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C. 클라크의 기념비적인 고전 걸작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국내 첫 완간을 기념하며, 작품 내용뿐 아니라 작품 속 과학적 설정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좌담회를 진행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 패널이 함께한 흥미로운 좌담회 스케치를 브릿G 매거진을 통해 먼저 공개합니다.
[진행] 전홍식 SF&판타지 도서관 관장
[패널] 고호관(소설가·번역가), 정소연(소설가·번역가),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이진주(걸스로봇 대표)
[장소] SF&판타지 도서관
Q. 황금가지에서 최근 출간한 「스페이스 오디세이 완전판」에는 2001, 2010, 2061 스페이스 오디세이 외에도 『3001 최후의 오디세이』와 함께 특별 책자 「우주의 먼 별에서」도 함께 준비를 했다. 좌담회에 참석해 주신 분들의 글도 실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글을 쓰시면서 어땠는지 소감이 궁금하다.
[고호관] 클라크의 신간들이 많아서 최근에는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볼 일이 없었는데, 특별 책자 원고 의뢰를 받고 나서 책을 펼쳐보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났고, 이래서 내가 클라크를 좋아했었구나라고 느꼈다.
[이진주] 저는 조금 색다르게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페미니즘이라는 툴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20대 때 큰 영감을 주었던 작품이었는데도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살펴보니 20세기 이전의 작품들이 갖고 있는 한계가 보이기도 했다.
[정소연] 다른 분들도 그러셨겠지만, 번역된 지 한참된 책이기 때문에 상당히 오랜만에 책을 보았는데, 신기하게도 기억 속에 있었던 것보다 덜 올드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전에 대해서 책을 쓰게 될 것이라고 예상을 하며 책을 다시 읽었는데, 고전인 것은 맞지만 내 기억 속에 있던 글이 더 낡은 느낌이고 다시 보는 글은 그보다 덜 낡았다는 사실이 놀라왔고 인상적이었다.
[박상준] 개인적으로는 많은 SF 작가들 중에서 아서 C. 클라크를 가장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우주를 바라보면서 다른 지적 존재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라는 원초적인 인간의 열망을 가장 잘 풀어나가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하고, 역시나 이번에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다시 읽으면서도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Q.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끊임없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고호관] 개인적인 생각이 많이 반영된 의견으로는, 아서 C. 클라크가 그의 작품에서 추구하는 정서와 제가 개인적으로 SF라면 응당 이러한 내용들을 담고 있고 있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맞아 떨어져서 아서 C. 클라크를 좋아한다. 조금 더 설명하자만 클라크의 글 자체는 감성적이거나 시적이지는 않고 오히려 공학적인 내용들을 나열한 듯한 느낌을 받지만, 계속 읽다보면 끝에 가서는 공명을 일으키면서 피를 끓어오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역시 아서 C. 클라크구나 라고 하게 된다.
