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엔 힘이 있어서 내뱉은 대로 이루어지는 걸까? 중학교 때 책상 앞에서 죽겠다며 손목을 그었을 때부터 결국 난 이런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던 것인가. 그것이 신의 섭리인가? 이 우주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세계를 질서 있게 만들기 위해 언어의 법칙을 적용한 것인가?
난간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살벌하다. 내 몸은 부서지고 피가 튈 것이며 머리는 서리 도중 떨어뜨린 수박처럼 으깨질 것이다. 안구가 튀어나올까봐 걱정이 됐다. 그건 너무 꼴사나우니까.
나는 항상 품위 있는 죽음을 원했다. 순식간에 끝나는 것보다는 음미하는 죽음을 원했다. 손목 자살을 동경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피가 빠지는 동안 천천히 죽음에 접근하고 싶었다.
아니다. 거짓이다. 결국 이것은 인터넷과 인터넷이 만들어낸 언론의 힘일 뿐이다. 사이버 상의 심판자들. 인정도 도리는 모르는 그저 재미만을 위해 피해보지 않는 선에서 즐기려는 무지한 배심원들 때문이다. 이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
나는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어느 반에나 한 명씩은 있는 투명인간.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아이들 속에 나는 없었다. 인생이란 롤플레잉 게임 같다고 생각했다. 적을 해치우면 더 강한 적이 나타나고 그놈을 해치우면 또 다른 보스가 등장한다.
이룰 수 있을지 모를 꿈을 위해 매달리지만 현실에 가로막히고 도달했다고 착각할 즈음엔 죽음이 기다리는, 태어난 것도 자기의지가 아닌데 죽을 권리 정도는 줘야 하지 않을까? 어째서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자살하면 의지가 나약하다느니 정신상태가 썩었느니 라며 조롱하는 것일까.
나의 이런 생각은 나를 자살시키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명분 없는 결심은 아니었다.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아빠, 배다른 동생, 그것을 보고 덩달아 바람이 난 엄마까지, 부모 양쪽에게 버림당해 본적이 있는가? 나 자신은 잘못 뿌려진 정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지긋지긋한 년! 애새끼 때문에 참는 줄 알아!”
“당신 따위 꺼져버려! 지연이만 아니면 정말.”
아빠와 엄마는 툭하면 서로에게 소리쳤다. 버림받은 주제에 발목까지 잡다니 나는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가. 엄마는 부부싸움이 있던 날에는 방문을 열고 내가 누워 있는 침대를 한참 동안 바라보곤 했다. 감당 못할 이야기가 나올까봐 그럴 때면 일부러 잠든 척 연기를 했다. 내가 죽어주면 둘은 각자의 인생을 찾아가겠지.
마음을 터놓을 만한 친구도 없는 내게 인터넷은 탈출구였다. 학교에서는 나조차도 따분해할 인간이지만 그곳에선 보드소녀라는 캐릭터로 살아갈 수 있었다. 얼굴과 목소리만 사라졌는데 어째서 이렇게 편안한 기분이 드는 걸까.
하루에도 수십 명씩 낯선 사람과 부딪혔지만 위축되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시선이란 개인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죽는 걸 두려워하지 마. 죽음은 완전한 자유지.”
“자살을 욕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죽을 용기 하나 없어서 이 지옥을 살아가는 하찮은 생명체들이라고.”
가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자들과 만나기도 했다. 나는 이들로부터 자살에 대한 지식을 쌓아갔다.
익사는 쉬운 자살법이다. 바다, 강, 호수뿐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물이 있는 곳이라면 가능하기 때문에 80퍼센트 정도의 성공률을 보인다. 고전적이고 감정적인 자살 방법으로 노인과 여자 연인들의 동반자살에 쓰이기도 한다.
자신이 혐오스러워 참을 수 없다면 화형을 택할 수도 있다. 5리터 이상의 가솔린을 부은 시체는 3미터의 불꽃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 방법은 죽음에 대한 고통을 100배 높인다.
