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문학 주간] 지언 작가의 『우물』에 대한 7가지 물음

2024.10.14

한국 공포문학의 새로운 도전 『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출간을 기념해 일곱 작가와 함께하는 7문 7답 릴레이 인터뷰 연속 기획, 어느덧 그 여섯 번째 매거진의 주인공은 ‘토요일’ 작품을 담당한 『우물』 지언 작가님입니다!

『우물』은 민속적 색채가 뚜렷한 공포 작품들을 꾸준히 집필해 오신 작가님의 무속신앙에 대한 양질의 정보와 디테일을 바탕으로, 뚜렷한 캐릭터와 짜임새 있는 스토리가 인상적인 공포소설입니다. 실제로 이 소설의 아이디어가 되었던 오싹한 경험부터 민담 호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어릴 적 환경, 그리고 작품 집필에 관련된 여러 후일담까지 흥미로운 작품 안팎의 이야기를 이어서 전해 드려요.

 


 

1. 『우물』은 2022년 진행된 브릿G 작가 프로젝트 첫 번째 공모에서 ‘무속적인 디테일과 비교적 경쾌한 인물들 간의 케미가 적절히 배합되었다’는 평을 받으며 선정된 작품입니다. 당시 이 작품 구상과 출품은 어떤 계기로 준비하셨나요. 『우물』 역시 고전적 공포 설정 중 하나인 외지인이 금기를 깨고 낯선 장소에 침입하면서 사건이 시작되는데요.

A. 작품을 집필하기 1년 전쯤의 일입니다. 버스에서 졸다가 알지 못하는 정류장에 내려서 근처를 헤매다가 오랫동안 방치된 마을의 우물을 발견한 적이 있었는데요. 정말 우연히 보았던 그 우물에 실제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외할머니께 전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모른 채 뚜껑까지 열어서 그 안을 들여다보았던 그때의 기억이 너무 큰 충격으로 와닿았습니다. 지금껏 스크린 너머로만 보던 공포 영화의 도입부와도 같은 경험이었죠. 그때 제가 느꼈던 서늘한 감각을 남한테도 생생하게 전해 보고 싶다는 확신이 그때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의외로 금방 찾아왔습니다. 한국 공포문학 중편선 공모전이었는데요. 검증된 작품들을 묶어서 선보인다는 콘셉트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침 소재도 이미 준비된 상태라서 공고를 본 순간부터 최우선 순위로 작품 구상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분위기가 무거운 공포 영화를 참고용으로 두 편 보았습니다. 「곡성」과 「랑종」이었는데요. 정말 재미있는 작품들이지만 끝까지 보고 나서는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제 개인적인 성향이 긍정적이라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과정은 무섭고 괴로울지언정 결말만큼은 희망적으로 끝내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러려면 인물들이 긍정적이고 유쾌해야 했고, 회복 탄력성도 있어야 했습니다. 캐릭터의 색채가 드러나는 첫 장면, 모든 것이 깔끔하게 일단락되는 결말. 그 두 가지를 먼저 정해 놓고 공모 기간 이전에는 산책을 하며 최대한 많이 그 중간중간을 채워 넣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스토리 라인을 나름대로 탄탄하게 잡아 놓은 덕분에 기간 내에 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2. 이번에 출간된 『우물』뿐만 아니라 작가님께서는 민담과 설화적 요소가 결합된 단편 「인형가」, 「은혜」 등 민속적 색채가 뚜렷한 고유의 작품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어렴풋이 학업적으로도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요, 각종 민간신앙과 민담, 설화 등에는 어떻게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또 올해 초 영화 「파묘」의 대대적 성공 이후 오컬트 소설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위상의 변화가 조금은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한데, 해당 장르 문화 애호가이자 작가로서 달라진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보시는지요.

