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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은 무언가 이상했다. 교교히 빛나던 핏빛 보름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몸을 감싸 도는 공기 자체가 달랐다. 차갑고 무거웠다. 자정이 넘었다는 걸 감안해도 8월의 기온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것이 앞으로 일어나게 될 불길한 일의 전조였음을, 무의식 속의 예민한 감각이 경고를 보내는 것임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저 며칠째 이어진 접대 탓에 몸살이 오려나 보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집에 돌아오니 새벽 1시였다. 아내는 자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씻을 때는 몰랐는데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기묘한 느낌이 되살아났다. 공기 자체가 하나의 생물이고 거기서 뻗어 나온 거대하고 축축한 혀가 온몸을 핥는 것 같은 느낌.
억지로 눈을 감았다. 내려앉은 눈꺼풀 안쪽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다가왔다. 괜찮아. 신경이 날카로워서 그런 거야……. 마음속으로 주문을 걸듯 되뇌며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다시 눈을 뜬 것은 휴대전화 벨 소리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꿈이라 생각했다. 꿈속에서 나는 어둠을 헤매고 있었고 그 안으로 익숙한 음악이 들려왔던 것이다. 이것이 현실의 일이고 누군가가 끈질기게 전화를 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새벽 2시 30분이라는 시간을 확인하고도 한참 후였다.
새벽에 대체 누가…….
무시해 버릴 요량으로 눈을 감았지만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상대가 누구이건 급한 일이 아니라면 새벽에 전화를 할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며칠째 연락이 없던 미영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도저히 그냥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전화기를 들고 거실로 나갔다. 베란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온 붉은 달빛이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여보세요?”
끈덕지게 울어 대던 벨 소리와 달리 상대는 말이 없었다.
“미영이?”
잠들어 있는 아내의 기색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형석……이니?”
미영이가 아니었다. 쉰 목소리를 가진 늙은 여자였다.
“네, 맞습니다만.”
목소리의 주인을 떠올리려고 기억을 더듬었지만 물에 젖은 사인펜 글씨처럼 희미할 뿐이었다. 분명히 아는 사람인데, 그 이름이 목구멍 어딘가에 걸려 튀어나오지 않았다.
“누구시죠?”
여자를 향해 물었다. 불길한 침묵이 이어진다 싶더니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순자가…… 죽었다…….”
“네?”
고막을 거쳐 뇌로 전달되는 보통의 말과 달리 그 짧은 문장은 심장을 직접 움켜쥐었다. 숨을 쉴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감각만은 생생했다. 아내의 얕은 숨소리와 냉장고의 모터 소리, 그리고 갑자기 낮아진 실내 온도 등이 아플 정도로 날카롭게 느껴졌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생각났다. 순자라는 이름이, 이십오 년 동안 한 번도 열어 보지 않았던 무의식 밑바닥의 우물 문을 우악스럽게 열어젖힌 것이다.
축축하고 미끈미끈한 기억이 꿈틀거리며 올라왔다.
“어, 언제?”
간신히 목소리를 짜내 물었다. 순자의 어머니, 박 무당을 향해.
“올 거지? 순자는 너를 계속 기다렸어.”
등 뒤에서 공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움직인 모양이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돌아볼 수는 없었다. 말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등 뒤에 순자가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서 입을 오물거리며.
“내일…… 마을에서 보자.”
박 무당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얇은 침묵이 허공을 떠돌았다.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과 그 주위에 깔린 어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벌레가 혈관 속을 기어 다니는 느낌이었다.
순자가 죽었다.
순자가, 죽었다.
순자가…… 죽었다.
나는 그 말이 현실감을 얻어 하나의 의미로 자리 잡기까지 몇 번이나 되뇌었다. 마치 그 옛날 질리도록 그녀의 몸을 안았던 것처럼 그렇게. 그러는 사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순자의 체취……. 그녀의 몸에서는 언제나 날고기의 비릿함이 풍겼다. 나는 그 냄새가 좋아 자꾸만, 자꾸만 그녀의 품으로 고개를 디밀었다. 질척이면서도 묘하게 부드러웠던 그녀의…… 몸.
