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미롭고 때론 쓰린 삶의 맛

2017.12.8

본격 음식 테마 장르소설 작품집 『7맛 7작』 출간을 기념하며, 이번 주 작품 큐레이션에서는 음식을 비중 있게 다룬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상을 차리기 위한 ‘레시피’부터 집안 여자들에게만 대대로 내려오는 비기가 담긴 칼국수, 시간을 담은 국수, 미래가 담긴 면발, 해양 생물의 혼이 봉인된 과자까지… 저마다의 개성이 깊이 우러나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만나보세요.


•”요리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통제에 관련된 문제다.”

남자는 아내가 죽고 난 뒤, 그녀가 손수 만들었던 레시피 북을 몇 번이고 열어보며 홀린 듯 요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리하게 벼려진 칼, 고유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손질되는 요리 재료들. 철저한 통제 상태 하에 놓여진 재료들의 고통과 비명을 즐기는 듯, 한 남자가 묵묵히 음식을 만듭니다. 그렇게 완성된 요리를 들고 남자는 임신한 아내를 죽게 만든 소년에게 면회를 갑니다. 아내의 맛을 조금이라도 느끼길 바라면서요. 「레시피」는 아내를 잃은 남자의 공허한 분노가 요리의 과정에 접목된 독특한 단편입니다. 파괴라는 이름의 짐승이 녹아 있던 요리를 끝없이 만들던 남자, 하지만 끝내 그가 마주했던 음식의 맛은 어떠했을까요?

 

•”슬픈 생각을 하자, 슬픈 생각.”

할머니가 사장님인 칼국수 집의 손녀인 ‘나’는 새벽부터 애먼 눈물을 빼기 위해 분투 중입니다. 이 집안만의 비기인 ‘눈물 반죽 칼국수’를 만들기 위해서는 눈물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잘 숙성된 밀가루 반죽에 눈물 한 스푼을 넣어 만든 칼국수 한 그릇이면,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마법의 묘약이랄까요. 이 집안 여자들에게만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 레시피지만, 지속 기간이 일주일이라는 게 함정이지요. 덕분에 연애 최장 기록이 일 년이었던 그녀지만, 이번에는 뭔가 좀 다릅니다. 회사에서 그녀를 끝없이 괴롭히는 사수 팀장에게 국수를 먹이고, 일주일 동안 바보 분장을 시키는 등 증거를 남겨 차갑고 냉정한 팀장의 약점을 단단히 잡아두겠다는 열의에 불타올랐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팀장에게 겨우 칼국수를 먹일 기회가 도래한 찰나, 난데없이 회사 고위 간부가 나타나 국수를 대신 먹으려 듭니다. 과연 그녀의 험난한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좌충우돌 눈물 반죽 칼국수 로맨스가 펼쳐집니다.

 

•”말 그대로 죽기 전의 식사야. 먹는 시간만큼 시간이 늘어나.”

한국에서는 특별한 날이면 길이가 긴 국수를 삶아 먹으며 장수의 바람을 되새기고는 하지요. 앞서 칼국수 가게의 특별한 비기를 소개해 드렸다면, 이번에는 모든 차원을 세밀하게 쪼개고 연구하여 만들어 낸 결과물로서의 ‘국수’가 등장합니다. 시간을 물질로서 수집하고 응집시켜낸 뒤 어떤 물질에 결합시킬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이러한 SF적 상상력을 토대로 두 친구의 우정을 따스하게 담아내는 이야기 「시면」입니다.

 

•”왜 육수에서 사람들의 미래가 떠오르는지 아는가?”

여기, 어떤 식당이 하나 있습니다. 창문도 간판도 없이 콘크리트 외벽으로만 남은 허름한 곳이라 보통이라면 발견하는 것도 힘든 식당이죠. 가게는 명색이 면 요리 전문점이었지만, 빈 그릇에 육수만을 제공합니다. 면은 어떻게 하냐고요? 육수가 담긴 그릇을 들여다보는 순간, 그 손님에 맞는 면이 꿈틀거리며 나타납니다. 나타난 면은 손님이 앞으로 겪게 될 미래의 가능성을 내포한 것, 즉 미래가 담긴 면발입니다. 가능한 미래에 따라 면의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손님은 이곳에서 그야말로 인생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면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시간을 선형화시킨 국수가 등장하는 「시면」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작품 「면 한 가닥」입니다. 미래를 담은 면발과 한이 서린 육수를 중심으로 풍부한 상상력이 빛나는 동시에 점잖은 위트와 묘한 결말까지 깊이 우러나는 이야기입니다.

 

•”할 일이 없으면 오늘 당장 볶잡밥을 메뉴에 추가하세요.”

