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포문학 주간] 이마음 작가의 『사람의 심해』에 대한 7가지 물음

2024.10.7

한국 공포문학의 새로운 도전 『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출간을 기념해 일곱 작가와 함께하는 7문 7답 릴레이 인터뷰 연속 기획, 그 두 번째 매거진의 주인공은 ‘화요일’ 작품을 담당한 『사람의 심해』 이마음 서리안개 작가님입니다!

크라임 앤솔러지 『내 이웃의 살인마』에 단편 「손가락 트렁크」를 수록 및 발표한 바 있는 이마음 작가님의 신작 중편소설 『사람의 심해』는 공포라는 장르를 통해 불안정한 청년 노동과 산업재해 등 이 시대의 문제를 직시하는 작품입니다. 작품 안팎에 대한 흥미로운 답변을 보내 주신 이마음 작가님과의 이야기를 이어서 전해 드립니다.

 


 

1. 소씨 가문에는 오랜 비밀이 있습니다. 가문 사람의 사후에 체내에서 생성되는 수산물로 삶을 영위하고 대대손손 번영을 누려왔다는 것인데요, 이러한 독특한 발상은 어디서 기인하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A. 제9회 작가 프로젝트 공고를 보고 무슨 이야기를 쓸까 2주 정도 고민하던 시기였습니다. 테마인 우주, 해양, 꿈, 사이버스페이스를 두고 온갖 소재를 궁리하던 때였죠. 마땅한 소재를 찾지 못하고 잠이 든 어느 날 꿈을 꿨습니다.

꿈에선 한 남자가 욕조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욕조에 든 것은 물이 아니라 미꾸라지였고요. 그 광경이 너무 기이하고 충격적이라 꿈에서 깨고 나서도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남자는 어째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남자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다 보니, 점점 흥미로운 발상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꿈에서 본 광경에, 상상력을 덧댄 끝에 『사람의 심해』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2. 죽은 이의 몸에서 수산물이 끊임없이 나오는 기적. 그러나 이 기적의 이면에는 음습한 일면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공포로 다가왔는데요. 작가님께서 꼽는 가장 섬뜩한 장면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A. 개인적으로는 기선의 딸에게 벌어진 비극이 가장 섬뜩하다 생각합니다. 어린아이에게 벌어진 죽음도 물론 끔찍한 비극이지만,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이야말로 참극이라 할 수 있겠죠. 소씨 가문에서 그런 행위를 자행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죽음이 죽음 이외의 것으로 다뤄지는 일만큼 끔찍한 상황이 더 있을까요? 소씨 가문의 가치관과 의견 대립이 드러나는 장면이므로, 여러 번 고쳐 썼던 것 같습니다.

 

3. 시체에서 생성되는 수산물은 일반적인 생물과 다를 바가 없고, 일정한 시간마다 한 개체씩만 발생하는 법칙이 기본이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기묘한 핏줄의 법칙을 깨는 사건이 일어나는데요. 이때 곰치와 게가 부도덕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등장하는데, 특별히 이 해양생물들을 고른 이유가 있을까요?

A. 곰치는 무는 힘이 강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곰치에게 손가락이 물려 절단된 사례가 있을 만큼. 그런 강력한 턱 힘과 더불어, 두툼한 뱀처럼 생긴 길쭉한 모양새가 오싹함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게의 경우는 작중에서 언급했듯 정유와 닮은 부분이 많아서 선택했습니다.

후반부의 진행을 위해선 수산물임에도 육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생물이 필요했는데, 그 점에서도 게는 조건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에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집게발이 공격적인 무기로 사용되면 공포감을 줄 거란 판단도 있었고요.

 

4. 산업 재해를 막을 수 있었던 회사에도, 죽음의 부산물을 파는 집안에도 저항하지 못하고 고통을 느끼는 주인공 정유의 심정을 심해에 비유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사람의 심해』라는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심해는 깊습니다. 공기가 없어 숨이 막히고, 빛이 없어 어둡고, 가라앉은 존재를 수압이 짓누르는 공간입니다. 그런 가혹한 환경이 정유를 둘러싼 상황과 닮았다고 봅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사람이 어디까지 사람에게 잔인해질 수 있는지 다루는 내용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자면 사람의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사람의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는 제 나름대로의 탐구인 셈이죠. 사람의 주변을 둘러싼 심해, 그리고 사람 내부의 심해를 이야기하는 소설이니 『사람의 심해』라는 제목이 가장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5. 불순한 가업을 잇지 않기 위해 가문을 벗어나 홀로서기에 도전했던 주인공 정유가 겪는 일들은 과로사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현대 사회의 축소판이었습니다. 무책임한 대표와 무능한 낙하산 인사 탓에 그간 해 왔던 일과 관련도 없고 사수도 없는 부서에 떠밀리듯 인사이동이 되어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동료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홀로 참고 견디며 죽기 직전까지 일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퇴사하고 싶어도 사기를 당해 진 빚과 불경기로 인한 취업난 탓에 퇴사할 수 없는 상황까지 모든 일이 촘촘하게 맞물려 개연성 있게 진행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사회파 호러’로서의 면모도 엿볼 수 있었는데요, 구상할 때부터 이런 사회적 구조와 현실을 녹여내고자 설계하거나 의도했던 부분이 있을지요.

