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위원1
종말 문학 공모전이라는 이름답게 ‘끝’이라는 소재에 대한 다양하고 무궁한 상상력이 엿보이는 작품들이 많았지만, 그 상상력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한 작품은 극히 드물었다. 핵 겨울, 전염병 등 다소 클리세에 가까워진 소재는 이미 기존 독자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므로 멸망의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바로 본론을 던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반대로 종말의 과정이 참신하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 소재가 될 수도 있다.
「멸종의 식탁」은 그중 후자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멸망의 원인과 그에 관련된 이야기가 밀접하게 접목되어 있었으며, 그 과정 중에 일어난 인물 간의 첨예한 갈등이 잘 그려졌다. 「멸망을 향하여」는 ‘가챠 게임 섭종’이라는 모두가 익숙하지만 쉽게 떠올리기 힘든 소재를 섬세하게 풀어 나갔다. 「파로스」는 바다에서 등장한 괴생물체로 인한 멸망과 그에 대적하는 과정을 그린 글로, 괴수 영화를 연상시키는 묘사가 장점이었다. 이 세 작품을 본선에 올린다. 외에도 「꽃가루 아포칼립스」는 멸망의 과정에 얽힌 반전을 섬세하게 묘사했으나 인물이 다소 작위적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당신은 나의」는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대단히 맛깔스러웠으나, 그 관계가 이야기 안에서 제대로 확장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예심위원2
제2회 종말 문학 공모전에 다양한 작품이 참가하였다. 예심에서 소수의 장편소설이 들어왔는데, 아쉽게도 본심에 올리긴 어려웠다. 매번 소규모 공모전을 진행하면서 공모전에 부합하는 주제라기보다는 이미 따로 집필했던 작품을 공모전 형식에 맞다고 생각하여 참여하는 경우가 있는데, 공모전 주제에 명확히 부합하는 작품이 아니라면 예심 중에 금방 알아차릴 수 있고, 패널티를 받게 된다. 추후에는 가급적 공모전의 방향을 명확히 이해하고 참가하길 권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참여작들의 수준이 좋았고, 때문에 본심에 올릴 작품 때문에 행복한 고심을 해야 했다. 다음 몇 작품은 고심 끝에 결국 본심에 올리지 못했는데, 「가전의 역습」, 「여름의 끝」, 「햇살에서 벗어나」, 「노란색 포터」가 그 작품들이다. 「가전의 역습」은 아이디어가 재미있고 블랙 코미디로서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확실한 한방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여름의 끝」은 이렇다 할 특별한 사건이나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없음에도 종말이라는 느낌을 잘 전달해주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흡인력이 아쉬웠다. 약간의 조미료도 필요할 때가 있다. 「햇살에서 벗어나」도 같은 부분이 아쉬웠다. 특히 후반부와 마무리가 좋았던 작품이지만 거기까지 독자의 시선을 끌고 갈 동력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노란색 포터」 역시 비슷한 지점의 약점이 있었다. 세계관이 이어지는 두 작품을 공모했는데, 이 세계관이 흥미롭고 완성도가 있는 느낌이지만 역시 흡인력은 저자가 고심해야 할 부분이었다.
「시네필(들)의 마지막 하루」, 「침착한 종말」, 「죽이는 것이 더 낫다」는 각기의 개성이 확실한 작품이었다. 흡인력도 뛰어났으며 종말이라는 주제에 잘 부합하여 최종 본심에 올렸다.
예심위원3
전반적으로 종말 문학에 잘 부합하면서 신선한 작품은 별로 없었다. 종말 직전의 혼란스러운 세상이나 종말 이후의 암울한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았고 다양한 인류적 재앙 중에서도 혜성 충돌과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많았다. 단편이 많았으며 종말 문학으로 보기 힘든 작품들도 있어 다음 공모전에서는 종말 문학의 성격에 부합하는 중장편 작품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텍사스 전기 통닭 푸드 트럭」은 개성적인 인물들이 나름대로 흥미로웠으나 사건에서 큰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1000_헬넘버」는 이색적인 인류적 재앙 요소를 상세히 다루었으나 인물의 매력이 잘 드러나지 않았고 전개가 평이했다. 「아군」은 외계인의 침공에 전설 속 존재가 나타나 인류의 도시를 지킨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고 「광장에서의 이별」은 종말을 대하는 서정적 감성이 돋보였으나 두 작품 모두 사건의 갈등이 미약했다. 「재앙세계: 어떤 여행」은 서서히 고조되는 긴장감이 눈길을 끌었으나 지나치게 상투적인 설정과 예측 가능한 전개와 결말 등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설맹」은 배경, 액션 등 작중 세상의 묘사가 실감을 주었으나 작품 고유의 낯선 설정들로 흡인력이 저하되었다. 「어느 날 지구가 멸망하지 않았습니다」는 종말을 앞둔 인간 군상을 폭넓게 다루었으나 단편 안에 인물들의 시점이 지나치게 자주 바뀌어 글이 산만하게 느껴졌다.
