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문학 주간] 권여원 작가의 『액연』에 대한 7가지 물음

2024.10.10

한국 공포문학의 새로운 도전 『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출간을 기념해 일곱 작가와 함께하는 7문 7답 릴레이 인터뷰 연속 기획, 그 네 번째 매거진의 주인공은 ‘목요일’ 작품을 담당한 『액연』 권여원 작가님입니다!

『액연』은 시대를 넘나들며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저주와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시청각적 장치와 구성으로 전달하는 작품으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성으로 섬뜩한 분위기를 잘 표현하였으며 결말까지 이르는 개연성이 뛰어났고”, “특히 ‘금기’와 ‘소외’라는 두 가지 테마를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이 눈에 띄는 작품이었다.”는 호평과 함께 작가 프로젝트에서 선정되어 이번 중편선 시리즈로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작품 안팎에 대한 흥미로운 답변을 보내 주신 권여원 작가님과의 이야기를 이어서 전해 드려요.

 


 

1. 『액연』은 2022년 진행된 브릿G 작가 프로젝트 첫 번째 공모에서 ‘금기와 소외라는 두 가지 테마를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을 필두로 전반적인 구성에 대한 호평을 받으며 선정된 작품입니다. 당시 공모 소식은 어떻게 접하셨는지, 출품을 위해 작품 구상은 어떻게 준비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공모전 소식은 브릿G에서 알게 됐습니다. 지금까지는 뒤늦게 소식을 접하거나 공모전이 열려도 제출할 만한 글이 없어서 참가하지는 못했습니다. 운 좋게 공모전 초반에 소식을 접했고 써 보고 싶은 장르였기에 도전했습니다.

사실 『액연』은 완결한 지 꽤 오래된 글입니다. 처음에는 재영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결과로 죄책감에 못 이겨 서서히 미쳐 가는 과정을 쓰고 싶어 시작했었는데, 서툴다 보니 생각한 만큼 표현이 잘 안됐습니다. 자기 연민도 진하게 느껴졌고요. 이런 아쉬운 부분을 덜어 내고 뒷이야기를 덧붙여서 장편으로 쓰려고 기획했지만, 액연 부분과 뒷부분이 하나의 글로 보기에 분위기가 맞지 않아 고민됐습니다.

고민하던 차에 때마침 공모전 소식을 봤고, 액연 부분만 따로 떼서 마무리하자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아쉬웠던 부분은 다 삭제하고 재영의 마지막까지 쭉 달려갈 수 있는 이야기로 변경하기로 했습니다. 분위기를 잡아 가는 방식도 좀 더 원했던 방식에 가깝게 바꾸려고 했고요.

 

2. 심사평 내용처럼 작품 속 시골집에 얽힌 모종의 비밀과 금기는 굉장히 고전적인 공포 요소 중 하나입니다. 왠지 모르게 늘 소외되어 온 주인공, 의무감만 남은 장손으로서의 역할, 끝없이 들러붙는 환청과 환영, 강렬한 금기를 유언으로 남긴 모친, 의문의 어린아이 등은 익숙한 설정을 변주한 것임에도 계속 따라 읽게 되는 흡인력과 정교한 구성이 돋보였습니다. 사건은 반드시 시작되어야 하기에 어떤 불가항력적 상황에서도 결국 주인공이 금기를 깰 수밖에 없는 것은 예정된 전개인데요, 이처럼 전통적인 공포의 설정을 활용하면서도 특별히 차별화에 중점을 둔 부분이 있었는지요.

A. 소재가 너무 익숙하고 평범하다 보니 밍밍한 글이 될 것 같아서 걱정을 좀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소재적인 부분보다는 익숙한 것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거슬리는 이상한 기분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선 재영이 느끼는 분위기, 주변의 온도, 감각적인 부분에서 이상함을 느끼는 순간을 읽으면서 함께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고요.

재영이 불안해한다든가 환영을 볼 때 미묘하지만 확실하게 변하는 짧은 순간, 재영의 주변의 변화 같은 것들을요. 읽으면서 재영이 느꼈을 불안과 분위기를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런 쪽으로 보여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려고 자잘한 표현도 많이 추가했던 것 같습니다.

 

3. 작품 속에 이미지적으로 기괴함이 느껴지는 장면들이 여럿 돋보였습니다. 갓 만든 무덤의 봉분 위에서 아이가 폴짝폴짝 뛰고 있는 모습이라든지, 하나같이 상투를 튼 남자들의 모습이라든지 시대상이 이질적인 풍경들이 언뜻언뜻 겹쳐 보이는 부분들이 그렇습니다. 시대를 넘나드는 구성에서 이질감이 드는 공포 효과를 의도한 부분도 있을까요.

