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이 사는 탑의 황금별

드래곤이 사는 탑의 황금별

미리보기

옛날 옛적에, 드래곤이 전설이나 신화 속 존재가 아닌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야 책에서나 접할 수 있지만, 그땐 정말 대단했다고 한다.

만물의 신이자 경배와 찬양의 대상인 그들은 오만하지만 강하고 긍지가 높았다.

강함을 추구하던 자들은 스스로 드래곤의 부하를 자청하며, 세상에서 가장 높은 탑을 쌓았다.

이를 기특히 여긴 드래곤은 자신이 가진 빛의 힘으로 어둠을 삼켰다.

그들이 선해지길 바라면서.

그러나 어둠이 없는 곳엔 빛도 없는 법.

그들의 영혼은 육신만 남기고 떠났고, 탑이 그 육신을 흡수했다.

드래곤은 자신의 힘을 감당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슬퍼했고 눈물 흘렸다.

그때부터 드래곤은 탑에 들어서는 이들을 탑의 벽에 새겨 넣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드래곤의 탑이다.

전설에 따르면, 탑 가장 꼭대기엔 황금이나 보석 같은 보물들이 무척 많다고 전해진다.

그 보물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황금별.’

북두칠성이 빛나던 밤, 하늘에서 떨어지는 황금별을 드래곤이 탑 꼭대기에 올려놓았다는 건 유명한 얘기다.

그러나 황금별의 전설은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졌을 뿐, 끝까지 오른 이는 아직 없었다.

수많은 모험가가 황금별을 정복하기 위해 탑에 도전했지만, 미로처럼 얽혀있는 탑 꼭대기에 도달하기도 전에 죽거나 포기했다.

소문에 의하면, 탑은 끊임없이 변한다고도 한다.

방금 지나온 길이 사라지고, 눈앞에 없던 벽이 솟아오른다던가, 때로는 바닥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으며, 천장에서 거대한 바위들이 떨어져 내린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래서 탑이 실제 몇 층인지 무엇이 있는지 아직도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어때? 궁금하지 않아?”

“아뇨.”

“왜?”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으니까요.”

비바람이 몰아치는 숲길을 뚫고, 한 마차가 드래곤의 탑이 있는 탑의 마을을 향했다.

“어차피 인생은 한 번이야. 성에만 처박혀 있다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결혼하는 삶이 뭐가 재미있는데?”

마차를 탄 모험가들 사이에 두 개의 망토가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속삭이듯 대화를 나누었다.

겉보기엔 1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이들은 가렛트 왕국의 제8 왕자 루타와 그의 시종이자 엘프인 벤젤이었다.

“살아 있는 자는 꿈을 꿔야 해. 성벽을 넘어서 모험을 떠나야 하고.”

루타의 불타오르는 눈을 보자 벤젤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루비를 닮은 붉은 눈, 자신감 넘치는 표정까지.

서글프게도 그는 자랄수록 주인과 전혀 닮지 않았다.

‘어릴 땐 참 귀여웠는데…’

벤젤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요. 거기에 뭐가 있을지 어떻게 알아요?”

“황금별, 그리고 그걸 지키는 드래곤. 그밖에 또 뭐가 있을까?”

“아니, 그게 아니라…”

벤젤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루타가 가로챘다.

“소문에 의하면, 탑의 드래곤은 그냥 지어낸 얘기래. 그래서 모험가들이 모이는 거고.”

“근데, 실상은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깐 그 실상을 알아보자고.”

루타의 흥분한 목소리에 모험가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이 철없는 왕자는 자기 처지를 알고 있는 걸까?’

벤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다시 조용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럴 거면 기사단을 데리고 와도 됐잖아요.”

“걔네는 성 지켜야지. 무엇보다 일당백의 영웅이 있는데, 떼거리로 몰려갈 필요가 있나.”

벤젤은 흠칫했다.

“일당…백?”

“응! 일당백.”

사람에 대한 평가만큼은 신랄할 만큼 냉정했던 루타가 자기를 띄워주는 말을 하자, 벤젤의 긴 귀가 자기도 모르게 살랑거렸다.

“이건 기회라고. 내 가치를 누나나 형보다 올릴 기회.”

“그 기회 때문에 전 돌아가자마자 목이 달아나게 생겼는데요?”

“설마… 넌 우리 왕국이 찾은 가장 귀한 존재인걸?”

연인이었다면 분명 듣기 좋은 말이었겠지만, 둘은 신분이 다르다.

벤젤은 한쪽 팔을 감싸안은 채, 창밖으로 얼굴을 돌렸다.

“예 예, 늘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갔었죠.”

