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쏟아지는 겨울을 기다리며

2018.11.30

11월의 마지막 날, 가을의 끝자락입니다. 최저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져 큰 일교차를 보인 지 오래고 날로 추워지는 날씨에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습니다. 실제로 지난 주말에는 일부 지역에 눈이 내리기도 했는데요. 다가오는 추운 겨울, 눈 내리는 날에 따듯한 실내에서 읽기 좋은 폭설과 관련된 작품들을 모아 봤습니다.

 

“이것은 전혀 다른 세계의 눈이었다. 완벽한 북국(北國)의 눈이었다.”

폭설로 뒤덮인 목장을 지나 극심한 눈보라를 뚫고 조(照)는 언덕 위의 저택에 찾아옵니다. 그곳은 친구 수(琇)의 오래전 돌아가신 외삼촌이 지은 집으로, 관리인이 사전에 준비를 마쳐 한 달간 머무르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따뜻한 벽난로에 불을 쬐면서 중국 술과 포도주를 마시며 두 사람은 두런두런 얘기를 주고받는데요. 거센 눈발이 날리는 창밖의 비현실적인 풍광과 대조적으로 두 사람이 나누던 이야기의 양상은 현실적으로 전환됩니다. 폭설로 고립된 저택을 배경으로 한 <눈보라>는 두 사람이 대화만 나눌 뿐인데도 흡인력이 넘치는 스릴러 작품으로, 반전이 짙은 여운을 남깁니다.

 

“큰일 날 소리를! 르비시 산맥에선 절대로 세 시간 이상 잠들면 안 돼요. 피곤하더라도 일단 일어난 이후에 다시 자요. 먹히기 싫다면.”

만년설로 덮인 대륙 최북단의 거대한 산맥에 위치한 적막하고 폐쇄적인 한 산골 마을에 여행자가 방문합니다. 마을 노인은 눈 덮인 밤길을 밤새 걸어 도착한 여행자를 의아해하며 맞이합니다. 여행자는 여로에 지쳐 바로 잠들지만,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젊은이가 그를 깨웁니다. 세 시간 이상 잠들면 안 되는 기괴한 마을에는 깊게 잠들면 사람의 꿈을 먹고 목숨을 앗아가는 ‘눈꿈벌레’가 있었습니다. 오직 만년설로 덮인 이 산맥에만 존재한다는 눈꿈벌레에게 먹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죽음과 닮은 잠의 경계에서 함께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설산을 배경으로 한 환상적인 분위기와 사연을 듣는 관조적인 태도가 비극을 더욱 배가시킵니다.

 

“뭐 아무튼, 전화는 살아있으니까 진짜 정말 급할 때만 연락해라. 하늘이 미쳤나 보다. 기록적인 폭설이래. 설악산이 무슨 알프스가 됐어. 무릎까지 빠지는 건 나도 처음 본다. 이런 날 산에 오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 그냥 푹 잠이나 자.”

TV도 인터넷도 없고 전기마저도 들어오지 않아 벽난로를 켜야만 하는 설악산의 한 산장에 폭설이 내립니다. 그로 인해 산장은 고립되고 산장지기는 라면만 먹으며 홀로 사흘이나 버틸 생각에 벌써 지칩니다. 산장지기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유명한 SF소설을 모은 단편집을 펼쳐 읽는데, 갑자기 누군가 산장의 문을 두드립니다. 이 폭설에도 등산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문을 열고 맞이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좀비였습니다. 도망치려는 찰나 한 사람이 나타나 좀비로부터 산장지기를 구하고,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일행은 모두 죽어 좀비가 되었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말이죠. 그런데 폭설에 또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다른 좀비의 방문일까요? 폭설로 인해 고립된 산장이라는 흥미로운 공간적 요소에 더해 뒤로 갈수록 고조되는 긴장감과 공포가 상당합니다.

 

“저 사람이 그러더군요. 조금 있으면 자기가 문에 불을 질렀다고 우기는 미친 남자가 한 명 나타날 거라고. 이런 폭설에 말입니다.”

폭설로 고립된 산장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하나 더 소개합니다. 친구와 함께 산에 왔다가 폭설에 조난한 주호는 산장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창문 밖에서 눈이 마주치고 소리를 쳐도 산장 안의 사람들은 외면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주호는 절망감에 출입문에 불을 붙이는데, 이상하게도 문에는 그슬린 흔적만 있을 뿐 불에 탄 흔적이 없었습니다. 간신히 산장 안으로 들어간 주호는 산장부부의 시체를 발견하고, 산장 부부의 친구는 산장 부부가 살해된 경위를 설명하며 이곳이 귀신 들린 산장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주장의 근거로 36년 전에 이곳 산장에 있었던 유명한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요. 적백의 시각적 대비가 인상적인 <폭설>. 과거와 현실이 중첩된 폐쇄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미스터리한 이야기의 전말을 직접 확인해 보세요

 

“아내와 인사한 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하늘에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겨울이 되자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내 고향과 달리 아이다호에는 눈이 끊임없이 내립니다. 아내와 같이 먹을 저녁 식사 재료들을 준비해 놓은 나는 따뜻한 실내에서 피로에 이기지 못하고 선잠에 빠지는데요. 나는 아내의 전화에 잠에서 깨고 청천벽력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내리는 눈을 보며 그 눈을 닮은 소중한 존재를 추억하는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밤새 내린 눈 때문에 온 세상이 하얗게 보였다.”

