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걸맞은 최악의 사건이 일어났다.
유튜브 ‘괴담: 미궁’ 채널의 구독자 수가 기어코 내 채널 ‘검은 책장’의 구독자 수를 넘어선 것이다. 8월 1일에 딱 맞춰 발생한 차이는 날이 갈수록 점점 벌어졌고 설상가상으로 내 채널의 구독자 수가 줄어들기까지 했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해 영상을 업로드하지 못하는 사이 ‘괴담: 미궁’의 운영자가 담력 강화 시즌이라며 폐가 탐험 콘텐츠를 시작한 탓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때 담력을 키운답시고 폐가를 탐험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공포와 자극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이런 논리는 굳이 필요치 않다. 사람들이 경험하고 싶은 건 논리만으론 규정할 수 없는 오싹한 무언가니까. 그러니 ‘괴담: 미궁’의 새로운 콘텐츠 기획은 신규 구독자 유입과 조회 수 상승을 노린 영리한 전략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박수를 보낼 수는 없었다. 나도 사고만 아니었다면 똑같이 폐가를 탐험할 예정이었으니까!
다행히 심한 부상은 아니어서 얼마간 통원 치료를 받으니 괜찮아졌지만 구독자는 적잖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좀 더 시청자들과의 유대를 중시했었어야 했나? 아니면 억지로라도 콘텐츠를 업로드할걸 그랬나? 정중히 올린 공지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 줄어가는 구독자 수를 보며 손톱만 뜯은 지도 며칠째. 지금이야 고작 몇십 명 정도지만 이 차이가 몇백이 되고 몇천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평소에도 내가 자기 채널을 표절했다느니 어쩌니 하며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어왔던 ‘괴담: 미궁’의 운영자가 의기양양해할 걸 생각하면 더욱 끔찍했다.
그런 미래를 피하려면 어떻게든 구독자 수를 늘려 이전의 우세를 회복할 수밖에 없지만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는 구독자가 늘지 않는다. 공포 콘텐츠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내 채널의 정체성을 생각하면 걸맞은 내용을 멋지게 다듬어야 했다. 쓸 만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그동안 쌓인 제보 메일들을 훑어보았으나 눈에 띄는 건 없었다. 들은 사람에게 전염되는 괴담, 이해하면 무서운 괴담, 이야기 도중 발화자가 특정한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 괴담, 매뉴얼 괴담……. 가끔은 숨을 죽이고 몰입하게 되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소재가 영 구시대적이거나 결말이 싱거웠다. 역시 불특정 다수에게 괴담을 모집하는 건 한계가 있나?
마지막으로 괴담이라기보다 구연동화에 가까운 제보 메일을 읽은 뒤 잠깐 쉬기로 했다.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노트북 모니터를 응시한 탓인지 눈이 뻑뻑했다. 모니터 옆에 둔 인공눈물을 뜯어 눈을 적시고 있자니 어디선가 냉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작 괴담 유튜브 채널 운영에 이렇게 눈에 불을 켜느니 좀 더 현실을 돌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목소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다니는 회사는 어지간히도 박봉인 데다가 업무시간 외 근무 수당이나 휴가비를 연봉에 포함시키는 곳이다. 지금 내 나이를 생각하면 차라리 퇴근 후 자기 계발에 힘을 쏟아 다른 직장으로 옮길 준비를 하는 게 생산적이겠지.
하지만 그것도 ‘괴담: 미궁’의 구독자 수가 내 채널의 구독자보다 적었을 때나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이제 와 채널 운영을 그만두고 현생에 집중한다 한들 얼굴도 모르는 ‘괴담: 미궁’ 운영자의 이죽거림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으리라. 게다가 이 채널을 통해 양질의 괴담을 제공해 왔다는 자부심은 하루아침에 내다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여기서 꺾인 채로 물러나기에는 남겨진 미련이 너무 많았다.
한없이 도돌이표를 찍는 생각을 환기할 겸 트위터에 들어가 보았다. 최근에 유행하는 괴담이나 떠도는 소문, 가당찮은 이야기에서 뜻밖의 힌트가 나올지도 몰랐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트위터 앱을 열어 보니 메시지 수신 알림이 떠 있었다.
“응? 누구지?”
트위터에서 DM이라 불리는 메시지 기능은 상대방과 1:1로 연락을 취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멘션하는 것보다 폐쇄성이 강하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DM을 보낸다는 건 해당 내용을 비밀스레 전달하고 싶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하지만 타인이 알지 못하게 비밀스레 건네고 싶은 이야기란 모두에게 알리고 싶은 기쁜 소식과는 거리가 있는 법.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그렇다고 이미 본 알람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아마 큰일은 아닐 테지만…?
꼬리를 무는 생각을 걷어차듯이 DM 창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겨울가을 님. 혹시 연락 가능하실 때 DM 주실 수 있으실까요?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린다. 요 며칠간 트위터에 올렸던 내용 중에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무언가가 있었는지 되짚어 보았지만 특별히 마음에 짚이는 구석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동안 올렸던 글들을 떠올려봐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면 내 알림창이 이렇게 조용할 리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침착하게 대응하기로 했다.
―확인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금 대화 가능합니다. 무슨 일이신가요?
답장은 금방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DM 드려서 놀라셨죠?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ㅎㅎ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겨울가을 님에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어떤 일로 그러시나요?
답장은 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화면에 말풍선 아이콘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하는 걸 보면 다음 말을 고르는 데 꽤 고심하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기다리는데 갑자기 나를 비난하는 장문의 글이 날아오진 않겠지? 조여 오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고 있자니, 드디어 의미를 가진 문장이 나타났다.
―겨울가을 님, 괴담 만들기에 관심 있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