“에이, 여차하면 내가 커버 쳐줄게. 나 못 믿어?”

순간 정적…

난감해진 루타가 애써 말을 돌리기 위해 눈을 굴렸다.

“너 내가 드래곤 좋아하는 거 알지?”

“알죠…. 어릴 땐 매일 같이 드래곤 나오는 책만 끌어안고 잠들었으니까.”

“그럼 내가 왜 이 모험을 해야 하는지도 알겠지?”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믿고 자시고를 떠나서, 이쯤 되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성인식을 치른 아이는 평소엔 얌전했지만, 한번 정한 일은 절대 물러나지 않는 고집불통이기도 했다.

‘그래서 주변에 미움도 많이 샀지만, 본인은 내색하지 않으니… 뭐, 상관없겠지.’

벤젤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차는 드래곤의 탑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탑의 마을에 도착했다.

탑은 그 명성에 걸맞게 멀리서 봐도 거대하고 웅장했다.

넓게는 작은 마을 몇 개는 들어갈 것 같았고, 높게는 구름을 뚫고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탑 주변엔 검은 먹구름이 껴있었다. 마치 탑을 보호하기라도 한 듯

먼 옛날, 대륙의 왕국이 동맹을 맺고 탑을 무너뜨리기 위해 나라 내에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죄다 동원한 적이 있었다.

하루 종일 포탄이 터지고, 마법사들의 마법이 탑 주변을 초토화했지만, 탑은 금하나 가지 않았다.

그제야 사람들은 탑을 정복하는 건 내부로 진입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탑 근처에 사람이 몰리니 마을이 생겼고, 마을이 생기니 길드가 세워졌다.

길드는 모험가들이 마을에서 함부로 날뛰지 않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먹을래?”

루타는 탑과 드래곤이 그려진 둥근 빵을 벤젤에게 건넸다.

이 마을 명물인 탑과 드래곤 빵이었다.

마침, 배가 고팠던 벤젤은 빵을 받아 들었다.

“오?!”

벤젤의 금안(金眼)이 반짝였다.

폭신한 빵 속에 든 상큼한 산딸기잼과 부드럽고 고소한 생크림의 조화가 상당했다.

이런 고급스러운 빵은 수도에서나 먹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드래곤의 마을이 관광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상당할 것이다.

“이 빵 꽤 비쌀 거 같은데요?”

“이런 관광지 마을에서 파는 거야 다 그렇지 뭐…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잖아?”

“그렇긴… 하네요.”

벤젤은 루타가 든 빵 봉투에서 빵 하나를 더 꺼냈다.

“되도록 제 옆을 떠나지 마세요.”

“당연히 그럴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루타는 그렇게 말하고는 앞장서서 길드 안으로 들어갔다.

길드는 다양한 모험가로 북적였다.

마치 대륙에 있는 모험가란 모험가는 싹 다 모인 것만 같았다.

루타는 내부를 서성이며, 모험가 무리를 하나씩 살펴봤다.

“응, 저게 좋겠군.”

“네? 뭐가… 자, 잠깐만…!”

벤젤이 말릴 새도 없이 루타는 근처 탁자에 앉아 대화 중이던 모험가 세 명에게 갔다.

흑표 수인에, 드라이어드, 오크 성직자로 이루진 신기한 조합이었다.

“저기요. 괜찮으면, 저희랑 파티를 맺지 않을래요?”

무리의 리더처럼 보인 흑표 수인은 루타를 쓱 보고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손을 휙휙 저었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는 완벽한 거절.

“하하, 어쩌지? 거절당했어.”

벤젤은 일부러 과장해서 웃는 루타의 손을 잡고 끌고 갔다.

그 꼴이 어찌나 형편없던지 길드 내 사람들은 하나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거봐요. 그러니까, 제 옆에 있으라고 했죠?”

“그거 탑 안에서 얘기 아니었어?”

“지금부터예요.”

벤젤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파티를 또 찾을 건 뭐예요?”

“아……”

루타는 잠시 턱을 괴더니 골똘한 표정이 되었다.

덕분에 둘 사이에 적막함이 발생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냥 우리끼리 하자.”

루타가 살짝 미소 짓고는 의자에 앉자, 벤젤은 어리둥절했다.

“어차피 누굴 믿느니, 너 하나면 됐는지도 몰라.”

루타는 밖을 슬쩍 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처음엔 느닷없이 차분해진 모습에 이질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아이는 아이다.

흔한 사춘기 아이의 투정은 때론 강하게 잡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벤젤의 지론이다.

“알면 됐어요.”

벤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치 못한 채.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