개 ‘장군이’는 알코올에 의존하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남매와 살고 있습니다. 밤새 내린 눈이 쌓인 어느 날, 남매와 함께 하얀 벌판을 달리던 장군이는 친구 복순이의 집에 개도둑이 든 것을 우연히 목격합니다. 장군이와 남매는 개도둑으로부터 복순이를 무사히 구하지만, 늦어진 귀가로 인해 아버지는 남매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이에 장군이는 남매를 지키기 위해 달려드는데요. 눈이 쌓인 마을에서 개도둑을 물리치며 희망차게 전개되던 이야기는 현실을 엿볼 수 있는 씁쓸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바깥은 여전히 폭설이었다.”

개의 시점에서 쓰인 이야기를 이어서 소개합니다. 눈 오는 겨울에 가로등에 묶여 있었던 유기견 웰시 코기 ‘스노우’는 작가지만 게임 방송으로 번 수입이 더 많은 한 남자와 살고 있습니다. 폭설이 내리던 어느 날, 누군가의 전화를 받은 이후로 남자는 슬픔에 잠기고 게임 방송도 줄어드는데요. 게임 대회를 앞두고 연습을 위해 합숙을 하게 된 남자는 스노우를 맡기기 위해 결심하고 전화를 겁니다. 일방통행으로만 보였던 감정의 향방은 폭설이 내리던 그날부터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에 읽기 좋은 잔잔하고 서정적인 로맨스 작품입니다.

 

“전날 내린 눈으로 범경이 빛났다.”

눈이 내린 절에 사람처럼 말하고 걷는 인간형 로봇이 네다섯 살쯤 된 여자아이를 안고 나타납니다. 스님 정명은 당황했지만 기묘한 조합에 암자의 한편을 내어줍니다. 아이와 함께 쫓기고 있다는 로봇은 스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스님은 대답을 회피하며 쌀강정을 몰래 가져갔냐고 묻는데요. 눈이 쌓인 청명한 절을 배경으로 생명과 사람다움에 대한 고찰과 고아한 기상이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집도 절도 없는 백수 청년, 눈 오는 밤 공원에서 동사.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워 주고 좋네.”

몹시 추운 겨울, 꿈도 희망도 없는 배우 지망생인 나는 룸메이트가 보증금을 가로채 도망가 잘 곳도 없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를 대신하여 키워준 숙모에게는 이런 사정을 알리며 연락할 용기가 없어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합니다. 끝내 옛 여자 친구에게 연락해 공원에서 만나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처지를 알고 그녀는 도움의 손길을 건넵니다. 그녀와 헤어지고 눈이 펑펑 내리는 추운 공원 벤치에 다시 앉은 나는 삼촌 유령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요. 공적을 세우고 싶다는 욕심에 전장으로 떠난 남편이 아이를 열병으로 잃고 삶의 의지를 잃은 아내를 뒤쫓아 그 누구도 살아 돌아온 적이 없는 만년설이 쌓인 북쪽의 산맥으로 향하는 엽편 <눈여인의 처소>도 함께 만나 보세요.

 

“집도 나무도 차도 제 형체를 잃은 세상. 오직 하얀 눈만 남은 세상. 저 멀리 보이는 능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영이 자고 일어난 사이, 세상은 그저 하나의 커다란 눈덩이로 변해있었다.”

오영은 대학 시절 같은 영화 동아리였던 동기의 부고를 받고 춘천의 한 장례식장을 방문합니다.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한 그의 빈소는 상주도 없이 쓸쓸했고 동아리 관리를 도맡았던 윤지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오영과 윤지는 술잔을 기울이며 추억에 잠기고, 깜빡 잠이 들었다가 한낮에 깬 오영은 해장을 하기 위해 폭설에 밖에 나가 대학 시절에 고인과 자주 가던 가게로 향하는데요. 폭설이 내리던 시점으로 타임리프하면서 과거의 진실에 다다르는 이야기는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던집니다.

 

“12월의 눈 오는 날이었다. 새벽부터 눈이 오더니 아침에는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눈이 쌓였다.”

김 씨의 집 지하에 세 들어 살던 영우의 아버지는 겉으로는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만, 세 살 난 영우를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김 씨는 학대받는 아이를 보다 못해 외동딸 소희에게 부탁하고 소희는 영우를 진심으로 아끼며 돌보지만 영우는 돌연 실종됩니다. 대학 졸업 후 소희는 부유한 가정을 담당하는 학습지 교사로 열심히 일하지만,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다섯 살 난 현수의 모습에 섬뜩함을 느끼는데요. 1년만 참고 버티자고 결심한 소희는 폭설이 내리던 겨울의 어느 날 또 한 번 충격적인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폭설이 비극을 한층 더 강화하는 <눈 오는 날>은 예상 가능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긴장감과 흡인력이 넘치는 호러스릴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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