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건 너무 늦은걸까, 너무 이른걸까.
“안암眼癌 4기네.”
시험은 내년 5월이고, 시험대비반은 2월부터 시작이다.
“말기야. 길어야 반년 정도 남았다고 생각하는게 좋아.”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반년이다.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유진. 유진에게 빚만 남기고 갈 수는 없다.
“그런데 대체, 여기 서류를 보면 ‘진공성형 전문가’라고 써있는데, 이게 무슨 직업이지? 산재처리가 가능할지도 몰라.”
나는 싸구려 장난감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여기저기서 모아온 플라스틱을 녹여 뜨거운 진공틀에 넣고, 찍어내는걸 반복한다. 진공틀에서 빼낸 플라스틱 장난감 조각이 식어 굳기전에 자투리를 잘라내고 적당한 곳에 구멍을 낸다던가, 아무튼 그런 일을 한다.
“아까 설명했다시피, IID(Intraocular Imaging Devices 안구 내 삽입형 이미지 장치)는 제거해야 해. 일부 기능이 남아있… 간호사! 간호사!”
나는 정신을 잃었다. 아니면 잃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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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다시 차렸을 때는 온통 검정이었다. 중간중간 지글거리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이걸 보인다고 해야하는건지, 그저 눈 앞에 떠다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의사 말대로 내 눈과 머릿속 어딘가에 심어져있던 IID를 제거한 모양이다. 유진은 내 옆에 있었다.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유진의 촉촉한 손이 내 손을 잡고 있다는건 알 수 있었다.
“우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