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찾습니다

고양이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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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창고 뒤편의 작은 창문 너머로 고양이 울음이 들렸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언제나처럼 오후 여섯 시였다. 쿠키는 고양이 주제에 시간관념이 확실했다.

나는 창고에 들어가 미리 준비한 소시지의 포장을 벗겨 바닥에 내려놓았다. 휘파람을 불자 쿠키가 창문을 타 넘어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으레 그렇듯 녀석은 내 발치에 놓인 소시지부터 야금야금 깨물어 먹었다.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쿠키의 엉덩이에 난 검은 점박이 무늬가 리드미컬하게 씰룩거렸다.

마지막 한 조각까지 남김없이 삼킨 쿠키는 만족스러운 듯 혀로 앞발을 적셔 입과 콧등을 닦았다. 일련의 절차를 마친 뒤에야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야옹’ 하고 알은체했다.

미소를 지으며 쿠키의 머리를 쓰다듬고 새로 전달된 쪽지가 없나 녀석의 목덜미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동그란 구슬이 달린 목걸이에 작게 접힌 메모지가 끼워져 있었다. 찢기지 않도록 조심하며 메모지를 꺼내 펼쳤다.

-이번 주 토요일 오후 두 시에 보라매공원 분수대 앞에서 만나요. [지니]

-토요일 좋습니다. 드디어 만나게 되는 건가요? [나마스테]

-저도 콜이요~ [풍운아]

-와! 저도 좋아요. 진짜 설렌다^^ [아이린]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난 한 달간 쿠키를 통해 쪽지로만 연락을 주고받던 사람들과 만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각자 닉네임을 사용했는데, 지니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 모두 동의하자 오늘은 아예 만날 날짜와 장소까지 정해 버렸다.

나는 메모지에 ‘저도 찬성이요. [선우]’라고 마지막 댓글을 달았다. 메모지에 적힌 사람들의 닉네임으로 미루어보아 쿠키를 돌보는 사람은 나까지 모두 다섯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쿠키를 만나 돌보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사정이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쿠키를 처음 만난 건 지난 10월이었다.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오후 5시부터 12시까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날은 시험기간이라 손님들을 상대하는 틈틈이 노트에 적어간 전공수업 요약본을 보고 있었다.

중고등학생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왔다가 빠져나간 뒤 한숨 돌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섯 평 남짓한 편의점은 판매대를 기준으로 오른쪽에 출입문이 있고, 왼쪽은 음료수 코너였다. 그리고 가운데 11자 모양의 진열대가 늘어섰다. 음료수 코너의 끝에 창고로 통하는 문이 있는데, 소리는 그곳에서 들렸다.

혹시 도둑?

순간 긴장으로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었다. 창고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지만 무척 비좁아서 사람이 드나들 만한 공간은 아니었다. 어쩌면 내가 다른 손님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누군가 몰래 창고 문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창고엔 새로 들여온 상품이 가득 쌓여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뻔히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대담한 짓을 저지를 리 없었지만, 그땐 당황해서 불길한 쪽으로만 상상력이 작동했다.

휴대폰을 꺼내 112번을 눌렀다. 신호음이 한 차례 울렸을 때 창고에서 ‘야옹’하고 고양이 울음이 들렸다.

전화를 끊고 천천히 창고에 다가가 문을 열었다. 안쪽에 붙은 스위치를 눌러 전등을 켜자 먼지가 켜켜이 쌓인 창고 내부가 보였다. 사람은 없었다. 대신 창문 아래로 젖소처럼 흰 바탕에 검은 점이 박힌 고양이 한 마리가 주저앉아 그르렁대는 중이었다.

“너였냐?”

그제야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양이는 날 보더니 달아나기는커녕 애교 있는 몸짓으로 다가와 내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자 사람의 손길에 익숙한 듯 얌전하게 받아들였다. 고양이의 목에는 ‘쿠키’라는 글자가 각인된 구슬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녀석의 이름인 것 같았다.

나는 진열대에서 소시지를 꺼내 쿠키에게 가져다주었다. 배가 고팠는지 녀석은 단숨에 소시지를 먹어치우고, 이내 창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날 이후로 녀석은 오후 6시가 되면 어김없이 편의점을 찾아와 한두 시간 정도 머물다가 다시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

쿠키에게선 늘 은은한 샴푸냄새가 났다. 단정하게 깎인 발톱으로 보아 나 이외에도 누군가 쿠키를 돌봐주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호기심이 생겨 메모지에 ‘저는 매일 오후 6시에 쿠키를 만나는 사람입니다. 혹시 다른 분들이 계신다면 답장을 해 주세요.’라고 적어서 쿠키의 구슬 목걸이에 끼워 두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다음 날 내가 넣었던 메모지에 줄줄이 댓글 형식으로 글이 적혀 있었다.