A. 개인적으로 유년 시절을 정말 이상적인 환경에서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외갓집 식구들이 모두 근처에 있어서 교류가 잦았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두 분께 그분들의 평생 치 이야기를 잠자리에서 다 전해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중에서도 무서운 이야기를 특히 많이 들었습니다. 악몽을 정말 많이도 꾸었는데, 그래도 계속 무서운 이야기만 들려달라고 두 분을 졸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계속 손이 가는 ‘매운맛’이 아니었을까요. 사실상 그때의 경험이 저를 민담 호러로 이끌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진실성 있는 호러는 삶의 연륜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 많은 인생의 경험 중에서 특히나 기억에 남으려면 그만큼 무섭고, 섬뜩해야 합니다. 제가 옛이야기를 찾아다니고 집착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마치 요리사들이 비법 소스를 찾아다니듯, 저 역시 자연스럽게 옛이야기를 찾게 되었고, 그런 호기심이 자연히 학업과도 연계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대학 소속으로 구비문학 조사를 다니지는 않지만,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 다시 참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파묘」의 성공 이후로는 뿌듯함과 막연한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저 오컬트라는 필드에 덩달아 서 있을 뿐인데도 마치 제가 성공한 것처럼 자부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 이전에도 무당이 유튜브에 자주 출연한다든지, MZ세대가 사주나 타로에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면서 오컬트가 점차 양지로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을 어렴풋이 느꼈는데요. 「파묘」가 그 희망의 확실한 근거가 되어 줬습니다. 우리도 하려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크게 느꼈다고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지금껏 전해 들었던 그 어떤 생태계 복원 사업 성공보다도 더 기분 좋은 소식이 「파묘」의 성공이었습니다.

 

3. 브릿G에 공개 중인 연재작 「시골 사람이 전해주는 이야기」의 에피소드는 작가님께서 직접 겪은 일이거나 믿을 만한 친한 친구, 혹은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각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 작중에 등장하는 사진 등을 보면 오싹함이 더 배가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반면 『우물』은 세습 무가의 유일한 증손이자 큰 신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비범하게 태어난 주인공 박시현을 필두로 한 본격 오컬트 소설입니다. 두 작품 다 소설적 형식으로 쓰였지만 후자는 캐릭터 조형부터 사건 구성 등 완전한 창작이라는 점에서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를 듯한데, 『우물』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거나 고민했던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시골 사람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자전적 소설, 『우물』은 장르의 규칙을 충실하게 따르고자 노력한 장르 소설입니다.

사실 『우물』이 첫 번째 도전이었기 때문에 특히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읽기 편하게, 읽다가 끊을 수 없게, 시간이 없어도 마지막 장의 결말만큼은 열어서 보게끔 써 보자는 원칙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물의 대사 역시 최대한 드라마틱하게 써 보고 싶어서 몇 번씩 소리내어 읽어 보고, 수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4. 작품 전반에 걸쳐 무속신앙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다양한 정보를 알아가는 것도 큰 재미 중 하나였습니다. 저마다의 무당들이 모시는 신명이 ‘관우’부터 ‘맥아더 장군’까지 정말 다양하다고 듣긴 했지만, 작중에 나오는 것처럼 저승사자를 신명으로 모시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한 정보와 설정이라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주인공 시현의 할머니인 만신이 저승사자를 모시고 있는 거라면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신명인 건가 싶기도 한데, 이 외에도 잘못해 악귀한테 정성껏 제사상을 올렸다가는 자칫 홀리게 된다는 내용이나 역천(逆天), 터주, 부정풀이굿, 영안 등등 무속적 지식이 다양하게 등장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또 사건이 발생하고 해소되는 과정에서 특정 목적의 굿들을 순차적으로 해야 하는 등 무속적으로도 어떤 흐름이 엿보이는 듯했는데요, 일련의 장면들을 통해 의례적으로도 어떤 정보나 재미를 주고 싶었던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사실 그 디테일을 살리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작품의 설정은 이미 작품에 몰입한 독자들한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요. 하지만 설정이 지나쳐서 작품이 설정에 매몰되는 수준이면 호기심이 지루함과 짜증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살리되, 설명은 최대한 덜어 내도록 노력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지만, 모른다고 해서 즐기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도록 하자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또 하나의 목적은 독자분들을 모두 선무당으로 만들고자 하는 목표도 있었습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이 있는데요. 독자분들이 단편적인 정보와 지식만을 쥐고 직접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느낌을 받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뭔가 거대한 스케일의 일이 차례차례 벌어지고 있는데, 자세하게는 알지 못하고. 그저 잘 되기를 막연하게 믿으며 기도할 수밖에 없는. 하지만 그러면서도 일말의 의심을 내려놓을 수는 없는, 그런 모순적인 기분을 느끼게끔 노력했습니다.

 

5. 세대 차이가 있긴 하지만 『우물』 초반부 시현과 필구의 운명적 만남부터 두 캐릭터의 케미가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주요 인물 관계에 큰 변곡점을 선사하는 사건이 비교적 빠르게 등장해서 놀랍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과감하게 사건을 전개시킨 이유가 있는지요.