빨리 끝내고 싶다면 달리는 차 안에서 뛰어내리거나 높은 곳에서 낙하 할 수도 있다. 질식사, 감전사, 약물, 맹독을 가진 곤충에 의한 중독……, 어떤 것은 빠르고 어떤 것은 오래 걸린다. 하지만 무엇이든 자신을 죽이는데 쓸 수 있었다.
자신과 남을 살해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쁜 짓일까? 중학교 때 손목을 그은 이후 자해는 나에게 습관으로 자리 잡혔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손목에 낙인 된 흉터만도 줄잡아 20개가 넘었다. 커터 칼이 가장 편했지만 병조각이나 뚜껑, 포크나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려 긋기도 했다. 면도날은 피했는데 얇고 한들거려 힘 조절을 하기 어려워서였다.
알루미늄캔을 반으로 잘라 그 단면으로 살을 긋는다. 예리하지만 치명적일 정도는 아니라 몇 번이고 그어나갔다. 죽으려고 긋는 것이 아닌 죽지 않는 것을 알기에 안전지대 속에서 행하는 나름의 해소법이었다.
장판 위로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보노라면 나 자신이 스스로의 생명을 통제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그날이 아니지만 원하면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 사실은 부모님들의 전쟁으로부터 나를 버티게 해줬다.
*
교실 문을 열자 모여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내 쪽을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나는 항상 수업이 시작되기 직전 아슬아슬 등교했기 때문에 교사라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계속해 봐, 미주 그년 순 내숭이었잖아?”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날라리들만 불쌍하게 됐네.”
“무슨 얘기 중이야?”
평소의 나는 이런 식으로 끼어들지 못했다. 무시당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반에서 나는 존재감 없는 아이였고 같이 다니는 두 명을 제외하곤 내 의견을 귀담아 주는 존재는 없는 편이었다.
“옆 반 수학여행비 털린 거 있잖아? 그거 박미주 짓이래.”
“그년 때문에 은영이만 의심받았잖아. 쌍년이 범생이면 범생이답게 공부나 할 것이지.”
일주일 전 수학여행비로 걷은 420만 원을 도난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체육시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당시 교실에는 당번인 박미주와 농땡이를 치고 있던 날라리 몇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평소 얌전하고 공부만 하는 박미주보다야 문제 많은 날라리 쪽이 의심을 받았는데 오늘 박미주가 교무실에 찾아가 직접 자백했다는 것이었다.
“훔치려 한 게 아니라 빌리려 했다나? 그렇게 따지면 세상천지 도둑질 아닌 게 어디 있는데?”
“그 반도 재수 똥이지. 그년 하나 때문에 여행도 못 가고 뭐야?”
솔직히 부럽다는 느낌이었다. 나같이 비사교적인 학생에게 며칠 동안의 단체생활은 피곤하고 숨 막히는 일이었다. 빠지고 싶지만 집안이 어렵다는 오해를 받거나 혼자만 튀는 행동으로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았다. 주변이야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사는 것 같으면서도 속으로는 반에게 피해를 주는 인간으로 비춰지길 두려워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부탁을 하면 거절 못하고 들어준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며 뒤돌아서 나에 대해 나쁜 말이라도 하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따돌림을 받지 않으려 노력하며 이런 나라도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켜주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이런 소심한 내가 자살에 성공할 수 있을까? 고갤 돌리니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사이로 햇볕이 시리게 내리쬐고 있었다.
‘떨어지자. 19일에 모든 걸 끝내는 거야.’
어떻게 끝낼지를 결정했다. 집에서 죽는다면 목을 매거나 약밖에 없을 것인데 아픈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르다 발견되는 꼴사나운 짓보단 바람을 가르며 날고 싶었다.
19일을 선택한 것은 그 날이 생일이기 때문이다. 생일날이 기일이 되면 죽어서도 생일 축하를 받을 수 있다. 부모님 입장에서도 두 번 챙겨야 할 번거로움이 한 번으로 주는 것이다.
