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세 명이 모여 마작을 하고 있다. 아직 대낮, 일할 시간인데도 일거리가 없어 남는 시간을 마작으로 종종 때우는 그들이었다. 오월의 실바람이 열어 놓은 창문으로 넘실거렸다.
청바지 위로 하얀 셔츠를 입은 유하는 가방을 옆으로 메며 달렸다. 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자전거가 오가는 차도를 가로질러 2층에 있는 여행사 사무소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려 하는 유하의 가벼운 발걸음이 멈췄다. 인도에 멍하니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젊은 남성이 눈길을 끌었다. 잠시 계단을 내려와서 그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보았다. 청명한 오월의 하늘이 눈부셨다.
“개새끼들, 자국민 안전 좋아하네. 국민들 혈세 받아 처먹으면서 있는 대로 으스대 놓고 삼합회가 관련 된 거 같으니까 모른 척 쏙 빠지는 꼴이란.”
독한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사장이 투덜거렸다. 막 계단을 올라오던 유하는 쩌렁쩌렁한 사장의 목소리에 고개만 문안으로 집어넣고 주위를 살폈다.
“어?”
“유하, 너 뭐하는 거냐?”
“공안 뜬 줄 알고 놀랐잖아요. 우와, 사장님 목소리 장난 아니시네요.”
너스레를 떨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유하에게 잔말 말고 차나 타오라고 잔소리를 하시는 사장님과 그의 말이 맞다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무실 사람들이었다. 세면대로 가 손을 씻고 나온 유하는 차를 타며 풍채 좋으신 사장님을 돌아보며 물었다.
“근데 무슨 얘기예요?”
“무슨 얘기긴! 가뜩이나 경제가 어렵다 말 많은데 이 근처는 삼합회 녀석들이 판을 치니 일하기 더 어렵잖아! 대사관한테 하소연 해봐도 심심한 위로가 전부야. 이건 뭐, 모른 척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다들 쉬쉬 하지만 눈 가리고 아옹이라고!”
또 욱해서 얼굴이 벌게진 사장님을 바라보며 저러다 쓰러질까, 안절부절 하는 부장님이 얼른 유하의 손에서 차를 빼앗아 건네주었다.
“유하, 너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은 걸 깨닫게 될 거다!”
“쟤도 이 바닥에서 2년차예요. 자, 자 진정하시고 그게 뭐 한 두해 일입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사장님 차례예요.”
부장님이 권하자 사장님은 뜨거운 차를 후후 불어 마시며 화를 삭인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싱글싱글 웃으며 바라보던 유하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젊은 남자를 보았다. 맥없이 하늘을 보던 남자다.
“어서 오세요.”
유하의 인사에 마작 패를 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문가로 쏠렸다.
몇 분 뒤. 단순한 관광객이 아님을 알자 사장님의 표정은 굳어졌다. 자신의 이름을 김규진이라 밝힌 남자는 이미 몇 군데서도 거절을 당해 사장님께 매달리다시피 부탁을 했다.
“제발 부탁 입니다. 그저 제가 중국어를 못하니 지리와 언어가 되시는 가이드님 한 분만…”
“죄송합니다만, 그런 건 경찰에 맡기심이 좋을 듯합니다. 괜히 우리가 얼쩡거리다간 그 피해가 크니까요.”
“부탁드립니다. 그저 그 입구까지만, 아니 말이라도…”
정말 간절한 그의 모습에 유하는 부장님의 눈치를 살폈다. 부장님 또한 안타까움에 애꿎은 담배만 폈다. 그리고 유하의 시선을 느낀 그가 힐끗 마주보았다.
“유하한테 시키시죠.”
“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부장을 바라보는 사장님은 기가 차 보였다. 그에 반해 한 줄기의 빛을 본 듯 규진이 유하를 보았다. 서늘한 바람이 사무실 안을 훑고 지나갔다. 유하가 웃었다.
“시키시면 하죠, 뭐.”
“저 봐, 저 자식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저 넉살 좋게 웃을 때냐?”
책상을 쾅 치고 유하를 가리키던 사장은 이성을 차리려고 애썼다. 부장이 두꺼운 그의 팔을 다독거리며 진정시켰다.
“사장님, 손님 앞에서 그렇게 말씀 하시면 안 되죠.”
“안 돼,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 요즘 그 녀석들 신경 예민해져서 조금만 들쑤셔도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어! 반대파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그놈들 죽이고 있다고 아! 신문도 안 봐??”
“그러니까 손님 앞에서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된단 말이에요.”
사무실을 나가는 규진의 뒷모습을 본다.
“누굴 찾는다고요?”
다시 마작 준비를 하는 사무실. 유하의 물음에 부장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 전인가? 신혼여행을 이곳으로 왔는데 신부가 납치 당했나봐. 어떻게든 찾고 싶은 그 마음 모르는 것도 아니지.”
“아니 그렇다고 유하를 보내자는 말이 나와?”
다시 차 한 모금을 마시고 사장이 투덜거렸다. 부장님은 안경을 고쳐 썼다.
“그건 자네에게 조금 미안해.”
“왜요?”