A. 이 이야기를 쓰기 몇 개월 전, 저는 수년 동안 다녔던 회사를 퇴사하고 백수로 지내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회사를 다니던 시기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될 만큼 힘겹고 버거운 일이 많았습니다. 책 속의 정유가 겪은 일의 7할가량은 실제로 제가 겪은 일입니다. 온갖 부당하고 괴로운 상황을 겪었다 보니, 퇴사한 이후에도 회사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취직하게 된다면 또 그런 일을 겪는 건 아닐까 두려워졌습니다.

그런 내면의 공포가 글을 쓰는 도중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보여 드린 정유의 이야기는, 결국 당시의 제가 겪은 가장 큰 공포였으니까요.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은 비단 저뿐만이 아닐 터. 이 주제야말로 제가 지금 다뤄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연히 꾼 꿈에서 시작된 단순한 발상이, 언급해 주셨듯 ‘사회파 호러’로 확장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물 한 방울 없는 이곳이 심해와 같은 수압으로 자신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어째서 자신의 온몸이 찌부러지지 않는지 의아했다. 이미 누군가의 손가락 네 개는 뭉개졌는데.”

 

6. 비윤리적인 가업에 종사하면서도 정유의 괴로운 마음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으로 정유의 오빠인 ‘정민’이 등장합니다. 정민이 가업의 방향성이 옳지 않다며 정유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을 통해 보다 입체적인 인물로 느껴졌습니다. 이야기의 결말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요, 정민은 어떤 역할로서 쓰임을 고려하고 캐릭터를 조형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정유는 회피하는 인물입니다. 가업에서 회피하고, 괴로움에서 회피하다, 끝내 삶으로부터 회피하죠. 정민은 그 반대로 설계했습니다. 가업에 종사하고, 사건이 터지면 그 중심으로 뛰어들며, 삶과 죽음을 똑바로 마주합니다. 주인공과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되, 주인공과 대적하지 않는 인물을 만들어 이야기를 더 풍부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정유가 조금이나마 마음을 열 수 있는 상대를 만들어 주고 싶기도 했고요.

 

7. 브릿G에 최초로 올려 주신 공포 단편 「손가락 트렁크」가 크라임 앤솔러지 『내 이웃의 살인마』에 수록되어 출간되었고, 작가 프로젝트를 통해 선정된 『사람의 심해』가 개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손가락 트렁크」는 이색적인 반전이 굉장히 독특하게 느껴졌었는데, 단편소설을 집필하실 때와 중편소설을 집필하실 때 다른 점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다른 장르나 장편소설 집필 계획 등이 있는지, 마지막으로 활동 목표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단편소설은 분량이 적다 보니, 상세하게 인물이나 세계관을 다루기보단 전개에 집중한다는 느낌이 큰 것 같아요. 중편소설은 보다 많은 지면을 사용할 수 있으니 인물의 심리 묘사나 세계관 설명에 더 투자해도 되니 즐거웠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욕심이 있는 장르는 SF지만, 가방끈이 짧아 만족스러운 걸 쓰지 못하는 중입니다. 당분간은 여태 그랬듯 호러와 스릴러 위주로 집필할 것 같아요. 장편소설은 언제나 욕심을 가지고 있지만 마땅한 소재를 찾을 때까진 보류해야 할 듯싶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정유는 회피하는 인물입니다. 정유를 따라가던 『사람의 심해』도 어찌 보면 소씨 가문의 이야기에서 회피한 셈이지요. 기회가 된다면 정민의 시선을 따라 이 이야기를 장편으로 더 부풀려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네요. 소씨 가문 이야기에 매듭을 지을 수 있도록.

결국, 단편소설로 처음 제 글을 출간하게 되었고, 이번 기회로 중편소설을 내놓았으니 다음엔 어떤 내용이든 간에 장편소설을 선보이는 게 목표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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