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기획편집자&디자이너 인터뷰!

2024.10.16

한국 공포문학의 새로운 도전 『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출간을 기념해 준비했던 일곱 작가와의 7문 7답, 총 7편의 릴레이 인터뷰가 모두 공개되었습니다!

각 작품 안팎에 대한 작가님들의 흥미로운 이야기에 이어, 야심 차게 선보이는 기획인 만큼 그 마지막 매거진으로는 책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준비해 보았답니다. 황금가지 입사 자기소개서에 썼던 한국 공포문학 단편 선집 기획으로 시작해 약 10년이 걸려 그 중편선 시리즈 결과물을 공개하게 된 기획자이자 편집자인 김준혁 편집주간( 아이라비 )과 더불어, 가벼운 판형과 슬립케이스 세트 작업을 시도해 볼 수 있었던 디자인 과정에서의 여러 고민과 선택의 결과를 보여 준 김진영 디자이너 ( 킷토리 )의 이야기까지, 두 분의 이야기를 함께 전해 드립니다.

 

1. 황금가지 입사 면접 때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을 기획해 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는 일화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공포문학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 같은데, 편집자로서 공포 단편 선집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A. 으음 정확히는 자기소개서에 썼던 거 같네요. 입사할 때 얼렁뚱땅 힘 좋아서(며칠 뒤 회사 내부 이사가 있었음) 합격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선배 하나가 ‘면접자 중에서 공포소설로 단편집 낸다는 기획 같은 걸 낸 사람은 유일했다’라고 해서 기억에 오래 남네요.

그러니 당시에 왜 그런 기획을 했는지는 지금 기억에 안 남았습니다만, 뭐 어릴 적부터 공포 장르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모파상의 후반기 단편들을 보노라면 ‘이거 내 취향인걸?’ 이랬거든요. (아, 그래도 르 귄 선생님이 1순위이긴 합니다…….)

20대 땐 집에 『조선의 귀신』 같은 책도 사두고 여러 번 읽을 정도로 개인적으로 토속 신앙이나 귀신 이런 것에 관심이 많았고 본인도 PC통신 시절 쓰던 글 중에 공포소설도 있던지라 아마 이쪽 세계에 대한 애정이 좀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러다 이종호 작가가 투고했던 원고를 가장 먼저 컨택하고 연락했던 것도 저였고, 그러다 보니 이종호 작가랑 교류하며 공포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레 단편 선집 기획까지 이어졌던 거 같아요. 그러니 뭔가 시대의 흐름이 날 그곳으로 인도했고, 사실…… 그냥 마음이 따라가는 대로 하다 보니 현재에 이르러서 더 애정이 깊어졌다……랄까요.

 

2. 단편선에 이어 한국 공포문학이 나아가야 할 다음 단계로서 약 20년 전부터 구상했던 공포 중편선 시리즈가 드디어 첫선을 보였습니다. 오래전 실제로 착수되었다가 무산되었던 프로젝트를 우선 일단락한 소회가 어떠하신가요.

A. 정확히는 20년 전부터 기획한 건 아니에요. 단편집을 20여 년 전에 구상했던 거고 중편은 10여 년 전에 구상했답니다. 매년 관리부에서 보내는 선급금 정리 목록에 김종일 작가님과 전건우 작가님의 선인세 내역이 올라올 때마다 소화하지 못한 무언가가 배 속에 남아 있는 느낌이랄까?

그랬던 게 이번에 해소된 느낌이네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일단 저지르고 보니 앞으로 이 시리즈를 어떻게 더 꾸릴지 같은 고민이 더 쌓인 기분이네요. 네, 늘 스스로 일을 만드는 타입입니다.

 

3. 2006년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첫 출간 이후 2014년까지 총 6편의 공포문학 단편선 시리즈를 꾸준히 출간했고, 2017년부터는 브릿G를 통해 새로운 기획의 공포 단편선이 2편 더 출간되었습니다. 기획자의 말에도 나와 있듯 단편선 시리즈의 리부트와 더불어 중편선 시리즈 기획의 재개 또한 브릿G가 뜻하지 않은 계기가 되었던 듯한데, 아무래도 브릿G를 통해 다양한 소규모 문학상과 작가 프로젝트를 비교적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 그 동력이 되었던 걸까요?

