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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열쇠

분류: 수다, 글쓴이: 후안, 17년 5월, 댓글12, 읽음: 136

비가 내린다.

영국쥐는 몸을 추슬렀다. 살아남은 게 다행이었다. 그 전설적인 명성의 이연인을 만나서 고문 하나 안 당하고 이렇게 몸 성히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천지일변의 기적과 다름없었다. “열쇠…….” 그들은 이 열쇠의 값어치를 모른다. 만약 알았더라면 이렇게 내게 던져주지도 않았겠지. 그들은 단지 ‘아이라비’라는 허울에 허우적댈 뿐이다. 붕붕 영감의 조언이 맞았다. 기자목 패거리는 내가 아이라비를 살해하고 그의 자리를 이어가려는 걸로 보고 나를 덮쳤다. 하지만, 나는 아이라비의 자리 따위는 중요치 않다.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 황금 열쇠.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어. 이연인이 나를 그냥 버려둔 건 정말 천운이군.”

기자목의 무서운 점은, 인재활용 이었다. 그가 직접 움직여 일처리를 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는 항상 지시만 내렸다. 그리고 그의 패거리들이 임무를 수행해왔다. 왜 그에게 무시무시한 킬러들이 모여 있는 걸까. 그는 수다쟁이였다. 그는 항상 떠들고, 또 떠들었다. 정신없는 남자였다.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그는 항상 건전지 광고의 로봇처럼 여기저기 쏘다녔다. 그러나 영국쥐는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그런 그의 본 모습을 눈치 채고 있었다. 자신을 과장되게 드러냄으로 호감과 비 호감을 유도해, 판별하여 비 호감을 보이는 이를 암암리에 처단하는 것이다. 호감파의 수장인(왜 전설적인 그녀가 기자목이 마음에 드는지는 아무도 몰랐다)이연인이 대부분의 임무를 수행했다. 기자목,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아주 고단수의 남자다.

“분명 책사가 있을 거야.”

아니, 그야말로 천재인가? 책사 따윈 필요 없는?

영국쥐는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1세대 아이라비를 살해한 이에게 이 열쇠와, 금고의 위치를 넘겨야 했다. 그가 내게 이 일을 제안했을 때는, 내키지 않았었다. 사실 나름 2세대 아이라비의 자리는 내 것이 될 거라는 안이한 생각도 있었으니까. 그를 만나고 나는 바로 그 생각을 접었다. 내 임무는 내가 1세대를 살해한 것처럼 가장하여, 이 황금 열쇠를 받아내는 것뿐이다. 그 이상의 일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랜저는 박살이 나서 더는 운행이 힘들 것 같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저 멀리 택시가 보여 영국쥐는 손을 흔들었다.

택시에 올라탄 영국쥐 에게 모자를 푹 뒤집어 쓴 기사가 말했다.

“오랜만이야.”

“뭐?”

“바로 헤어지는 게 아쉽네.”

“너 뭐……”

희번덕거리는 눈빛으로 그녀가 씩 웃었다. 나쁜 마녀!

“자, 잠깐! 나, 내게는 열쇠가 없어! 너, 너도 열쇠를 찾고 있지? 그, 그건 기자목이!”

“역시 눈치도 빨라. 열쇠는 기자목이 가지고 있다?”

“봐봐, 나도 당했다고! 이연인한테 당했단 말이야. 기자목이 열쇠를 가져갔어!”

“오호. 그래? 그건 그렇고 이연인이 너 그냥 놔뒀어? 너 완전 대박인데? 로또나 사.”

나쁜 마녀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얼어붙은 영국쥐가 아마도 태어나서 가장 컸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운을 아까랑 지금에 다 써버리는 군. 이연인과 나쁜 마녀 둘을 만나고도 살아남았다니 말이지.

 

 

===

 

 

기자목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성공했다. 천재적인 처세술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건 그를 돕는 이들의 존재였다. 사실 어둠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은 은근히 순진하다. 기자목은 그런 점을 잘 알았다.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려 주면 되는 거야. 그렇게 인맥풀을 이용하며 승승장구 하던 그였지만, 뭔가 지금 상황은 매우 이상했다. 아이라비의 직함과 직위를 가지고 어둠에서 지시하는 실세가 될 수 있는 기회인데, 이 britg에서 먼저 선수쳐 아이라비 직함을 뺏은 놈이 등장하셨다? 처음에는 감나무 네크로맨서 일 것 같아 긴장했지만, 그는 아닐 것 같았다. 도대체 누구지? 아까 이연인이 바닥에 던지던 열쇠가 떠올랐다. 그 열쇠는 뭐지? 왜 영국쥐가 양말에 숨겨서까지 감추려했지? 실망감에 너무 성급하게 처리했나?

