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가깝고도 먼 그들과 만난 사람들  

2020.4.10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을 아시나요? ‘도긴개긴’ 혹은 ‘오십보백보’를 뜻하는 속담인데, 24절기 중 하나인 청명과 4대 명절 중 하나인 한식이 하루 차이란 것에서 비롯된 이야기입니다. 하늘이 맑아진다는 뜻의 절기인 4월 4일 청명은 말 그대로 날씨가 좋은 날이라, 봄 농사가 시작되는 날이지요. 동지에서 105일 후, 4월 5일인 한식은 또 어떤가요. 요즘은 의미가 많이 퇴색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조상에 제사를 드리고,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이 곳곳에 남아 있지요. 청명과 한식은 손 없는 날이라 귀신이 꼼짝 않는다는 믿음에, 산소를 돌보고 비석을 세우거나 이장을 하기 좋은 날로도 여겨집니다. 단오나 한식 같은 명절이 유명무실해질 정도로 조상들이 따르던 풍습들의 상당수가 시간이 흐르며 많이 사라졌지만, ‘손 없는 날’ 이사를 하는 풍습만큼은 여전히 민간에 남아 영향을 미치고 있죠.

손이란 조금 독특한 귀신인데요, 아시다시피 날에 따라서 방위를 옮겨가며 영향을 미치는 특이함이 있습니다. 이틀씩 동서남북을 돌아다니고, 가끔은 쉬는 날도 있죠. 참 성실하고 규칙적이에요.(귀신에게도 배울 점이 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손님’에서 ‘손’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해요. 과거 먹을 것이 없고 어렵게 살던 시절, 집으로 찾아온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보니 그에 대한 두려움에서 손에는 존경은 하지만 두렵다는 뜻이 포함되게 되었고, 이것이 날을 따라다니며 해를 끼치는 귀신의 이름에까지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이죠.

가능한 멀리하고 싶은 존재들, ‘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던 중에 문득 4월의 절기에 생각에 미처 시작하는 말이 길어져 버렸군요. 사실 오늘 브릿G에서 모아 본 이야기들은 갑작스럽게 귀신 손님과 마주친 사람들에 대한 것들입니다.

 

“그 말은 이상한 힘이 있다.”

귀신을 마주칠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은 어딜까요? 예전 같았으면 무덤가……라고 했겠지만, 요즘은 학교, 화장실, 아파트 복도나 엘리베이터, 사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귀신들이 출몰합니다. 그리고 또 한 곳, 병원을 꼽을 수 있겠지요. 인간의 생과 사가 갈리는 곳이기 때문에, 병원은 단연코 많은 귀신들이 등장하는 장소입니다. 그럼 병원에서 만난 귀신 이야기로 포문을 열어 볼까요. 병원에 입원한 엄마의 병간호를 하며 검사 결과를 기다리느라 우울한 내 앞에, 예전 직장 상사 P가 등장합니다. 피로 누적으로 입원해서 링겔을 맞는 중이라는 그는 병원 밥은 맛이 없다며 같이 저녁을 먹자고 권합니다. 두 사람은 함께 돈가스를 먹으며 가벼운 안부의 말을 주고받습니다. 작품의 장르가 ‘호러’였고 제목이 ‘엄마 나, 그 사람 봤어’였다면 뭔가 등줄기가 오싹한 대사처럼 여겨질 만도 한데, 이 작품의 장르는 ‘로맨스’이고 결말은 슬프지만 따뜻한 위로로 마무리됩니다.

 

“보면 몰라? 유령한테 색을 입히는 중이잖아. 아직도 안 보이니?”

눈이 먼 여자가 아파트에서 귀신을 봅니다. 사람들은 눈먼 여자가 미쳐버렸다고 생각하고는 아무도 그녀를 믿지 않죠. 그러자 여자는 급기야 기묘한 행동을 선보이는데, 귀신이 있다고 주장한 자리에 색색의 페인트를 들이붓고 온갖 냄새나는 것들을 모아놓기 시작한 겁니다. “귀신에게 색을 입힌다”는 명목으로 돼지 피를 한가득 담은 봉투를 그 자리에 터뜨리기까지 하죠. 결국 주민들은 장님 여자를 골탕 먹이기 위해 밧줄을 설치하고, 거기에 걸린 여자는 다리가 부러져 응급실에 실려갑니다. 문제를 일으키던 여자가 사라지자, 주민들은 뒤늦게 귀신의 흐느낌을 듣기 시작하는데……. 호러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운 이 작품의 제목이 왜 ‘피나무’ 유령인지, 직접 확인해 보세요.

 

“너 진짜 귀신 이야기 좋아해?”

지방 병원의 의사인 민재는 직원 숙소의 302호를 쓰고 있는데, 최근 402호에 새로 남자가 들어온 이후 층간소음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짐승이 내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이어 쿵쿵 소리까지 들려오자, 그 소리에 불현듯 민재는 지우고 싶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민재에게는 어릴 적부터 귀신을 보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는 학창 시절 같은 반 미모의 여학생 정연을 귀신이 등장하는 스팟으로 데리고 갔었죠. 정연이 귀신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그녀의 호감을 사려고 한 행동이었는데 그 일로 정연은 목숨을 잃게 됩니다. 한편 출근하는 민재에게 여직원 지혜가 접근해 와서는, 402호 사람이 수상하다며 같이 몰래 402호에 들어가보자고 제안하는데요. 과연 두 사람이 402호에서 맞닥뜨린 진실은 무엇일까요?