A. 이건 두말할 나위 없지요. 브릿G의 작품들을 지금도 꾸준히 살펴보지만 늘 준수한 퀄리티를 유지하는 작품들 중 상당수는 공포 분야예요. 공포 장르를 이렇게 쓰고 싶은 작가들이 많은데, 왜 이렇게 대중화되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지요. 예전엔 그런 작업을 하려고 해도 적절한 플랫폼이나 공모전이 없어 수소문을 통해 작가 섭외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브릿G 플랫폼 자체가 좀더 쉽게 공모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 훨씬 진행이 수월했어요. 가뜩이나 공포 장르의 좋은 작품이 많은 플랫폼에서 공모전까지 자유롭게? 뭐 답은 나왔죠.

 

4. 원래는 총 10개의 작품을 구상하였다가 두 차례에 걸친 공모에서 선정된 작품들을 선별하고 전건우, 김종일 작가님의 작품을 더해 총 일곱 편의 작품 구성이 확정되었습니다. 두 번의 작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내내 10편으로만 생각하다 보니 7편이라는 숫자가 애매하게 느껴질 법도 했는데, 여기에 일주일이라는 콘셉트를 더하면서 ‘한국 공포문학 주간’이라는 타이틀도 더없이 잘 어우러지게 되었습니다. 기획자의 말에도 수록된 내용이긴 하지만 아직 책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최종적인 콘셉트를 구상하고 요일별 순서를 배치하는 데에 있어 어떤 고민들이 있었는지 간단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A. 기존에 출간된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시리즈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예전에 단편 선집 준비할 땐 10작품 채우는 게 필수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습관처럼 굳어져서 중편 선집 준비할 때도 10분의 작가님하고 계약했고요. 이게 좌초되어 계약 해지되었을 때도 다시 시작하면 10작품으로 해야지 생각했던 건 여전했고요. 그런데 막상 작품을 선별하고 고민하다 보니 원하는 만큼 작품을 이끌어 내는 건 또 쉽지 않더라고요. 결국 최종 일곱 작품만 남았는데, 뭔가 애매한 숫자 같았어요. 심지어 7은 행운의 숫자잖아요? 공포인데 웬 행운의 숫자? 그러다 문득 분량이 적어 하루 만에 누구나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러면 하루 한 편씩 밤에 잠들기 전에 읽으면 어떨까? 마침 일곱 편이니 딱이네? 뭐 언제나 그렇듯 우연과 고민이 잘 맞아떨어진 결과물이지요.

 

5. 확실히 휴대가 용이한 반양장의 작고 가벼운 판형의 종이책이 많아지고, 일련의 시리즈들도 다양하게 출간되고 있습니다. 공포문학 단편선을 늘 일반적인 변형 신국판 정도의 크기로 만나다 보니 이런 아담한 판형으로 공포 중편소설을 읽게 되는 경험 자체도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처음부터 종이책의 물성에 대해 고민하셨던 부분도 있는지요?

A. 여전히 아직까진 종이책이 가진 파급력은 큽니다. 종이책 시장이 많이 죽었다지만, 그래도 종이책으로 보는 그 텍스트의 즐거움은 버릴 수 없지요. 10여 년 전에 기획할 때도 독자들이 값싼 중편, 해외에선 노벨라라고 하는데, 그런 정도의 도서를 경험하면서도 공포와 연결되면 참 매력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서 중편을 기획한 거긴 합니다.

그러나 휴대가 용이한 반양장의 디자인은 편집에서부터 고민하기보단 디자이너의 공이었죠. 단지 편집자는 ‘읽을 분량’에만 초점을 맞추지 디자인이나 편의성에 대해서는 그다음 고민거리거든요. 다행히 디자이너가 충분히 편집자 기획에 어울리는 판형과 디자인을 뽑아 냈으니 이 또한 복이죠.

