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가를 위한 참고서
글을 쓰는 동안에는 다른 걸 잘 못 하는 편입니다. 못난 집중력이 깨질까 봐 소설도 안 읽게 되고, 영화도 생각없이 스트레스 풀 수 있는 영화들만 보게 되죠(최근에는 멜로가족극의 주인공이 된 007을 봤다는).
그럼에도 환기는 필요해서, 감정이입 안 하고 볼 수 있는 책을 샀는데. 만만한 책이 아니더군요. 해서 SF를 쓰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소개해 봅니다.
제목처럼 SF의 개념을 잡고, 주요 작품과 사조, 흐름을 조망하는 개론서예요. 이런 책들은 여럿 나와 있는데, 생각보다 깊이 들어가는 책이에요. 예를 들면, 이 책의 작가들은 ‘SF의 정의’에 대해
장르들은 서로 다르고, 때로 충돌하는 의제들을 가지고 수많은 행위자(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 팬덤, 다른 작가까지)가 수행하는 편입 절차의 담론적 산물이다. 따라서 SF에 단 하나의 정의는 있을 수 없다.
라고 합니다. <유토피아>와 <프랑켄슈타인> 중 최초 SF가 뭐냐를 소개하면서, 여러 담론들이 어우러지면서 SF 이론의 기초가 만들어졌다고 해요. 그 과정에서 식민지 모험소설에서부터 아포칼립스까지, SF의 층위가 넓어질 수 있었다고 하죠.
초기 펄프픽션에서 시작된 SF가 싸구려로 비하 받고, 남성중심적 서사라 비판받았으면서도. 행위자들이 어떤 시도를 하고 어떤 작품들을 내놓으며… 현재의 위상을 만들어갔는지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SF 팬임을 자처했는데, 표피적으로만 알고 있던 것들의 개념을 잡아주고 이해시키는 책인 것 같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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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SF를 시작하시는 분들에겐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입문자용 소개서는 아니거든요. 그럼 어떤 분이 읽으시면 좋을까요?
SF 작품을 몇 편 쓰셨고, 그러면서 SF를 더 좋아하게 됐고, 더 탐구하고 싶고, 더 좋은 SF를 쓰고 싶은데… 처음 멋진 상상력에서 시작했던 동력은 떨어지고,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신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책의 작가들이 ‘진중하게’ 늘어놓는 SF연대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제 백여 년 역사를 가진 SF 문학의 전체 모습을 그릴 수 있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확인할 수 있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이 그리고 싶은 SF가 어떤 것인지 방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재미있게 읽으시고, 좋은 작품으로 답해주시길. 좋은 리뷰로 답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