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에드워드 고리를 좋아하세요?
닉 드레이크를 좋아합니다.
아주 오래 전, 인터넷 상에서 랜덤으로 닉 드레이크를 듣는데 귀에 설은 노래가 한 곡 나오는 겁니다. 제목은 ‘suicide is painless’ 닉 드레이크를 조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면 그의 목소리가 아니란 걸 단번에 알만한 노래였죠. 어쩌다 이게 닉 드레이크로 떠다닐까… 원작자를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 노래를 제프 버클리의 플레이리스트에서도 듣게 되죠. ‘suicide is painless’. 제프 버클리를 조금이라도 좋아한다면 그의 목소리가 아니란 건 바로 알 겁니다. 다른 땐 이안 커티스의 곡으로, 또다른 자살한 뮤지션의 곡으로 둔갑해 온갖 플레이리스트에 기생하던 이곡이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M.A.S.H’라는 영화 사운드트랙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땐 이미 이 노래의 팬이 돼버린 뒤였고.
에드워드 고리를 좋아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와 집안을 배회할 뿐 영원히 떠나지 않는 수상한 손님이나, 알파벳 철자에 맞춰 모조리 병들고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의 이야기. 그런 것들을 끝도 없이 쏟아내면서 정작 자신은 ‘책과 고양이가 있으니 인생은 좋은 거야’ 라던 낙관주의자.
그의 그림들을 따라다니다가 이런 걸 하나 발견하게 되는데요,
에드워드 고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이 아니란 건 한 눈에 알 법한 그림이죠. 그러나 어디서든 에드워드 고리의 이름으로 떠다녀 여전히 원작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구글신조차 이게 어느 하늘에서 떨어진 작품인지 모른다고 하시는데요, 아무튼 이 그림의 출처는 제게 뭐랄까 그다지 중요하진 않지만 늘 신경쓰이는 작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장난을 시작한 사람들의 동기는 뭘까요. ‘이걸(A) 좋아하는 사람들아, 이걸(B) 좋아해줘’ 라고, 외치기엔 수줍은 사람들이었을까.
그런 미심쩍은 경로로 제게 닿은 이 그림의 원작자를 찾습니다 -라는 컨셉 -을 빙자한 내가 좋아하는 것들 얘기하고 기분 좋아지기 프로필 소개였습니다.
고리 생전 서로의 팬이었던 영국 밴드 타이거 릴리스는 에드워드 고리 미발표작들에 대한 감상문을 음반으로 내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고리의 추도사를 대신했는데요, 그 중 한 곡을 같이 들어달라고 남기고 물러가겠습니다.
1월, 사촌 프레드가
다락방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2월, 괴상한 모험 끝에
아버지는 틀니를 잃어버렸다
3월, 피오나는 어느 밤
귀가길에 공포에 질렸다
기다란 검은 차가 그녀의 뒤를 밟다가
그녀를 태우고 먼 곳으로 떠났다
4월, 호레이스는 버려졌다
경솔한 생각, 옹졸한 마음
그가 가졌을 그 사상들의 결과로
그는 알려지지 않은 동양 신흥 종교에 빠졌고
귀에는 문신을, 코에는 피어싱을
발가락은 헤나로 물들인 채 어슬렁거렸다
친족들은 그를 용납할 수 없었고
더이상 함께 살 수 없음을 통보하였다
힙딥 가문에서…
5월, 플로 이모의 재채기가 시작되었고
그것은 희귀병의 전조였음이 밝혀졌다
6월, 제프리가 수감되었다
여전히 광역에서 그를 수배하고 있다
7월, 엄마는 파산했다
사기 당한 채 빈 손으로 떠났다
8월, 브루노는 졸도했다
거리에 나갔다가 지나가던 행인에게 두드려 맞았다
힙딥 가문의 이야기…
9월, 우리 모두는 슬픔에 잠겼다
그레이 양이 크루즈의 뱃머리에서 추락해
노르웨이의 깊은 피오르드 속으로
빨려들어갔기 때문이다
10월, 앨리스는 약혼 직후
약혼자 에드가드를 경멸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자 약혼자의 모든 행동이
진저리치게 소름끼치기 시작했다
11월,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베이비 부가 벼락을 맞은 것이다
전문가의 소견은 어쩌면 이제 그가 걸을 수도
약간은 말을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것
12월, 에이미의 운이 다했다
‘그림자 없는 여인’을 부르는 동안
갑자기 목소리를 잃고 말았다
운명의 장난, 그것은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으니
힙딥 가문이여…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바라노니
그대들은 어떻게든 세월을 견디시길
그리고 우리를 축복해주겠는가
저 운명의 손아귀가 또다시
우리를 움켜쥐는 날까지
그러나 우리는 두렵다
두려움으로 맞이한다
여기서 우리는
고리gorey의 끝을 맞으리.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