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 장르: SF | 태그: #육아 #휴머노이드 #기억 #복제
  • 평점×15 | 분량: 248매
  • 소개: 육아가 너무 버겁고 힘들지만 아무한테나 아이를 맡길 순 없다! 애는 엄마가 봐야지! 그래서 육아 도우미 휴머노이드에 자신의 기억을 복제한 아이 엄마 맹하나. 외모도, 성격도, 행동... 더보기

하나 둘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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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가 물었다. 하나가 대답했다.
어, 날 복제해 줘. 얼굴이랑 기억 전부. 되지?”

“기술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불가능한 건 아니야. 근데 도대체 왜?”

“그래, 도대체 왜!”

하나의 남편 재원이 소리 지르며 끼어들었다. 그 바람에 그의 품에 안긴 아들 서진이 잠에서 깨어 칭얼거렸다. 하지만 재원은 모르는 듯 했다.

“그냥 휴머노이드만 받아서 가자니까!”

“그걸론 부족해.”

“그게 왜 부족해?”

“우리 서진이 잘 키워야지. 완벽하게, 아주, 잘.”

사실 그것은 진심의 한 단면일 뿐이었다. 하나는 예전 직장의 한 여자 상무를 기억하고 있었다. 회사에 몸 바친 사람으로, 회사 설립 후 최초의 여자 임원 자리에 올라 여직원들의 우상이었던 사람. 하지만 뒤에서는 ‘저 집은 애를 누가 볼까?’ 하는 수군거림을 당하던 사람.

여직원 모임에서 본 그녀는 인생의 실패자였다. 그녀에게는 대학생 아들이 하나 있는데 수년 째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들이 일만 하는 엄마를 싫어한다는 거였다. 아이를 봐주는 시어머니가 아닌 자기한테 정이 들어 출근할 때 붙잡을까 봐 퇴근하고 집에 가서도 아이를 안아주지 않았단다. 자기처럼 되기 싫으면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라는 거였다. 그래놓고 다음날 오후 5시 50분에 일거리를 던져주는 인간이었다.

후에 사람들 사이에서 ‘그럼 그렇지.’ 같은 조소가 흘러나왔다. 애엄마가 돼서 자식 농사를 망쳤는데 일만 잘 하면 뭐하냐는 거였다. 아이가 엄마와 애착 형성이 안 되면 저렇게 되는 거라고. 하지만 하나가 그녀를 실패자로 여긴 이유는 그녀의 아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 사람 스스로가 그렇게 단정 짓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사회적인 기준에서 볼 때 성공한 사람인데도 그녀 자신은 행복해 보이지가 않았다. 얼마나 뼈에 박힌 자책이면 부하 직원들 앞에서 그런 넋두리가 새어나왔을까 싶었다.

하나는 어느 남자 이사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역시 일벌레였다. 주말에 애 보기 싫어서 회사에 일하러 나온다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는데, 다른 직원들은 일주일 내내 노는 여름휴가도 딱 3일만 쓰고 그것조차도 일거리를 싸들고 가는 인간이었다. 덕분에 창사 이래 최연소 임원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그는 유능하고 성공한 비즈니스맨의 전형답게 얼굴에 늘 유쾌하고 자신감 넘치는 웃음이 흘렀다. 사람들은 그의 업적과 성과와 연봉을 전설처럼 얘기했지만 하나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이 불쌍했다. 그런데 그 생각은 혼자만의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은 그가 자식 농사를 잘 짓고 있는지에 관심이 없었다.

비슷한 두 사람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다른 것이 놀라웠다. 차이는 단지 자궁과 난소의 유무, 유선의 발달 여부뿐인데도. 보유한 장기(臟器)가 더 많다는 이유로 육아의 굴레도 더 무겁게 짊어져야 하는 걸까.

하나는 그 여자 상무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보란 듯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다. 물론 자신도 승승장구한다는 전제 하에. 문제는, 육아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이 나머지를 잡아먹는다는 것이었다. 왜 애를 낳고 나서야 이걸 알았을까.

아이는 부모의 희생으로 자란다. 육아라는 전쟁에서 시간 부족, 수면 부족은 소총이나 기관총 따위의 공격일 뿐이다. 맹하나라는 인간 자체가 사라져 가는 것, 그것은 핵미사일 급의 폭격이었다. 아이는 축복이요, 선물이다. 세이렌(Siren)의 노래처럼 사람들을 유혹하는 고리타분한 진실. 하지만 2절이 빠졌다. 축복과 선물에는 대가가 따른다. 세이렌의 노래에 미혹당한 사람들은 잡아먹히고 만다. 하나의 인생도 육아에 잠식당한 상태였다.

“기억 복제 안 해도 잘 봐 줄 거야.”

재원이 애원했지만 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새끼는 내가 봐야 돼. 뭘 믿고 아무것도 모르는 기계한테 맡겨? 그러니까 엄마를 더 만들어주면 되는 거야. 서진이도 남이 봐주는 것보다 엄마가 봐주는 걸 더 좋아할 거야.”

역시 하나는 그 여자 상무처럼 되고 싶지가 않았다. 이 의지는 모성애일까, 집착일까? 본능일까, 학습된 결과일까? 모른다. 애착에 관해 지껄여대는 육아 전문가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건지도. 한결같은 주장 아닌가? 아이의 생애 최초 3년간 엄마와 애착을 잘 형성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애는 바보가 되고, 성격도 더러워지고, 병도 잘 걸리고……. 어쩜 모유수유의 장단점과도 그리 똑같은지.

뭐가 어찌됐든 지금 하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내 아이는 내가 직접 돌봐야 한다는 강박, 그러면서도 아이 보기가 버겁고 힘들고 솔직히 귀찮기도 하다는 죄책감의 충돌이었다. 아이는 족쇄고 육아는 감옥이다. 무엇에도 비유할 수 없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이지만 그건 아이 자체의 가치일 뿐, 맹하나 자신의 가치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내가 저번에 그랬잖아. 손오공처럼 털 뽑아서 내 분신을 잔뜩 만든 다음에 살림, 육아, 일 다 시키고 난 무인도에서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고.”

“또 그 얘기야? 내가 무슨 중동 왕자도 아니고, 와이프가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건데.”

“맘에 안 들면 엄마 하나 아빠 하나 이렇게 만들어 달라 할까? 자기랑 똑같은 아빠 하나 더.”

재원이 펄쩍 뛰었다. 그 바람에 아이가 또 깨서 움찔거렸다.

“싫어, 싫어. 절대 안 돼. 나랑 똑같은 존재가 또 있다니, 생각만 해도 토 나와.”

“알았어, 그럼. 미지야, 그 생체형 휴머노이드에 내 얼굴과 기억을 복제 해 줘.”

“두 개 다?”

“응. 둘은 돼야 돼. 혼자 애 보고 살림하다 힘들다고 도망가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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