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홈 스위트 홈,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2018.10.19

지친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따뜻한 침대에 쏙 들어가서, 혹은 푹신한 소파 위에 널브러져 즐기는 맥주 한 잔.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는 곳, 혹은 사랑하는 주인님(이 글을 읽으시는 누군가는 집사님이실 테죠)이 어서 돌아오지 못하냥! 하고 꼬리로 바닥을 탁탁 치며 기다리는 곳. 때로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공간. 누군가에게는 휴식이고, 누군가에게는 추억이고, 누군가에게는 재산이고(쿨럭), 아무튼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그곳, 집.

바로 그 소중한 집들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모아 보았습니다. 이상한 무언가가 함께 살거나,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은 기본, 오래된 흉가나 폐가부터 냄새가 나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는 집들로 향하는 모험을 떠나 볼까요. 솔직히 이런 집에서는 도무지 살고 싶지 않지만요!

 

아이고, 정말 1402호에 사람이 들어왔네. 여기 빈집으로 꽤 오래 있었거든. 참, 저 작은 방은 여태 닫혀 있나?

남편 앞으로 되어 있는 집이 있지만, 그 집에는 전세 계약이 남아 있는 상태라서 딱 1년만 시댁에서 살기로 하고 결혼한 여자. 시어머니는 친절하지만 기묘하게 반복적인 행동을 선보이고,(가령 며느리가 퇴근할 때마다 시어머니는 책을 보고 있는데, 문득 2층으로 올라가던 며느리가 보니, 시어머니가 책을 거꾸로 들고 있는 장면은 진심 소오름!) 아들과 며느리의 사생활을 그닥 존중해 주지 않으시죠. 무리한 야근도 해 보고, 남편을 채근도 해 보던 중에 못 참겠다 싶었던 여자는 결국, 남편이 해외 출장을 간 사이에 집주인이 외국으로 나가서 딱 1년만 비어 있다는 집을 계약하게 되죠. 하지만 그 집에는 집주인이 가구를 모두 넣어놓았다는 문 잠긴 방이 하나 있는데……. 푸른 수염의 이야기가 오버랩되는 이 작품은, 서서히 미쳐 가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압권입니다.

 

웃긴 건 정작. 사장님은 거기가 흉가가 아니래. 아니 세상에. 이상한 현상에 시달려서 사람들이 못 버티고 나가는 집이 그게 흉가지 뭐냐고.

‘나’는 글만 쓰고 살겠노라 선언한 뒤에 글 쓸 공간을 구하고 싶어 알아보던 중에, 서울 집값이 너무 비싸서 전주까지 흘러가게 되었죠. 소설가라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는 내 말에, 한 집주인이 한 달만 살아보라며 자신의 집을 보여 줍니다. 겉보기에 평범한 그 2층집은 안에 들어가니 2층 문에 커다란 부적이 붙어 있고, 빨간 파란 노란 천들에 새끼줄이 주렁주렁, 심지어 거실에는 제사상이 있고 부적으로 벽과 천장이 도배가 되어 있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이 맘에 들어서 계약을 하기로 하고, 심지어 그곳에서 이상한 일을 겪어도 그 피해에 어떤 손해배상도 청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작성하는데요, 그날부터 나는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얼굴에 하얀 천을 둘둘 감아 입을 가린 집주인이 등장하는 기묘한 꿈, 그리고 나는 실제로 보지 못했으나 이 집에 존재하는 것들을 꿈속에서 보기 시작하는데…….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털어놓는 기묘한 경험담은 실제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나는 그곳에 살고 있어요, 그 흉가에요. 몇 십년 전 여름에 어떤 아저씨 손에 끌려와서 목이 졸린 그날 밤 나는 그곳에서 살게 되었어요.

오늘 소개해 드릴 이야기가 산 사람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면, 이 작품은 그 반대의 이야기입니다. 살해당한 소녀 귀신이 흉가를 찾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이야기인데요, 장담컨대 리스트에서 유일하게 따뜻하고 맑은 슬픔이 있는 이야기랍니다. 마지막의 초콜렛이 참 찡해요.

