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오늘도

2017.10.2

한국에서 중년의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솔직한 소회를 극화한 문소리 주연·감독의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의 제목을 빌어, 여성들의 삶의 현장이 여실히 드러나는 브릿G 작품들을 한데 모아봤습니다.

건국 이래 가장 긴 연휴를 앞두고 있다지만, 어쩐지 그리 달갑게만 느껴지지는 않는 건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겠지요. 하지만 여자들은 오늘도 사건을 수사하고, 서로와 연대하고, 역사를 바꾸기 위해 행동하고, 부지런히 일하고, 또 쓰고 싶은 소설도 쓰면서, 그렇게 살아갑니다.


  • “일밖에 모르는 또라이, 전일도 탐정인데요.”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를 소재로 한 화제의 단편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에서 계약 결혼에 얽힌 미스터리를 화려하게 파헤친 우리의 탐정, ‘전일도’를 기억하시나요? 그녀가 돌아왔습니다. 자칭 불륜탐정이지만 이번에는 은퇴한 전직 탐정 친할아버지와 피해자 주민들로부터 무리한 갭투자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고 잠적한 집주인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떠맡게 됩니다. 현 정부의 8·2 부동산 대책을 망라하는 주요 서사도 흥미롭지만 독박 육아에서 해방되기 위해 자신만의 일을 시작한 여성의 사연, 자유를 찾아 독립한 할머니의 여정이 더욱 깊숙이 와 닿습니다. 힘든 회사 생활을 하는 것만큼이나, 누구나 학업, 육아, 결혼 생활 등 저마다의 삶을 같은 무게로 감당하고 있으니까요. 우리의 20대 캥거루족 비혼 공시생이자 자칭 탐정 전일도, 그녀 역시 언제나 치열한 삶의 현장에 놓여 있죠. 특유의 잔잔한 유머와 삶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이는 이야기 「헬로, 욜로」입니다.

 

  • “왜요, 여자가 욕하는 게 이상해요?”

과거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 ‘리아’, 그녀는 언제나 역사를 바꾸기 위해 시간을 넘곤 했습니다. 시간 여행의 매개는 시리도록 선명한 파란색을 띤 의복 ‘타임윙스’. 천상을 떠났다가 날개옷을 숨긴 나무꾼과 결혼하게 됐던 선녀처럼, 리아는 시간을 돌리고 돌리다 일제시대 말기에 당도하게 되어 계획에도 없던 혼인(!)까지 하게 됩니다.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폭력을 바꾸기 위해 시간을 돌리기 시작했던 리아에게, 독립을 열망하는 상냥한 ‘광복군’은 점차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리아가 시간을 돌리는 목적이나 과정 자체가 여성은 물론 성소수자, 이주 여성과 그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현실의 도열을 보는 것만 같아 괴롭지만, 이토록 현실을 깊이 비추는 이야기가 더욱 필요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 “우리는 666호에 있어요. 친구가 필요하면 놀러 와요.”

이직한 회사에서 격무에 시달리다 위장병을 얻게 된 그녀, 속 쓰림에 좋다는 마그네슘을 직구로 구입해 먹은 뒤 ‘마그네슘워먼’이 되어 위풍당당하게 사표를 꽂아 넣고 회사를 뛰쳐나옵니다.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매던 중 그녀가 발견한 것은 초라한 간판의 ‘생매장 여관’. 줄여서 HAL이라 부르는 Hybrid Assistive Limb라는 최신 기술이 탑재된 의복이 등장하는가 하면 승천하다 로켓과 부딪혀 부상당한 이무기를 치료하는 등 범지구적인 상상력과 유쾌함이 곳곳에서 터져 나옵니다. 만취한 채 행패를 부리는 남자를 손쉽게 제압하는 ‘마그네슘워먼’과 강력한 기계 팔다리로 산 넘고 강 넘어 집회를 나가는 소영 씨가 만들어나가는 포복절도 연대기, 생매장 여관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그녀는 파워 로더를 갖고 싶었다.’

