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고난, 그리움, 눈물, 희생, 위대함

2018.5.4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이 가득한, 빨간 날이 많아 즐거운 한편 지갑 열리는 소리가 귓가에 환청처럼 들리는 행복한 5월입니다! 가정의 달로도 불리는 5월을 맞아, 다양한 어머니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는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하지만, 아시겠지만 이곳은 브릿G, 결코 아름다운 이야기만 있는 곳은 아니랍니다.

 

“너 때문에 내가 돌아갈 수가 없었어.”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이 작품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더군요. ‘어머니 이전에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미스터리의 틀을 빌려 담아낸 작가의 시선이 날카롭습니다. 주인공 ‘강이’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도망치듯 올랐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부산 고향집으로 돌아옵니다. 한편 악몽에 시달리는 엄마는 간헐적으로 낯선 사람처럼 자신을 대하다 다시 익숙한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와 딸을 놀라게 합니다. 그리고 점차 엄마의 과거에 얽힌 충격적인 진실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우리는 사실 잊고 사는 건 아닐까요? 부모님의 늙은 얼굴, 언제나 나의 어머니 혹은 아버지일 것만 같은 그분들의 주름 뒤편에 사실은 하나하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그분들에게도 젊음이, 청춘이, 열정이, 로맨스가 있었다는 것을. 어쩌면 내가, 그분의 발목을 문 뱀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아찔한 깨달음이 가슴 절절하게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엄마가 그랬지? 엄마도 인간이야. 엄마도 인간이란 말야. 그랬잖아?”

다음 이야기는 더욱 차갑고 음울합니다. 독특하게도 연극 지문처럼 모녀의 대사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요, 이야기를 읽을수록 서서히 긴장감과 불안감이 고조됩니다. 제목으로 쓰인 ‘망선요(望仙謠)’는 허난설헌의 시로 신선 세계를 그린 노래인데, 작중 언급되는 낙원과는 대조적인 현실의 쓰라림이 마지막에 묵직하게 가슴을 때리는 작품입니다.

모든 어머니가 매순간 자식을 사랑할 수가 있을까요. 대체로 사랑하더라도 가끔은 미울 수밖에 없겠죠, 엄마도 인간이니까요. 하지만 엄마가 상실에 허덕이며 뱉은 절망의 행동과 말들을 27살이 된 딸은 여전히 날카롭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애써 묻었으나 차마 묻지 못해서, 마치 그녀의 페르소나처럼 어머니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고통을 대물림하는 소녀 초희를 보며 기억을 되짚어 본 것인지도 모릅니다.

 

“미안해. 미안, 엄마가 잘못했어. 잘못했어. 다 삼켰어? 다 삼켰지?”

앞서 소개한 두 작품이 뜨끈하고 감동적인 모정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어머니의 삶을 선택하게 되며 상실을 느낀 여성에 관한 이야기라면, 무너지는 세계에서 자식을 지키려 애쓰는 어머니의 고군분투가 눈물겨운 『창백한 말』은 전형적인 모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좀비 바이러스 사태가 일어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바이러스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면역자’와 약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보유자’의 세계로 양분되어 버린 한국을 무대로 하고 있는 작품이죠.

장편 소설이다 보니, 제약회사의 하청 공장에서 잘린 뒤에 보유자인 딸의 약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어머니 수진 외에도 특권을 가진 자들이 안전하게 살아가는 ‘섬’에 가기를 갈망하는 기업가,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위험한 조직과 함께하는 연구원의 시점 등이 번갈아 진행됩니다.

 

“여자는 딸을 사랑했으나 동시에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일을 사랑했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습니다. 아이를 낳고 직장에 돌아가지 못하고 아이를 키우게 된 여자는 가만히 생각합니다. 나는 이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구나, 참 기묘한 일이야. 내가 배 아파 낳은 아이인데도 어째서일까. 이 글을 읽으며 지인이 예전에 한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모성애도 학습되는 거라는 말. 처음부터 낳자마자 아이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고, 하지만 점차 키우는 과정에서 주는 것보다 돌아오는 것이 더 큰 사랑에 점차 사랑하게 되었다고 했던 얘기가요.

어쩌면 글 속의 여자도 그렇게 점차 아이를 사랑하게 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을 그만두게 된 여자의 좌절은 컸고, “애는 어쩌고?” 하며 사사건건 여자의 사회활동을 막던 남편은 대놓고 불륜을 저지릅니다. 죽고 싶었으나 죽을 용기도 내지 못하던 여자는 노여움에, 괴로움에 마음을 불태우다 마침내 그 마음을 잘라내기로 결심합니다.

리체르카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역발상에서 출발한 「부모 체험 시뮬레이션」도 만나 보세요.

 

“아이에겐 내가 필요하겠지?”

「행복을 위해 버려야 하는 것들」의 주인공이 홀로 육아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면, 「달의 너머」의 엄마는 그래도 조금 더 행복한 분일까요. 엄마만 출산을 선택하며 일을 그만둔 것이 아니라, 임신으로 인해 아빠도 타지에서 공부할 기회를 포기합니다. 그렇게 희생하며 부모가 되었지만, 삶이란 꼭 모두에게 친절하지만은 않지요. 자식이 생기고, 입이 늘고, 지출은 증가하고, 결국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칩니다. 아들이 군대에 간 사이 엄마의 우울증이 조울증으로 바뀌고, 견디지 못한 아빠와 여동생은 집을 나갑니다. 그때부터 엄마의 등에서는 작은 식물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엄마가 부모가 되며 포기하게 된 것을 보상하기라도 하는 듯한 결말은 가족의 희생에 대한 화해와 사랑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공장도 가제, 촌에도 가제, 집에 오믄 또 쉬나 집안일 하제. 그러다 엄만 잠은 언제 자노?”