 

“네가 죽어버리는 악몽을 꾸었단다. 이리 살아 곁에 있는데, 내 딸이.”

정향은 다정한 남편 진정과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화목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정향에게 친정어머니인 한씨부인의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정향은 친정에 가기 싫어하지만 외동딸인 정향을 배려하는 남편의 말에 결국 친정으로 출발합니다. 이틀이 걸려 가마를 타고 돌아간 고향 집에서 정향은 남편과의 첫만남을 떠올리고, 곧이어 댕기머리 소녀의 환영을 보죠. 정향이 친정집에서 느끼는 미묘한 불편함과 그녀가 주변인들을 대하는 애매한 태도는 모호한 불안을 불러일으키고, 이야기는 점차 그녀가 가진 두려움의 실체로 다가갑니다. 지아비를 사랑하여 자신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사연이 서글프게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혹시 심심하신 거면, 잠깐 저희랑 이야기라도 하실래요?”

교통사고가 나서 팔이 부러진 나는 작은 종합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밤에 잠이 오질 않아서 병원 옥상에 올라가 보려다,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웬 젊은 남자와 마주칩니다. 남자는 심심한 거면 같이 모여 얘기라도 하고 가겠냐는 제안을 하죠. 남자의 말로는 또래 장기 입원 환자들끼리 한 병실에 모여서 밤마다 몰래 수다를 떤다는 거였죠. 나는 ‘유명 배우 K군의 입원 소식’이라는 미끼를 덥석 물고는 한밤중의 이야기 모임에 참여하게 되죠. 퇴원을 나흘 앞둔 날, 나는 간호사들이 주고받는 ‘뒤바뀐 계단 괴담’에 문득 등골이 오싹해지고 맙니다. 있을 곳이 아닌 위치에 존재하는 비상구, 불이 들어오지 않는 계단, 인기척이 전혀 없는 7층의 복도…… 전형적인 병원 괴담의 정석을 충실히 따라가는 작품인 만큼, 재미와 스릴이 보장되니 귀신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꼭 읽어 보세요.

 

“도깨비 터라고 들어봤나? 도깨비가 주인인 땅을 도깨비 터라고 불러요.
땅의 기운이 강해서 이상한 것들이 꼬이기 쉽고…….”

전후의 폐허에서 맨손으로 사업을 일으켜 현재의 독갑물산을 세운 자수성가의 대명사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에 빗속을 달려 병원으로 뛰어간 정석에게 할아버지가 뜬금포처럼 말씀하십니다. “회사를 처분해야겠다”고. 자신이 없으면 회사에 일이 날 거라고 혀를 끌끌 차던 할아버지는 정석을 보고 “네가 하루만 일찍 태어났어도.” 하고 한탄하시는데요, 사실 몇 시간 차이로 정석이 범띠가 아니라 토끼띠로 태어난 것을 내내 안타까워했던 것입니다. 노회장님께서 회사에서 하던 일이 뭐 대수로운 거라고 회장님 없다고 회사가 안 돌아가겠냐고 생각하는 정석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할아버지는 정석에게 자신 대신 직원들의 불편신고함을 관리하라고 엄명을 내리시지요. “넌 기가 약해서 안 돼, 토끼띠잖냐” 하고 전국의 토끼띠들의 울분을 살 소릴 태연하게 하며 “한 달 만에 못한다고 뛰어올 거다”며 낄낄대는 할아버지에게 정석은 어이없는 얼굴을 해 보이지만 글쎄요, 갑자기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우후죽순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거기다 퇴근을 하던 정석의 눈에 시커먼 쥐 떼가 회사 건물 기둥을 갉아먹는 모습이 들어오고, 심지어 정석은 나뭇가지 비슷하게 생긴 기괴한 생명체에게 목숨을 위협당하는 상황까지 발생하지요. 결국 정석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신비로운 이력서의 주인공, 해영에게 연락을 취하게 되는데, 바로 그녀는 사주에 호랑이가 네 마리나 있는 한마디로 “기 쎈” 여자였던 것입니다. 귀신의 머리채도 낚아채는 그녀,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해영이 토끼 남자 정석과 함께 독갑물산 사원들의 불만을 해결하여 이 건실한 기업에 생계가 달린 수많은 직장인들의 애환을 달래 줄 수 있을지, 어디 그 행보에 함께 해 보시죠.

 

절기로 연 글인 만큼, 마무리도 절기로 해 볼까 합니다. 청명과 입하 사이의 절기인 곡우가 다가올 가장 가까운 절기네요. 24절기 중 여섯 번째인 4월 19일 곡우는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못자리를 마련하여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이죠. “곡우에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라는 낭만적인 표현의 속담도 있답니다. 더불어 이날은 부부생활을 좀 자제해야 하는데요, 곡우에 부부가 잠자리를 함께하면 토신이 질투하여 농사가 망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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