮은 소리,
가장 어울릴 소리를

하나보다 좋은 두 소리를 충돌 없이 나란히
노래하는 게 좋아서,

좋아서!

노래하고 있었을 뿐이라면

온갖 사연 후에 탁 하고 죽어버린 수천 마리 새들보다 혼자 노래하는 새의 낯선 목소리를 더욱 더 슬퍼하지 않았을까? 우리 인간이라는 것들은?

언젠가, 마음이 따스한 남자가

한적한 도로를 불편한 다리를 절뚝이며 걷다가 멀리 누워 있는 죽어가는 새를 보고는 차들 눈치를 보면서 좋은 발을 서둘러서 길을 건너 고개 숙여 새를 들여다보다가 새를 위해 작은 기도를 마음속으로 빌 때에 믿기 힘들 정도로 황홀한 새의 노래 소리를 들었다.

정말 새는 노래를 했었다!

그는 넋이 나가 눈물을 흘리면서 새의 곁을 지켰고 멀지 않은 언덕길을 갓 넘어온 파란색 트럭은 도로에 누워있는 작은 새와 남자를 보고도 그런 작은 것들을 위해서 속도를 줄이는 법은 알지 못 해서 날카롭게 경적을 울렸고 마음 급해진 남자가 서둘러 새부터 아무렇게나 움켜잡고 수풀 쪽으로 던졌는데,

직후에,

새는 영영 모습을 감췄다.

날아간 것일까?
목격자도
지나가는 새 한 마리 없었고 그래서
노래하는 새도 없고
죽은 새도 없어지고 말았다.

*

이른 밤, 하늘에 높이 뜬 보름달을 본 이들은 많았지만 더 아래, 아직 깔린 얇고 붉은 지평선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떨어지는 작고 하얀 별을 목격한 사람은 고장 난 차에 갇혀 버린 한 남자의 가족뿐이었다.

가족은 지붕에 가려진 보름달을 못 본 대신 떨어지는 별을 보고 소원을 빌었다. 잠시 후, 꼼짝 않던 전기차의 문이 다시 기적같이 열렸고 가족은 이루어진 소원에 기뻐하며 차에서 내려 마음껏 밝은 밤 하늘의 보름달을 보았다.

소원을 빌며 그들은, 분명하게 자신들이 비는 소원보다 반음 낮은 낯선 화음 소리를 한동안 들었다. 무슨 말을 해도 메아리처럼 그런 아름다운 소리가 가족의 머리를 감싸주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은 모두 일이있었기에 다음 기약하며 서둘러 공항으로 갔고 차를 반납하고는 제주도를 떠났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가족들은 한동안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하루들만 꼬박꼬박 살았고 하늘에서 노래하던 낯선 새는 언젠가부터, 없던 일이 되었다.

모든 낯선 것들도
그 속도에 익숙해져 버리면
없는 것과 별 다를 게 없는 일이 되곤 했다.

*

다음에 찾아간 숨겨진 맛집도 그랬다.
한때 성행했지만,
그 빠른 속도가 익숙해져 폐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제주도에 흔히 있는 일이라며
곧바로 다음 맛집으로 길을 서두르며 남자는,
난생 처음 가보는 길을 가게 되었다.

지도상 돌아가는 네비를 믿지 않고 가로질러 간 것이다. 얼마 못 가 유턴도 안 되는 좁은 비포장 도로가 나왔고 도로는 수풀 같은 것으로 깊숙이 파묻혀 있었으며 아내와 딸아이는 차가 덜컹일 때마다 연신 짜증을 냈다.

드디어 만나게 된 아스팔트 길 초입에 죽은 새가 있었고 남자는 비포장 도로를 벗어나자 일단 새를 피해 가려고 핸들을 부드럽게 돌려 중앙선을 넘었다. 영문을 알 리 없이 폰만 보던 아내가 남자를 째려봤고, 남자는 억울한 듯 벌써 지나쳐버린 죽은 새를 돌아보며 손으로 가리킬 때,

딸아이가 가장 먼저 비명을 질렀고 곧장 아내도 그랬다. 남자는 비명을 지르는 둘을 먼저 보았고 그 바람에 몸집이 아주 작고 동그랗게 등이 굽은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를 못 봤다.

할머니는 자신을 덮쳐오는 경적 소리를 듣고선 겨우 고개를 들었고 낯선 차를 보고선 느릿느릿 가던 길도 멈춰서곤 꼼짝도 하지 못 하고 창 속에 있는 남자만 기도하듯 보았다. 남자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당황한 남자의 불편한 다리는 경련을 일으키며 브레이크 대신 페달을 꾹 밟았고, 일순간 차는 20미터나 더 갔고 작은 쾅 소리는 음악에 묻혀 들리진 않았지만 악셀을 밟은 불편한 다리 끝에선 느낄 수가 있었다.

정적은 곧바로 깨졌다. 카시트에 팔다리가 안전하게 묶인 채 곤히 자던 두 살난 아들이 울음을 터트렸고 남자는 도망치듯 차에서 내렸다.

아무도 없었다. 이런 곳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20미터 뒤에 도로변에 2미터가 넘게 자란 누리끼리한 수풀이 흔들대고 있었고, 그 속에서 하얀 빛이 흐느적거리는 게 보였다.

바람 한 점 없는데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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