[정소연]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그의 글에는 낙관(樂觀)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래에 대한 낙관, 진보에 대한 낙관. 즉 무언가 나아질 것이라는 신뢰, 우리가 아는 것이 더 많아지고, 세계가 넓어지고, 문제가 있다면 그 답을 찾아낼 것이라는 감성을 담고 있는 고전적인 부분이 있는데 그런 낙관이 이 책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책 속의 문장을 볼 때 동시대에 출간된 책들보다 낡은 느낌이 있는데 역설적으로 이런 고전적인 부분들이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시간을 뛰어 넘어서 언제나 살아남게 하는, 어떤 시대의 독자도 끌어들일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Q.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SF의 고전처럼 불리고 있지만, 사실 『2001』이 출간된 것이 1968년이고 『3001』의 경우에는 1996년에 출간되었으니 생각보다는 오래된 작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SF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한번쯤 꼭 읽어보아야 할 고전이라고 이야기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박상준]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오늘날까지 이렇게 유명하게 알려지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와 함께 나왔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의 자료들을 보면,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대해 영화 팬들조차도 당혹스러워 할 정도로 기존의 SF 영화들과는 획기적으로 다른 차원의 영화였다고 한다. (본인도 학생 시절, 책을 본 후 영화를 봤기 때문에 내용에 대한 선이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중간에 졸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SF계를 넘어서 세계 영화사에서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세계 영화사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차지하는 위상과 세계 SF 문학사에서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가 차지하는 위상이 동등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 영화와 동시에 소설이 소개되면서 아서 C. 클라크라는 작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아서 C. 클라크라는 이름이 끊임없이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영화 때문에 소설과 작가가 유명해졌다고만 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즉, 영화로 인해서 SF 팬이 아닌 일반인들이 ‘이렇게 대단한 영화가 있는데 이와 함께 출간된 소설을 쓴 작가는 영화보다 더 놀랍고 미래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담은 이야기들을 썼다’고 아서 C. 클라크를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겉보기에는 과학 기술적 묘사만 다룬 것 같지만 사실은 그로 인해서 초래될 사회적, 인문학적 영향까지도 다 아우른 작품을 계속해서 세상에 내놓았다는 것도 아서 C. 클라크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Q.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진주] 아서 C. 클라크는 인류가 달에 가기 이전에 이미 우주의 저 끝 화성, 토성까지 다 생각했던 우주적 지성인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상상했던 미래 세계 속의 여성상은 여전히 보조적인 위치에 있지 않았나?라는 의심을 했다. 시대적인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던 것이다.
예컨대 우주선 승무원은 전형적인 몸매, 태도, 목소리를 가진 예쁜 여성 직업인으로만 묘사돼 있다. 한편, 우주 기지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남성 연구자들과 1 : 2 정도의 성비로 구성돼 있다. 여성 연구자 비율이 33%라면, 오늘날의 기준으로도 대단히 미래적이고 진보적인 수치다. 다만 적극적이고 전문적인 활동을 하는 모습까지는 담지 않았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클라크는 그런 성비까지는 상상했지만, 여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까진 미처 그려낼 수 없었던 것 같다.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남자들과 똑같다. 그러나 달 기지에서 태어난 여자 아이의 경우에는 보다 진취적으로 묘사돼 있다. 미래 세대 지구와 분리된 환경에서라면, 새로운 종류의 우주적 여자아이가 태어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또 한 가지는 ‘모노리스’에 대한 얘기다. 이 거대한 석판은 첫눈에는 바위, 기둥, 건물처럼 묘사된다. 이는 다름 아닌 팔루스(남근)의 상징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게 하고 인간을 가르치고 훈련시켜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 남성적인 것 말이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기둥이 아니라 오히려 ‘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비드 보먼은 이 문을 통과함으로 ‘스타차일드’로 다시 태어난다. 남근이 뒤집어져서 자궁이 되는 역설이다.
Q. 아서 C. 클라크는 과학자이자 미래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한 일화로 영화와 소설이 나온 다음에 아폴로가 달에 도착을 하고 한참 뒤에 아폴로 음모론이 나오면서 클라크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었고 이때 클라크는 나사(NASA)가 자신에게 저작권료을 주지 않느냐는 식의 농담식의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이 모든 것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보여주는 미래가 당시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정말로 있을 법한 상상력을 구현하였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스페이스 오디세이 작품 속 과학 기술 중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박상준]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 작가 후기에 보면, 그 때가 1980년대인데 당시 아서 C. 클라크가 스리랑카에 거주하면서 워드 프로세서로 원고를 작성하고 그것을 통신위성을 통해서 미국에 있는 출판사로 보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아서 C. 클라크가 이러한 방식으로 원고를 송고했다는 부분은 그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라면 각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 이유는 아서 C. 클라크는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에 영국왕립공군 레이더 담당 장교로 있으면서 ‘통신 위성’이라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매거진을 통해 발표를 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정지궤도에 있는 위성 3개만 올리면 전 지구를 커버할 있는 통신위성으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이론적인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를 발표한 지 20년도 되기 전에 실제로 인공위성이 올라갔고, 1964년 동경 올림픽에서 경기가 위성중계가 된 일이 있다. 이렇듯 그가 처음으로 제시한 아이디어가 실현되고 또 그 기술을 사용하여 원고를 송고했다는 사실은 그의 팬으로써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런 일화들이 모여서 아서 C. 클라크가 처음으로 내놓았던 아이디어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행사했다면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 것일 텐데, 실제로 SF 분야에서 유명한 문학상 중에 ‘아서 C. 클라크 어워드’가 있기도 하지만 전기전자통신공학 분야에서도 ‘아서 C. 클라크 어워드’가 있다. 이것은 통신공학 분야에서 아서 C. 클라크가 기여한 바가 상당하다는 실증이라고 할 수 있다.