또 그날은 개교기념일이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좋던 싫든 개교기념일이 되면 김지연이라는 인간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한 번쯤은 나도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
p사이트는 회원수 100만의 채팅사이트로 다양한 종류의 클럽과 게시판이 활성화 돼 있었다. 대기실에서 슬러시와 아이디를 치면 그 사람의 닉네임과 지역, 인사말 따위가 뜨게 된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 난 프로필을 고쳤다.
/jaygear
보드소녀(jaygear)
18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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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학교 옥상에서 나는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한다.
‘죽기 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몇 초가 지나자 이것저것 떠오르기 시작했다. 부모님께 손수 차린 식사를 대접하자. 몇 달째 카트에만 넣어둔 게임기를 사자. 바다를 보자. 동이 터 올 때까지 새벽 거리를 거닐자.
“지연아, 빨래 좀 널어라!”
엄마의 목소리에 인터넷 창을 꺼버렸다. 방문을 나서니 거실에서 신문을 보던 아빠가 고갤 돌렸다.
“오늘은 외식이라도 할까?”
“밥하고 국 다 끓여놨는데 무슨 외식이람. 고등어조림 해 놨으니 그거하고 밥 먹어요.”
“사람이 만날 밥만 먹고 사나. 지연아, 어떠니? 고기 먹으러 안 갈래?”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요일 오후에 텔레비전에선 요즘 한창 인기인 드라마를 재방송해 주고 있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모처럼 가족이 뭉칠 기회라는 것에 마음이 들떠왔다. 기분 전환을 하면 엄마와 아빠도 사이가 좋아질지 모른다.
“갈비 어때요? 오늘따라 돼지갈비가 무지 당기는데.”
“것 봐, 애가 먹고 싶다잖아. 당신도 그러지 말고 가자고.”
엄마는 찬밥이 남으면 처리하기 힘들다는 식으로 투덜댔지만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가족끼리 나와 보는 게 얼마만일까. 어릴 적엔 자주 이랬는데 울적해졌다.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다. 어린이날과 생일엔 놀이공원으로 나들이를 갔고 크리스마스 때면 산타역할도 잊지 않았다.
아빠에 대한 믿음은 어느 이브 저녁, 내 손에 케이크를 들려주던 아빠가 또 다른 케이크를 차 안의 여자에게 건네주는 모습을 봤을 때 끝났지만 어쨌거나 난 아빠가 좋았다.
“이집 괜찮네. 많이 먹어라. 지연아, 뭐 더 시켜줄까?”
“아뇨. 배불러요.”
“당신은?”
“글쎄, 난 시원한 메밀국수나 먹어볼까?”
“앗! 차거!”
날카로운 목소리가 주변을 갈랐다. 반대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자의 옷이 젖어 있었다. 서빙하던 종업원이 실수로 물병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씹할 년아! 눈은 거죽이 모자라서 뚫어놨어?”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다야? 오늘 처음 입은 옷인데 어쩔 거야?”
“벗어주시면 말려드릴게요.”
“띨 하게 생겨갖고 가지가지 하네. 하나뿐인 옷을 벗으면 난 뭘 입고 있으라고? 아우, 짜증나! 재수 없으니까 꺼져!”
학생으로 보이는 아르바이트생이 울 듯한 얼굴로 사라졌다. 여자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종업원이 들어간 주방을 향해 욕설을 뱉었다.
“불쌍한데? 알바 관두면 어쩌려고.”
“불쌍은 개뿔, 병신 같은 게 확 밟아버릴까 보다.”
“좋은 날인데 그러려니 해라. 오늘 이렇게 노는 것도 다 미주 그 계집애 덕분이잖아. 근데 괜찮겠어?”
나는 눈을 의심했다. 어른스러운 옷차림과 화장에 가려 몰랐는데 이들은 옆 반의 날라리 무리였다. 쌍소리의 주인공인 은영이 소주병 옆의 담뱃갑에서 담배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래서 협박용 사진을 만든 거잖아. 그럴 배짱도 없는 년이야. 지금쯤 돈 만드느라 골치 깨나 썩고 있겠지.”
“좀 찔리긴 하다. 적은 금액도 아닌데.”