 

먼지와 곰팡내 사이로 이상한 냄새들도 조금씩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건 마치, 비릿한 물비린내와 풀냄새 사이에 살짝 숨은 피 냄새 같은 것이었다.

한 가족이 단체로 목을 매달아 자살을 하고, 한 가족은 가장이 부인과 자녀를 도끼로 찍어 죽인 뒤 칼을 입에 쑤셔 넣어 자살했다는 귀신들린 폐가에 역술인, 미스터리 클럽에서 온 일반인 참가자들, 작가와 촬영감독, PD로 이뤄진 그룹이 촬영을 하러 옵니다. 초여름의 밤, 사전 조사를 나왔던 대낮과는 이상하게 달라보이는 건물. 역술가는 이곳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낮에는 먼지만 부석하던 싱크대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PD 영준의 귀에는 무언가 깨지는 소리, 누군가 자박자박 깨진 조각을 밟고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지만 아무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은 듯 반응이 없죠. 공간에 대한 기묘한 이질감, 점차 묘한 불안감을 더하는 묘사가 폐가 체험담의 정석과도 같습니다. 권선징악적 결말도 완벽한 마무리를 선사합니다.

 

그 그림이 뭐랄까, 너무 무서웠어. 검은 바탕에 공허하게 뚫린 것 같은 원 네 개만 그린 거였어. 나는 살면서 그렇게 무서웠던 그림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어린 시절 함께 자란 사이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지금 완전히 날라리로 변한 민우는 약한 정석이를 끝도 없는 폭력으로 괴롭힙니다. 결국 민우의 빵 봉지나 가방, 사물함 등에서 죽은 동물들의 사체가 나오기 시작하고, 정석이는 등교 거부를 합니다. 한편 어린 시절부터 반장을 도맡아했던 모범생 ‘나’는, 문득 초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에 그림을 걷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섬뜩하고 무서웠던 그림 한 장. 온통 새까만 바탕에 뚫린 것 같은 동그라미만 존재하던 그 그림. 「폐가」는 괴물이 태어난 유령 집과 학교와 가정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결합한 매력적인 스토리가 돋보이는 작품이죠.

 

외숙모라니? 내가 외삼촌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외숙모의 장례식이었다.

세상이 싫어져서 가족들과 칩거하듯 숲속으로 들어간 외삼촌의 부고 소식에 몇 달만에 나는 외사촌을 찾아갑니다. 사실, 오래 암으로 투병하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빛더미에 앉게 된 바람에, 돈을 구걸하러 온 것이죠. 20년 만에 만난 외사촌 준호는 냉담한 태도를 보이지만 일단 나를 집에 들어오게는 해 줍니다. 위층에서 나는 쿵, 쿵 소음에 내가 집에 누가 있느냐고 묻자, 준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상심이 컸는지 쓰러진 후에 일어나질 못하신다’고 대답합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죠. 외숙모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는데……. 깊은 숲속에 자리한 외딴 집에서 벌어지는 으스스한 호러 스릴러, 「깊은 숲 속 너의 집에」를 만나 보시죠. 결말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마지막 순간에 도입부를 다시 한 번 새삼 돌아보게 되실 거예요. 배명은 작가가 드물게 쓴 로맨스 단편 「폭풍의 집」도 함께 만나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끼이익, 옷장의, 아니 옷장인 것 같은 가구의 문틈으로 보이는 것에 창섭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번에는 자못 유쾌한 작품으로 한숨 돌리고 지나가 볼까요. 창섭은 회사에서 잘린 후에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됩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도둑질을 결심한 창섭이 하필이면 목표로 삼은 첫 번째 집의 방에는 옷장으로 보이는 커다란 가구들이 가득합니다. 옷장 가구 틈을 들여다 본 창섭은 기겁하는데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굶어죽지 않으려고 턴 집이 하필이면 연쇄살인마(아니면 뭐 최대한 좋게 봐서 시체 수집가?)의 집이라면? 시민의식(?)을 발휘했다 슬픈 결말을 맞게 된 주인공의 최후까지 숨 가쁘고 빠르게 달려가는 작품입니다.