[고호관] 아서 C. 클라크가 ‘인류는 아마도 태양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이것은 실제적인 가능성을 생각을 하면 결국 인류는 태양계를 안에서 살다가 끝날 것이다 정도로 예측을 한 것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유년기의 끝』을 보면 마지막에는 어느 순간에 갑자기 한계를 뛰어넘는 강렬한 결말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런 점들을 볼 때 그는 기술에 기반을 둔 글을 쓰면서도 꿈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고 이런 부분이 인상 깊게 다가온다.
또한 그의 아이디어가 실제로 실현된 사례도 많지만 꼭 그렇게 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아서 C. 클라크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고 기술적으로 유일하게 불가능한 것으로 HAL의 독순술 기능을 이야기했는데(아이디어 역시 큐브릭이 낸 것이라 밝히기도 했음) 최근에 최근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시스템이 인간 전문가보다 입술을 더 정확하게 읽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웃음)
Q.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모노리스’라는 장치를 통해 인류를 비롯한 지적 생명체가 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외계인 문명 전래설과 같은 음모론적인 이야기도 많고, 「스타게이트」 같은 영화가 나오기도 했는데, 아서 C. 클라크 소설 속 ‘외계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소연] 아서 C. 클라크는 실제로 가능하지 않은 것들은 작품 속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계인을 등장시킨 것은 작품을 이끌어 나가기 위한 그만의 장치가 아니었을까싶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의 범위 안에서 ‘어떤 종류의 지적인 도약’을 (시간을 몇 만 년 정도로 길게 늘려 설정하지 않는 이상) 현실 세계의 인류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외계 문명이 이를 가져다 놓았다는 식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다시 말해 시간적 도약이 가능하지 않은 현실에서 일어난 지적인 도약을 설명하기 위한 논리적인 장치로 인류가 아닌 그 외의 지적인 존재를 도입한 것이다. 그들이 인류의 경험 세계 안에 무언가를 집어넣어서 이를 실현했다고 하면 깔끔하게 설명이 된다. 따라서 아서 C. 클라크가 외계 존재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서 「스페이스 오디세이」 안에 외계인을 넣었다기보다는 작품의 전계를 위해서는 이러한 장치를 넣지 않았을까 싶다.
[고호관] 아서 C. 클라크의 외계인 묘사는 외계인이 인간과 같은 형태나 사고방식이 아닌 초월적인 지성을 갖춘 존재로 그려진다. 이러한 묘사가 요즘에는 새롭지 않은 설정이지만 아서 C. 클라크를 처음 접했던 어린 시절에는 외계인이 지적으로 끌어준다거나 초월적인 상태로 이끈다는 개념이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었다.
[박상준]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을 통해 SF에 입문하게 되었었는데, 거기에서 보면 오버로드라는 외계인들이 등장하여 지구 인류의 초월적인 진화를 도와주고 관리하는 식의 전개가 그려진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부분들이 있다.
모노리스를 통해 인류가 도약을 이룬다거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매우 유명한 장면으로 꼽히는 원시 인류가 승리감에 도취되어 집어 던진 뼈다귀가 우주 정거장으로 변하는 모습, 「2010」에서도 에우로파에 있는 외계 생명체를 지적으로 도약을 시킬 것처럼 암시를 하면서 인류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고를 하는 내용 등이다.
