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전 지하에는 금서(禁書)가 산다

도서전 지하에는 금서(禁書)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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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야 원, 정말 큰일 났네. 그녀는 커다란 부스 앞에서 망연히 서 있었다. 깔끔한 디자인의 현수막이 사람 속도 모르고 당당히 자태를 뽐낸다.

태양이 이글이글한 볕을 뿌리는 여름, 국제도서전의 막이 올랐다. 이 더운 날씨에도 인파가 어마어마했다. 요즘 사람들은 기운도 차지. 그녀는 함께 녹아내릴 것 같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 번 겪어봤는데도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러나 이 북적북적함마저 기꺼운 일이었다. 솔직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정도는 고난이라고 하기도 우습다. 올해는 정말로 걱정이 들었던 탓이다. 행사가 개최될 수 있을지 아닐지. 그녀뿐만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든 같은 근심에 빠졌을 것이었다. 망할 역병! 불쾌했던 먼 옛날 일까지 새록새록 떠올라 더더욱 욕설을 참기 어려웠다. 그녀는 체면은 지키고자 말간 낯을 가장한 채 뇌까리다가 흥미로운 출판사를 발견하고 방긋 웃었다. ‘도서출판 닫힌책들’. 이미 고인이 된 작가들⎯대체로 17세기~18세기의 작가들이었다⎯전(展). 그녀의 목적에도 부합하는 특설 부스였다. 그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가장 음울한 표지를 두른 책을 한 권 구매했다. 라인업이 훌륭해서 기쁘게 망설이느라 혼났다. 인간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나오며 남은 권수를 헤아렸다.

국제도서전에는 규칙이 있다.

아는 사람만 아는 규칙이었지만 확실히 존재한다. 그들은 그것을 잊고 살다가도 도서전 당일에 불현듯 상기해내곤 펄쩍 뛰었다. 그다지 눈에 띄는 행위는 아니었다. 갑자기 사람이 솟구쳐 오르는 것쯤이야 그럴 수 있지. 걸어만 다녀도 가슴 뛰는 행사장이니까. 아무튼 규칙을 기억해낸 자들은 곧 둘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의식적으로 규칙을 지키는 부류이고 하나는 의식적으로 지키지 않아야 하는 부류였다. 어느 쪽이 더 스릴 넘치느냐 하면 그건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겠다.

그녀가 어기는 중인 규칙 제 4조: ‘도서전에서 검은색 표지의 책을 마흔네 권 이상 소지하지 마시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