-저는 오후 5시에 쿠키를 만나요. ㅋㅋㅋ

-오후 8시에 만납니다.

-반가워요. 밤 10시입니다~!

-전 오후 3시예요^^

쿠키는 생각보다 마당발이었다. 첫 소통 이후로 우리는 편의상 닉네임을 지어 서로를 불렀다. 3시 타임은 지니, 5시는 아이린, 6시인 나는 선우, 8시는 풍운아. 그리고 10시에 쿠키를 만나 잠자리를 제공해 준다는 고양이의 실질적 주인인 나마스테까지.

그렇게 시작된 쪽지 릴레이가 근 한 달간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 쿠키를 통해 연결된 우리들은 서로의 존재가 몹시 궁금해졌다. 쿠키가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해 준 덕분에 만나기로 의견을 모으기는 어렵지 않았다.

나마스테가 쿠키를 데리고 나올 테니 그것을 표시로 서로를 알아보자고 했다.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면 더 쉽게 연락할 수 있겠지만, 그러면 쿠키의 존재 의미가 희석된다고 생각했는지 누구도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다.

*

쿠키가 자취를 감춘 건 그날부터였다. 사람들과 만나기로 한 수요일 이후로 쿠키는 더 이상 편의점에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됐지만,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목요일도, 금요일도 마찬가지였다.

토요일이 되자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의 심정으로 집을 나섰다. 사정이 어찌됐든 보라매공원에 가볼 생각이었다. 늦을까 봐 서두른 바람에 약속 시간보다 삼십 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누군가 쿠키를 데리고 나오길 바라면서 공원 분수대 근처를 서성였다.

2시가 되기 십 분쯤 전에 중년 여성이 나타났다. 주름진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길고 찰랑거리는 생머리와 숱이 없는지 유난히 눈썹 위로 도드라진 아이펜슬 자국이 시선을 끌었다. 그녀의 손에는 고양이 사진이 프린트 된 전단지가 들려 있었다. 사진 아래로 ‘쿠키를 찾습니다.’라고 적힌 글귀가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알은체를 했다.

“혹시 쿠키 주인 되시나요?”

내 말에 그녀는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우리 쿠키 아세요?”

“그게……. 전 6시에 쿠키를 돌보던 김선우라고 합니다. 요즘 쿠키가 통 찾아오질 않아서요. 무슨 일이 있나요?”

여자는 굳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젊은 총각일 줄은 몰랐네요. 저는 정순임, 아니지……. 나마스테라고 해요. 실은 저도 며칠 전부터 쿠키를 보지 못했어요.”

그녀와 통성명을 하는 사이 중년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기가 쿠키 모임 맞습니까?”

스포츠머리에 가죽 재킷을 걸친 남자는 덩치가 무척 컸다. 우리가 동시에 그렇다고 대답하자 중년 남자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먼저 와 계셨군요. 반갑습니다. 난 8시에 쿠키를 돌보는 한광필이라고 합니다. 닉네임은 풍운아고요.”

광필은 우락부락한 외모와 달리 나긋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수요일 이후로 쿠키를 보지 못했다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뒤이어 이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세미 정장 차림의 여자가 도착했다.

오후 3시에 쿠키를 만난다는 여자는 자신을 최유경이라고 소개했다. 그녀의 닉네임은 지니였다. 유경은 상당한 미인이어서 인사를 나누는데 괜히 가슴이 떨렸다.

“여기 오면 쿠키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이제 남은 건 5시에 쿠키를 돌보는 ‘아이린’뿐이었다. 이미 약속 시간인 두 시가 넘었지만 우리는 혹시라도 아이린이 쿠키를 데려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하지만 삼십 분이 지나도록 아이린은 나타나지 않았다. 날이 추워 무한정 기다리기는 어려웠다. 일단 우리는 가까운 커피숍으로 가서 몸을 좀 녹이기로 했다. 막 걸음을 옮기려는데 공원 입구에서 앳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요!”

돌아보니 멀리서 뛰어오는 단발머리 여중생이 보였다. 허겁지겁 달려 우리 앞에 도착한 그녀는 양손을 무릎에 집고 허리를 숙인 채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가 어느 정도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최유경이 물었다.

“네가 아이린이니?”

“네, 맞아요. 수업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다들 가버린 줄 알고 얼마나 가슴을 졸였다고요.”

그녀는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는 L여중에 다니고요. 이름은 김상미예요.”

아쉽게도 그녀 역시 쿠키의 소식을 궁금해 하고 있었다.