개인적으로 항상 궁금증을 갖고 있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 왜 호모사피엔스만이 독보적으로 지적인 능력을 갖추었나 하는 부분이고 이것이 정확하게 해명이 되지 않는데, 신화나 종교적인 부분으로 설명을 하지 않는다면 정소연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외계인이 등장하는 설정이 그나마 납득이 가능한 형태가 아닌가 생각한다. 아서 C. 클라크도 외계, 외계의 지적 존재, 광범위하게는 외계로부터 온 어떤 의지 이런 것을 통하지 않고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으로 과학적 상상을 펼쳐 보인 것이 아닌가 싶다.
Q.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HAL이라고 할 수 있는데, 최근 알파고가 이슈가 되면서 HAL도 다시금 부각이 되었다. 학습형 컴퓨터인 HAL은 디스커버리호라는 우주선을 통제하고 관리하면서 사람들을 보호하는 장치인데 어느 순간 갑자기 승무원을 죽이게 되면서 독자들에게 혼란과 충격을 주었다. 이 때문에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기계의 반란을 그린 작품이라고 이야기되기도 하고 또 반면에 작품 속에서 기계와 인간의 공존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인공 지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진주] 인간은 이미 육체적으로 사이보그의 단계로 진입했고, 인공지능과 결합한 새로운 생명체로 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상상처럼) 먼 미래에는 어쩌면 우리는 전자적으로만 존재하게 될 수도 있다. 그 과정 중 인간과 인공지능 또는 로봇과의 대결은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HAL과 데이비드 보먼은 처음에는 동료로서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다 갈등이 생기고, 인공지능은 나름대로의 정합적인 판단 하에 인간을 제거하는 쪽을 선택한다. 인간이 모순적인 명령을 내려 충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문명화란 인간, 또는 시민의 범주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애자 백인 남성만 있던 그 범주 안에 흑인이 들어가고, 여자가 들어가고, 동성애자가 들어가고, 오늘날엔 동물도 논의되고 있으며, 언젠간 로봇도 들어가게 될 것이다. 로봇 또는 인공지능과의 공존에서 상대방을 얼마나 같은 부류로, 그러니까 같은 시민으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느냐 하는 점이 중요하다. HAL은 동료로서 기만당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정소연]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을 보면 ‘아이’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 아서 C. 클라크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해 ‘사람의 아이같이 접근’하는 하나의 방식 제시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HAL이 사람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면서도 동료의 역할이 아니라 사람의 아이같이 성장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어야 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고 그 평면적인 존재가 복합성을 가진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인간이 학습해야 한다고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HAL은 ‘아이’같은 모습인 있는 반면 외계인들은 초월적이고, 인류보다 더 많이 알고 오래살고, 거대한 ‘어른’같은 존재로 그려지고 있어 작품속의 대칭성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고호관] 개인적으로 HAL이 인공지능의 반란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이야기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처음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접했을 때 HAL은 단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최선의 방법을 찾았을 뿐이고, 사람들에게 반기를 들어야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반란’이라고 거론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이것이 과연 아서 C. 클라크의 의도한 바일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Q. 2001년부터 3001로 이어지는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는 인류의 진화를 소재로 하고 있고 2001년의 끝에서도 스타차일드가 태어난다. 작품 속에서 인간이 한 차원을 뛰어넘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진주] 주인공 데이비드 보먼을, 우주라는 처녀지(處女地)에 처음 들어가는 하나의 정자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는 스타게이트를, 그러니까 자궁으로 변형된 모노리스를 통과하면서 열락을, 즉 작은 죽음(*오르가즘을 다르게 표현한 것)을 느낀다. 우주적 섹스라고 할 수 있다. 정자는 수정란으로 변하고, 결국은 스타차일드라는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이렇게 새로 태어난 스타차일드는 기존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차원을 한 단계 벗어나 우주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박상준] 호모사피엔스라는 하드웨어는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소프트웨어는 질적으로 업그레이드되어서 자기 주변을 둘러싼 우주라는 환경을 감지하고 인식하고 해석하는 기관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SF 독자의 입장에서 우주를 향한 원초적인 동경을 보자면 현재 인간의 능력으로는 풀 수 없는데 아서 C. 클라크는 이런 방식을 통해 인간의 불가능을 해소하고 우주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아서 C. 클라크가 ‘인류는 아마도 태양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이야기도 생물학적인 물성을 유지한 채로는 태양계 이상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만약에 항성간, 은하간 장거리 우주여행을 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무기물적인 존재에 가까울 것이고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묘사한 것 같이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스타 차일드와 같은 존재로 탈바꿈하지 않고서는 힘들 텐데 ‘이렇게라도 가능할 수 만 있다면’이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고 생각한다.