 

6. 총 7권의 시리즈 표지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통일감이 있으면서도 각각 포인트가 되는 차별화도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표지 디자인을 발주할 때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디자이너에게 의뢰하거나 논의했는지도 궁금합니다.

A. 사실 이것도 앞선 답변처럼 디자이너에게 일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기획에선 일곱 권의 다양한 상징성을 가진 내용에 맞게 일러스트를 사용해서 진행하려고 했는데, 여러 문제로 결국 일러스트를 쓸 수 없게 되었어요.

일러스트가 각기 작품의 상징을 나타내고 거기서 드러나는 공포가 표지 전체의 통일성을 줄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일러스트 발주가 어려워지자 이거 참 난감하네…… 했는데, 디자이너가 오랜 고심 끝에 편집자가 바라던 방식으로 딱 원하는 스타일의 표지를 떡하니 만들어 내더군요. 그러니 이 부분도 온전히 디자이너의 공이지요.

 

 

7. 오랜 시간을 거쳐 야심 차게 선보이게 된 첫 번째 한국 공포 중편선 시리즈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이런 시도가 이어질 수 있을까요? 단편과 중편에 이어, 장기적으로는 공포 장편소설에 대한 기획도 염두에 두거나 구상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지요. 처음 선보이게 된 공포 중편선 시리즈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가닿고 남기를 바라는지, 마지막으로 기획자로서의 소회나 바람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A. 앞으로 계속 중편 공포문학 단행본을 낼 계획이 있습니다. 좋은 작품이 있다면 언제든 브릿G에 올려 주세요. 눈여겨 보고 있다가 제가 확 채갈 겁니다. 중편선은 왠지 단편선과 달리 좀더 오래 더 많이 나올 수 있을 거 같아요. 또 그래야만 하고요. 많이 응원해 주세요.

 

좋은 작가군을 찾아내고 ‘공포문학’이라는 장르를 대중화할 수 있는
작가 풀을 형성하기 위한 첫발인 단편집은
반드시 다음 단계로 진화해야만 했다.
편집부의 고민은 어느덧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이 아닌 중편소설을 향해 있었다.

―『앨리게이터』에 수록된 기획자의 글 중

기획자의 글 전문 보러 가기→

 


 

1. 「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기획자의 답변을 듣고 디자인에 대한 고민과 제작 과정을 들어 보면 좋을 것 같아 질문을 드리게 되었어요. 앞서 기획자에게도 물었던 내용이지만 요즘 휴대가 용이한 가벼운 반양장 도서들이 시리즈로도 많이 출간되는 추세이긴 해도 이처럼 단편이나 단편선집이 아니라 개별 작품의 공포소설을 가볍고 작은 판형으로 읽는 체험 자체가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거든요. 아무것도 정해진 바가 없었을 텐데 처음 시리즈 디자인을 고민할 때 판형이나 사양 등 물성에 대한 접근은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A. 먼저 편집주간님으로부터 콘셉트와 원고를 전달받으면서 원고량이 매우 적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아 드디어 이런 작업을 해 보는구나’ 하고 들뜬 마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또한 어디를 가거나 할 때 가방에 쏙 들어가는 단편집을 가지고 다니거든요. 그러니 드디어 제가 읽고 싶었던 책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재밌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기뻤습니다.

판형은 다른 브랜드 시리즈에서 채택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데 로스가 적은 판면이라 의외로 쉽게 선택했고, 본문은 기존에 많이 쓰이는 sm서체가 아닌 오늘(onul) 흑단 폰트(현승재 디자이너)를 선택해서 기존의 중명조의 안정적인 느낌은 가져가면서도 살짝 공포문학의 이질적인 인상을 주려고 했습니다.