*

커피숍으로 이동한 우리는 널따란 사각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차를 시켰다. 쿠키 덕분에 모이게 되었는데 정작 주인공이 없어 아쉬웠다. 혹시 차도에 나갔다가 교통사고라도 당한 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굳이 그런 생각을 입 밖에 내진 않았다.

먼저 입을 연 건 나마스테, 정순임이었다.

“나는 쿠키가 아기냥일 때부터 키웠어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쿠키에겐 함께 다니던 어미 고양이가 있었는데, 찻길을 건너다 마주 오는 승용차에 치어 객사했다고 한다. 죽은 어미의 시체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울던 쿠키를 우연히 발견한 순임은 녀석을 집에 데려와 키우기 시작했다.

근 5년여를 키우는 동안 남편도 자식도 없는 그녀는 쿠키가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옆자리에 앉은 유경이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순임에게 건넸다.

“기운 내세요. 쿠키는 영리하니까 틀림없이 잘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순임은 손수건을 받아 눈가를 닦아낸 뒤 숨을 깊게 내쉬었다. 마음을 다소 가라앉혔는지 한결 안정된 표정을 지었다.

“너무 내 얘기만 했네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쿠키를 만나셨는지 듣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녀의 말에 눈치를 살피던 상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한테도 쿠키는 특별해요.”

상미는 식당을 하는 할머니와 단둘이 산다고 했다. 부모님은 그녀가 태어난 지 5년 만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부족함 없이 키워주려 애를 쓰셨지만, 그래도 상미는 늘 부모님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단다. 밝고 명랑해 보이는 상미에게 그런 뜻밖의 아픔이 있다니 안쓰러웠다.

그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날은 학교가 끝날 무렵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모두 부모님이 우산을 가지고 마중을 나왔더라고요. 친한 친구가 함께 가자고 했지만 저는 할머니가 오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먼저 가라고 했죠.

하지만 친구들이 모두 집에 돌아간 후에도 할머니는 오시지 않았어요. 식당 일이 바쁘셨던 거죠. 전 결국 비를 맞으면서 집에 왔지요. 빗물에 흠뻑 젖어서 마당에 들어서는데 괜히 눈물이 나는 거예요.”

상미는 그때 일이 생각났는지 말을 멈췄다. 잠시 커피숍에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얼마간 감정을 추스른 뒤 목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서럽게 울고 있는데 다리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어요. 깜짝 놀라서 봤더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어요. 그게 쿠키였죠.

쿠키는 마치 제가 슬퍼하는 걸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만히 제 옆에 웅크리고 앉아 절 쳐다봤어요. 이상하게 쿠키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안정되더라고요. 저는 틀림없이 쿠키와 제가 교감했다고 생각해요. 그날 이후로 쿠키는 매일 저를 찾아왔으니까요.”

상미의 말을 듣던 유경이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쿠키는 묘하게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죠. 저 같은 경우엔 직업상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프로그램 작업을 하다보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데요, 쿠키가 찾아오는 시간이 잠정적인 휴식시간이었어요. 뭐랄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할까요?”

그러면서 유경은 직장 동료와 트러블이 있어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쿠키가 힘을 내라는 듯 지네를 물어다 준 이야기를 했다. 상미가 그건 징그럽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쿠키 나름의 애정 표현인 거죠.”

순임은 그렇게 말을 덧붙였다. 그러곤 과묵하게 앉아 이야기를 경청하던 광필을 쳐다봤다.

“풍운아 님은 어떻게 쿠키를 만나셨나요?”

왠지 경계심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광필은 왜 나한테만 그러냐는 듯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도 다른 분들과 비슷해요. 제가 권투체육관을 운영하는데 쿠키가 거기로 찾아왔죠. 저는 사실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쿠키를 만나고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광필은 손가방에서 사진 묶음을 꺼냈다.

“쿠키는 운동하는 사람들한테도 아주 인기가 좋았어요.”

광필이 보여준 사진에는 땀에 젖은 사람들이 환하게 웃으며 쿠키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쿠키가 두 발로 선 채 잽을 날리는 것처럼 앞발을 휘두르는 사진을 보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쿠키의 모습이 담긴 여러 장의 사진을 보는 동안 순임도 굳은 표정을 풀었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 이야기를 마치자 순임이 들고 온 쇼핑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 안에는 전단지 수십 장과 쿠키가 하고 다니던 고양이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쿠키가 워낙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성격이라 만일을 대비해서 목걸이에 특수 제작한 위치추적 장치를 설치했어요. 요 구슬에요.”