다시 정신을 차린 건 뻐꾸기시계 때문이었다. 뻐꾸기가 튀어나와 4시를 알리는 순간 깜짝 놀라 현실로 돌아왔다.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온몸을 감싸고 있었고 왠지 모르게 주변의 어둠이 조금 더 짙어진 듯했다. 나는 소파에 걸터앉아 실타래처럼 헝클어진 생각을 정리했다.
박 무당은 마을에서 보자 했다. 어느 마을이라 말하진 않았지만 분명 ‘해무’일 것이다. 이십오 년 전, 스물셋의 나이로 숨어들었던 곳. 순자를 만나고, 박 무당을 만나고, 그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도망쳐 나왔던 ‘해무 마을’.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자마자 명치 부근이 쑤셨다. 머릿속으로는 잊었다 생각했지만 몸은 지난 이십오 년 동안 ‘해무’에 대한 거부감을 차곡차곡 쌓아 온 모양이었다. 그래도 가야만 했다. 가서, 순자의 죽음을 확인해야만 했다.
내가 그렇게 마음먹고 소파에서 일어섰을 때, 바깥에 도사린 질펀한 어둠 속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듯 고양이 울음은 점점 커졌다. 그 소리가 묘하게 사람을 닮아 나는 귀를 막고 침실로 들어갔다.
고양이는 그 밤 내내 쉬지 않고 울었다.
안개가 자욱하다. 손을 휘젓자 아귀처럼 뭉텅 잘라먹어 버린다. 안개는 걸신들린 것처럼 다리를 잘라먹고 얼굴을 잘라먹고 끝내는 소리마저 잘라먹어 버린다. 비릿한 냄새가 유령처럼 안개 속을 떠돈다.
돌연,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온다. 사냥꾼의 침입을 알아챈 영민한 짐승처럼 안개가 소리 없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물러가는 안개에 맞춰 어디선가 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딸랑. 딸랑.
나는 주위를 둘러본다. 그 순간 깨닫는다. 내가 침대에 누워 있음을. 침대가 흔들리고 있음을. 그때마다 침대에 매달아 둔 방울이 울어대고 있음을. 그리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가 내 몸의 중심으로 자꾸만, 자꾸만 쏟아져 들어오고 있음을…….
“손님. 어디까지 가세요?”
잠에서 깼다. 텅 빈 마을버스 안이었다. 버스 기사가 룸미러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에는 〈해무(海霧) →〉라 적힌 낡은 이정표가 보였다.
“어디까지 가시냐고요. 여기가 회차 지점이란 말입니다.”
기사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제법 넓은 공터가 펼쳐져 있었다. 아무래도 공터에서 버스를 돌려 한참 동안 달려왔던 좁고 울퉁불퉁한 산길을 되돌아 내려가는 모양이었다. 산길의 왼편은 깎아지른 벼랑이었다.
“아, 저는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옆자리에 놓아 둔 짐을 챙겨들고 일어섰다.
“해무 마을 가시게요?”
기사의 목소리가 커졌다.
“네. 그러니 여기서 내려주시면 됩니다.”
“허허 참. 그 산골짝에 가는 사람도 다 있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기사는 문을 열어 줄 생각은 않고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오십 대 중반쯤 됐을까, 등이 구부정하고 손발이 까맸다. 숱이 적은 정수리를 파래 같은 옆머리가 덮고 있었다.
“거기까지 어떻게 가는지 알고는 계십니까? 표지판이 있다고 해서 조금만 걸으면 되겠지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못해도 한 시간, 아니 손님 같은 차림이면 두 시간도 더 걸릴지 몰라요. 게다가 여름이라…….”
