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문학 주간] 우재윤 작가의 『벽지 뜯기』에 대한 7가지 물음

2024.10.11

한국 공포문학의 새로운 도전 『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출간을 기념해 일곱 작가와 함께하는 7문 7답 릴레이 인터뷰 연속 기획, 어느덧 그 다섯 번째 매거진의 주인공은 ‘금요일’ 작품을 담당한 『벽지 뜯기』 우재윤 작가님입니다!

『벽지 뜯기』는 모바일 방 탈출 게임을 찾다가 우연히 다운받아 시작하게 된 ‘벽지 뜯기’라는 게임을 통해 점차 악몽의 굴레에 휩싸이게 되는 주인공의 변화를 기괴할 정도로 생생하고 오싹하게 담아낸 훌륭한 공포소설입니다. 원초적인 아이디어와 대중적인 재미를 우선시하면서도 평소에 배경으로 여겨지는 것을 조명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는 우재윤 작가님과의 흥미로운 작품 안팎의 이야기를 이어서 전해 드려요.

 


 

1. 『벽지 뜯기』는 2022년 진행된 브릿G 작가 프로젝트 첫 번째 공모에서 공포 본연의 색채를 잘 드러냈다는 평을 받으며 선정된 작품입니다. 당시 공모 소식은 어떻게 접하셨는지, 출품을 위해 작품 구상은 어떻게 처음 준비하게 되었는지요.

A. 제가 평소에 딱 중편 분량의 소설을 쓰는데, 마침 브릿G에서 중편을 공모한다고 해서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소설 아이디어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그러다 온갖 시체와 살인이 난무하는 드라마 「덱스터」를 정주행하고 일어난 아침 이부자리에서, 벽지에 관한 강렬한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스포일러라 말씀을 못 드리지만요. 결국 「덱스터」를 보고 난 뒤의 무의식이 제가 자는 동안 일을 한 셈이에요.

 

2. 제2회 신체강탈자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내 몸을 임대합니다』에 우수작으로 선정된 단편 「트루플래닛」을 수록, 발표했습니다. 해당 작품 역시 『벽지 뜯기』와 마찬가지로 게임 요소를 현실에 접목시켜 가상현실인 게임과 실재를 넘나드는 환상성이 엿보이는 작품인데요, 우연한 공통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게임을 주요 소재로 비중 있게 활용하게 된 계기가 있을지요.

A. 장르 소설가로서 소재를 고를 때 가장 중시하는 점은, 아이디어가 원초적이고 대중적으로 재미있느냐의 여부입니다.

전자는 과연 이 소재가 본능적으로 끌리느냐는 질문이고, 후자는 많은 사람들이 즐길 만한 것이냐는 질문이죠. 제게 게임은 그런 소재 같아요. 원초적으로도 대중적으로도 재미있어요. 저부터도 한 명의 독자로서 게임을 소재로 한 소설 읽기를 좋아합니다.

짐작한 대로였다. 유저들이, 그리고 종현이 이상하게 변한 것은 그들의 정신이 외계인에게 먹혔기 때문이었다.
―우재윤, 「트루플래닛」 중에서

 

3. ‘벽지 뜯기’라는 게임의 설정 자체에서 오는 독특함과 기이함이 있습니다. 일단 기본 도구인 헤라부터 다양한 도구들을 등장시킬 수 있고 실제로 작중에서도 도구들의 다양한 쓰임이 다뤄집니다. 때문에 방탈출 같은 미션과 궤를 같이하는 듯하면서도 차이가 있는데, 여러 설정 중 벽지를 뜯는다는 게임 방식에 착안한 이유가 있을까요. 또 실제로도 인디게임을 즐겨 하시는 편인지도 궁금합니다.

A. 평소에 배경으로만 여겨지는 것,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을 조명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방 탈출 게임의 벽지도 제게 그런 존재였어요. 방 탈출 게임에는 보통 여러 가지 오브젝트가 있고, 배경은 그냥 배경으로만 자리할 뿐이잖아요? 이번 기회에 배경에다 스포트라이트를 주어 보자고 마음을 먹었죠.

스마트폰 초창기 시절에 늘 새로운 인디게임을 찾아 밤을 새워 가며 플레이했습니다. 방 탈출 게임인 「러스티 레이크」 시리즈도 그때 접했습니다. 그 게임의 2D 형식과 플레이 방식이 이 소설에 여러 영향을 미쳤어요. 여유가 있을 때 다시 플레이해 보고 싶어요.

