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도 사건집 – 하우스 블루스

  • 장르: 일반
  • 평점×10 | 분량: 94매
  • 소개: 주식 투자로 대박을 내서 집도 사고 퇴사도 하려 했던 주연 씨가 투자 실패 이후 사라졌다. 주연 씨의 남편은 전일도 탐정에게 아내를 찾아달라고 의뢰한다. 이 집안을 보다 보니 장모... 더보기

전일도 사건집 – 하우스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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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FIRE)족이 대체 뭐야?”

내 물음에 엄마 아들이 어쩐지 으쓱하는 말투로 대답한다. 시사 공부하다가 뭐 하나 새로운 거 배웠나 보다.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의 약자야.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고 재테크를 해서 30대 말이나 40대 초에 은퇴해서 여생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지. 근데 네가 그걸 왜 물어 봐?”

쌍둥이 오빠에게 사건 개요를 읊었다.

“주연. 30대 여성. 평소에 파이어족이 될 거라는 말을 하고 다녔음. 어느 날 갑자기 사직서 제출하고 잠적. 사직서 수리는 아직 안 되었음. 그러니까 마음 바뀌면 다시 복직할 수도 있는 상황인 거지. 남편이 의뢰했어. 와이프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왜 잠적해 버렸는지 모르겠다고. 아직 파이어족이 되기에 필요한 만큼 돈을 번 것도 아닌데. 와이프 좀 데려와 달래.”

아기를 낳을지 말지 고민하던 사람이 잠적이라…그 동안 쌓인 경험에서 나온 추리를 오빠에게 들려 주었다.

“이 사건, 파이어족이 되려고 극단적으로 저축하다가 지쳐 버린 거 아냐?”

“사건 해결에 들어가기 전에 그렇게 단정지어 버리는 거 안 좋은 버릇인 거 알지?”

누가 모르나. 나도 안다. 퉁명스레 툭 내뱉었다.

“가설을 세우는 거야, 가설을.”

통계청에 따르면 은퇴한 부부의 적정 생활비는 한 달에 291만 원이었다. 이건 그냥 숨쉬면서 생활하는데 드는 비용이고 40대에 은퇴해서 여행도 다니고 아이도 키우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겠지. 그 돈을 마련하려고 무리하다가 수습이 안 되어서 도망친 건 아닐까. 약속 장소인 카페에 나온 주연 씨의 남편은 수트에 넥타이까지 매고 있었다. 깡말라서 강퍅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이 사람이 ‘새벽에 일어나서 어학원 다녀온 다음에 출근하고, 퇴근 후엔 헬스 가고, 주말엔 빅데이터 공부한다고 강남역에 있는 학원 다니는 사람’인가. 의뢰인은 피곤한지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가며 말을 했다.

“주연이한테 있던 명함 보고 연락 드렸는데 이렇게 어린 여자분이실 줄은 몰랐네. 진짜 탐정 맞아요?”

얼굴을 다 드러내려고 쓴 베레모 때문에 더 어려 보이나.

“네, 맞,”

“탐정 자격증은 없으니 ‘내가 탐정이다’하면 탐정이겠죠. 그쵸?”

예의 없이 남의 말 잘라먹는 건 어느 학원에서 배운 버르장머리야. 내가 따질 틈도 없이 의뢰인이 자기 얘기를 시작했다.

“주연이는 심각한 ‘하우스 블루’에 걸려 있었어요.”

‘하우스 블루’라면 집 때문에 우울한 걸 가리키는 시사 용어였다. 이 의뢰인도 오빠처럼 아는 척 중독인가.

“아이 없이 우리 둘만 살면 20평대로 충분하지만 아이가 있다면 30평대로 가야죠. 아이를 가질지 말지를 정하지 못해서 집 사는 걸 일단 미뤘는데 그 사이에 집값이 폭등을 했어요. 1년에 3억이 올랐으니까요. 거기다 이 동네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어서 대출도 얼마 안 나와요. 대출을 영혼까지 끌어올려서 받아도 집을 못 사는 거죠. 거기다가 한번 오른 집값은 내려가지 않고 오르기만 하니까 이제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집을 전전하게 되겠죠.”

의뢰인은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탐정님, 주식 해요? 한 주라도 사고 팔아본 적 있어요?”

“아니요, 하지만 이런 실종 건에선 여자끼리 통하는 촉이라는 게 있어서 잡을…아니 찾을 수 있어요.”