「캐시 Cassie」는 종말에 대한 암시가 다소 작위적이고 초중반부에는 초능력으로 인한 갈등이 주되게 다루어져 아쉬웠으나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종말을 예지하는 능력에 그럴듯한 설득력을 부여하고 작중인물의 갈등과 절망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우주 너머에 집을 지으면」은 미지의 지저 생명체가 갈등을 일으키기 위한 장치로 갑자기 등장하고 소설 속 과학적 근거가 설득력이 다소 부족해 아쉬웠으나 종말이 닥친 세상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이야기가 공모전의 성격에 잘 부합했다. 「캐시 Cassie」와 「우주 너머에 집을 지으면」 두 작품을 최종 본심에 올린다.
예심위원4
10년 만에 개최된 종말 문학 공모전에서는 기후위기, 팬데믹, 생물 다양성 감소 등 시대의 변화상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다만 그 현상만 빌려와 지나치게 단순한 종말의 풍경을 선언하거나, 반대로 종말이라는 소재의 범주를 확장하려는 시도에서 핵심적인 서사나 분위기가 희석되어 모호하게 마무리되는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살려줄 이유가 있는가」는 국경을 초월하는 서사의 스케일이 인상적이었으나 각각의 인물과 전개 방식이 촘촘하게 연결되지는 못했다. 「시대 교환」은 초반부의 예상을 뒤엎는 전개는 참신했으나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묘사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인상이다. 「템플릿(Template)」과 「꼴치빨치」는 설정 자체는 일면 흥미로웠으나 추동력을 얻지 못하는 장황한 전개가 단점으로 꼽혔다. 「생존 증명 일지」는 종말의 분위기는 충만하게 담아내었으나 내내 밋밋하게 흘러가는 전개가 아쉬웠다. 다음은 본심에 올린 작품이다. 「벨제붑」은 다소 작위적인 캐릭터 조형과 일부 전형적인 서사 패턴이 단점으로 꼽혔지만, 하나의 소품으로서 종말이라는 주제를 매끄럽게 풀어내었다.
예심위원5
혜성 충돌과 같은 갑작스러운 대멸종의 위기보다 기후 위기, 인구 절벽과 같은 ‘서서히 다가오는’ 종말의 무서움이 그 어느 때보다 피부에 와닿는 세상이 되었음을 응모작들을 통해서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환경 오염으로 생존이 바닷속 일부 지역으로만 제한된 미래에서 시한부 개량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 「해저도시 타코야키」는 인간의 멸종이 생명의 종말은 아니라고 선언하는 듯한 후반부의 속도감 넘치는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본심에 올리지 못한 작품 중 「바람과 야자수가 바다를 기억하듯」는 해수면 상승 때문에 오염물질이 바다를 통해 번지게 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우주로 떠나게 되는 한 개인의 기억에 초점을 맞춘 잔잔하고 감성적인 작품이었지만 흡인력이 아쉬웠다. 초국가적 기업이 종말의 방식에 관한 앱 리서치를 진행하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그린 「꼭 맞는 종말」은 과장된 상황 묘사가 다소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였지만 아이디어가 몹시 흥미로웠다. 역병을 피해 신이 다스리는 산에 도피한 일군의 인물들을 그린 「푸른 신명」은 「서던 리치」가 연상되는 긴장감이 좋았으나 인류적 재앙보다는 금기의 영역에 들어가 초월적인 존재와 접촉함으로써 느끼는 공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본심 진출작
시네필(들)의 마지막 하루
침착한 종말
죽이는 것이 더 낫다
해저도시 타코야키
벨제붑
캐시 Cassie
우주 너머에 집을 지으면
멸망을 향하여
파로스
멸종의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