 

4. 꿈이라는 매개가 있긴 하지만 게임과 현실을 오가는 환상성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제3의 요소가 바로 후각인 듯합니다. 실제로 게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실재적 감각이라 전반적인 환상성을 현실적으로 환기시키는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강렬하게 느껴지는 후각적 묘사를 통해 의도한 바가 있는지요.

A. 벽지 뜯기가 이루어지는 방 자체가 끔찍하기를 바랐습니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모습뿐 아니라, 들리는 소리, 맡아지는 냄새,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답답함……. 모바일 게임에서는 앞의 두 가지(시각, 청각)를 느낄 수 있지만, 후각을 비롯한 뒤의 두 가지는 느낄 수 없죠.

게임 속 공간이 조금 더 현실과 비슷한 공간으로 전환되면서,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끔찍함이 더해지기를 바랐어요. 화면을 사이에 두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었던 공포가, 점점 현실과 가까운 곳으로 침투하도록 말이에요.

 

5. 점층적으로 고조되는 반전의 구성과 내용이 인상적이었어요. 독자들도 화자를 따라서 계속해 의심의 대상을 옮겨 가게 되기 때문에, 결말에 이르러서는 저마다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구성을 설계하는 데에 있어 어려운 점이나 걱정되는 부분은 없었는지요.

A. 처음의 고민은, 아이디어가 너무 복잡해서 어떻게 이걸 쉽게 전달할까 하는 것이었고, 그다음의 고민은, 반전을 맞추는 게 너무 쉬워 보여서 어떻게 단서를 교묘하게 전달할까 하는 것이었어요. 결국 그냥 쉽게 읽히고 쉽게 알아챌 수 있도록 전달하자는 쪽으로 서술 방향이 기울었습니다. 일부 반전을 알아채더라도 모든 반전을 알아채는 독자는 없을 것이고(애초에 모든 반전을 알아챌 수 없도록 설정되어 있으니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반전을 눈치채더라도 제가 피날레에서 전달하려는 이미지가 여전히 강력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결국 반전을 맞추더라도 만족스러운 독서가 되도록 하고 싶었어요. 독자가 A B C를 예상했는데 전부 들어맞으면 김이 빠지지만, 결과가 A’ B C 혹은 A B Z라면 여전히 놀랄 만한 것이니까요.

 

6. 화자의 특수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오로지 형만을 걱정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가 안타까운 동생의 대칭적인 모습에서 한국 가족 구성 내에서의 어떤 관계성을 연상케 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기이하게 두드러진 애정의 편중과 결핍 등 가족 관계 구성은 별다른 의도가 있는 부분은 아니었는지요? 전반적으로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 너머 작품 전반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메시지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A. 한국은 인재에 엄청나게 기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좁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교육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같은 맥락에서 스포츠 영웅들도 많아요. 이런 국가적 기대는 고스란히 가정으로 내려옵니다. 부모가 자식 교육에 열을 올리고, 교육비가 가정 내 지출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해요. 자식에게 거는 기대도 그만큼 크죠.

그런데 멀쩡했던 내 자식이 한순간에 망가진다면? 부모는 황금기와도 같았던 자식의 과거를 잊기 힘들 것이며, 자식이 가질 수도 있었던 미래에 대한 몽상을 버리기도 힘들 겁니다. 과거의 자식이 대단했던 만큼, 현재에 드리우는 그림자도 짙어지겠죠. 그 그림자는 형제에게 미치기도 할 것이고요. 다만, 이 소설은 그와 같은 심리를 역이용한 면이 있습니다.

 

“조각 난 벽지를 들어낸 자리에는 검은 벽이 있었다.
시멘트벽의 회색 빛깔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검정보다 더 짙은 검정만이 벽을 삼켜버릴 듯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곳은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차원의 우주였다.”

 

7. 브릿G 작가 프로젝트를 통해 야심 차게 선보이는 한국 공포문학 중편선 시리즈의 일환으로 단행본을 출간하게 된 그간의 소회가 어떠지,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 계획 등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평소 황금가지의 한국 공포문학 시리즈를 눈여겨보고 있다가 이렇게 한 발 걸치게 되어 기분이 이상합니다. 이름을 많이 들어 낯익은 공포소설 전문 작가분들도 여럿 계신데, 공포 신생아인 제가 한 자리 차지하게 되다니! 함께한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서 빨리 읽고 싶습니다. 마침 중요한 마감도 끝났으니, 한편씩 꺼내 먹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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