“후안!” 기자목이 부르자 구석에서 닭다리를 뜯던 이가 고개를 들었다.

“아까 영국쥐 다시 잡아와야 될 것 같은데?”

“아 지금 닭 뜯는 거 안 보이십니까. 이거 그냥 닭다리도 아니고 내가 마트 끝나기 전에 마감세일 하는 거 30프론가 깎아주는 그 닭다리 기다리고 기다리다 겨우 산 거 지금 양념에 찍어 먹는 거 알아요? 맞어. 닭도 아니다 이거. 칠면조 다리에요! 아니 왜 평소에 가만히 놔두다가 꼭 이렇게 중요한 부분에서 태클을 거셔.”

“아니 너희 삼형제 중에 누구 하나 가서 잡아오면 되는 거 아냐!”

“명령 하는 거야?” 벽을 등지고 서 있던 엄성용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과 우리는 동등한 관계요. 뭘 모르는 군.”

“에이 그만해. 하하. 기자목님의 의견에 동조합니다. 우리 후안이가 요거만 다 먹으면 바로 행동 개시하죠.”매도쿠라가 웃으며 분위기를 수습했다. 엄성용이 찌푸린 표정으로 바라보았으나, 매도쿠라의 눈짓에 금방 수긍했다.

“기자목!” 문이 부서지며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열쇠 내놔!”

나쁜 마녀의 다리가 기자목의 얼굴로 향했다. 바람을 가르는 그녀의 구두가 기자목의 턱을 노리는 그 순간, 매도쿠라의 손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피하세요.”

“오호라! 너희가 그 유명한 삼형제구나? 쌍둥이 삼형제!”

“당신 나쁜 마녀지? 명성은 익히 들었어.”

“그럼 내 발이나 놓고 말해!” 나쁜 마녀가 몇 번 다리를 털자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매도쿠라의 손이 뒤로 튕겨나갔다. 뻗은 그대로 다리를 접은 그녀가, 매섭게 매도쿠라의 목을 향해 구둣발을 들이밀었다. “에이. 뭐 먹는데 꼭 태클을 걸어.” 후안이 어느새 나타나 그녀의 구둣발을 두 손으로 잡았다. 중심을 잃고 기우뚱하는 마녀의 디딤 다리를 엄성용이 앞 발로 걷어찼다. “결국은, 삼대 일이야.” 넘어진 나쁜 마녀의 시선으로, 동시에 달려드는 세 쌍둥이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와, 상반신과, 하반신을 동시에 가격하려는 세 쌍둥이의 주먹들을.

“하, 한켠!”

“한켠?” “한켠이라고?” “한켠을 왜 불러?” 셋은 그대로 멈췄다.

“한켠이 부탁한 거야! 너희들도 한켠에 호감이 있잖아! 제기랄, 일대일로 하자고. 비겁한 새끼들아!”

“일단 멈춰.” 엄성용이 후안과 매도쿠라에게 지시하자 둘은 주먹을 거두었다.

“한켠의 부탁으로 우리를 습격했다고? 그녀는 죽었는데?”

“그녀가 죽어? 웃기고 있네. 너희들 그녀의 정체를 정말 모르는 거야?”나쁜 마녀가 옷의 먼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을 몇 번 움직이며 몸을 푼 그녀가 날카롭게 외쳤다.

“기자목을 조종하는 이가 따로 있다고! 그리고 그 열쇠가 그게 누군지를 밝혀내는 단서란 말이야! 아 짜증나. 그리고 너네 셋이 덤비지마. 나랑 일대일로 붙자. 일대일이면 누구라도 이길 수 있어!”

“일단 보류.” 엄성용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기자목은 우리 거야. 내심 우리들도 그의 뒷배경이 궁금했거든. 누가 붙어있는지, 뭘 노리는지. 네가 한켠의 부탁으로 온 거라면 싸움은 여기까지다.”

“웃기지 마!” 기자목의 울부짖는 외침이 들렸다.

“나를 뭘로 보고 그따위 썰들을 푸는 거야! 이 빌어먹을 쌍둥이들이!”

“이연인만 믿었다간 목숨 부지 못 할걸? 그녀는 지금 없어. 가만히 열쇠나 내놓으시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골프공 하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나쁜 마녀의 가슴을 강타했다.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그녀와, 동시에 공이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세 쌍둥이들의 눈에,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호러 잘 모르시네. 가르쳐 드릴게.”그가 골프채를 바닥에 질질 끌며 중얼거렸다.

“이게 바로 호러야.”

소문이 무성한 킬러, 바로 montesur였다.

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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