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기를, 한편 어서 지나가길 바라는 디데이

2018.11.9

‘빨간 날’이 없는 11월, 빼빼로데이와 함께 널리 알려진 이달의 중요 행사라면 바로 수능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년에 지진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수능이 연기되면서 연일 뉴스에서 다뤄졌던 기억이 선명한데, 벌써 다시 그 시기가 찾아왔네요. 이번에는 시험과 관련된 작품들을 모아 봤습니다.

 

“같은 시험을 여러 번 치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상하게 한다. 붙을 가능성이 한없이 불가능에 수렴한 경쟁률의 시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각종 미신이 판을 쳤다.”

노량진에 자리한 고시원에서 생활을 하며 시험 준비를 하던 희진은 자잘한 소음과 어느새 길어 거추장스러워진 머리 때문에 도무지 집중을 하지 못하고 열람실을 빠져나왔다가, 고시원에서 친해진 친구 수미와 수다를 떨게 됩니다. 미용실에 갈까 고민하는 희진에게 수미는 공부한 내용이 ‘잘려 나가면’ 어떡하냐며 우려하는데요. 희진은 찜찜한 마음에 그냥 버텨 보려 했지만 결국 불편함을 못 견디고 머리를 자르기로 합니다. 그런데 희진의 결심을 들은 수미는 자른 머리카락을 자신에게 달라는 께름칙한 부탁을 합니다…! 이성적으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중요한 시험을 혹시라도 망칠까 봐 금기를 어기지 않으려 하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텐데요. 고시원이라는 폐쇄적인 공간과 시험으로 인한 강박을 잘 보여 주는 것은 물론, 뒤로 갈수록 고조되어 가는 긴장감과 공포가 대단합니다.

 

“이제 사람들의 평가에 막 휘둘리고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공시생 하기로 했어여. 시험은 객관적인 성적이 나오잖아여.”

작가의 대표적인 탐정 전일도의 이번 의뢰인은 조금 특이한 부탁을 하려는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실종된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실종시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이모티콘 없이는 문장을 끝내지 못하는 난감한 의뢰인과 폭풍 카톡을 나누다가 결국 직접 만나기로 한 전일도. 출중한 외모를 자랑하는 의뢰인 수완 씨는 이력도 남달랐습니다. 한때 걸그룹을 지망하던 연습생이었지만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여러 사정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결국엔 공시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는데요. 과연 수완 씨가 실종시켜 버리고 싶은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유쾌하고 기운찬 전일도의 활약 속에서 요즘 우리나라 청년의 팍팍한 현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내 필체. 내가 쓴 생명과학 퀴즈 컨닝 페이퍼였다.”

1년 전, 지수는 누군가가 파놓은 함정에 빠져 누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예정되어 있던 생명과학 퀴즈가 끝난 후 교사에게 불려갔더니, 지수가 컨닝하는 게 발각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쓴 적도 없는 컨닝 페이퍼에 대한 소문이 어느새 퍼져 비난의 눈초리가 쏟아지던 그때, 평소 지수가 껄끄럽게 여겨 왔던 ‘탐정’ 소녀가 도움의 손길을 건넵니다. 학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10대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전교 1등 하는 방법이 알고 싶어? 하지만 이렇게 쪽지만으로 알려줄 수 없아. 사는 곳이 멀지만 않으면,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게 좋을 거 같아.”

늘 전교 2등을 하던 홍엽은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에 전교 1등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물어봅니다. 그냥 공부나 더 해라, 전교 1등을 죽여라 등등 훈수꾼들이 남기는 쓸모없고 실현 불가능한 답변이 난무하는 가운데 방법을 알고 싶으면 쪽지를 보내라는 한 댓글이 주인공의 눈길을 끄는데요. 장난인 게 분명해 보였지만 충동적으로 쪽지를 보내 보자 직접 만나자는 회신이 돌아옵니다. 더구나 상대는 홍엽이 다니는 중학교의 학생이었는데요. 시작은 사소한 인터넷 문의글이었지만, 뒤로 갈수록 빠르고 흥미진진한 전개가 펼쳐집니다. 과연 전교 1등이 되기 위한 두 사람의 계획은 무엇일까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수수께끼는 더욱 깊어졌지만, 수능이 코앞에 닥친 고등학교 삼학년 학생에게 탐정놀이를 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학교 연못에 나트륨이 투하되어 제법 큰 폭발이 벌어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도 금방 잡히지만, 안 좋은 일은 쉬쉬하는 학교의 습성에 곧 다가올 모의고사를 대비하는 분위기까지 더해져 사태는 조용히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범인과 같은 우등생 반에 소속된 주인공은 범인, 이전 해에 들은 면접 대비 특강 이후 ‘텔러’라 명명한 그 아이와 사건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지만, 수능을 앞둔 수험생에게 그런 생각에 낭비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험이 비로소 끝나자 잠들어 있던 의문들이 꿈틀거려 결국 행동에 나서게 되는데요. 입시에 매몰된 학창 시절의 고통스럽지만 약간은 낭만적인 묘사가 매력적이고 폭발적인 흡인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기대도 안 했던 수능 대박이 터지는 바람에 수도권 끝자락에 있는 대학에 그것도 전기로 입학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으니, 모두가 인정하진 않겠지만 당시 수능제도의 순기능이라 하겠다.”

수능이 끝나면 사실 대단한 변화를 겪기보다는 대체로 이 작품에 묘사되듯이 생활감 넘치는 보통의 나날을 경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능 대박이 나서 생각지도 않았던 대학에 입학하여 독립하게 된 주인공은 부푼 마음으로 학교 근처의 자취방을 찾아 나섭니다. 선배와 함께 발품을 팔아 한 오래된 빌라의 원룸을 계약한 주인공은 즐겁게 학교를 다니며 술에 찌든 나날을 보내는데요. 새 사람이 되기 위헤 2학기부터 기숙사에 들어간 이후에야 빌라에서 벌어진 사건을 알게 됩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다 다르네. 하지만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말끝에 ‘늦은 나이 아닐까요?’라는 의문사가 붙는다는 것이지.”

서른한 살의 대학원생 민규는 ‘늦은 나이 신드롬’이라는 연구에 관한 실험하며 피실험자들을 인터뷰하던 중 자신의 나이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고뇌에 빠집니다. 그러다 한 피실험자의 나이가 약을 통해 여덟 살이나 어려졌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어 이를 알선해 주는 노인을 찾아갑니다. 비단 큰 시험을 준비하는 것뿐 아니라 취업, 어학연수, 유학 등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결정을 하기에 자신의 나이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은 누구나 하지 않을까요? 이 작품은 ‘늦은 나이’에 대한 공포와 욕망을 생생하게 보여 주며 여운을 남깁니다.

 

“본인의 성장과정을 간략히 기술하고, 현재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을 기술하십시오.(1000자)”

지금까지 소개한 작품의 시험과는 다소 결이 다르지만, 인공지능 기업의 공채 자기소개서라는 독특한 형식을 취한 이 작품의 내용은 일종의 주관식 시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비록 자유 형식이고 어떻게 쓸지는 쓰는 사람 마음에 달렸다지만, 왠지 출제자가 원하는 답안이 있을 것 같다는 점에서도요.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라는 익숙한 문구로 서두를 비롯해 한국 기업의 자소서에만 들어갈 법한 내용들이 속속들이 나타나 유머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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