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애환사

2018.1.12

새해 계획들은 잘 실천하고 계신가요? 연초부터 쉴 틈 없이 일에 매진하는 직장인에게 원기옥을 불어넣는 힘찬 회사 특집! …같은 기획을 원래 생각했었지만, 호기롭게 시작했을 때의 기대와는 달리 작품들을 물색할수록 여름 공포 특집을 볼 때 경험했던 섬찟함을 느꼈습니다.

출근길에 읽으면 대미지 세 배! 회사에 있어도 더욱 회사에 있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들을 보다 보면 그야말로 정신이 아득해지는데요. 이 생생한 감각이 여러분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어쩌면 역대 최저 조회수를 기록하는 큐레이션이 되지 않을까 싶은 직장인 애환사를 소개합니다.


“지금 뭐라고? 뭘 당해?”
“납치요, 납치. 부장님, 그러니까 제가… 아, 잠시만요, 부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평소와는 달리 늦는 부하직원에게 전화를 걸자, 납치범에게 잡혀 있다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변명처럼 들렸지만 재차 확인해 보니 실제 상황인 데다, 심지어 부하직원이 전화를 하려면 모종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듯한데… 출근도 서러운데 납치라니요?! 얼핏 황당하게 느껴지면서도 그럴싸한 상황을 그린 블랙코미디 「출근길에 납치를 당했다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는 짧지만 유쾌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단편입니다.

다음은 “회사원에게 점심은 그냥 먹고 치우는 시간이어선 안 됩니다.”라는 헛웃음 나오는 대사로 시작하는 「회사원이 먹는 우동」입니다. 창립 기념일 강의에 지친 제지회사 영업 사원은, 그 직후 넥타이 하나 때문에 부장에게 꼬투리를 잡히기까지 하는데요. 답답한 마음으로 외근을 하던 중 우연히 맞닥뜨린 우동가게 노인은 A4용지를 주문합니다. 극적인 전개나 반전은 없지만 회사 생활의 애환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입니다. 덤으로 다음 식사 메뉴를 우동으로 정하고 싶게 하네요.

 

“일어나 보니 8시다. 젠장 나는 죽었다.”

정시 출근이 불가능한 시간에 잠에서 깨어나는 일은 회사원들이 가장 자주 경험하는 공포 아닐까요. 「천국에서 만나요」에서는 하필 늦잠을 잔 날에 지독하게 택시가 잡히지 않고 회사 엘리베이터에서는 껄끄러운 인물을 만나는, 일진 사나운 출근길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이 작품이 흥미로우셨다면 시 작품인 「미쓰김 자살하려다」도 함께 읽어 보는 건 어떨까요?

 

“에이씨! 내가! 이 더러운 회사! 진작에! 때려치웠어야 했는데!”

「예외처리팀 김미선」의 주인공 미선은 인공지능 개발사에서 ‘예외처리팀’이라는 독특한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 부서의 업무란 고객이 던지는 질문에 인공지능이 내리는 답과는 다르면서도 호감도 높은 선택지를 골라 인간미를 더하는 것인데요. 하지만 실적 부진으로 계약 연장이 어려운 상황이 닥치자 적성도 맞지 않고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자괴감에 빠지고 마는 미선. 그러던 중 분식집에서 만난 개발팀 직원이 꿀팁을 알려 줍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교훈과 함께 달달한 러브라인과 통쾌한 결말로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는 작품입니다.

 

“일반적인 졸음과는 좀 달랐습니다. 졸면 절대 안 되는 상황일수록 더욱더 심하게 졸음이 쏟아졌어요.”

모범적이고 규칙적인 회사원 현석은 회사 창립기념일에 동료들의 부담스러운 환호를 받으며 상을 받은 이후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밤에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회사에서 출근하면 자기도 모르는 새 지독한 잠에 빠지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우수 사원이던 현석의 평판 역시 급격히 추락합니다. 결국 사내 정신건강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지만 별다른 해결책을 얻지 못하는데요, 파국으로 치닫는 「기묘한 이야기-(1)숙면의 블랙홀」의 결말은 어떻게 날까요?