[고호관] 2001의 결말은 갑자기 폭발하는 듯한 고양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기술적인 것부터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린 듯한 그의 작품은 그것만으로도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어디까지 끌고 나갈 것인가, 어느 순간에서 멈춰야지 김새지 않는 결말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결말에 있어서 아서 C. 클라크가 그 당시 매료되어 있었던 초지성적인 부분과 인류가 갖추고 있던 기술 혹은 근 미래에 갖출 것이라고 예상되는 기술과의 갭을 이성적으로는 메우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인류 이전에 지적인 도약을 달성한 외계인이 있었고, 그들이 인류를 이끌어 준다는 정도의 결론이 아서 C. 클라크가 생각할 수 있는 선에서의 최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Q. 1968년에 2001년을 무대로 이야기를 펼쳐낸 이 작품은 1982년, 1987년 그리고 1997년 각각 속편이 나오면서 그 세계를 이어나갔다. 2001년부터 3001까지 이어지는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 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무엇인가?
[박상준] 특별 책자에도 썼지만 개인적으로는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의 에우로파의 생명체를 묘사하는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고호관] 아서 C. 클라크는 새로운 이론을 던진다기보다는 기존의 이론들을 조합해서 신비롭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특징이 있는데 특히 『206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그런 부분들을 챙겨보는 디테일이 특히 좋았다.
『3001 최후의 오디세이』의 경우에는 1997년에 일간지에 외국의 출간 소식을 보고 스크랩을 해놓기도 했었다. 국내에서는 출간이 되지 않을 줄 알았다. 『3001』은 아서 C. 클라크가 단독으로 쓴 마지막 장편인데, 그전까지 다루었던 주제들, 미래상 같은 것이 종합되어 있다고 생각을 한다. 즉 아서 C. 클라크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미래를 꿈꿨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장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전홍식]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영화로도 접했었는데 영화 「2010」은 「2001」처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볼 수 있고(2001은 사실 조금 졸기도 했다) 재미있게 감상했던 기억이 난다. 소설 『2061』은 다이아몬드에 얽힌 음모라던가 후반부에 가서 싸움이 벌어지는 등의 내용이 활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3001』의 경우에는 아! 1000년 후의 미래에는 저런 것도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고, 특히 죽었던 캐릭터가 되살아나서 3000년대를 살아나서 자신을 죽였던 사람도 만나고, HAL도 만나고 그 세계의 삶을 살아가는 부분은 꽤 재미있었다.
Q. 『3001 최후의 오디세이』는 어떻게 느꼈는가?
[전홍식] 모노리스라는 것이 대단히 신선하고 매력적인 존재였는데, 시리즈의 뒤로 갈수록 모노리스는 별게 아니고 단지 기계 장치일 뿐이라는 식의 스토리가 펼쳐져서 일부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부분이 오히려 아서 C. 클라크다웠다고 느꼈다.