의뢰인은 한숨을 쉬더니 여전히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을 이었다.

“장모님은 주연이나 저를 보실 때마다 ‘내가 작년에 집 사라고 말만 하지 말고 더 강하게 밀어 붙였어야 했는데, 다 내 잘못이다’ 하시는데 ‘내가 이럴 줄 알았다’는 말만큼 공허한 게 어딨어요. 장모님은 저한테도 ‘어학원 다니고 빅데이터 학원 다닐 시간에 부동산 투자 강연을 들었어야지. 자네는 한집에 같이 안 사나? 왜 그렇게 내 집 마련에 무심해? 그깟 학원 다니면서 쌔빠지게 고생 해봤자 연봉이 척척 오르는 것도 아닌데.’어쩌고 하시면서 잔소리를 퍼부으셨어요. 사위인 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냈는데 딸인 주연이는 스트레스를 꽤 심하게 받았나 봐요.”

의뢰인은 관자놀이를 누르던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가격 오름폭이 큰 건 30평대라서 재테크를 생각하면 30평대를 사는 게 맞지만 제가 은근히 20평대를 밀었어요. 30평대로 가서 방이 남으면 장모님이 아예 오셔서 들어 앉으실까 봐서요.”

장모님이 어지간히도 싫었나 보다.

“장모님은 주연이가 우유부단하다고 몰아붙였어요. 저는 아무래도 사위라서 조금 어려운 면이 있으니까요. 어디서 경제지 기사 읽고 오셨는지 주연이한테 ‘요즘 2030들은 ‘패닉바잉’한다던데 넌 집값 더 오를 거라는 공포에 급하게 매수하는 것도 안 하냐? 넌 2030 아니냐?’하고 들들 볶았어요. 영혼까지 끌어올린 원리금 상환 계산해 봤더니 저희 형편에는 다소 무리겠더라고요. 요새 전세는 씨가 말랐고 매매는 비싸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기도 하고요. 주연이는 집 문제 때문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어요. 그런 와중에 장모님이 또 재테크 가지고 한숨을 쉬시더라고요. 올 초에 주식을 했으면 대박이 났을 텐데 주식도 안 하고 뭐 하고 있었냐고요. 자식이 적어도 부모보다는 잘 살아야지 미련퉁이처럼 월급만 모아서 언제 집 사고 월세 수익 올리고 사냐고요. 그런 게 주연이한테는 다 압박으로 느껴졌을 거예요. 주연이는 그 날 바로 주식 계좌를 텄어요.”

의뢰인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빚투’라고 하더라고요. 빚내서 투자. 신용대출까지 받아서 주식에 넣는 거. 주연이가 그걸 했어요. 주식으로 돈 벌어서 집을 사는 게 주연이와…장모님의 목표였죠. 처음엔 주가가 올랐어요. 초심자의 행운이었죠. 주연이가 처음부터 빚투를 한 건 아니었어요. ‘따상’, 그러니까 따불 상한가를 찍고 나서 자신감이 붙어서 그런 거죠. 장모님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전세를 빼서 월세로 옮기고 남은 돈으로 주식을 하자고 할 정도였어요. 월세보다 더 벌 수 있다고. 다행히 그건 막았어요. 주연이는 재물운은 없나 봐요. 주연이 산 주식이 오르다가 떨어졌어요. 단타 투기로 하는 종목이라 주연이가 회사에서도 주가만 확인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사고팔고 하느라 일을 제대로 못 했는데도요.”

주가가 열심히 한다고 오르는 거면 나도 하겠다. 예측할 수 없는 3가지가 개구리가 뛰는 방향, 여자의 마음, 주가 라는 말도 있는데.

“주연이는 주식투자 책을 열심히 읽었어요. <30대 김대리는 어떻게 3년 만에 30억을 벌었나>, <주식으로 강남 아파트 사기>, <5년 후 벤츠 타고 싶으면 지금 해외 주식을 해라> 이런 제목에 혹할 만도 했죠. 거기다가 장모님이 살살 꼬드기고 부추기니까 주식에 눈이 돌아가는 게 당연했죠.”

의뢰인은 손을 비볐다가 눈두덩이에 갖다 댔다.