 

 

2. 판형이나 사양뿐만 아니라 전체 7권의 작품이 동시에 출간되는 볼륨 있는 기획인 만큼 시리즈에 대한 이미지를 주면서도 개별 작품의 포인트는 또 각기 살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완성된 각각의 표지는 각 작품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메인 이미지를 모티브로 해서 질감이 굉장히 생생한 사진 이미지를 활용한 것 같은데, 맞나요? 이런 실사 이미지가 굉장히 과감하게 배치되고 점이나 각종 도형 등의 요소와 메인 배경색이 어우러지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더없이 잘 이끌어 내게 된 것 같은데, 어떤 과정을 통해 현재 디자인이 나오게 되었나요. 일러스트 발주 등 여러 가지 시도와 고민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A. 맨 처음 이 시리즈의 담당자로 지정되었을 때부터 협업하고 싶었던 그림 작가님이 있었어요. 함께하고 싶었는데 여러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끝내 작업은 못 하게 된 터라 그림 작가님께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ㅠㅠ) 처음부터 표지를 그림으로 작업하려고 구상을 했었다가 디자인으로만 표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다른 일들이 밀리면서 한정된 기한 안에 빨리 작업해야만 했어요. 급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한 권 한 권의 작업에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기존에 황금가지에서는 여러 작가님들의 단편소설을 모아서 앤솔러지로 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마다 디자이너로서 표제작을 중심으로 표지를 디자인해야 하는지, 아니면 여러 작품들의 메인 오브제를 가져와서 보여 줘야 하는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기획은 각각 개별 소설로 나오니까 한 작품 한 작품 다 스포트라이트를 줄 수 있어서 의미 있었습니다.

세트 디자인을 해야 하는 디자이너들 모두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지점일 텐데, 말씀 주신 것처럼 일곱 권이 세트고 시리즈라는 통일감을 살리되 각각 작품들이 어느 권은 강하고 어느 권은 약해 보이지 않아야 하고 각각 단권으로 봤을 때도 빠져 보이지 않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들도 다르고 작품마다 소재도 다 다른 데다가 메인 오브제 이미지도 강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그레이 톤으로 맞추고 여러 가지 사진들을 찾아서 서로 비교하고 바꿔 가면서 균형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어떤 이미지는 작품명과 완전히 맞춘 반면 어떤 이미지는 아예 상징적으로 접근하기도 했고, 또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보여 주기도 했어요. 그래서 실제론 가능하지 않은 각도나 기괴한 콜라주처럼 보이기도 할 텐데 어찌 보면 이런 유쾌하지 않은 느낌들이 다른 책 표지에선 할 수 없는 선택들이기 때문에 (각 작품을 쓰신 작가님들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재미있었습니다.

표지 제목 폰트 또한 본문에서 쓴 것과 같은 오늘(onul) 흑단 폰트의 가장 두꺼운 초특대명조를 사용했습니다. 이 폰트가 주는 단단하고 절도 있는 느낌이 유광 먹박 후가공과 만나서 이미지 위에 잘 안착된 느낌이 들게 했습니다.

 

 

3. 웹 이미지로 보는 것보다 실제 출간된 종이책이 형광 연두색 느낌이 더 도드라져 예쁘기도 하고 주요 이미지와 색감이 대비되면서 강렬함이 더 배가되는 것 같아요. 메인 컬러는 어떻게 지금과 같이 결정되었나요? 각 작품을 표현하기 위해 디자인 요소에서 고심하고 신경을 쓴 부분이 있다면 독자분들께도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A. 현실적으로는 권당 가격을 높일 수 없기 때문에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가져가는 방식을 선택해야 했는데, 어쩌면 이런 제약들이 지금의 별색 사용이나 사진 이미지 가공 방식을 선택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질적이면서도 강해 보이고 현실 세상에는 잘 안 보이는 형광 연두와 흑백 처리된 이미지를 대조시켰을 때 주는 대비감이 강렬해 보일 것 같아서 선택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던 점은 이번 시리즈에 슬립케이스를 해 본 것인데요. 뚜껑이 닫히는 형태의 박스보다 더 제작비가 높아서 그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었는데, 일주일 동안 밤에 한 권씩 꺼내어서 읽는다는 콘셉트와 슬립케이스가 잘 어우러져서 이번 기회에 제작해 볼 수 있게 되어 무척 기뻤었습니다.

이런 하나하나의 선택들이 종이책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일 것 같은데, 독자분들이 하루에 한 권씩 읽으면서 조그마한 부분이라도 느끼신다면 제게도 큰 기쁨일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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