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은 죽음을 먹고 살았다. 그에겐 어떠한 비유적 표현도 허용되지 않았다. 그는 말 그대로의 죽음을 먹고 살았다. 이모는 그런 지장을 안아주며 말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살생 없이 살아갈 수 없다고, 그러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지옥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천벌을 받고 있다고 했다.
지장은 다섯 살 무렵의 어느 날,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다. 자신의 손끝이 어머니의 손과 다르고, 자신의 발끝이 어머니의 발과 다르고 자신의 얼굴이, 눈이, 들이쉬는 숨이, 호흡이, 공기의 흐름이 어머니와 전혀 다른 규칙성을 띠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지장은 세계로부터 분리되었다.
자신과 다른 손끝의 존재가 그의 울음을 달래주었을 때 그는 단절감에 세상을 밀어냈다. 그 사이의 틈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어머니가 두드리는 자신의 등이 얼어붙었고 쓰다듬는 머리가 식었으며, 그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본 흰 달이 찼다. 달은 쳐다보는 것만으로 눈이 시렸다. 그가 눈을 감았을 때 달의 잔상은 그의 눈꺼풀 안으로 들어왔고, 그가 두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을 때 그는 사실은 그가 아니라 어머니가 얼어붙었다는, 아주 명쾌하고도 복잡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분명 그때 얼어붙었다. 그는 확실하게 자신의 마지막 숨을 기억했다.
“언 땅 내린다.”
지장의 말에 이모는 방금 풀어놓은 짐을 다시 집어 들었다.
“벌써?”
간신히 구해 온 죽은 가지들로 피운 불의 기세가 점차 누그러졌다. 그들을 지나치던 찬바람마저 추위에 얼어붙은 듯 그 공간에 움직이는 것이 꺼져가는 모닥불의 연기뿐이었을 때, 이모는 지장을 일으켰다. 언 땅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것이 하늘에서 내리는 천벌인지 땅의 역습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은 인간들이 정복한 땅 어느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해 계속해서 자신의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언 땅이 내리고 나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은 얼어붙었다. 인간들은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존재 여부도 불투명한 피난처로 향했다. 그들이 돌아가는 걸음은 모두 길이 되었으나, 그들이 머무는 공간이 약속의 땅이 되지는 못했다. 생명의 사슬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면 지장은 다시금 세상에서 추방되었다.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의 상상된 경계로부터 지장은 죽어 가는 모든 소리를 들었다. 이모가 넌지시 지장에게 어떤 소리가 들리느냐 물었을 때,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 답했다.
-파도 소리가 나.
저 멀리서부터 있는 힘껏 달려와서 몸을 부딪쳐 사라지는 소리. 그렇게 잘게 부서지는 소리가 나.
바다를 본 적도 없는 주제에 지장은 그렇게 말했다. 이모는 구태여 더 캐묻지 않았다. 이모는 항상 지장의 이야기를 믿었다.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고 말할 때도, 언 땅이 내린다고 말할 때도, 그리고 자신은 죽음을 먹고 살아간다고 했을 때도 이모는 되묻는 법이 없었다. 그 대신 이모는 그날부터 사람을 죽였다. 지장은 그것이 그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는지, 마지막 남은 혈육에 대한 보호 본능이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그 무엇도 그가 원하는 답이 아니기 때문에 지장 또한 이모에게 구태여 묻지 않았다. 서로에게 향하는 질문은 소거되었으나 그들은 서로가 같은 선 위에 서 있다고 믿었다. 그 둘에게 침묵은 그들을 잇는 피보다 진했다고 지장은 믿었다.
지장은 자신을 따라오는 파도 소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변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항상 그랬다. 이모는 걸음을 재촉했다.
“잡히겠어?”
지장은 고개를 저었다.
“느려. 천천히 온다.”
이모는 허리춤의 잭나이프를 고쳐 잡았다. 언 땅이 내리면 어제까지 등을 붙이고 잠든 이의 죽음을 목격한 생존자들이 경계에서 도망쳐 나왔다. 지장과 엮여야 좋을 것이 없었다.
“여기 거리만 지나서 쉬자. 거기까지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