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발견된 식당에서 파는 메뉴의 이름은 나폴리탄

산에서 길을 잃었다. 아무리 걸어도 산을 빠져 나갈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은 풀려가고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다. 더는 갈 수 없다고 생각할 쯤 식당 하나가 눈에 보였고,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메뉴판을 건넸고, 메뉴판에는 나폴리탄이라 쓰인 메뉴 하나뿐이었다. 나폴리탄을 주문하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주문한 나폴리탄이 나왔다.

“주문하신 오늘의 나폴리탄 나왔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 되었다.

 

나폴리탄은 너무 짜서 마치 소금으로 만든 면을 먹는 느낌이었다. 먹으면 먹을 수록 머리가 아파왔다. 내가 불평하자 직원은 죄송하다면서 다른 나폴리탄을 내주었다. 이번에는 평범한 나폴리탄이었다. 가게를 나서고 다시 산을 향해 걸어갔다.

산에서 길을 잃었다. 아무리 걸어도 산을 빠져 나갈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은 풀려가고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다. 더는 갈 수 없다고 생각할 쯤 식당 하나가 눈에 보였고,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직원으로 보였었던 사람이 메뉴판을 건넸고, 메뉴판에는 나■리탄이라 쓰인 메뉴 하나뿐이었다.

 

‘이 글자는 뭐지?’
나는 의문스럽게 생각했다. 그건 지금까지 살면서 본 적 없는 글자였다. 그렇게 생긴 한글이 있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은 쓰지 않는 중세국어의 ㅿ나 ㆆ 같은 글자를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지극히 평범한 자음과 모음의 조합. 하지만…
“이 글자는 어떻게 읽는 거죠?”
한참을 망설인 끝에 나는 직원에게 ■를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직원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외국 분이세요?”
애매한 미소와 함께 물으며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이건 ■라고 읽어요.”

 

아무리봐도 네모라고 읽혔다.
나는 네모라고 외쳤다. 그러자 다른 직원이 황급히 달려와 나에게 말했다.
“사실 이건 네모가 아니라 폴리라고 읽으면 되지만, 절대 폴이라고 대답해서는 안됩니다.”
직원은 폴이라고 두 번이나 외쳤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었다.
“나폴리탄 규칙 세계 속으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럼 첫 번째 수칙은.”

 

“…첫 번째 수칙은 메뉴 주문 이외엔 직원과 대화를 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아, 그런 건 미리 얘길 해줘야지…
“그리고 두 번째 수칙은 메뉴판에 적힌 어떤 글자를 소리내어 읽어선 안 된다는 것이지요.”
왠지 다음 수칙까지는 듣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읽은 직후 말을 거는 사람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만 하면 됩니다.”
직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얀 비닐을 뒤집어쓴것 같은 얼굴의 중년여성이 내게 다가왔다.

 

여성은 곧 내 옆자리에 앉았다. 중년여성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머리가 심하게 아파왔다. 고개를 돌려 얼굴을 외면하자 방금 전의 두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여성은 그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방금 오셨나요? 저는 자주 온답니다. 여기 음식이 정말 좋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다. 방금 전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규칙을 어기면 어떻게 되지? 애초에 내가 왜 여기에 왔지? 내가 여기에 왔었던가? 한참이나 혼자 말을 이어나가던 여성에게 직원이 다가와 메뉴판을 건네었다.

 

─산에서 길을 잃었다. 아무리 걸어도 산을 빠져 나갈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은 풀려가고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다. 더는 갈 수 없다고 생각할 쯤 식당 하나가 눈에 보였고,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직원, 처럼 존재하는 사람이 메뉴판을 건넸고, 메뉴판에는 나■리◆이라 쓰인 메뉴 하나뿐이었다.

 

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나는 읽을 수 없는 메뉴에 짜증이 났다.
직원처럼 존재하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차가운 그의 시선은 메뉴판으로 옮겨 갔다.
‘산에서 내려가는 길을 먼저 물어볼까?’
잠깐 머뭇거리던 나는 나■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는 고기가 들어 가나요?”
“이게 들어갑니다. 하나 드릴께요”
그는 나■리◆를 가리키며 말하고는 메뉴판을 낚아채어 주방으로 연결된 커튼 속으로 사라졌다.
홀에는 4개의 테이블이 띄엄띄엄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고 있다.
비릿한 내음이, 끈적끈적한 습기가 느껴진다.

 

“주문하신 나■리◆ 나왔습니다.”
무뚝뚝한 인상의 사람이 주먹 두 개를 합친 것같은 크기의 미트볼이 덩그러니 올려진 붉은 소스에 버무린 면같은 음식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니, 고기가 없다고 해놓고 이렇게 뻔한 수작을 부리는 게 괘씸했다.
“이봐요!”
나는 소리를 질렀지만,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산에서 길을 잃었다. 아무리 걸어도 산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다리에 힘은 풀려가고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다. 고기가 먹고 싶다. 난 고기를 아주 좋아한다.