[정소연] 나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 과거의 인물이 깨어나 미래의 삶을 체험하는 부분은 로버트 A. 하인라인이 워낙 뛰어나게 표현을 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굳이 『3001』의 장점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본다. 또 『3001』이 『2001』이 발표된 지 30여 년 후에 나왔는데 그러다보니 작품이 작가와 함께 나이들어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2001』이 더 오래된 작품이지만 더 새롭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3001』이 가지는 의미라고 한다면, 아서 C. 클라크가 시대를 초월해서 고전이라고 불릴만한 좋은 작품을(라마 시리즈 같은, 뒤쪽 말고 앞쪽!) 많이 내 놓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가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는 그의 노년의 작품까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점이 문학적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를 통해서 한 작가가 나이 들어가면서 그의 작품이 함께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명확하게 볼 수 있고 또 그가 자신이 만들어낸 것 중에서 무엇을 조금 더 매력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그것이 독자의 생각과 같든 같지 않든), 다시 살려내고 싶은 설정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데, 그것을 목격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더욱이 SF같이 비교적 역사가 짧은 장르에서는 (사실 1910년대에 태어나서 2000년대에 죽은 작가도 많지 않다.) 매우 드문 것이기 때문에 SF사적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서 C. 클라크의 팬이라면 작가가 자식의 작품에서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치 있게 여겼는지를 많이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서 아서 C. 클라크는 하고 싶던 모든 것을 다 한 사람이지 않나 싶다.
[박상준] 사실 아서 C. 클라크가 노년에 했던 이야기들 중에는 쉽게 수긍하기 힘든 내용도 있다. 예를 들어 화성의 사진을 보고 ‘화성의 식물이다.’라고 했다든지, 우주의 감마선 폭발을 보고 ‘저것은 우주 전쟁이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산업 재해인 거 같다’ 등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이러한 발상, 제한 없는 상상력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미덕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유명한 ‘아서 C. 클라크의 법칙’이라는 3가지 어록도 오랫동안 기억되면서 일류 문명과 같이 갈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설명하자면 이런 식이다.
- 아주 저명한 원로 과학자가 어떤 것이 ‘가능’하다고 예견을 한다면 그것은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런데 그 과학자가 어떤 것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틀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 예를 들면, 자동차가 발명이 되었을 당시에 어떤 과학자가 시속 30km이상의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탈 것 위에 있는 인간은 질식해서 죽을 것이다 라고 했던 것처럼 – 그 당시의 과학지식만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즉, 당대에 조롱받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상상일지라도 세대가 바뀌면 실현되어 과학의 주류가 되기도 하고 실생활에서 사용되기도 하는 사례가 많은데, 아서 C. 클라크는 이러한 SF적 상상력의 중요함을 이야기 한 것이다.
- 우리가 어떤 것의 한계를 알려면, 그 한계 너머로 살짝 건너가보는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이게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얼마나 숨을 참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사람들이 1분 이상은 힘들 거야, 라고 이야기 한다면 1분 이상 참아보는 것) 아서 C. 클라크는 이를 통해서 한계는 늘 도전을 통해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 고도로 발달된 과학기술은 마법과 구별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참 멋있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본인 역시 과학 기술에 처음으로 눈을 뜨게 된 것이 어린 시절 라디오를 통해서였는데, 아무것도 연결되어 있지 않는 기계장치인데 음악 소리도 들리고 사람 목소리도 나왔고 그 당시에는 전파라는 것이 (아서 C. 클라크가 말한 것과 같이) 일종의 마법이자 마술처럼 다가왔었다.
Q. 2001,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영화로도 만날 수 있다. 특히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영화는 수많은 이에게 찬사를 받기도 했는데,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소설과 영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진주] 대학시절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여러 번 봤었는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영화에서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이 풀리기도 하고 훨씬 더 재미있게 다가왔다. 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들은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많다. 음악과 결합하여 우주적인 환상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들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토대가 되는 상상과 설명들이 소설 속에 모두 있어서, 그 당시 보았던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불완전한 상태였구나 라고 느꼈다. 영화는 불친절하다. 영화와 소설 중 어떤 것을 먼저 보는 것이 좋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긴 하겠지만, 저는 소설을 먼저 보는 쪽을 추천한다.