“신경 꺼. 그년이 물어 주냐? 그년 부모가 물어주는 거지. 퇴학 안 당하려면 지가 별 수 있어?”
“하긴, 당하는 쪽이 병신이지.”
등줄기에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저들이 내는 잡음에 대해선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특히 강은영은 전에 있던 학교에서 하도 문제를 일으켜서 전학을 온 입장이었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니까. 원 공공장소에서 하는 짓 좀 봐.”
“그러게, 기집 년들이 아무렇지 않게 담배나 피고 세상 좋아졌지.”
부모님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지 마세요. 가만히 계시라고요. 나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잘 나가다 왜 이렇게 꼬여버리는 걸까. 엄마가 불판 위의 고기를 앞접시에 덜어내며 소리쳤다.
“안 먹고 뭐해? 다 타잖아!”
고기를 먹는데 뒤통수가 따가웠다. 은영이 무리가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
초등학교 2학년, 엄마와 시장에 간 적이 있다. 과일가게 앞 바구니에 귤이 담겨 있었다. 제철이 아닌 때 나온 귤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꼭지에 붙은 녹색의 잎사귀가 눈길을 끌었다. 다른 것은 평범한데 유독 그 귤만이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존재 같아 어린 맘에 탐이 났던 것이다.
“너 뭐 숨기는 것 없니?”
나의 행복은 그날 저녁 끝이 났다. 엄마의 표정에서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조금 전까지의 만족스러움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난 엄마가 어느 순간 서랍을 열고 내가 훔친 귤을 찾아낼까 조마조마했지만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식의 여유를 부리며 자식이 스스로 실토하길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난 끝내 말하지 못했다. 귤이 서랍에서 썩어가는 며칠간 엄마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목구멍에 묵직한 것이 걸려 있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내 얼굴을 알아보진 못할 거야. 반도 다르잖아?’
나는 조용했고 튀는 행동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한 적이 없었다. 그래도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그 옛날 유년처럼 죄를 지은 것 같고 누군가 벌을 주러 올 것만 같았다.
“뭐해? 안 먹으면 내가 다 먹는다.”
“장조림은 내가 찜!”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들이 반찬통을 휘젓고 있었다. 심각한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지 못했던 걸까.
“작문 숙제 했어? 우린 안 했는데.”
“지연이 너도 하지 마라. 셋이 다 같이 혼나는 거야.”
“난 했는데…….”
“어? 진짜? 그럼 나 좀 베끼자!”
“나도 나도!”
있는 거라곤 간사함뿐이 없는 친구들과 부딪히고 있는 자신이 싫어졌다. 내 편은 아무데도 없다는 데서 오는 절망이 컸다는 게 맞을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자 이 상황이 역겨워져 벗어나고 싶었다.
“김지연이지?”
고갤 들자 은영이 서 있었다. 친구들은 뜻밖의 방문자에 호기심서린 표정을 지었다. 반 아이들 모두가 그런 눈치였다. 대부분의 시선이 내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밥 다 먹었으면 얘기 좀 할까?”
“저…….”
“잠깐이면 돼.”
부드러운 말이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다른 뜻을 품고 있는 말은 이런 거구나. 실감했다. 도시락 뚜껑을 대충 닫고 일어섰다. 복도를 지나 한적한 공간을 찾는 동안 계속 방광이 저렸다. 아직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 뇌는 벌써부터 무수한 데이터를 만들어내 나를 두렵게 했다.
“어제 식당에서 봤지?”
“…….”
“조용히 있어. 알겠어? 낄 데 안 낄 데 가리지 않고 나서다 피 보지 말란 뜻이야.”
알고 있다. 따지고 보면 박미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인물이었고 앞으로도 상관없을 인물이었다. 내가 나선다한들 날라리들이 발뺌하고 박미주가 협박을 안 당했다고 하면 그뿐이었다. 수긍한다는 투로 얌전히 있었지만 은영은 다른 식으로 생각했는지 날 벽으로 밀쳤다.
“까불지 마, 이년아, 기어오르지 말라고! 너 같은 거 손보는 건 일도 아니니까. 미주 그년이 괜히 쫄아서 고분고분한 줄 알아?”
