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더 더워진다면

2020.2.14

올해 겨울은 유난히 따뜻했습니다. 하지만 아마존과 호주 등지에 일어난 산불, 끝나지 않는 쓰레기 폐기 문제, 녹아 가는 빙하에 관한 암울한 소식을 최근 들어 유난히 자주 접해서인지 따뜻하다고 마냥 좋기보단 불안한 마음이 함께 들었는데요. 앞으로는 이런 테마의 콘텐츠들을 더욱 많이 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후 변화를 소재로 한 소설을 일컫는 ‘클라이파이(Cli-Fi, Climate Fiction)’라는 용어도 있다고 하는군요. 어떤 작품들을 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 한편으로, 이제는 이것이 먼 미래가 아닌 성큼 당면한 현실의 이야기이며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은 이 변화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이번 큐레이션에서는 변화한 기후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보았습니다.

 

“바다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카운트다운은 실패로 끝났다. 흑해에서 미생물이 모두 죽었음을 확인하고 승혜는 이 지구의 모든 바다가 사해가 됐음을 선언했다.”

요 한 달간은 신종 코로나 사태로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공포를 새삼 실감한 기간이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극지방과 고산 지역의 빙하들이 녹으면, 여기에 갇혀 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외부로 유출되어 활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더욱 무서워지는데요. 「레시」는 빙하가 녹으면서 그 안에 잠들어 있던 바이러스가 깨어나 바다에 확산되고, 이로 인해 10년 만에 해양 생물이 종적을 감춘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바다를 되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지자, 토성의 얼음 위성 ‘엔셀라두스’를 테라포밍하기 위해 일군의 과학자가 파견됩니다.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현실에서 벌어지지는 않았으면 하지만, 이 단편에서 주인공이 도달하는 결말은 아름답고 낭만적이기까지 하네요.

 

“기후 위기의 시대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는 하나둘 말라죽었다. 관리하려면 인력이 필요했다.”

한때는 ‘모기’하면 자연스레 한여름이 떠올랐는데 이제는 가을에 더 극성이 되었습니다. 기후 변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우리 삶도 어떻게 달라질지 우려가 앞서는데요. 지리산에서 바나나가 자랄 정도로 더워진 시대를 그린 이 작품에서, 온난화의 영향은 전남 구례의 천연기념물 화엄사에도 들이닥칩니다. 바로 화엄사의 상징인 들매화가 시들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는데요. 새로이 당선된 대통령이 만든 기념수목보전위원회는 들매화를 북쪽 지역으로 옮기려고 하지만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힙니다. 행정대집행을 하러 온 공무원들에게 화엄사 측에서는 매화를 옮기려면 세 가지 난제를 해결하라고 제안하는데요. 과연 세 가지 난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기후 변화에 따라 지역 사회에 불어닥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와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기온은 점점 올라갔고 식물은 말랐으며, 플라스틱으로 된 잔디마저 햇볕에 오래두면 녹아 내렸습니다.”

기후 변화와 생태계 이상을 초래하는 주 원인이 인간의 활동에 있다는 점이나, 최근의 환경 운동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개선은 요원해 보인다는 점을 생각하면 암울하기 그지없습니다. 이 엽편에서는 식물이 마르고 플라스틱 잔디가 녹아 가는 상황에도 아랑곳않고 끊임없이 공해와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망가진 도시의 풍경이 생생히 그려집니다.

 

“그러다 엑소더스를 맞았다. 환경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남은 힘을 모두 엑소더스에 써 버렸다.”

바이칼 호수 근처의 휴양 도시에서 교사일을 하던 남자는 이상 기후로 고향이 물바다가 되자 가족을 잃습니다. 삶의 목적을 잃고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던 나날이 이어지던 중,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의 한 소절에 이끌려 ‘엔젤스 타운’이라는 도시에 가보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였는데요. 녹색 숲과 마르지 않는 샘물이 넘쳐나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낙원”을 향해 여정을 떠난 남자는 사막을 헤매던 중, 홀로 은둔하며 지내는 한 노인을 만나 물 한 잔을 얻어 먹고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런데 노인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 보였는데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지 직접 확인해 보시죠.

 

“그 바람이 품은 열기는 맨피부라면 가벼운 화상까지 입힐 수 있는 건 물론, 이미 가로수와 잡목을 누렇게 말라죽인 후 돌마저 부식시킬 기세다.”

전례 없는 폭염이 몇 년째 기록을 경신하는 것도 모자라, 뜨거운 붉은 모래바람까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부식성 물질을 포함한 이 열풍이 심할 때면 전기 신호도 약해지고 차량 통행도 마비되어서 도시는 마치 잠에 빠진 것처럼 정지 상태에 놓이고 마는데요. 이와 더불어 신기루 같은 이상한 광경들을 봤다는 목격담들도 도시전설처럼 떠돕니다. 어느 날, 한 편의점에 갇혀 갑자기 찾아온 열풍이 잦아들길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로 서서히 불안감이 번져 가는데요. 바깥은 기묘한 열풍, 실내는 에어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후덥지근한 상황 속에서 동요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는 작품입니다.

 

“서울 대부분은 물이 차올라 있었다 멀리까지 바라보면 산과 산 사이에 드문드문 조그만 섬처럼 아파트나 높은 건물들이 빼꼼 튀어나와 있었다.”

다음은 영화 「워터월드」처럼 물에 잠긴 세상을 무대로 한 작품입니다. 아마도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여 육지의 상당 부분이 잠겨 버린 미래, 주희는 한때 서울이었던 지역에서 조부모와 함께 배를 타고 다니면서 물속에서 폐품을 수거해 되팔며 근근이 살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직 물에 잠기지 않은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태어난 지 2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있던 어머니 수빈을 만나는데요. 식량을 구하러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마냥 기다리는 수빈에게서 그들은 수백 명의 사람이 함께 생활한다는 거대한 ‘크루즈’의 존재에 대해서 듣게 됩니다.

 

“많은 이들의 예상처럼 핵폭발이나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 좀비 사태로 인한 멸망은 아니었다. 그저 또 한 번의 빙하기, 그것이 전부였다.”

갑작스럽게 닥친 빙하기로 인해 인류의 전성기가 끝을 고한 지 40여 년 후. 국가도 문명도 잃어버린 채 살아남은 1만여 명의 사람들은 ‘스테럴’이란 이름의 도시, 즉 방공호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갑니다. 이 중 ‘스캐빈저’라 불리는 이들은 추위와 위험으로 가득한 도시 바깥에 나가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구해 오는데요. 눈보라가 특히 심해져 누구도 절대로 바깥에 나가지 않는 4월을 앞두고, 젊은 혈기와 장난기가 넘치는 스캐빈저 몇 명이 자살행위일지도 모를 모험을 떠나려 합니다. 과연 이들은 무엇을 목격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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