 

그냥 조용히 쉬셨다가 가셨으면 좋겠네요.

택시를 탔는데, 술에 취해서 주소를 잘못 말하는 바람에 예전에 살았던 마을로 오게 된 나. 그냥 타고 온 택시를 타고 돌아갔으면 좋았을 것을, 어쩌다 보니 내려서 이 마을에서 하룻밤만 묵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군요. 마을에는 인적도 없고, 유일하게 문을 열어 준 기와집에서 나온 여자는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단둘만 산다고 한 여자는, 결국 주인공에게 방을 내어 주긴 하는데요, 작가가 친절하게 뿌려 준 몇 가지 단서들로 유추했던 대로 이야기는 무리 없이 이어지고, 결국 이럴 줄 알았지! 하고 생각되며 끝나고 말죠. 단문응원에서 이어진, 주인공을 향한 독자분들의 충고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현금도 좀 가지고 다니고, 하지 말란 건 좀 하지 말고, 잘 곳이 없으면 파출소라도 갈 것이며, 술은 작작 마실 것이며……. 구구절절 옳습니다요.

 

다음 날 나는 거기에 없었다. 그다음 날은 그녀가 거기에 없었다.

미묘하고 미스터리한 분위기, 꿈처럼 아릿하고 애매모호한 묘사들, 이 작품은 확실히 독특한 호러 작품입니다.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 집에 일어난 일들은 무엇이었을까요? 독자분들이 마음껏 상상을 펼칠 여지가 가득한 멋진 소설, 「절벽 위의 집」을 만나 보시죠.

 

너 100미터 몇이야?

길 가다가 똥을 밟았는데, 알고 보니 그 똥이 날 밟은 상황. 주인공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밤마다 특정한 시각에 우비를 입고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는, 여러모로 수상쩍은 옆집 이웃. 캐면 캘수록 이상하기만 한 그놈의 행각을 추적하던 나는 심지어 그 이야기를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반쯤은 재미 삼아 털어놓기까지 합니다. 그 남자가 숨기고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나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궁금증을 자극하는 전개를 누구든 무리없이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똥에 밟힌 주인공만 빼고요.

 

이 일 하다 보면 저게 사람 부모인지 짐승인지 싶은 것들 많이 보거든요.

부모님이 이혼하며, 동생은 아버지와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죠. 하지만 평생 다른 사람에게 사기만 치는 엄마로 인해, 내 삶은 끝도 없이 고단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기를 친 혐의로 신고당한 어머니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내가 살던 예전 집 월세보다 관리비가 더 나오는 아파트 한 채를 덜렁 남기고.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내게 달려와 어머니를 내놓으라고 난리를 치죠. 수사에 나선 경찰도 어머니에게 연락 받은 것 없냐고 집요하게 묻습니다. 하지만 나는 엄마와 이미 연을 끊었는데……. 뼛속까지 지쳐 버린 듯한 주인공의 독백이 인상적인 「집 냄새」였습니다.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지! 비밀이라고 했지? 약속을 안 지키는 어린이는 벌을 받는 거야.

오랫동안 아팠던 아빠가 피를 토한 날, 아빠는 병원에 이제 안 갈 거라고 엄마에게 전화하려는 언니를 제지합니다. 자매는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을 함께 지켜봅니다. 엄마는 한 달 동안 언니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빠 대신 집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는 바쁜 엄마 대신, 언니는 동생을 돌봅니다. 그런 언니가 어느 날, 인형과 장난감이 넘쳐나는 집, ‘담쟁이 집’을 동생에게 소개합니다. 언니는 그곳에서 함께 놀자고 계속 동생을 설득하고, 비싸 보이는 인형을 가져와서 동생에게 선물하지만 점차 행동이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고전적인 호러를 잘 쓰는 우명희 작가답게 서서히 조여 오는 공포 분위기가 한 편의 호러 영화를 보는 듯한 쾌감을 선사합니다.

자, 오늘 밤, 행복한 우리 집에 오실 준비가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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