짜장면과 짬뽕이냐. 어느 하나 양보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 숱한 이들을 위해 고안된 중국집 혼합 메뉴 ‘짬짜면’에 이어 ‘볶짬면’, ‘볶짜면’, ‘탕짜면’, ‘탕짬면’, ‘탕볶밥’ 등이 속출하는 요즘, 실제로 이런 메뉴 하나 없을까 싶긴 합니다. 점심 장사를 마치고 오후의 한산함을 달래려던 무렵 걸려온 전화 한 통. 너무나 자연스럽게 ‘볶잡밥’을 주문하는 전화에 주인은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짬짜면은 있는데 볶음밥과 잡채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메뉴는 왜 없냐고 반문하기까지 하는군요. 전국의 중국집을 다 뒤질 기세로 전설의(?) 볶잡밥을 찾아 나선 한 남자의 무모한 도전기. ‘있을 것 같은데 없는’ 것들을 막상 알게 되면 더욱더 애가 타기 마련이지요. :)

 

•”죽고 나서야 혹은 내 곁을 떠나서야, 그제야 그립게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이를 추억할 때, 흔히 떠올리게 되는 것이 그와 나눴던 음식이 아닐까 합니다. 만화 「요츠바랑!」의 주인공들처럼 아빠가 비벼놓은 밥을 맛나게 나눠먹었던 추억을 곱씹는 것이 전부인데, 제목만으로도 어떤 감정의 출구가 느껴지는 듯 합니다. 「고추장과 김치를 넣고 싹싹 비벼먹다」는 짧은 엽편이지만 일상에서 가장 가까운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언젠가 내게 라면을 사주시겠어요?”

PC통신이 유행하던 시절, 푸른 스크린 너머 점멸하는 커서와 디지털 문자만으로도 서로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이던 ‘나’의 비밀친구였던 남자는 언제든 라면을 사주겠다고 ‘말했고’, 나는 입시를 마치고 대학생이 되어 상경하게 되었지만 정작 그를 만나기로 했던 약속은 점차 밀려납니다.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던 만남, 라면 한 그릇도 같이 나누지 못 하고 지나버렸던 어느 시절에 대하여. 누군가의 오래된 기억이 생생히 느껴지는 이야기 「라면 사주시겠어요?」입니다.

 

•”밤이 되었다. 꽃게가 일어날 시간이다.”

주인장의 신성한 식탁에 오르는 행위를 곧 구원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각종 해산물들의 세계. 밤이 되면 깨어나는 이들은 저마다의 규칙과 관념을 공유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특별할 것 없던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랍스터라 불리는 이국의 친구가 등장하며 이 세계의 판도를 완전히 휘어잡습니다. 랍스터의 폭압이 계속되던 때, 한 비상한 꽃게가 간장연이라 불리는 거무튀튀한 액체에 봉인되는 것을 스스로 선택하여 랍스터에 맞서고자 하는데… 귀여운 상상력이 넘실거리고, 매끄럽게 서사를 이어가는 능숙함이 탁월합니다. 밤의 제왕 랍스터와 용기 있는 꽃게 사이의 본격 간장 튀는 활극이 펼쳐지는 「꽃게 사가」입니다.

 

•”해양 생물 모양의 과자엔 그 생물들의 혼이 서려 있다.”

「꽃게 사가」에 이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또 한 편의 이야기 「상어밥 해방기」, 이번에는 해양 생물 모양의 과자에 얽힌 전사를 다룹니다. 오래 전 일어난 지상인과 아틀라스인 간의 전쟁 결과, 지상인은 아틀라스 인을 학살하고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해양 생물의 영혼마저 봉인해버리고 맙니다. 아틀란티스의 마지막 후예인 ‘나’는 2017년 한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해양 생물들의 혼을 해방하는 의식을 치르기 위해 상어밥을 하나씩 모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의에 필요한 상어밥을 모두 채우게 되는데… 평범한 일상에 재미와 온기를 더하는 유쾌한 소품입니다.

 

•”이제 내가 보름달 빵을 먹는 것을 아무도 막지 못한다.”

추석 연휴를 맞아 기숙사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먹으려고 산 보름달 빵 하나. 빵 봉지를 뜯으려는 찰나, 얼굴에 좋은 기운이 넘친다며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우악스럽게 손목을 잡아챕니다. 뭔지도 모를 ‘EPS’에 아주 적합한 기운을 지녔다며 허무맹랑한 소리에 시달리다, 겨우 도착한 서울역에서는 노숙자와 억울한 시비에 휘말리지 않나, 저녁이 다 되어 가는데 집에서는 한사코 성묘를 가야한답니다. 쫄쫄 굶은 상태로 휘영청 떠오른 달을 보며 식욕이 솟구친 ‘나’는 체면이고 자시고 보름달 빵을 꺼내 한 입 베어 먹으려고 하는데… 우연한 만남이 빚어낸 절묘한 결말이 인상적인 단편 「보름달 빵 안에는 오버토끼 띠부띠부 씰이 없었다」입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의 여정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실 거예요.

 

마지막으로, 『7맛 7작』에 수록되기 전까지 웹으로는 만나볼 수 없었던 두 작품도 브릿G에 공개되었습니다. 경성의 평양냉면 가게를 둘러싼 살인 미스터리를 흥미진진하게 다루는 「류엽면옥」과 라면에 환장한 귀신에게 공양하는 군인의 에피소드를 그린 「군대 귀신과 라면 제삿밥」까지 한데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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