 

“세번째 수칙이 뭐였더라?”
밑도 끝도 없이 그런 의문이 들었다. 식당이 눈에 들어온 것도 마침 그때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도 없이 텅 빈 식당 내부는 영업을 안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입구 바로 옆에 비스듬히 세워진 간판에 분필로 ‘営業中’와 ‘오늘의 메뉴 나■◾◆’이라 쓰인 걸 보고 홀린 듯이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칼로 후벼판 날카로운 글씨체로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었다.
“세번째 수칙은ー”

 

세번째 수칙은 ‘다른 성별의 사람과는 같은 메뉴를 시켜서는 안된다.’
머리가 아련해지기 시작한다. 기억을 더듬어보기 시작한다. 어느 산에 들어온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나폴리탄. 산에서 발견된 식당에서 파는 메뉴의 이름은 나폴리탄이란 것 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산에서 길을 잃었다. 아무리 걸어도 산을 빠져나갈 수 없다. 다리에 힘은 풀려가고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다. 고기가 먹고 싶다. 난 고기를 아주 좋아한다.’
식당의 네번째 규칙. ‘어느 규칙의 위반에는 어떤 벌칙이 따른다.’

 

갑자기 어두 컴컴해지더니 퉁하고 엉덩이부터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뒤늦게 밀려오는 통증을 아파할 때가 아니다.
양옆은 막혀 있지만 앞뒤는 뚫린 이 느낌, 일단 어둠 앞으로 나서야 했다.
그러고 보니 네번째 규칙에서 벌칙이 어쩌구 하던데 뭐지?
설마 규칙이 더 존재하는 건가?

 

앞은 안 보이고 엉덩이는 송곳으로 쿡쿡 쑤시는 듯 아픈데 머리속에선 그놈의 규칙들만 돌아다니고 있다.
다행히 정면에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해서 그곳을 향해 걸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작은 레스토랑이다.
분명 난 산에서 길을 잃었고 어딘가에 들어와 앉았고 그리고 더럽게 짠 뭔가를 먹… 대체 여긴 어디지?
왠지 이제는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폴리탄 레스토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간단한 몇가지 규칙만 지켜주시면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이놈의 규칙을 하나라도 어기면 안 내보내겠다는 말로 들렸다.

 

“첫번째 수칙입니다. 우리 레스토랑은 자정까지 운영하지만 그 전에 들어오신 손님께서는 언제까지든 식당에 계실 수 있습니다. 다만 붉은 나비넥타이를 한 사람은 이 곳의 직원이 아니니 그 분께 주문을 하셔선 안 됩니다.”
붉은 나비넥타이라… 지금 내 앞에 서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이 남자 말인가.
그것보다 왜 수칙이 바뀐 거지? 분명 첫번째 수칙은 이게 아니었는데…

“주문 하시겠습니까?”

주문을 받아선 안 되는 사람이 내게 주문을 요구하고 있다.

 

“아.. 저.. 여기 화장실이 어디죠?”

나는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느끼며 최대한 평온한 말투로 질문을 했다. 붉은 나비넥타이를 한 사람은 내 질문을 듣더니 미묘하게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화장실은 주문을 하신 고객님들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주문을 먼저 해주시겠습니까?”

붉은 나비넥타이도 만만치 않았다.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생각하는 소리가 눈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두번째 수칙입니다. 주문을 하지 않고 레스토랑에서 나가서는 안 됩니다.”

 

내 머릿속을 왕왕 울리는 목소리는 기계처럼 수칙을 읊어댔다.
“세 번째, 미트볼은 눈을 감고 음미해주시기 바랍니다. 딱딱한 것이 씹히는 느낌은 착각입니다. 손톱과 발톱은 깔끔하게 제거되어 제공됩니다.
네 번째, 계산은 반드시 현금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용카드를 요청하는 직원이 있다면 홀매니저를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홀매니저가 적절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다섯 번째..”

“미트볼 페투치니 나왔습니다.”
내 앞에 붉은 소스가 가득한 접시가 내려오자 퍼뜩 정신이 들았다. 밝은 조명과 다른 손님들의 웅성이는 소리에 머리가 아파온다.

 

나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배가 고팠다. 미트볼 조각이 입 안에서 녹아내렸다. 바로 두 번째 조각을 썰어 입에 넣었다. 마찬가지로 부드러웠다. 내가 고기를 좋아했던가? 세 번째에는 붉은 소스를 한껏 버무려 먹었다. 중독적인 맛이었다. 고기를 안 먹는 사람들이 멍청하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네 번째 조각은 음미하기 위해 더 큼직하게 썰었다. 크게 썰어서인지 입 안에서 딱딱한 뭔가 걸리적거렸으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내가 다섯 번째 수칙을 들었었나?

호스트 코멘트

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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