매주 시어머니를 뵈러 가는데, 자신의 어머니를 보러 간 적은 없는 아내를 위해, 아버지는 자식들을 호출합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변화에 당황하면서도 들뜬 기색을 보이며 준비를 하지요. 이야기 자체의 흐름은 그저 흔하디흔한, 평범하고 일상적인 가족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 안 깊이 숨어 있는 우리네 어머니의 현실, 가부장제의 속에서 자신의 이름 하나 새기지 못하는 씁쓸한 엄마의 삶이 날카롭게 그려집니다.

 

“……아니, 지우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애를 내놓으라고요?”

사고, 죽음, 이별, 아프디아픈 소재를 판타지를 통해 따뜻하고 아름답게 풀어낸 『내가 죽기 일주일 전』의 람우-희완 커플의 이야기 뒤에는 불륜으로 생긴 아이를 지우지 않고 당차고 씩씩하게 싱글맘으로 살아 온 유쾌한 여자 김인주 씨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이 작품이 단순하게 로맨스 판타지로만 그치지 않은 것은, 주인공 커플 외에도 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정하게 그려지기 때문이겠죠. 람우가 그토록 사랑스러운 이유는, 아마도 인주 씨가 사랑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굳이 그래야 하나요? 그냥 두면 알아서 하겠지요.”

여성이 복용 후에 관계를 맺으면 임신 가능성이 남성에게 87% 전이되는 신약의 피실험자가 된 여자와 그 사실을 모른 채 그녀와 만남을 지속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토끼 밖 세상」은 어머니의 정의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서연과 우석 커플에서 누가 더 악당이냐고 하면 당연히 임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지 않고, 우석이 아이를 갖고 나자 돈만 챙겨 가려고 하는 서연이겠죠. 하지만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냐며 따지는 우석에게 ‘피임을 안 한 건 너인데 왜 나에게 그러냐?’고 받아치는 서연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 어쩌겠니. 아들이 엇나가도 엄마가 사랑해 줘야지.”

세상 제일 내 편일 엄마가 가장 무서운 적이 될 때는 언제일까요? 보통 영화 「올가미」로 대변되는 ‘시어머니’로서의 엄마는 평소에 내가 아는 엄마와 전혀 다른 엄마가 아닐까 싶은데요. 「순서를 지키시오!」는 결혼도 첫째가 먼저 해야 하고, 자식도 첫째가 먼저 보아야 한다는 구시대적 발상을 몸소 실천하기로 한 시어머니의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결말에서 입을 쩍 벌리게 될 분이 하나둘이 아니겠어요.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현실에서는 이런 경우를 만날 일 없기만을 기대해 봅니다.

 

“엄만 왜 할머니를 싫어해? 우리를 싫어하니까?”

악독하게 구박하던 시어머니로 인해 아이를 잃을 뻔했던 부부는 시댁과 연을 끊고 살아왔지만, 남편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으며 유언으로 남긴 말 때문에 나는 간신히 자리보전만 하고 있는 시어머니를 보살피러 7살 딸아이를 데리고 시골로 내려갑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부부가 시댁과 연을 끊을 만큼 이가 부득부득 갈릴 일의 정체가 드러나고, 그런 어머니조차 어머니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7년만에 만난 시어머니는 여전히 기세등등하게도, 이년 저년 하고 욕을 내뱉으며 며느리에게 자신의 수발을 들 것을 요구하지요.

작품의 장르가 공포이므로 밤중에 시어머니의 것이 아닌 발소리가 들리고, 딸은 이 집에 할머니가 두 명이 있다는 해괴한 말을 늘어놓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흘긋대며 수군거리고, 마침내 이 집안에 얽힌 끔직한 과거가 드러납니다. 어머니가 되고 싶었으나 어머니가 되지 못한 한 여자와, 자식을, 특히 아들을 낳지 않으면 무가치한 취급을 받아야만 했던 슬픈 옛이야기가 우명희 작가답게 몰입감 넘치게 그려지는 작품, 「불귀(不歸)」입니다.

 

“심장을 베어내어 너에게 주마. 한 방울의 젖까지 남김없이 네 혈관에 넣어주마.”

가임 여성에게 많은 혜택이 주어지는 미래에도 아이를 낳으라는 엄마의 잔소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남자랑 자는 게 싫으면 여자가 아이 키우며 혼자 살기도 쉬워진 세상이네요.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못 낳는 사람이 많아진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인공수정센터에서 일하는 홍란은 아침 출근길에 계속되는 엄마의 잔소리에 학을 떼면서도, 특별히 아이를 갖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미처 예상치 못한 엄마의 뇌졸중 발작 이후 홍란은 엄마란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고, 오랜 기간 친구로 지내 온 익호와의 관계를 발전시킬 마음을 먹게 되지요. 하지만 이 작품의 장르는 호러고, 그 결말은 상상초월……! 어쨌거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여성으로서의 어머니의 삶을 조명하는 진지한 작품부터 SF, 호러, 좀비 등 다양한 장르 속에서의 어머니의 모습을 만나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야기속의 어머니가 어떤 존재이든 현실의 어머니가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죠. 팔십 노모가 육십 아들 출근길에 조심하라고 걱정한다고, 자식 사랑에는 나이도 없답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만큼은, 변함없이 자식을 사랑해 주시는 우리 어머니들께 연락드려 사랑한다 말씀드려 보는 건 어떠실까요. 브레히트의 글로 마지막을 장식해 봅니다. “어머니란 존재는 울면서 베푸는 것이다. 몸, 영혼과 정신으로 다른 삶을 사는 것을 뜻한다. 풍랑이 파도 속으로 삶을 밀치면 침몰하면서 하늘로 날아오르며 몸소 희생한다. 어머니란 존재는 천 번이나 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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