A. 봉분 위에서 아이가 뛰는 장면 외에 묘를 쓰고 내려오는 길에서 환영을 볼 때라든가 어렸을 때 할머니 품에서 본 문밖 풍경 같은 것들이 의도가 들어간 장면입니다. 특히 아이가 봉분 위에서 뛰는 장면은 절대 그럴 일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기에 기괴함까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장면이고요. 그중에서도 제일 의도적인 건 재영이 아이를 보는 모든 순간입니다. 재영에게는 일상과 현실을 무너뜨리는 존재이자 자신이 도망쳤던 과거를 계속해서 끌고 오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4. 시간이 흐른 탓도 있겠지만 불운한 유년을 보냈음에도 어릴 적과 달리 부친을 더는 무서워하지 않는 주인공의 성장적인 면모도 엿보입니다. 주인공이 사건을 해소하는 주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이 혹시 장손이라는 가부장 문화의 전통적인 역할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A. 말씀하신 역할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습니다. 재영이 여러 생을 거쳐 결국 자신이 일을 벌였던 당시와 같은 자리로 돌아오기는 했으나 단순히 돌아올 자리에 돌아왔다는 이유일 뿐으로, 질문의 내용보다는 개인의 성장이나 독립과 더 잘 어울리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재영이 일을 겪었을 때는 어렸기 때문에 어른들의 영향력 아래 행동이나 행동반경이 많이 제약된 상태였습니다. 위험하니까 어디 가지 마라, 뭐 하지 마라 같은 말이나 제지는 걱정스러운 조언이지만 어린 재영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결정해야 할 영역까지 어른들이 차지하고 자유롭게 두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성장한 뒤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의 삶을 꾸려간 재영은 더는 걱정이 담긴 조언을 해 줄 사람도 없고, 재영의 행동에 제약을 걸 만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기에 스스로 선택해야 함을 매 순간 인지하고 실행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책임감을 느꼈고요. 폭력적인 친부를 더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에서도 재영이 성장하고 극복한 면모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5. 작품 제목인 ‘액연(厄鳶)’은 정초부터 정월대보름까지 그해의 재난을 멀리 보내기 위한 행위로서 하는 전래 놀이입니다. 보통은 연에 ‘액(厄)’이나 ‘송액(送厄)’이라는 글씨를 쓰고 해 질 무렵 연줄을 끊어 날리는 일종의 액막이 의례인데, 이 연이라는 주요한 이미지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요.

A. 날려 보내고 털어낸다는 의미가 반전되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액연 날리기라는 놀이 자체가 가진 의미가 좋았는데 복을 바라며 날려 보내는 연이 액운 그 자체, 혹은 계기가 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했고요. 날려 버린다든가 털어 버린다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속 시원함이나 거리낌이 없는 후련한 감정이 아니라, 도저히 떨칠 수 없는 불편하고 불안한 감정에 관해 쓰고 싶었습니다.

 

“혹시 그거 아십니까?”
“뭘?”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숨어 있는 인연을 끌어온다는 것을요.”

 

6. 작중에 등장하는 커다란 방패연에는 어떤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이 자주 암시됩니다. ‘이름’은 주인공의 사연과 긴밀히 연결되는 요소이기도 하고, 더 직접적으로는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숨어 있는 인연을 끌어오는 것’이라는 대사도 나옵니다. 이처럼 이름을 통해 승계되는 업보와 책임감이라는 상징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을까요.

A. 한 사람을 이루는 요소는 많이 있지만 그것을 하나로 확실하게 어떤 의미를 가진 존재로 특정해 주는 건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이 가진 여러 가지 면모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한 행동도 포함해서요.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겪었다는 표지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재영과 아이는 자신들이 겪은 사건을 이름에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다만 아이는 오랫동안 자기 이름을 불러 줄 사람, 특히 재영이 없었기 때문에 원래 가졌던 여러 면모는 잃어버린 채 마지막 하나 남은 열망에 모든 걸 건 상태로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식이 흐릿해진 상태입니다. 아이가 재영에게 제 이름을 기억해 내길 종용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은 마음과 재영이 외면한 책임을 다시 떠올려 주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재영과 끊어진 인연을 다시 잇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반면에 재영은 자신을 잃었지만 그건 일부분으로 재영이라는 이름을 받으며 잃은 것보다 더 많은 걸 채운 상태고요.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 해결해야 했을 일은 미해결된 상태로 재영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건 재영이 미뤄 둔 과제 같은 것으로 이름을 잊고 과거를 모른다고 해서 사라지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외면해도 내가 한 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7. 브릿G 작가 프로젝트를 통해 선정되어 야심 차게 선보이는 한국 공포문학 중편선 시리즈의 일환으로 단행본을 출간하게 된 그간의 소회가 어떠한지, 앞으로의 활동 계획 등을 포함해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필명이 적힌 책을 받고 보니 처음 가져 보는 책이라 기뻐야 할 텐데도 이상하게 덜컥 겁부터 났습니다. 그제야 실감이 나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 펼쳐 놓는구나 하고요. 여기에 끼어 있어도 되나 걱정이 많이 되는데, 당분간은 무섭고 걱정돼서 잠도 잘 못 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정리하는 중입니다. 아직 빈 곳이 많아서 시작하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이야기도 보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필명을 바꿀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오래전부터 활동하는 작가님이 계시더라고요. 그분께 누가 안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면으로나마 이렇게 뵙고 인사드릴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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