시야가 흔들리며 아랫배에 고통이 밀려왔다. 나는 망가진 로봇처럼 중심을 못 잡고 쓰러졌다. 먼지투성이 바닥에 입술을 댄 채 몇 번이고 기침을 토했다. 배를 맞았는데 어째서 숨이 막히는 걸까.
“죽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봐. 주둥이 잘못 놀리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 줄 테니까.”
그날 이후로 은영은 노골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점심시간이면 밖으로 불러냈고 방과 후에도 빈 교실에 몇 시간이고 붙잡혀 있어야 했다. 체육복이나 준비물을 빌려가서 주지 않는 식으로 골탕을 먹이기도 했다.
잠들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밤이 이어졌다. 세상의 모든 일이 우연 같지만 우연으로 보이는 필연이라는 말처럼 내게 벌어지는 일들이 다 나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 같았다. 고통스러운 요소를 하나하나씩 추가해서 자살이란 필연을 이끌어내는 것 같았다.
동이 틀 때까지 뒤척이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도시락도 챙기지 못해 종이 울리자마자 매점으로 향했다. 가판대에는 벌써부터 줄이 늘어져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어깨를 쳤다.
“이런 데 있었냐? 오늘 열라 덥다. 그치?”
은영이 무리 중 하나인 윤성주였다.
“가만 있자. 뭘 먹을까? 쫄면도 땡기고 떡볶이도 땡기고 만두도 땡기네. 오호, 일찍 오니 크로켓도 있잖아?”
아무렇지 않게 새치기를 한 성주는 나를 밀치고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쫄면 1인분과 김말이 천원어치를 섞은 떡볶이에 크로켓까지 고르자 5800원이 나왔다.
“뭐해?”
“응?”
“계산 안 하고 뭐하냐고.”
잔뜩 구겨진 얼굴은 화장실에서 내 머리채를 휘어잡을 때와 똑같았다. 바보 취급 받고 있는 상황이 분명한데도 ‘내가 왜?’ 라고 묻기가 주저되었다. 지갑에는 6000원이 있었다. 돈을 내면 나는 굶어야 한다.
“6000원밖에 없는데.”
“그게 뭐?”
“도시락을 싸오지 않아서…….”
“뭐 어쩌라고 병신아? 내가 그런 것 까지 따져야 하냐? 졸라 짜증나게 하네.”
성주는 주문한 음식을 챙기더니 성큼성큼 사라졌다. 주인이 나를 쳐다봤고 줄서 있던 아이들이 짜증스럽게 투덜대기 시작했다. 돈을 치르고 교실로 돌아가는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오른 살기는 목구멍을 틀어막고 탈출구를 찾듯이 피부 위로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죽여 버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속삭였다.
‘어차피 자살할 거잖아. 네 자신이 저승사자가 되어 그 염병할 년들에게 죽음을 전해주는 거야.’
하지만 이내 분노에게 밀려난 이성적인 자아가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순 없다고 약한 소리를 냈다.
‘왜 안 되는데? 그런 쓰레기들은 사회에 있어봤자 폐만 끼칠 뿐이야. 나중에 생길 피해자들을 위해 없애주면 좋잖아.’
살의와 체념의 감정이 실타래가 엉키듯 복잡하게 교차했다. 소극적인 대처를 할 수밖에 없던 것은 잃을 게 있기 때문이다. 나의 세상을 유지시켜야 했으므로. 나의 세상을 포기하면? 그때도 저들의 가치가 지금과 같을까?
6반 문을 열어젖히자 창가 구석에 모여앉아 분식을 먹고 있던 날라리들이 시선을 돌렸다.
“돌려줘.”
“뭐?”
“돈 돌려 달라고.”
“뭐라고 씨불이는 거야? 약 처먹었냐?”
“쌍년이 돌았나. 너 오늘 한 번 죽어볼래?”
