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처음 시작은 간단한 내기였다. 아니, 정확히는 내기라 하기도 우스운 치기 어린 허세였는데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생각도 못 한 것이다. 당시의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세간에는 ‘혼자 하는 숨바꼭질’이라는 게 갑작스레 나타나 기승을 부리며 유행하고 있었다.
귀신과 벌이는 숨바꼭질이라 하면… 더 이해하기 쉬울까? 그건 일종의 강렬술로 더 어릴 때 유행하던 분신사바 같은 것이었다. 인형에 귀신을 불러들이고는, 칼로 몇 번 찔러 도발하고, 날 찾아보라며 어두운 어딘가에 숨어있는, 그런 멍청하고 무서운 놀이였다.
친구 놈들이 쉬는 시간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숨바꼭질 영상을 찾아보던 것도 그즈음이었다. 사실 영상들의 내용은 별것 없었다. 보통 어두운 방 안에 인형이 하나 누워있고 TV가 혼자 치치직 거리며 켜져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영상의 마지막에 제작자가 나타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자신이 뭔가 이상한 일을 겪었다고 얘기하는 거였다. 조금 특별한 걸 꼽는다 해도 가끔 예고도 없이 TV가 꺼지거나, 괜한 물건이 툭 하고 떨어지거나, 창문 따위가 덜컥거리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는 정도였다.
친구 놈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그런 사소한 연출이 나올 때마다 ‘우오오!’ 하고 소리쳤다. 심령현상이라나 뭐라나. 반에 한두 명 이상은 있는 리액션 좋은 친구들이 반 전체를 선동하다 보니 당시의 우리 학교는 이상할 정도로 그런 것에 열광하고 있었다.
솔직히 당시의 나는 귀신을 전혀 믿지 않았고 그런 영상들도 전부 짜고 치는 연출이라 생각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그렇지 않은가? 혼자 깜빡거리는 TV나 덜컥거리는 창문이라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그 정도 조작은 가능할 것 같았다. TV를 깜빡거리는 정도야 리모컨만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지 않은가. 말이야 다들 혼자서 찍었다지만 실제로 화면 밖에 도움을 주는 누군가가 더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제는 내가 그런 생각들을 너무 대수롭지 않고 당당하게 툭 내뱉었다는 거였다.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그것이 치기 어린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들 사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 말을 듣자마자 옆에 있던 친구 하나가 대뜸 그렇게 자신 있으면 직접 해볼 수도 있냐고 물었고, 정확한 대화가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결과적으로 큰소리를 치며 할 수 있다고 대답해버렸다.
학교에는 반응 좋은 친구들만큼 바람잡이들도 많이 있었다. 대화가 어떻게 흘러갔던지 누군가 금세 “야! 영민이가 우리 교실에서 숨바꼭질해보겠데!” 라고 소리쳤다. “오오오오!” 하고 이어지는 반 아이들의 호응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그렇게 분위기에 떠밀려 공식적으로 그 이상한 강령술의 반대표 체험자가 되었다. 그때 안 하겠다고 했어야 했는데…. 말했다시피 당시의 나는 귀신이 별로 무섭지 않았고, 워낙 당당하게 말을 벌려놓은 터라 딱히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그날은 반 전체가 신이 나서 거의 온종일 ‘혼자 하는 숨바꼭질’에 대해 정보를 모았던 것 같다. 운동회 때 반 단체복을 맞추는 것보다 더 열성적이었다. 혹시 근래에 남고를 나온 사람이라면 이게 어느 정도의 열정인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다음날에는 몇몇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너무 본격적이다 싶을 정도로 문제의 강령술이 준비되었다. 친구 놈들은 직접 정성스레 타이핑해 온 듯한 ‘혼자 숨바꼭질하는 법’이라는 긴 설명서와, 사람 모양의 인형, 좁쌀, 빨간 실, 라이터, 조그마한 소금, 그러니까 치킨 시키면 따라오는 바로 그 소금 한 봉지를 준비해 내게 들이밀었다.
사실 나는 그때부터 살짝 겁을 먹었다. 솔직히 친구들이 신이 나서 인형의 배를 가르고, 솜을 꺼내고, 그 안에 좁쌀을 채워 넣는 것을 보면서, 그리곤 신체의 일부가 필요하다며 내 머리카락을 네 개나 뽑아서 그 안에 같이 넣는 것을 보면서, 이런 일련의 행위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몰라도 슬슬 장난이 아니구나 싶었다. 인형은 굳이 빨간 실을 이용해 기괴한 모습으로 꿰매진 뒤에 ‘귀신이’라고 이름 까지 붙여졌다. 말은 못 하고 ‘이런 미친 새끼들아. 너무하는 거 아니냐?’를 몇 번이나 주워 삼켰는지 셀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