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문학 주간] 김종일 작가의 『제로』에 대한 7가지 물음

2024.10.15

한국 공포문학의 새로운 도전 『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출간을 기념해 일곱 작가와 함께하는 7문 7답 릴레이 인터뷰 연속 기획, 일곱 번째 매거진의 주인공은 ‘일요일’ 작품을 담당한 『제로』 김종일 작가님입니다!

『제로』는 갑자기 ‘0(제로)’라는 의문의 문자 하나만 남긴 채 딸이 외출한 이후로 돌아오지 않자 과거 검도 국가대표 유망주였던 아버지가 딸을 찾기 위한 단서들을 추적해 나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몸』, 『삼악도』, 『마녀의 소녀』 등을 발표하며 한국 공포문학의 최전선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종일 작가님이 선보이는 신작 공포소설입니다. 최근 영화 「베테랑2」에서도 다루는 소재인 사적 제재에 대한 메시지를 차별화 있게 표현하기 위해 작가님이 선택한 방식과 더불어 오래전 무산되었던 공포 중편선 시리즈 기에 다시 합류하게 된 소회까지, 흥미로운 작품 안팎의 이야기를 이어서 전해 드려요.

 


 

1.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서는 과정은 수사기관의 면모를 능가하는 한 편의 수사물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수사를 하면 할수록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이 공포감을 자극하더라고요. 그러더니 화려한 액션 장면에 이어 SF의 한 장르로 바뀌면서 놀라운 결말을 맞이합니다. 이처럼 복합 장르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처음 구상하고 설계하게 되셨는지 궁금한데요, 오래전 준비하던 기획이 무산되었음에도 작품 계약을 유지하고 언젠간 작품을 선보인다는 것에 대한 의지를 편집부에 전달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첫 기획 당시 구상했던 것과 최종 출간본 사이에서 가장 달라진 점이나 특별히 신경을 써서 수정하거나 보완한 부분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A. 사실 『제로』는 십수 년 전 중편이 아닌 장편으로 썼던 작품입니다. 시점도 도환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아닌, 도환과 광열 사이를 오가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었고, 분량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많았지요. 결말도 지금과는 전혀 달랐고요. 긴장감과 완성도를 떨어뜨린다는 판단에 초고의 광열 파트를 통째로 날려 버리고, 부모의 책임과 의무를 망각했던 도환에게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 지금의 결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적 제재를 다룬 여느 작품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던 초고를 어떻게 차별화하느냐가 가장 큰 난제였는데, 심사숙고 끝에 선택한 방향이 바로 지금과 같은 장르의 융합과 구성이었습니다. 결과물이 과연 성공적이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만.

중편선 기획과 관련해서는 언젠가 반드시 기획이 재개되리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게으른 작가를 믿고 늘 한결같이 기다려 주시는 주간님의 믿음에도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고요.

 

2. “화영의 마지막 메시지는 ‘0’이었다.” 이처럼 딸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비롯해 ‘제로(0)’라는 단어가 작중 내 주요하게 등장합니다. 결말에 이르면 이 단어에 대한 새로운 연결점을 찾을 수도 있는데요, 작품의 제목을 『제로』로 짓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제로’는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는 상징이자, 제가 이 이야기에서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합니다. 어릴 때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제로야, 제로.”라고 곧잘 말씀하시던 아버지를 보며 신기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만큼 ‘제로’는 우리 일상에서 친숙한 숫자인 동시에 곱씹을수록 그 의미가 오묘하고 무궁무진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스포일러가 되니 더 말하기는 어렵지만, 주인공 도환이 여정의 끝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진실과도 일맥상통하는 의미가 있고요.

그런 맥락에서 『제로』를 재미있게 읽고 리뷰를 올려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뜻으로 제로 음료 기프티콘을 증정하는 깜짝 이벤트를 진지하게 제안하는 바입니다.

 

“넌 영영 내 꼬리이고 난 꼬리를 문 뱀이다.
되살아나라, 그러면 나는 너를 또 죽일 테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그렇게 끝없이 제로로 돌아오는 재로(再路) 위에서 무한정 굴러다니자.”

 

3. 딸은 어린 시절 읽었던 『시튼 동물기』에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인 ‘커럼포의 늑대 왕 로보’를 언급하며 서운함을 토로합니다. 다 읽은 후에 다시 보니 앞으로 펼쳐질 사건의 내용을 암시했던 연결점도 있었는데요, 작중 내용과 『시튼 동물기』를 연결 짓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늑대 로보는 1889년 즈음 미국 뉴멕시코주에서 활동했던 네브래스카 늑대 무리의 우두머리였는데, 2년 동안 잡아먹은 가축만 무려 수천 마리에 이르렀던 악명 높은 맹수였습니다. 알고 보면 로보 무리는 불과 다섯 마리밖에 안 되는 소수 정예 무리였는데, 이놈들은 한 살짜리 암소만 잡아먹는 습성이 있어서 주민들이 치를 떨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먹지도 않을 양을 무려 250마리나 재미로 물어 죽이기도 했고요. 소설에는 그런 로보의 만행까지 자세히 밝히지는 않았습니다만, 『제로』의 후반부에 비로소 등장하는 광열 패거리를 암시하는 일종의 복선이자, 객관적 상관물로 넣었습니다.

초고에서는 광열 패거리의 범죄 행각을 상세히 묘사했지만, 불쾌한 장면을 굳이 다 보여주기보다는 상상을 자극하는 여백으로 남겨서 독자가 그 빈 곳을 채우게 하자는 판단에 해당 대목을 모두 날려 버리고 지금의 소소한 상징과 단서 정도로 축약했습니다. 늑대 로보도 그런 상징과 단서 중 하나이고요.