책상 위에 포크가 있었다. 그걸 쥐고 네 살배기가 도화지에 낙서를 하듯 위아래로 그어댔다. 덤벼들던 날라리들은 얼어붙은 것처럼 자리에 멈췄다. 멈추지 않고 더 힘을 주었다. 붉은색 줄이 수도 없이 생겨나며 보풀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살갗이 너덜거렸다.
“말로만 그러지 말고 진짜로 죽여 봐.”
“…….”
“해보라니까. 못해? 그럼 앞으로 건드리지 마.”
그 사건이 어떻게 비춰졌는지 몰라도 은영이 무리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멀리서 걸어오다가도 나를 보면 방향을 바꿨다. 반 아이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위험한 물건 보듯 피하는 부류도 있지만 대부분은 호의를 갖고 친한 척을 했다.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갔는데 놀러가는 무리에 끼거나 패스트푸드 점에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가사 실습 때 같은 조가 되자고 청하거나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갖고 내 책상으로 건너오는 아이들이 생겨난 것도 전에 없던 변화였다. 갑자기 학교생활이 즐거워져 ‘이래도 되나?’란 의문이 들었다.
*
새벽녘 요란한 소리에 눈을 떴다. 빗줄기가 사정없이 창문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온 세상을 쓸어버릴 것처럼 비는 기세 좋게 퍼부어댔다. 수학여행을 가는 부담으로 늦게까지 잠을 못 이뤘던 나는 어설픈 수면으로 부은 눈을 확인하며 컴퓨터를 켰다. 부모님께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며칠 전부터 해왔는데 지금이 적기 같았다.
워드프로그램을 열다가 로그인을 했다. 한동안 사이트에 들어와 보질 못해 보나마나 스팸 메일이 엄청 쌓여 있을 것이다.
보드소녀(jaygear)님 환영합니다.
· 편지읽기
· 편지쓰기
· 수신확인
· 받은편지
· 클럽편지 (7)
· 보낸편지
· 임시보관
· 스팸편지 (22)
· 휴지통
편지함을 정리하는데 상단의 쪽지 아이콘이 깜박였다. 평소 스팸 메일은 자주와도 쪽지가 오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의아했다.
격추왕(hartmann)
세상은 밝아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힘내세요!
줄리아푸우(ajdajd)
보드소녀님, 프로필에 쓴 말 진짜 아니죠? 거짓말이죠? 무섭게 왜 그래요. 푸우한테 얘기해 봐요.
이토(alcmgktl)
생명은 스위치처럼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잃어버린 생명은 영원히 복원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해 보세요.
그린파파야(dlgpwjd)
너 같은 인간이 제일 한심해. 자살할 용기 있으면 악착같이 살아라. 병신.
브라이언(bryangim)
아무리 힘들어도 죽는 건 용서받지 못할 죄입니다. 환생도 못하고 지옥에 떨어질 걸요. 연락 주세요. 같이 고민해 봅시다.
친구 등록을 해둔 아이디도 있지만 대부분은 처음 보는 아이디였다. 내 프로필이 이 정도로 이슈가 되었나? 대기실에서 아이디를 쳐보면 희한한 프로필을 가진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누구누구를 죽이겠다는 말을 써놓거나 불특정다수를 향한 욕설, 음담패설을 적어놓은 사람이 수도 없었다. 자살이 뭐 어쨌는데? 개인의 사생활에 왜 타인이 관심을 갖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무슨 대답을 할까. 솔직한 마음속은 저울질 중이었다. 부모님의 사이가 좋아지고 내가 설 곳이 생긴다면 굳이 자살이란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거기다 감사하지도 않았다. 감사는커녕 남의 정보를 엿보고 바라지 않은 동정을 해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쪽지 보내기를 취소하고 원래 계획대로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당신들의 싸움으로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다는 것과 수면제를 모으려고 약국을 돌아다녔던 일, 지금도 머릿속엔 죽을 생각밖에 없다는 내용을 읽게 되면 두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제까지 난 수동적인 입장이었다. 타인을 지나치게 신경 쓰고 내가 아니라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만 집중했다. 마음에도 없는 거짓 웃음을 지으며 상대가 기분 상하는 짓을 해도 넓은 마음을 가진 척 넘어갔다. 이해심이 많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전혀 풀리지도 않았거니와 그런 자신이 바보 같아 괴로웠다.
