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도시락 싸줄 거래.”
저녁 내내 딸아이는 들떠 있었다.
“선생님이 거기 가서 놀다가 밥 먹을 거랬어. 거기도 미끄럼틀 있어?”
“있을걸?”
“카페에 미끄럼틀보다 커? 다른 거는? 그네도 있어?”
밥 한술에 질문 하나, 포크질 한 번에 또 질문 하나. 아이의 머릿속엔 그저 내일 어린이집에서 갈 소풍 생각뿐이었다. 그 덕에 아이의 식판은 물론, 질문 세례를 받는 남편의 그릇도 음식이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나는 둘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시금치나물과 멸치 조림을 재빨리 내 입에 욱여넣었다. 아이가 식사에 집중하지 않는 지금이 내 밥을 챙길 타이밍이다.
“그네는 아빠도 모르겠다.”
한도 없이 늘어지는 문답에 지치는지, 남편의 목소리는 점점 심드렁해져 갔다. 아이는 그걸 또 귀신같이 알아챘다.
“아빠는 안 가봤지? 전부 다 모른다고 하잖아. 아빠 대공원 가본 적 없지.”
“그러네. 아빤 대공원 어딨는지도 몰라.”
“엄마는?”
내 쪽으로 고갤 홱 돌리는 아이를 보며 나는 반쯤 씹은 나물 덩어리를 꿀꺽 삼켰다. 그 사이 남편은 숟가락에 밥을 고봉으로 떠 냉큼 제 입에 밀어 넣었다.
“엄마도 대공원 어딘지 몰라?”
“이 도시에 있는 공원은 엄마도 가본 적이 없네.”
“왜?”
“시간이 없었지. 그리고 어른끼리는 대공원에 안 가는 거야.”
“왜?”
“엄마도 아빠도 회사 가야 하잖아.”
“회사 가서 일해야 하니까?”
“그치.”
“왜?”
“그만. 밥 먹자, 밥.”
난 아이의 숟가락에 멸치를 올리며 주의를 끌었다.
“얼른 먹고 자야 내일 멀리 놀러 가지.”
질문에 답을 못 듣자 심술이 난 아이는 멸치를 식판에다 도로 쏟더니 숟가락으로 밥 덩어리에서 밥알을 한 톨 한 톨 떼어내며 딴청을 부렸다.
“밥 갖고 장난치면 안 돼.”
“장난 아니야.”
“어어? 얘 봐라.”
남편이 식탁에 수저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아이는 그의 눈을 피하며 식판 쪽으로 고갤 수그렸다.
“얌전히 밥 먹어. 알았어?”
남편이 말했다.
“……몰라.”
“자꾸 그러면 너 집에 못 들어온다?”
아이의 손이 느려졌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요즘 아이가 가장 겁내는 건 집에 들여보내지 않거나 집 밖으로 쫓아내겠다는 으름장이었다.
괜히 또 애와 소득 없는 말다툼이 붙을라, 나는 남편의 어깨를 잡았다.
“됐어. 애도 알아들었어.”
“당신 가만있어 봐.”
남편은 말리는 내 손을 털어냈다.
“아빠가 잘못한 거 알려주면 알겠습니다, 해야지. 고개 들고 다시 대답해.”
“싫어. 몰라.”
“누구 닮아 고집이 이렇게 세. 진짜 집 나갈래?”
“몰라!”
바락 소릴 지른 아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이의 눈망울이 카랑카랑해졌다. 그 모습이 지기 싫어하는 남편의 성미를 더욱 건드렸다.
“아빠 엄마 말 안 들을 거면 뭐 하러 이 집에 있어. 두고 봐. 내일 어린이집에 너 찾으러 안 갈 거야.”
“그만하라니까!”
결국 나까지 언성을 높였다.
“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왜 화를 내. 내가 애가 미워서 이래? 얘 성격 그냥 두면 어디 가서 욕먹어. 하여간…….”
어깨를 들썩이던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식탁 위에 냉기가 감돌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화목했건만.
아이를 달래는 게 우선이기에 난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로 조곤조곤 어르자 아이는 서러움이 더 북받치는지 내 뒷덜미에 팔을 감고 꽉 들러붙으며 숨넘어갈 것처럼 꺽꺽거렸다. 나는 세수라도 시킬 요량으로 아이를 품에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울음소리가 사이렌처럼 들렸다.
―
가장 오래된 기억 속에서, 나는 땡볕 아래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