 

“회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울릉도에 위치한 군 특수 공항 직원들에게 어느 날 우편물이 도착합니다. 독감 전염을 방지하고자 알약 형태의 최신 예방 접종을 무료로 제공하니 공항 내 병원에 방문하라는 협조문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복지 혜택의 일환으로 알려졌지만, 직원 사이에는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은 수상한 알약이라는 소문도 떠돕니다. 이쯤 되면 일단은 두고 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싶지만, 스토리의 진행을 위하여 다음 날 바로 약을 삼키고 마는 「불결한, 것.」의 주인공! 과연 알약과 공항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지 직접 확인해 보시죠.

 

“하루라는 소중한 시간이 상자들과 함께 사라져 버리다니 마법도 이런 마법이 없었다.”

서른 살 청년 사리는 한때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었지만 결국 작은 화장품 공장에 취직하여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 냅니다. 팍팍한 회사 생활에서 의지할 사람이라곤 또래 친구인 도멸뿐. 그러나 작업량이 폭주하던 어느 날, 도멸이 지게차에 깔리는 사고를 당하고, 시급한 치료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관리자가 119를 부르기는커녕 지정 병원에 연락을 하라고 닥달하는 바람에 때를 놓쳐 버립니다. 가혹한 노동 현장을 보여 주며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단편 「차라리」였습니다.

 

“드디어 월급이 들어왔다. 오늘 저녁이 엄마와의 마지막 만찬이 될 것이다.”

좀비를 다루는 회사가 배경인 작품도 있습니다. 먼저 「다이웰 주식회사」에서 시현은 ACAS라 불리는 좀비 바이러스에 걸려 회복할 수 없는 사람들을 안락사시켜 주는 다이웰 사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형집행인’이라고 부르며 꺼리는 일이었으나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품위와 고상함을 지키려 했던 어머니가 결국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버리고, 딸은 어머니의 죽음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맙니다.

다음으로 「헤드헌팅 비즈니스」는 시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가공해 좀비로 만들어 노동력으로 재활용하는 인력 사무소의 요령 없는 헤드헌터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죽은 몸에 값을 매겨 거래하는 직업이라니, 기발하고도 으스스한 발상이네요!

 

“일단은 거기라도 입사하자. 생각외로 괜찮은 직장일 수도 있잖아?”

쉰 번의 구직 실패 끝에 절망하던 청년 세일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성별, 학력, 자격, 나이 무관/3교대 근무/업계 최고 대우/정년 보장’이라는 딱 네 문구로 쓰인 채용 공고였습니다. 이름도 나와 있지 않고, 무슨 직무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수상한 직장이었지만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던 세일은 지원서를 냅니다. 이윽고 과천 외딴 곳에 위치한 회사에서 기묘한 세 노인이 심사한 면접은 기-승-전-벤츠타령으로 끝납니다. 쉽게 입사한 세일은 근무 시간 동안 벽시계를 지켜보다가 시곗바늘이 3시를 넘기면 손잡이를 당기고 수화기를 드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 막대한 연봉을 받게 되는데… 과연 이 회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오가는 재미를 선사하는 「신입사원」은 단편으로도, 장편으로도 흥미롭게 즐길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이 건물 안에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할 뿐이지.”

합격한 회사에서 보내 준 양복을 입고 서울로 첫 출근을 한 윤수는 지정된 사무실에 도착하고는 혼란에 빠집니다. 문을 열고 보니 눈에 들어온 것이라곤 덩그러니 놓여 있는 책상과 전화기, 스피커뿐인 두 평 남짓한 방이었거든요. 곧이어 스피커를 통해 들려온 음성은 윤수를 K34234라는 코드명으로 부르며 업무 내용을 알려 줍니다. 그 업무란, 전화를 통해 받은 지령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것이 전부였는데요. 미심쩍은 지령의 내용들과 그것을 전달받은 사람들의 섬뜩한 반응을 「첫 출근」에서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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