[고호관] 본인은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봤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이것이 무슨 내용이구나라고 알 수 있었는데, 영화를 먼저 보았다면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특히 마지막으로 모노리스 안으로 들어가서 겪는 이야기부터 스타 차일드가 되는 것 까지가 환상에 가까운 이야기인데, 영화에서는 그것을 설명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다 보니깐 영화만 본다면 이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박상준]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영화는 꽤 어려웠다. 그래서 영화가 나왔을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영화만보면 난해하기 때문에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라고 권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경우도 (2001의 아우라가 강렬해서 뭍힌 경향이 있긴 하지만) 많은 공을 들였고, 연출력도 좋고 많은 공을 들여서 만든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아서 C. 클라크 팬들한테 흥미로운 이야기일 것 같은데) 영화 「2010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는 아서 C. 클라크가 카메오로 나온다. 영화 앞부분에 전파 망원경들이 있는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소연] 나는 소설을 먼저 보았고 영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이라는 사전 정보가 있는 상태에서 영화를 본 경우이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가 나오고 책이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책과 영화 중 어떤 것을 먼저 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나왔을 당시의 순서대로 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상준] 이런 경우는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을 보지 않고 영화를 본다면, 자신만의 해석이 있을 수 있는데 소설을 먼저 본다면 그 해석에 갇힌 상태로 영화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Q. 마지막으로 황금가지에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3001 최후의 오디세이』를 포함한 「스페이스 오디세이」 완전판이 출간이 되었는데, 이 작품에 대한 간략한 추천사를 부탁한다.
[정소연] 특별 책자의 글에도 적었지만,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시대를 초월하는 모범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박상준] 2017년에 보는 2001년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책 속의 세계는 지금보다도 더 미래지향적인 것 같다. 아서 C. 클라크가 이 작품을 쓸 당시에 기대했던 과학기술의 발전이 현실 세계에서는 순조롭지만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우주개발처럼 마크로스케일이 아니라 인터넷, 스마트폰 등 IT 기반의 마이크로스케일로 과학 기술 발전의 방향이 달랐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주를 향한 원초적인 동경을 품고 있는 사람으로서는 아쉽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아서 C. 클라크가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그린 미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꿈을 꿀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진주] 최초의 소셜 로봇 ‘지보’의 개발자인 MIT 신시아 브리질 교수의 자서전에는 지도교수 로드니 브룩스(아이로봇 창립자)와 함께 1997년 1월 12일 MIT에서 열린 HAL의 생일파티에 참석한 일화가 등장한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할이 태어난 것으로 서술된 날짜에, 인공지능과 로봇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모여 생일파티를 겸한 심포지엄을 연 것이다. 이 자리에서 많은 학자들은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연구에 끼친 영향을 고백했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KAIST의 정재승 교수 역시, SF 영화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책과 칼럼을 통해 해당 파티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로봇덕후’로서 그런 장면들을 만날 때마다, 하나의 위대한 작품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가늠할 수 없는 영감을 주는지 놀란다. 아폴로 11호 착륙 당시에도 클라크에게 헌사를 바쳤지 않나. 작가로서 가장 감격스런 헌사였을 것 같다.
[고호관] 아서 C. 클라크가 여러 작품에서 비슷한 소재를 공유하기는 하지만 한 세계를 가지고 여러 이야기를 쓴 것은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고 (토성, 목성 이런 사소한 차이가 있고 이에 대해서 클라크도 평형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로 봐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작품을 보면 SF 거장이 쓴 우주사를 볼 수 있다. 시간이 없어서 그의 작품을 모두 읽을 수 없다면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볼 것을 추천하는 바이고, 이 작품을 통해서 아서 C. 클라크가 어떤 우주를 꿈꾸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에 다시 읽는 우주의 오디세이
by.전홍식 관장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추억하며
by.김보영 작가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by.심완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