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시간여행

  • 장르: 판타지, SF | 태그: #타임리프
  • 평점×9 | 분량: 114매
  • 소개: 오빠는 어린 시절의 교통사고 이후 하반신이 망가진 채 대부분의 삶을 누워서 보냈어. 비록 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나는 점점 오빠에게 벽을 만들고 있었던 거야. 어린 나이에 갑작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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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의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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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자기 입으로 시간 여행자라고 말했을 때, 나는 기어이 오빠가 미쳐버린 모양이라고 생각했어. 아니면 재미없는 농담이거나. 하지만 오빠의 진지한 표정과 심각한 눈빛으로 보아 농담은 아닌 것 같더라고. “내가 한 게 시간 여행인지, 아니면 평행 우주를 넘나든 건지, 자세히는 잘 모르겠어.” 헛소리라고 치부하기엔 정돈된 어조로, 오빠는 그렇게 말했어. 당시 오빠는 죽음을 눈앞에 둔 상태였어. 허튼소리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뜻이야.

우선 우리 오빠에 대해 설명해야겠지. 오빠는 어린 시절의 교통사고 이후 하반신이 망가진 채 대부분의 삶을 누워서 보냈어. 그렇게라도 숨이 붙은 게 기적인 수준이었지. 사고 직후 오빠는 의식을 잃고 두 달이 넘도록 혼수상태에 빠졌어. 급한 수술로 고비는 넘겼지만 말 그대로 고비만 넘긴 수준이었지. 의사가 우리 부모님께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시라 이를 정도였어.

두 달 하고도 일주일째 되는 날, 오빠는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았어. 오빠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린 순간, 엄마는 오빠의 손을 조심스레 잡고 펑펑 울었지. 아빠는 그런 엄마 옆에서 함께 눈물을 흘렸고. 오빠는 산소마스크에 반쯤 강제로 호흡하면서 느릿느릿 눈동자를 움직여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어. 가족들을 바라보는 오빠의 눈빛이, 뭐랄까, 노인처럼 늙어 있었어.

목숨은 건졌지만 오빠의 다리는 사고 이후 두 번 다시 스스로 일어서지 못했어. 부러진 흉곽은 회복됐지만 허파와 심장은 기능이 매우 나빠졌지. 불과 얼마 전까지 이혼을 언급하며 험악한 분위기로 치닫던 부모님 두 분은, 오빠의 사고를 계기로 다시 하나가 되었어. 실직 상태이던 아빠는 술과 담배를 모두 끊은 뒤 온갖 일을 전전하며 땀을 흘렸고, 엄마는 퇴근 후 저녁마다 식당에 나가 보조 일손으로 일했어.

엄마가 미리 저녁상을 차린 뒤 일하러 나가면, 학교를 마친 나는 반겨주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적막한 집에 돌아와 홀로 저녁밥을 먹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집안 구석 한곳에 있는 방, 그 작은 방에 유령처럼 머물러 있는 오빠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집에 돌아온 나는 거실에서 혼자 TV를 보고, 만화책을 보고, 방에서 숙제를 하고, 컴퓨터를 하다가, 늦은 밤에야 돌아올 엄마와 아빠를 기다리곤 했어. 아직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이었어. 이제 막 휴대폰이 보급되던 시기였지. 그래서 아직은 집 전화가 따르릉 울리면 배배 꼬인 케이블이 연결된 수화기를 집어 들고, 여보세요, 라는 말부터 하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야. 문자메시지 같은 걸로 연락을 주고받는 건 존재하지도 않았지.

마냥 기다리고 있다 보면 늦은 밤 엄마와 아빠가 각각 다른 시각에 돌아오시곤 했어. 늦은 밤에 도착한 엄마는 나에게 항상 이렇게 물었어. “저녁은 잘 먹었니?”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지. “오빠는 잘 있고?” 엄마는 오빠의 안부를 빼먹은 적이 없었어. 그때마다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거렸어. 비록 교복을 입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방 안에 있을 오빠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은 날이 많아지긴 했지만 말이야. 반면 아빠는 귀갓길에 가끔 양념치킨 같은 것을 사 들고 왔을 뿐, 오빠가 어떤지 나의 시험 성적은 어떤지 그런 걸 캐묻진 않았어. 아빠는 물어보기 전에 미리 나의 속마음을 짐작하는 편이었던 것 같아.

오빠는 이따금 화장실을 가기 위해 목발을 짚고 방문을 나서는 경우 정도만 제외하면 일상의 대부분을 방 안에서 보냈어. 원래 나는 그때마다 오빠의 거동을 도와주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오빠는 괜찮다며 내 도움을 거절하기 시작했지. 오빠가 혼자 목발을 짚고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는 게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적응되더라고. 언제부턴가 나는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오빠가 방문 여는 소리가 들려도 딱히 오빠 쪽에 신경을 쓰지 않았어. 그렇게 오빠는 점점 더 유령이 되어갔고 말이야.

비록 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나는 점점 오빠에게 벽을 만들고 있었던 거야. 어린 나이에 갑작스레 오빠의 간병인 역할을 떠안은 뒤로부터.

오빠는 그런 나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곤, 자기 딴에는 조금이라도 나를 위하는 마음에서, 최대한 나의 도움을 거부하려 했던 거고.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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