순임은 쿠키라고 각인된 구슬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틀이나 쿠키가 들어오지 않아서 찾아봤는데 삼성동 커맨드 PC방 근처 쓰레기봉투에 이게 들어 있었어요. 쿠키는 없었고요. 혹시나 싶어 쓰레기를 뒤져보니까 PC방에서 나온 것 같더라고요.

그쪽 아르바이트생한테 점박이 무늬 고양이를 못 봤냐고 물어봤더니, 확실하진 않지만 어떤 고양이를 안은 손님이 쓰레기통에 이 줄을 버리고 나간 것 같다고 했어요.”

순임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쿠키의 목걸이를 손에 꼭 쥐었다. 그녀는 쿠키 얘기를 꺼낼 때마다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순임에게 쿠키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가만히 순임을 바라보던 광필은 이내 특유의 힘 있는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이렇게 된 거 우리가 쿠키를 찾아봅시다. 고양이를 데려간 사람도 나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닐 거예요. 주인이 애타게 찾는다는 걸 알면 돌려보내 줄 겁니다.”

광필의 제안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어떻게요?”

상미가 순진한 눈망울을 빛내며 물었다. 광필은 ‘흠’ 하고 마른 숨을 뱉어내더니 쇼핑백에서 전단지를 한 장 꺼내 들었다.

“그러니까 우선 이것부터 시작해야겠지?”

거리에 나가 순임이 만든 전단지를 행인들에게 돌리다 보면 누군가 봤다는 사람이 나오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보면 무식한 방법일 수도 있지만 현재로선 그게 최선이었다. 고양이를 찾아주는 사람에겐 소정의 사례금을 지급하겠다는 문구도 추가했다.

우리는 새로 만든 전단지를 근처 인쇄소에서 각각 백장씩 복사했다. 그 사이 유경은 스마트폰으로 대전 지역 고양이 커뮤니티에 접속해 전단지에 적힌 내용을 올렸다. 준비를 마치자마자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초겨울 바람이 매서웠지만 추운 줄도 몰랐다. 순임뿐만 아니라 다들 쿠키를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했다. 날이 저물어 글자를 읽기 힘들어진 후에야 우린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나는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냈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욕실에서 나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번호를 확인하니 유경이었다. 전화를 받자 그녀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선우 씨 지금 빨리 인터넷 들어가 봐요.”

유경의 재촉에 나는 머리를 말리지도 못하고 컴퓨터를 부팅시켰다. 그녀가 알려준 고양이 커뮤니티 사이트 야옹닷컴에 접속했다. 그곳에서 ‘그라인더맨’이라는 유저가 쓴 ‘반갑습니다. 야옹닷컴님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클릭했다. 사진과 함께 몇 줄의 글이 보였다.

반갑습니다. 야옹닷컴 님들. 저는 그동안 도를 넘을 정도로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의문을 품어왔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양이가 사람인 줄 착각하는 위인들에게 말입니다.

물론 인간인 이상 자신이 키우는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저는 정말 어이없는 경험을 했습니다.

N포털 사이트에 고양이를 학대한 사람에 대한 기사가 뜨자, 자칭 고양이 애호가라는 사람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그 새끼도 똑같이 해 주어야 한다느니, 저런 놈은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느니 하는 댓글을 달더군요.

저는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너무 민감한 게 아니냐고 말했죠. 그랬더니 그들의 공격이 이번에는 저를 향하더군요. 어떤 사람은 너 같은 놈은 신상을 털어서 사회에서 매장을 시켜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칼로 저를 찌르고 싶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죠. 당신들에게 고양이가 인간보다 쓸모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주기로.

여기 한때 쿠키라고 불리던 고양이가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지금은 아래턱을 잘려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여러분들이 저와 간단한 게임을 하나만 하면 이 고양이는 상처를 치료받고 다시 원래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게임의 룰은 간단합니다. 저에게 욕설이나 모욕감을 주지 않으면서 제가 고양이를 죽이지 않도록 설득시키면 됩니다. 4일 드리겠습니다. 만약 위 룰을 어기거나 시간 안에 저를 설득하지 못할 경우 쿠키는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혹시 저보고 숨어서 일을 처리하는 비겁한 인간이라고 욕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공평한 게임을 하기 위해 저에 대한 힌트를 조금 드리겠습니다.

첫째 O2, 둘째 CMD, 셋째 R

자, 그럼 게임을 시작해 볼까요?

사진 속의 고양이는 실종되었던 쿠키였다. 아래턱을 잘려 피를 쏟는 사진과 물에 젖은 채로 욕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진이 보였다. 죽은 것처럼 축 늘어진 쿠키의 모습을 보자 전화기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라인더맨이라는 놈은 정신병자가 틀림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유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