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때, 나는 이상한 기계를 얻었다.
아빠 말로는 설거지를 하고 돌아와보니 내가 이상한 기계를 꼭 쥐고 도무지 놓아주지를 않았다고 했다. 그 기이한 기계에는 한글로 조그맣게 ‘타임머신. 김지아.’라고 쓰여있었다. 기계는 버려도 다시 내 손으로 돌아왔고, 부수어도 다시 내 손으로 돌아왔다. 그 공포 영화같은 전개에 엄마가 이민을 가면 괜찮을까 고민하던 중 조그마한 쪽지도 나타났다. 첫 번째 줄에는 한글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괜찮아요. 오직 이 아이를 위한 타임머신이니까.’
그 다음 줄은 아랍어가 번역기가 통하지 않을 정도의 악필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오로지 첫 번째 줄을 믿고 그 기계를, 타임머신을 가만히 두었다. 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여덟 살이 되었을 때, 나는 타임머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일주일을 싸운 끝에 나는 일 년 전부터 주장해온 용돈을 포기하고 타임머신을 얻었다.
나는 고리 모양의 그 기계에 끈을 묶어 항상 가지고 다녔다.
종종 친구들의 짓궃은 장난들에 잃어버려도, 어김없이 타임머신은 다시 내게 돌아왔다.
그게 좋았다.
온 세상이 망해가고 있었다. 매일같이 도시가, 사람들이 사라졌다.
불안한 세계에서 그 기계는 나의 닻이었다.
열세 살 때, 나는 아랍어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나는 언어에 재능이 있었고, 한국어, 영어, 아랍어 말고도 여러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열다섯 살 무렵, 나는 마침내 그 쪽지를 완전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김지아. 이건 오직 너만을 위한 타임머신이야. 네가 돌아가고 싶은 시간을 정확히 떠올리고 빨간 버튼을 꾹 누른 뒤, 고리 안쪽의 구슬들을 열 바퀴 굴리면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어. 기회는 딱 한 번 뿐이야. 그러니,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쓰기를.’
누굴까. 이걸 내게 보낸 사람은. 사람이 맞기는 할까?
그리고 정말 시간 여행이 가능할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영영 알 수 없었으므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포기했지만, 두 번째 질문은 한 번 찾아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참을 찾아보았다.
미래로 갔다가 과거로 돌아오기는 하는데, 이게 뭐지 싶은 소설, 웰스의 타임머신부터 현대까지의 시간 여행 판타지와 SF들을 읽었다.
뇌가 뒤엉키는 기분이 드는 타임 패러독스에 관한 수많은 영화들을 거쳐,
미래를 예측한 영화에서는 오 차원을 보고,
힘 쎈 녹색 박사의 대사에 납득했다가 영화에서는 과학을 배우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열여섯 살, 그제야 펼친 과학 교과서에는 답이 없었다. 나는 도서관과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물리학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이해하지 못한 개념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 고등학교 과정, 뉴턴을 지나 마침내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에 도달했을 때, 나는 포기를 선언했다.
시간은 일직선이 아니며, 시간과 공간은 하나이며,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생사는…… 고양이가 불쌍하고, 음, 엔트로피가 뭐?
그러니까 미래로 가는 건 가능한 것 같은데, 과거로 가는 건 가능하다는 거야, 불가능하다는 거야?
그래, 컴퓨터를 쓰면서 그 원리를 궁금해하지 말자.
그래도 여전히 궁금한 것은 있었다.
왜 이 기계는 내게 왔을까? 내게 이것을 준 누군가는 내가 무엇을 해주길 원해서 내게 이것을 준 걸까?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뭐지? 지금은 가족인데.
단순히 복권 당첨 되라고 준 건 아닐거 아니야?
혹시 지구를 구하라고?
진짜 그건데? 지구를, 인류를 구하라. 아니야?
***
열여덟 살, 나는 대학에 가는 대신 그동안 열다섯 개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온갖 자격증을 가지고 취직을 했다. 그곳이 국제 우주 이주 기구였다.
대부분의 일상 대화는 번역기를 사용하면 되는 시대였다. 그래도 외교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항이나, 약간의 오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문서들은 번역가가 필요했다. 당연히 국제 우주 이주 기구에서는 그런 일을 맡길 사람이 필요했다. 실력있는 번역가는 많았지만 그렇게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번역가는 나 뿐이었다.
꼭 그곳으로 갈 필요는 없었지만, 혹시 모르니까. 지구를 구해야 할지도. 그러면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는 곳이 나았다. 때마침 모집 공고가 뜬 것도 있겠고.
취직은 쉽게 했지만, 갓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외국으로 가서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 때 만난 사람이 너였다.
“한국인이에요?”
네가 물었다.
“Yes? 아, 네. 네. 김지아라고 합니다.”
“어려보이네요. 인턴? 아, 우리 인턴은 안 뽑을 텐데.”
“통역가예요. 열여덟이에요. 내일 열아홉이 되네요.”
“아, 들었어요. 언어 천재라던데요.”
“언어 능력에만 능력치가 다 쏠려서요.”
나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저는 한겨울이라고 합니다. 스물넷이에요. 연구원이고, 외계 행성 연구를 맡고 있어요.”
천재 아니야? 내가 물었다.
“겨울 씨야말로 어려보이는데요?”
“저는 과학쪽으로 능력치가 쏠려서요. 아무튼,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요. 제가 선배인 것 같으니까. 저도 여기 처음 왔을 때 몇 달은 멍한 채로 지냈거든요.”
“감사합니다…….”
솔직히 네가 천재라는 것 밖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무척 심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