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는 빈자리가 있어서는 안 되었다. 환자가 죽어 나간 구석 자리 침상은 시트가 서둘러 거두어졌다. 투약 시간, 7111호에 들어갈 때 그 자리를 보지 않으려 애썼다. 세 명의 노인들은 약에 불평이 많았다. 네, 네, 우리 어머님은 약 먹을 때마다 애기 같으셔. 기계처럼 말을 출력하고 차트를 기록한 뒤 병실을 나왔다. 카트를 끌고 돌아오니, 낯선 얼굴이 스테이션 앞에 서 있었다. 흐트러졌지만 넥타이를 있는 힘껏 조인 차림과 저 웃음. 말하지 않아도, 제약회사 영업 사원임을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가 나를 보자 서글서글하게 인사했다. 나도 까딱, 고개를 숙였다.
“저, 원장님은 언제쯤 나오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아이고, 처음 뵙겠습니다. 저, 인애 제약에서 왔어요.”
인애 제약?
“박대리 대신이요.”
“아…”
죽은 사람 이름이 나오자 할 말이 없어졌다. 원장은 수술에 들어갔고, 나오려면 이십 분쯤이 남았다. 나온다고 해서 그가 원장을 언제 볼 수 있을지는 기약이 없었지만. 후, 깊은 숨을 내뱉었다. 이마에 맺혀있던 땀 한 줄기가 주욱 흘렀다. 리모컨을 들어 에어컨을 1도 낮추었다. 원장은 스테이션 위 천장에 달린 에어컨을 트는 걸 싫어했다. 나는 원장이 수술실에서 나오지 않기를 기다리며, 어색한 얼굴로 손을 비비고 제자리를 맴도는 새 영업 사원을 힐끗 한번 쳐다보았다. 저 사람은 나랑 반대로 원장을 기다리고 있겠지. 드르륵 소리와 함께 김미현 선생이 돌아왔다. 방금 채우고 온 간호기록을 훑는 미현의 얼굴에 피곤과 한숨을 참는 그늘이 스쳤다.
“그 젊은 환자… 17호던가? 그 사람 아직도 식사 잘 안 해?”
“네. 근데 대변량 보면 여전히 설사는 계속해요.”
“골치네. 항암제 바꿔도 계속 그렇잖아?”
“그러니까요.”
“에이 씨, 근데 배고파 죽겠네. 내 밥도 못 챙겨 먹고 화장실도 못 가고 일하는데 남의 식사랑 똥오줌은 맨날 체크하고…”
“그럼, 환자 하세요.”
굵고 낯선 목소리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새로 온 영업직원이었다.
“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잠시 상황을 파악했다.
“그게 억울하면, 환자 돼서 누워 계시라고요.”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저 새끼는 뭐지?
“대리님, 저희 대리님 의견 들으려고 환자 얘기 나누는 거 아니예요.”
헛웃음과 함께 쏘아붙였다.
“여기까지 다 들리니까요.”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대꾸했다.
“…대리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나도 그를 노려보고서 물었다.
“원장님 뵈면 말씀드리려고 했는데요.”
“장난하나…”
이를 악물고 혼잣말인양 작게 내뱉었다.
“…근데 원장님 수술 끝나면, 뵐 수나 있으려나요. 내킬 때까지 사람 한참 세워둘 텐데.”
그렇게 떠들더니 그 사람은 등을 휙 돌려 성큼성큼 엘리베이터 앞에 다가갔다. 그리고 인사도 없이 그대로 병동을 떠나갔다.
“미친 새끼 아냐? 일이 힘드니까 우리끼리 한 얘기에 개소리를 하더니 날라버려?”
어이가 없어서 미현을 향해 말했다. 미현은, 특유의 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또라이가 왔네… 어디서 급발진이야.”
기분을 잡쳐서인지 후끈, 병원 안이 한층 덥게 느껴졌다. 손부채질을 하며 에어컨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눌렀다. 정말이지, 짜증날만큼 숨막히는 더위였다. 아니, 죽음 같은 더위라고 나는 이내 말을 고친다. 사람들은 보통 죽음 하면 서늘함만을 생각하지만, 간호사로 일하며 내가 배운 건 죽음은 때로 지독하게 후덥지근하다는 사실이었다. 대학병원 병동에서 수명을 깎아 먹으며 일할 때 나는 곧잘 땀에 푹 젖곤 했다. 환자들은 추위를 자주 타서 병실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높은 기온이 유지됐다. 임종을 앞둔 환자를 가까이에서 처치할 때, 나는 그런 순간에조차 사람의 숨이 얼마나 뜨거운가 느끼고는 몸서리쳤다. 그곳에서 나는 더위에 질식할 뻔했다. 그대로는 죽을 것 같아서, 1년을 겨우 채우고는 로컬 병원의 공고를 알아보았다. 두 층을 입원실로 쓰는 내과였다. 원장은 소화기내과 교수를 하다 개업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요양병원이라 할 수는 없지만 암 환자들이 입원해 항암제를 맞고 가곤 했다. 이 병원이 항암제를 다루기에 적합한가, 확신할 수 없었다.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그 행위는 이루어졌고,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였다. 원장 둘과 페이닥터 둘이 있었는데, 내시경과 수술에는 자주 간호사가, 심지어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들어갔다. 원장실에 들어가면 제약회사 직원이 와이셔츠 소매를 걷고 세면대나 원장의 책상을 닦고 있곤 했다. 나는 방금 나간 낯선 얼굴의 대리를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그 인간도 박 대리처럼 원장실에서 걸레를 짜고, 김 원장의 딸을 픽업해 학원에 데려다주고, 주말이면 골프가방을 메고 원장을 따라다닐까? 저 성격에 그럴 수나 있으려나. 박 대리는 병원 올 때면 우리 커피도 사올만큼 친절한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속말 끝에 입안이 씁쓸했다. 출근 전 점심을 거른 탓일지도 모르지. 오늘은 저녁을 먹을 수 있을까. 어쨌든 그나마 숨돌릴 수 있는 시간이라, 나는 잠시 데스크에 턱을 괴고 생각에 빠지는 호사를 누렸다.
“선배님…”
그때, 미현이 나를 불렀다. 하얗게 질린 목소리였다.
“선배님, 이거요. 우리 병원 이야기 아니에요?”
미현이 들이민 스마트폰 안에는 기사 하나가 띄워져 있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