“그 납치를 한 놈이 삼합회의 조직원이라고 은근히 소문이 나 있거든. 그러니 공안들도 제대로 손도 못 대는 거야. 여기 공안들 잘 알잖아. 그를 도와 이리저리 찝쩍거리면 자네도 무사하지 못할지도 모르거든.”
“그래서 다들 거절한 거군요.”
“그러나 자네라면 적당한 한도 내에서 끝낼 거라 생각하기도 했고.”
“제가요?”
“싱글벙글 웃고 있어도 그 속내는 모르는 거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리와 앉아!”
“네, 네.”
다시 마작하러 가는 부장님은 사장님이 삿대질을 해도 어깨만 으쓱였다. 유하는 웃었다.
“아, 그 살인마 얘기 해 주세요.”
“뭐?”
“삼합회 놈들 죽인다는.”
유하는 탁자의 한 면에 앉아 턱을 괴고 할아버지가 옛날 얘기를 해주시는 것처럼 기대를 잔뜩 했다. 사장은 딱한 표정을 짓는다.
“신문 좀 보고 살아라, 녀석아.”
“그거 아무데서나 말하면 안 돼. 그 녀석들한테 끌려갈지도 몰라.”
부장님의 주의에 사장님은 패를 쥐며 좌중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그 살인마가 몇 명을 죽였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행태가 가면 갈수록 잔인해지고 있대. 배를 째거나, 손발가락 하나씩 다 자르거나. 그런데 조직의 그런 놈들 일일이 다 상대 하는 거 보면 그 놈은 힘이 천하장사 일 것 같아.”
소름 돋지만, 잔인한 얘기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게 했다. 그럼 근육질인 반대파 유망 행동대장 일까? 저마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갔고, 대부분 소설 써도 무색할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샛길로 흘러 한국에 유명한 여가수가 중국의 대기업 회장과 몰래 데이트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우와”
역시 돈이라면 뭐든지 가능하기에 모두들 부러워했다.
퇴근시간이었다. 더 놀다 가라는 사장님의 의미심장한 말을 뒤로 하고 유하는 어둑해진 거리에 발을 내딛으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저기, 죄송합니다.”
유하의 앞으로 아까 돌아갔으리라 생각됐던 규진이 달려와 섰다. 유하는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결연한 눈빛의 규진은 유하를 마주봤다. 담배를 입에 물며 왼손목에 찬 갈색 가죽 끈으로 된 시계를 보았다. PM. 9: 05. 돌아가지 않고 계속 이곳에서 그를 기다린 듯했다.
“부탁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아.”
규진이 허리 숙여 도움을 요청하자 유하는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였다. 뭣도 모르고 시켜만 주면 하겠다고 대답한 것이 규진에겐 실낱같은 희망이었나 보다.
“꽤 귀찮네.”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괜히 아까 한다고 알짱거렸나.
“제발 혜진이를 찾게 도와주십시오.”
“지금 죽으면 좆도 안 되는 건데.”
“도와만 주신다면 사례는 톡톡히 치르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남자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다들 말했다. 가망 같은 건 없다고. 수차례 거절을 당한 이가 모를 리 없다. 여자가 살았는지 아니면 죽었는지조차 모르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도 막막하겠지.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 달이란 시간은 서로를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데 충분하고도 남았다.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한 순간, 그 순간에 모든 것이 뒤틀린다. 유하의 침묵에 규진의 몸이 떨렸다.
“혜진이는 살아있습니다.”
“웃기지 마. 네가 어떻게 알아?”
“안 죽었습니다. 그 누군가에 의해 혜진이가 죽어야 한다면, 제가 그녀 대신 죽어야 합니다.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아직 입니다.”
유하는 말없이 담배를 바닥에 떨어트려 하얀 스니커즈를 신은 발로 비벼 껐다. 무모함엔 답이 없다. 피식 비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너만 죽겠다는 게, 그게 현실적이냐? 둘 다 발라져 시장에 나오는 것이 현실이야. 사람 참 로맨틱해. 평생 그러고 살라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위안이 된다면.
유하는 비어져 나오는 조소를 감추지 않았다. 간절함이 깃든 규진의 얼굴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 놈을 압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 놈만 찾으면 혜진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 놈만, 그 놈만 찾으면 됩니다.”
“그 놈을 어디서 찾는다는 거야? 그 놈이 미쳤다고 한 지역에 계속 있을 거 같아?”
“공항에서 택시기사로 위장했었어요. 한국말로 인사도 했지요. 기념품 파는 거리에서 관심을 끌게 했습니다. 혜진이가 작은 청자를 사달라고 해서 택시에서 내렸어요.”
“입 아프게 그런 얘길 왜 해?”
“왜 내렸을까요?”
돌아서는 유하의 소매를 잡고 규진은 매달렸다. 그리고 울먹이며 물었다. 귀찮은 듯 유하는 그 손을 털어냈다. 알게 뭐야, 그런 일은 늘 한 순간이라고! 그의 귓가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다.
“매일 밤 꿈에 놈이 나타납니다. 꿈에서조차 혜진이를 숨겨놓고 이죽거리죠. 꿈틀대는 눈 밑의 검은 점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잊지 못합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꿈틀대는 눈 밑의 검은 점을. 울부짖는 규진의 말에 왼쪽 가슴이 쓰라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