말도 할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어 어렸을 때부터 기계에 둘러싸여 지냈던 ‘그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기계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의 능력을 절박하게 키워나갑니다. 어느 날, 그녀의 집을 남몰래 지켜보던 한 남자가 그녀의 정체를 간파하고는 범죄 계획을 세웁니다. 과연 그녀는 자신을 잘 지켜냈을까요? 역시 읽는 이에게 참 많은 화두를 던지는 이야기입니다. 여자들에게 꼬리처럼 따라붙는 고정적인 성역할,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폭력, 게다가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라는 끔찍한 제도까지. 오늘도 자신만의 ‘힘’으로 하루하루 살아내고 지켜낼 그녀의 삶을 깊이 응원하고 싶습니다.

 

  • ‘한 여자가 왕의 성을 찾았다.’

용과 무탈하게 지내기 위해 요구대로 젊은 사람을 구해 바치기로 약속한 왕은, 20대에서 30대 사이의 여자 인부를 구한다는 공고를 냅니다. 높은 보수에 혹한 사람들은 성으로 들어갔지만 돌아오지는 못했죠. 그리고 먼 시골구석에서 찾아왔다며 한 여자가 왕의 성을 직접 찾아옵니다. 그 마지막은 꼭 직접 읽어보시길.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엽편입니다.

 

  • “왜 그 실패를, 자신과 결혼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서른한 살, 엄마 집에서 쫓겨난 ‘하루’는 그랜드 빵집이라는 조잡하고 현란한 간판이 달린 빵집 위로 강제 이사를 오게 됩니다. 어머니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치밀한 계획 아래 유배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 소위 실패의 케이스로 낙인찍힌 그녀의 커리어는 미술사를 전공해 서울에서 근무하다 로맨스 소설 작가로 거듭난 것이었습니다. 이사 온 고향 동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로맨스 작가 하루의 좌충우돌의 수사극이 펼쳐질 그랜드 빵집으로 어서오세요!

 

  • ‘비록 남자를 기다리지는 않지만 나는 명쾌한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철야로 마감하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던 스물여섯의 웹툰 작가 ‘은혜’는 알고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이 나오는 기묘한 꿈을 꿉니다. 그리고 며칠 뒤 실제로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미래를 상상하는 남자와, 매주 작업을 소화하느라 미래조차 생각할 틈이 없는 여자. 각자가 감당하는 삶의 모양만큼이나 달라져버린 그들의 이야기. 명쾌한 미래를 기다리는 은혜 씨의 건투를 빕니다.

 

  • “그냥 그렇게 잘 사세요.”

마을의 경로대잔치가 열리던 한 식당에 우연히 들어가 합석하게 된 ‘희’. 마흔을 앞둔 그녀는 고졸 계약직부터 시작해 악착같이 일하며 팀장의 직함까지 얻었지만, 결국 따라붙는 별명은 ‘마녀’가 전부였습니다. 꿀벌처럼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하는 그녀,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던 상황을 극복하려 악착같이 노력했던 그녀의 사연이 애잔하게 담깁니다. 그럼에도 동네 노인들의 추행과 폭언에 맞서는 그녀의 잔잔한 일갈이 어찌나 소중하게 느껴지던지요. 식당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이 선명히 잡힐 것만 같습니다.

 

  • ‘이 정도면 살겠다 싶었다.’

3년 전 학생에게 심각한 화상을 입고 교사를 그만둔 이후 부모 집에 얹혀살고 있는 서른셋의 백조 ‘진영’. 계속되는 무위의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동네 언니가 진영의 교원자격증이 필요하다며 학원 동업을 제안합니다. 차근차근 일을 다시 해나가며 인생에 대한 자신감도 되찾아간다고 믿게 됐을 때, 그 믿음을 가차 없이 배반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럼에도 다시 찾아든 인생의 불운에 맞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차분히 응시하려 노력하는 그녀에게 진심어린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 ‘엄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지독하게 엄마와 자신을 옭아매던 아버지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강이’는 부산에서 도망치듯 올라왔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엄마가 있는 고향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딸은 넋이 나간 얼굴로 돌연 알 수 없는 소리만 해대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기만 합니다. 그러다 엄마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며, 줄곧 폐쇄되었다가 최근에 산책로로 개장된 옛 철길에 꼭 가봐야겠다며 당부하는데…. 엄마와 명숙 씨, 그 호칭의 간격에 담긴 인생의 굴곡을 눈물겹게 담아낸 이야기, 꼭 함께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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