“그런 거라면 잘 알고 있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기사의 수다를 막을 목적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뱉어 놓고는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고. 초행이 아니신가 보네. 보아하니까 도시에서 온 신사분 같은데 어떻게 해무 마을을 아실까. 거기는 우리도 잘 안 가. 갈 일이 있어야 가지. 그 마을 사람들도 다른 마을하고 왕래가 거의 없어요. 지들끼리 뭘 해 먹고 사는지 몰라도 그 산속에 틀어박혀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니까. 옛날부터 그랬답니다. 해무를 아신다면 그 지독한 안개도 아시겠네? 처녀 귀신 치맛자락 같은 그 안개 말입니다.”
“네, 대충.”
“안개가 어찌나 지독한지 삼백육십오 일 중에 삼백육십육 일이 안개라 해도 믿을 판이라니까요. 오죽하면 마을 이름이 해무겠습니까, 해무. 사람들 말로는 산 건너편 바다에서 올라온다고 하는데, 솔직히 저는 말입니다 마을 어르신들 말씀처럼 그게 다 원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죄송한데 제가 좀 급해서요. 문 좀 열어 주시면…….”
기사가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더니 아쉽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문을 열어 주었다. 잘 달아오른 8월 한낮의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거기 안개에 휘말리면 영영 길을 잃고 다시 돌아 나오질 못한답니다. 조심하십시오.”
나는 못 들은 척 버스에서 내렸다. 바싹 말라 독기가 올라있던 바닥이 흙먼지를 토해냈다. 뜨거운 햇살이 사정없이 내리꽂혔다. 하얀 셔츠 안으로 땀이 흘러내렸다. 구두를 뚫고 바닥의 열기가 전해졌다.
이정표는 버스 안에서 본 그대로였다. 비스듬히 기운 모습과 누군가 페인트로 휘갈겨 쓴 〈해무(海霧) →〉라는 글자까지도 이십오 년 전과 같았다. 나는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화살표가 가리키는 오솔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공터를 돌아 나온 마을버스가 등 뒤로 으르렁거리며 지나갔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산골 마을에 해무(海霧)라는 어엿한 명사가 붙은 이유는 버스 기사의 말처럼 지독한 안개 때문이었다.
해무 마을이 자리 잡은 산자락 너머는 바다였다. 안개는 그 바다에서 밀려왔다. 해무 마을 특유의 끈끈하고 질척한 안개는 소리 없이 진격해 왔다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안개가 마을을 지배하는 동안에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숨을 멈춘다. 안개는 서슬 퍼런 계엄군이요, 가혹한 독재자다.
해무 마을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김치찌개 백반에 덮여 온 신문을 통해서였다.
그때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수업 일수의 대부분을 민주화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보내던 시절이었다. 선배들의 뒤를 따라서 목이 터져라 민주주의를 부르짖었고 최루탄 냄새를 향수라 생각하며 들이마셨다.
김치찌개를 들여 온 그날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학생들은 공과대 3층에서 일주일째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었고 백골단 투입이 머지않았다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았다. 식량은 이미 바닥났고 물도 부족했다. 그런 참에 외부에서 활동하던 후배 몇 명이 경찰들 눈을 피해 음식을 들여왔다. 우리들은 김치찌개며 덮밥 따위를 게걸스레 먹어 치웠다. 배가 어느 정도 부르자 고춧가루 묻은 그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해무 마을 소개는 「한국(韓國)의 오지(奧地)」라는 기사 제일 마지막에 있었다.
‘사시사철 바다 안개가 끊이지 않는 숨겨진 땅, 해무’가 제목이었다. “보통 바다 안개는 4월부터 10월 사이에 많이 발생하는데 이 마을은 사시사철, 그것도 밤낮 없이 안개가 낀다는 게 큰 특징이다. 안개에 휩싸인 산골 오지 마을은 신선의 땅인 듯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이 마을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안개다. 열 몇 가구의 주민들은 모두 안개에 스며 있는 것이다.”라는 어떤 여행가의 말이 기사 마지막에 붙어 있었다.