A. 패기 있고 친화력 있는 젊은 사람. 다소 비굴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능력 있고, 사람다운 냄새가 나는 연장자. 이 둘이 만나면 누구나 좋아하는 익숙한 맛이 우러나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독자님들이 편안하게 사제관계를 받아들여 주신 것 같아서, 제 의도가 잘 받아들여졌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한편 시현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인물입니다. 타고난 그릇이고, 영적으로 위험한 일이 생기면 할머니가 나설 수 있습니다. 종갓집 종손이라 돈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자신감도 넘칩니다. 그런 인물이 사생결단으로 진지하게 나서려면 좌절이 빠르게 와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식의 과감한 전개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스피디하게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장르적 요구와도 마침 맞아떨어진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시도를 해 보았는데,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 것 같아서 참 다행입니다.

 

6. 이미지적으로도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오는 묘사나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문제의 우물을 보러 갔을 때 만났던 혼령의 첫인상도 그렇고, 곡식 낱알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듯한 눈동자 묘사 같은 부분은 상상만 하는데도 기괴하고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또 마지막 장면은 실제로 어떤 풍경이 눈에 그려지듯 자연스레 연상이 되었는데 이미지적으로 독자들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는 부분도 많이 고민을 하는 편이신지요. 그래서 영화 같은 다른 매체로의 변주도 꽤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등장인물의 근처를 떠다니는 저만의 카메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특정 인물의 어깨 옆에 둘 수도 있고, 인물의 정면에 둘 수도 있고, 하늘에 두고 굿판을 내려다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인물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카메라에 담긴 장면을 글로 묘사해야 하니 우선은 생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너무 장황하지 않게 술술 읽혀야 피로감이 없다고 생각해서 묘사를 완성한 뒤에는 두 번, 세 번씩 다시 읽어 보며 고치곤 합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는 저마다의 의문, 혹은 확신을 갖고 다다른 독자님들 모두가 실제로 그 굿판에 참여하는 느낌이 들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해 묘사했는데요. 이런 질문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그 목표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는 증명처럼 느껴져서 참 뿌듯합니다.

 

“커다란 두 눈이 눈으로 가득했다.
새카만 눈동자 옆으로 들여다보이는 흰자에 작은 눈알이 좁쌀처럼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는데,
어림잡아 세어 본 숫자가 자그마치 수십은 가볍게 넘었다.
그 작은 눈동자들이 상하좌우를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미친 듯이 굴러다니며 뒤룩거렸고,
그 수십 개에 달하는 수많은 시선이 종국에는 한군데로 모였다.”

 

7. 「토요미스테리 극장」이나 「전설의 고향」 등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TV 공포 콘텐츠는 늘 주말 밤마다 시청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주일 콘셉트로 전체 참여 작품들이 정해졌을 때 『우물』이 토요일에 배정된 작품 순서는 어떻게 느껴지셨는지요. 더불어 고유의 개성이 돋보이는 뚝심 있는 작품 활동이 인상적인데요, 브릿G 작가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공포문학 중편선 시리즈의 일환으로 단행본을 출간하게 된 소회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목표 등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요리를 처음 배우는 사람은 몇 년 동안 프라이팬을 잡지 못한다고 합니다. 기본을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호러, 오컬트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판타지나 로맨스 같은 다른 장르보다 필드가 좁다고는 하나, 기본기가 부족하다면 출판물로서 그 위에 중심을 잡고 서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출간을 기회로 드디어 그 프라이팬을 잡았다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저만의 요리로 당당히 선보일 수 있는 작품을 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브릿G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그리고 제 작품이 토요일에 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떠올린 생각은 ‘정말 운이 좋았다’였습니다. 토요일은 어제는 평일이고, 내일은 휴일이 되는 기점입니다. 모두가 가장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날에 작품이 배정되어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 인터뷰 질문을 읽고 나니 좋은 쪽으로 소름이 돋았습니다. 「토요미스테리 극장」과 「전설의 고향」을 정말 사랑하는 입장에서 만약 그 모든 것을 의도하고 배정해 주셨다면 정말로 감사한 일이고, 설령 우연이라도 마땅히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한테는 작가는 자신의 세계관을 고집 있게 밀고 가야 한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그러한 신념의 연장선에서 첫 개인 출간작인 『우물』의 세계관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 가고자 합니다. 세습무가 나왔으니 다음은 강신무의 삶을 그려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고, 그 욕심은 시현이 등장하는 차기작 『무령』을 통해서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무령』을 잘 마무리한 다음에 또 한 작품을 완성해서 무속 트릴로지를 세상에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지금 당장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밖에는 못 드리는 점이 많이 아쉽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채워가겠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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