부모님의 일로 고통스러우면서도 심장을 건드리는 아픔에 대해 아무 표현도 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것을 울타리 안에서 방관하며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체념했다. 몸속의 피를 밖으로 꺼내는 것은 그런 병적인 소심함을 걷어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체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랑합니다. 자식을 위해 마음을 돌려주세요. 한 번 더 서로를 생각해 주세요. 편지의 속뜻은 그것이었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부모님을 사랑했다.
*
버스에서 내린 나는 눈을 의심했다. 교문 근처에 엄마가 서 있었다. 엄마가 마중을 나온 것은 초등학교 2학년 이후 처음이라 말문이 막혔다. 지금은 그때처럼 비도 오지 않았고 우산을 가져왔다는 식의 목적이 보이는 방문도 아니었다.
나를 본 엄마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런 엄마의 입술은 무슨 말을 하려다 포기한 것처럼 살짝 벌어진 채 굳어 있었다.
“어쩐 일이야. 왜 나와 있어?”
엄마는 내 손을 잡더니 앞으로 돌렸다. 언제나 감추려고 기를 쓰던 손목이었다. 돌연 엄마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한 번도 본적 없는 모습이라 당황스러웠다. 부부싸움으로 어떤 심한 말을 들어도 울지 않던 엄마였다.
어깨를 쓸어주려 했지만 손가락을 깍지 낀 채 풀어주지 않았다.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그동안 내가 그토록 고통스러워한지 몰랐다며, 늘 조용히 넘어가서 이해해 줄줄 알았다고 했다.
“오해하는 게 있어서 말해 두는데 엄마에게 다른 남자는 없어.”
엄마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우리 가족에게 벌어진 일을 알게 됐다. 아빠가 하룻밤의 실수로 어떤 여자를 임신 시켰고 그 때문에 도의적 책임으로 생활비를 지원해 왔다. 엄마는 인연을 끊으라 했지만 아빠는 책임감을 저버릴 수 없었다. 납득할 수 없는 마음과 분한 감정에 다른 남자가 있는 것처럼 거짓말 했다고 했다.
“걱정하지 마. 이혼 안 해. 아빠도 지연이 얼마나 사랑하는데. 네 아빠가 책임감이 강해서 여태껏 그래왔지만…… 그 여자도 돌봐줄 다른 남자가 생겼고 아빠도 가족한테만 충실하기로 했다.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엄마의 진심만은 느껴져 무언가 좋은 결론이 나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
편지 사건 후 집은 평화로워졌다. 부모님은 전처럼 싸우지 않았고 어쩌다 부딪혀도 언성을 높이는 대신 상황을 되짚으며 부드럽게 넘어갔다. 집안에 웃음이 많아지고 나도 활기를 되찾았다.
전에는 생각하지 않던 꿈이나 장래에 대해 고민하는 날이 많아졌다. 대학은 어디를 목표로 할까. 무슨 과를 갈까. 중학교 때까지 매달리다 포기한 만화도 다시 그렸다. 종착역만을 남겨두던 삶이 새로운 노선을 향해 출발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감자 사 놓은 게 그대로네. 버섯도 계속 놔두면 썩을 텐데, 저녁에 카레나 해 먹을까?”
“내가 할게.”
“네가?”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 끓이는 것과 달걀부침밖에 없는 내가 카레를 만들겠다고 하자 엄마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카레를 만드는 동안 부모님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봤다.
엄마가 소파에 앉았고 아빠는 바닥에 다리를 뻗은 채로 등을 기대고 있었다. 화면 속에선 요즘 인기인 코미디언이 나오고 있었다. 아빠는 오락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엄마 때문에 양보한 것 같았다. 안락하고 친밀한 기운에 우리 가족은 셋임을 실감했다.
그날, 사이트에 접속했다. 자살은 포기했는데 프로필은 그대로 놔뒀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쪽지함을 누른 나는 눈을 의심했다.
내가 받은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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