나는 안개 자욱한 마을 전경을 잡은 한 장의 사진과 “안개에 스며 있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인상적이어서 몇 번이나 기사를 다시 읽었다.
그랬기에, 도망갈 곳을 찾던 내 머릿속에 ‘해무 마을’이 떠오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조용히 스며들 수 있는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해무 마을을 찾게 되었다. 1989년 여름이었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해무 마을을 찾았을 때 내가 가진 거라곤 칫솔 하나와 갈아입을 속옷 두어 벌이 전부였다. 손에는 해무 마을을 다룬 신문 쪼가리를 나침반 삼아 들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찢긴 신문은 인쇄된 글자가 희미해질 정도로 너덜거렸는데, 그때의 내 몸과 마음이 꼭 그 신문과 같았다.
나는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여기저기 멍들고 부러진 몸뚱이는 움직일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특히 군홧발에 여러 번 채인 왼쪽 갈비뼈 근처가 제일 심했다. 한여름 산속에서 길을 잃고서도 용케 해무까지 다다른 건, 그런 내 몸을 감안했을 때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게다가 층층이 쌓인 안개까지 헤쳐야 했으니 해무 입구를 발견하고 까무룩 정신을 잃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동안 나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게 될 악몽과 처음으로 마주했다. 환상성과 왜곡이 배제된 사실 그대로의 끔찍한 꿈.
꿈은 늘 손톱깎이로 시작된다. 딸깍, 딸깍. 은빛으로 빛나는 그것이 암흑 속에서 나를 노려본다. 이런, 손톱이 길구먼. 목소리가 들려온다. 칠판을 긁는 듯 소름 끼치는 목소리.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 올리고, 이내 손톱이 깎여 나간다. 딸깍, 틱. 억센 날이 손톱을 물었다가 튕겨 낸다.
친구들은 어디 있지? 목소리가 묻는다. 딸깍, 틱. 손톱깎이가 손톱 바로 밑 연한 살점에 닿는다. 어디 있냐고? 딸깍, 틱. 손끝이 근질근질하다. 심장이 뛴다. 딸깍, 틱. 딸깍, 틱. 딸깍, 틱. 딸깍, 틱. 딸깍, 틱. 딸깍, 틱…….
꿈은 예고도 없이 다른 장면으로 바뀐다. 주전자다. 노란색 양은 주전자. 찌그러진 부위가 보일 정도로 선명하다. 주전자 안에는 물이 가득 들어 있다. 물속에는 고춧가루와 후추를 풀어 놓았다. 새빨간 그 물이 내 콧속으로 들어온다. 귓속으로 들어온다. 목구멍으로 들어온다. 눈으로, 들어온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나는 꿈의 잔상에 빠져 멍한 상태였다.
지하실에 다시 끌려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거의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곰팡내와 살이 썩어 가는 악취가 가득했던 어두운 지하실.
조각조각 흩어졌던 의식이 제자리를 찾은 건, 그리하여 안온한 현실에 속해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안개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유리에 대고 더운 입김을 불기라도 한 것처럼 눈앞이 온통 뿌옇게 변해 있었다.
안개구나, 해무의 안개야…….
나는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한 번 터진 웃음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태엽을 잔뜩 감아 놓은 장난감처럼 쉬지 않고 웃었다. 옆구리가 아파 오고,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가 얼굴을 타고 흐를 때쯤이 되어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하지만 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히히히.
내 것이 아니었다. 여자였다. 누운 채로 고개를 들어 봤다. 안개가 가로막고 있었다. 누구냐고 물어봤지만 목소리는 안개에 묻혀 속절없이 흩어졌다. 히히히. 끊어질 듯 이어지는 웃음은 흐느낌으로도 들렸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 웃음을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다. 더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안개가 흩어졌다. 누군가의 얼굴이 천천히 떠올랐다. 바로 눈앞이었다. 그것이 여자의 얼굴이고, 그녀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았다.
“히히히.”
여자가 웃었다.
“오빠, 좋은 일 있구나?”
그녀가 순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