“저는 보수적이라서, 아니 장모님 표현으로는 꽉 막히고 위험을 무릅쓸 용기도 없는 겁쟁이라서, 투자보다는 노동소득으로 돈을 버는 게 마음 편해요. 지금 나이에는 자기계발에 투자해서 몸값 올리는 게 최고의 재테크라고 믿어요. 실물 경기가 안 좋은데 주식하고 부동산만 미친 듯이 상승하는 거, 언젠가 펑 터질 거품 같아요. 주연이한테도 그렇게 말했는데 주연이는 제 말 안 듣고 장모님한테 달달 볶이니까요.”

의뢰인이 눈을 비비며 말을 이었다.

“주연이는 요즘 들어 부쩍 퇴사하고 싶어 했어요. 같은 직장에서 10년이면 질릴 만하죠. 이번에 부서 이동을 했는데 사람들과의 관계나 일적인 면에서나 적응을 못 했거든요. 일이 무섭고 사람이 싫다고 했어요. 회사에 매인 삶에서 벗어나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싶다고 했어요. 저는 일에서 보람을 찾는데 주연이는 그저 돈 벌기 위해 회사 다닌다고 했어요. 제 목표는 승진인데 주연이의 목표는 내집마련 이었어요. 장모님 목표도 주연이랑 같았고요. 장모님은 저희 집에 오실 때마다 주변 아파트 시세부터 확인하고 ‘또 올랐네, 또 올랐어. 그러게 작년에 내가 사라고 할 때 샀어야지. 지금도 늦었는데 언제 집 살 건가, 응?’하시고 개장하면 주가 확인하시고는 ‘내가 사라는 주식 샀으면 두 배로 뛰었을 텐데’이러셨으니까 주연이도 압박을 많이 받았을 거에요. 아니 그렇게 잘 아시면 주연이를 닦달하지 마시고 본인이 직접 투자하시면 될 것을…장모님은 책임을 지거나 원망 듣기는 싫으셨던 거죠. 장모님 말버릇이 있어요. ‘결정은 네가 하는 건데, 내 의견은 이거다, 이 말이야. 이런 의견도 있다, 참고 하라고.’ 이러면 장모님 뜻대로 하라는 거죠, 안 그래요? 그랬다가 결과가 안 좋으면 ‘결정은 네가 한 거다’ 이러시고.”

내가 우울한 사람들에게 흔히 내리는 처방인 ‘마카롱 열 개’가 안 통하는 상황이다.

“의뢰인님은 뭐 하셨는데요?”

“업무에 대해 알아야 일을 잘 할 수 있고, 일을 잘 해야 투기보다 회사에 더 신경을 쓸 테니까 도서관에서 관련 책을 빌려다 줬죠. 그랬더니 표지만 쓱 보고 펼쳐보지도 않던데요. 주식 투자를 하려면 제무제표도 보고 보고서도 읽고 IR책임자랑 통화도 하고 기업탐방도 가라고 했는데 하나도 안 했어요. 주식도 공부해 가면서 해야죠.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판다는 말만 따르면 어떻게 해요.”

공부 공부 그놈의 공부. 자기계발의 화신다운 멘트다.

“아니, 주연 씨가 회사 다니기가 어렵다고 하면 뭐가 어려운지 감정은 어떤지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차분히 ‘대화’라는 걸 하셨어야죠. 책만 몇 권 띡 내밀면 어떻게 해요.”

“경제적인 문제도 그렇고 둘 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동지애’도 있으니까 주연이가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하거든요. 아기 낳고 퇴사하겠다고 할까 봐 아이를 갖는 걸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기도 했고요. 그런데 월급과 저축을 다 주식에 쏟아 부어서 대박 나서 전업 투자자가 되겠다고 할까 봐 애매하게 대화를 피하긴 했어요. 주연이가 자꾸 ‘이런 상승장에서는 원숭이가 투자해도 이익 본다’고 했거든요. 손해본 건 곧 만회할 거라면서. 집에서 심각한 대화를 하기에는 제가 회사업무와 자기계발로 지쳐 있었고요.”

“그러니까, 실종된 주연 씨와는 평소에 대화가 부족했다는 거네요?”

“주연이는 저보다 장모님하고 얘기를 더 많이 했으니까요.”

의뢰인은 턱을 괴었다.

“장모님을 만나실 거죠? 저는 그 자리에 안 나갈 겁니다.”

“같이 만나달라는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요.”

“주연이가 사라진 데에는 장모님 영향도 없진 않을 거예요.”

“한 사람의 실종에는 누구나 조금씩 책임이 있죠.”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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