여담이지만, 2011년 『삼악도』의 뼈아픈 실패 이후로 독자가 받아들일 만한 잔혹 묘사의 ‘선’이 어느 정도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결론은 ‘선을 넘지 말고, 독자가 상상할 만한 여지를 보여주자!’였습니다. 『삼악도』 이후의 소설에서는 잔혹 묘사를 최대한 자제하고 여지를 남기는 방식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런 작업 방식은 『제로』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4. 과거 검도 국가대표 유망주였던 주인공 오도환은 실종된 딸을 찾을 때도 복수를 할 때도 칼을 이용하는데요, 검도에서 쓰는 긴 칼로 싸우고 ‘공세’라는 검도 기술을 활용하는 장면이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인물은 아닌데, 주인공 캐릭터를 검도인으로 설정한 계기가 있을까요?

A. 노쇠한 도환이 극악무도한 광열 패거리와 맞서려면 장르물의 클리셰인 전직 국가 비밀 요원까지는 아니더라도 과거에 사람을 여럿 제압할 만한 기술을 배운 이력의 소유자여야 했습니다. 검도는 민간인의 총기 소지가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가장 위협적인 무도 기술이었고요.

이스터에그인데, 주인공 ‘도환’도 실은 그가 쓰는 칼인 환도를 거꾸로 발음한 이름입니다. 끊임없이 돌아오는 길(還道)에 서 있는 사람이란 중의적 의미도 있고요.

 

5. 주인공 오도환은 Z자 문양이 있는 티셔츠를 입은 한 남성을 집요하게 추적해 나가는데요. 티셔츠의 Z자 마크를 보고 ‘쾌걸 조로’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며, 그가 추적하는 남자를 조로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쾌걸 조로는 뛰어난 검술로 악인에게서 사람들을 지키는 영웅으로, 그 외형을 보면 영화 「배트맨」 등 다크히어로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는데요. 작중에서 조로라고 불리는 인물이 히어로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져 있어서 의도하신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조로가 제로와 철자가 비슷한 단어인 데다 ‘오’가 두 개나 들어가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게다가 조로는 검과 채찍으로 악인을 응징하는 가면 히어로의 원조 캐릭터이기도 하지요. 그런 조로 같은 영웅이 과연 오늘날에도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드는 요즘이라, 조로의 전통적 의미를 뒤집는 의미로 온갖 지질하고 더러운 악행을 서슴지 않는 빌런의 졸개에게 조로 티셔츠를 입혀 봤습니다. 애초에 조로 역할은 본인이 했어야 할 몫이라는 뼈아픈 회한을 도환이 절실히 느끼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고요.

 

아내와 딸이 만들어준 두 개의 ‘제로’ by 김종일

 

6. 드라마 「더 글로리」처럼 사적 제재를 소재로 한 영상물들이 많아졌고 이와 관련된 사건들도 사회적으로 주목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딸을 위해 직접 복수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형법상 정의로움은 논할 수 없으나 그 마음은 십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또 작중의 화려한 액션 장면을 「킬 빌」, 「존 윅」 등을 언급하며 비유하기도 했는데요, 집필하실 때 이미지적으로도 구체적으로 연상될 수 있는 묘사에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는지요.

A. 세상의 온갖 불의와 부조리,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법 체계를 향한 대중의 불만과 분노가 사적 제재를 다룬 장르물의 유행을 키워낸 토양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단죄하는 복수극에는 명백한 한계와 모순이 있다고 보기에 『제로』의 후반 창고 장면도 독자에게 통쾌한 액션이기보다는 처절하고 끔찍한 지옥도로 느껴지기를 바라며 썼습니다.

그와 별도로 여러 작품을 출간하며 영상화 판권 계약을 맺을 때마다 제 소설을 읽으면 ‘그림’이 머릿속에 잘 그려진다는 평을 곧잘 듣곤 하는데, 워낙 영화광이라 그런지 먼저 머릿속으로 장면을 또렷하게 그려낸 뒤에 그 장면을 그림 그리듯 묘사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서 그런 평을 듣지 않나 싶습니다.

 

7. 기획자의 말에도 담겨 있듯 이번 공포 중편선 시리즈에는 전건우 작가님과 더불어 두 분 작가님의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특히 작가님께서는 2006년 첫 출간된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부터 함께 참여해 주셨고, 단편과 장편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웹소설까지 넘나들며 장르문학의 최전선에서 다양한 창작 생태계를 개척해 오셨습니다. 그사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공포 장르 콘텐츠들도 많이 나오고 대중들이 향유하는 분위기도 다소 달라진 부분도 있을 텐데요, 이번 공포 중편선 시리즈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소구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시는 바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나 최근 발표한 작품 소개 등으로 독자분들께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A. 「부산행」 같은 좀비 영화나 「파묘」 같은 오컬트 호러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고, 공중파나 OTT 드라마에서도 곧잘 공포 장르나 공포 연출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수년 전 영화 「곤지암」을 보러 간 극장에서 뒷좌석의 여학생들이 비명을 질러 대면서도 놀이기구 타듯 즐기는 광경을 4D로 체험하며 ‘아, 어쩌면 젊은 세대는 우리 세대보다 공포를 장르 자체로 즐기는 세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런 시점에 출간된 공포 중편선이 토종 공포문학의 맛깔스러운 칠첩반상으로 독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쪼록 마음껏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 주세요.

아울러 최근 리디 우주라이크소설에 실린 제 단편 「외딴집 화장실 괴담」과 매드앤미러 『배우자의 죽음에 관하여』에 실린 중편 「해마」, 그리고 곧 완결을 앞둔 브릿G 연재 장편 『잠들면 눈뜬다』 를 함께 읽으시면 더욱 다채로운 공포의 맛을 즐기시게 되리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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